소설리스트

177화 (177/231)

177화

“실없는 소리 하지 말고. 포션이나 마셔.”

“아니, 그 키를 보고 어떻게 아무 말도 안 할 수가 있냐. 그보다 이미 포션 중독 심화 상태라 먹어도 아무 효과 없어. 깡으로 버티는 중이니까 백업이나 잘해.”

짧게 푸념한 반서진이 크게 심호흡을 하며 다시 몸을 일으켰다.

갑자기 거인이 되어 나타난 서지한 때문에 잠깐 웃었더니 그래도 기운이 좀 생겼다.

“그런데 모아는 어디 갔어?”

분명 아까 유은담이 부숴야 할 다음 포탈의 위치를 알려주기로 했는데 갑자기 반서진의 백업을 하라니.

의아해하는 서지한에게 반서진이 손가락을 들어 하늘을 가리켰다.

“위에.”

“왜?”

“보면 알아.”

어깨를 으쓱한 반서진은 다시 부지런히 약한 몬스터들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사이사이에 보이는 강한 몬스터를 상대하는 것이 서지한의 역할이었다.

그는 내심 반서진이 자신을 백업하는 게 아닌가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좋았으므로 조용히 몸을 움직였다.

그 시각, 고층빌딩조차 까마득한 높이에서 손모아는 서울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 정도로 높이 올라오면 산소가 부족해 현기증이 날 법도 했으나 아이템의 환경 초월 기능 덕분인지 아무렇지도 않았다.

상공의 거친 바람이 밝은 갈색 머리카락을 마구 흐트러뜨렸다.

처음에는 몬스터를 소환하는 포탈을 찾아 파괴하면 일이 마무리될 것으로 생각했으나 상대도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서지한을 던전 관리청으로 보내고 다음 포탈 위치 정보를 기다리는 손모아에게 전달된 것은 유은담의 난감한 목소리였다.

"누나, 이 새끼들 눈치챘나 봐요. 계속 위치 이동하면서 소환하고 있어서 어디라고 알려드리기가 힘들어요. 던전 관리청 외에는 팀 짜서 이동하면서 소환하고 있는 듯하고요. 그리고 꼭 포탈로만 오는 것도 아닌 것 같아요."

"무슨 뜻이야?"

"좀 강한 놈들은 이동 스크롤로 일일이 이쪽으로 이동시키고 있는 것 같거든요."

"누가? 우리나라 헌터가?"

"보스 몬스터 하나 떨구고 가는 사람 봤는데, 외국 헌터 같았어요. 벌써 그런 놈만 열 명째 봐요."

"국적은?"

"다양해요."

그 말에 손모아가 느낀 환멸감은 이가 갈리는 것이었다.

그렇게나 물심양면으로 도와줬는데 돌아온 결과가 이거라니.

서지한과 반서후가 위급한 지역을 지원한 것은 공공연히 알려진 사실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그 은인의 나라에 몬스터 테러를 하는 것으로 보답한 것이다.

"누나, 안 되겠는데요. 방금도 한 팀 찾았는데 저 보자마자 바로 튀었어요."

유은담의 말에 손모아는 순수한 의문을 느꼈다.

대체 뭣 때문에 이렇게까지 하는 거지? 무엇을 위해서?

그들에게는 파괴되고 있는 서울이 보이지 않는 건가?

그러나 의문은 잠깐이었다.

지금 상황에는 원론적인 의문보다 빠른 판단과 행동이 필요했다.

손모아는 씁쓸한 기분으로 유은담에게 지시했다.

"은담아. 지금 싸울 수 있는 헌터들, 다 서울 안으로 들어오라고 해."

"지금요?"

"그래, 지금 당장. 최대한 빨리 이동하고 다 되는대로 알려줘."

"어, 네 알겠어요. 그런데 뭘 하시려고……."

"서울을 봉쇄할 거야."

긴 설명은 필요하지 않았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유은담은 짧게 침묵하더니 알겠다는 대답을 남겼다.

그리고 손모아는 서울이 한눈에 보이는 높이까지 올라와 유은담의 연락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누나. 갈 수 있는 사람은 다 갔대요. 지금 마지막으로 쉬던 헌터들도 다 재투입됐어요.”

“알았어. 고마워.”

드디어 기다리던 대답이 돌아왔다.

손모아는 남아 있는 마력 양을 가늠하며 소통 유과 몇 조각을 꺼냈다.

기다리는 동안 마력이 약간 회복되긴 했지만, 바짝 마른 샘에 살짝 물기가 어린 정도에 불과했다.

지금 이 마력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하지만 해야 했다.

이대로 계속 몬스터를 잡아봐야 결국 끝이 없었다.

흘러들어오는 호수 물을 바가지로 퍼내는 꼴이었다.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더 이상 새로운 몬스터가 공급되지 않게 하는 것이다.

소통 유과를 한 입에 털어 넣은 손모아가 조용히 선언했다.

“지금부터 서울 전체를 봉쇄할게요. 한번 나가면 제 허락 없이 다시 들어올 수 없으니 밖으로 나가지 않게 조심해주세요.”

“모아야? 가능하겠어? 너 지금 마력이……."

“시작할게요.”

서지한의 염려 어린 목소리를 무시하고 손모아는 인벤토리에서 A급 마력 회복 포션을 여러 병 꺼내 마셨다.

독도 인근에 쳤던 성역 결계와 비교도 되지 않은 넓은 지역에 스킬을 전개해야 했다.

그만큼 엄청난 마력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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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시간 동안 지나치게 많은 포션을 사용하여 '상태 이상: 포션 중독'에 걸립니다.

포션 중독으로 인해 포션의 효과가 크게 감소합니다.

'상태 이상: 포션 중독'지속시간 24시간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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