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화
하긴, 요즘 여기저기 몬스터가 나온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그런지 좀 예민해졌나 보다.
김 대리가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다시 한번 크게 사이렌이 울렸다.
국민 여러분, 이 경보는 실제상황입니다. 신속히 가까운 지하 대피시설로 대피하시기 바랍니다. 현재 18시 11분 현 시간부로 서울시 전체에 비상 체제를 발령합니다. 모든 국민 들은 신속히 가까운 지하 대피시설 및 실내로 이동하여 습격에 대비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이 경보는 실제상황입니다.
이어진 방송에 공원의 사람들은 순식간에 공황상태에 빠졌다.
그러나 뚜렷한 위협의 대상이 보이지 않아서 그런지 아직 침착함을 유지하고 있는 편이었다.
“서울에도 몬스터 나타난 건가?”
"지금 근처에 있는 걸까요?”
"어느 방향에 몬스터가 있는지 알려줘야지! 어디로 가야 하는 거야?”
"지하철로 가면 되지 않을까요?”
"여기서 지하철까지 걸어서 20분이나 걸리는데요? 그냥 공원 화장실에 가 있을까요?”
“딱히 움직이는 사람도 없어 보이는데, 여기는 괜찮은 거 아닐까?”
"그러게. 일이 났으면 이미 난리가 났겠지.”
“몬스터 그거, 해외에서 날아 들어온 거라잖아. 여기는 서울인데 여기까지 날아서 올 수가 있나?”
"그러게. 있어봐야 몇 마리 안 왔겠지.”
밥을 먹던 사람들이 저마다 한 마디씩 하기 시작하자 무료급식소는 순식간에 소란에 휩싸였다.
그러나 정작 움직이는 사람은 한 명도 없는 상태로 ‘진짜인가?’같은 소리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어? 어, 저기! 저기 봐. 저기 뭐 있다!”
거대한 청록색 해파리가 촉수를 느릿느릿 움직이며 천천히 도시를 배회하고 있었다.
초현실주의 그림에나 나올 것 같은 광경에 모두 놀라는 것조차 잊고 멍하니 그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촉수 길이가 얼마나 긴지 10층짜리 건물 위로 해파리의 갓이 불쑥 솟아 있었다.
“바다도 아닌데 뭔 해산물이……."
누군가가 그렇게 중얼거리는 순간, 해파리의 촉수 여럿이 느긋하게 움직여 도로의 차들을 말아 쥐었다.
그리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인지 할 새도 없이 그대로 사방을 향해 차를 집어던졌다.
쾅!
뇌를 울리는 폭발음과 곳곳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그 충격에 사람들은 갑자기 잠에서 깨어 난 듯 고함과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무작정 해파리와 반대편으로 달리기도 했다.
“타세요! 여기 타세요!”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신 차장이 밥 차 뒤 공간으로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뛸 수 있는 사람 중 발 빠른 사람들은 벌써 어디론가 가버렸지만 다리를 절거나 휠체어를 타고 있는 사람들은 어쩔 줄 모르고 있었다.
그런 그들에게 신 차장의 손짓은 구원의 동아줄이었다.
“김 대리, 여기 사람들 타는 것 도와줘요! 안에 있는 것 다 버려도 되니까, 최대한 많이 태워야 해!”
그렇게 외친 신 차장은 앞서 차 뒤에 실린 짐들을 모두 바닥으로 내다 버리기 시작했다.
김 대리도 뒤늦게 걸을 수 없는 사람을 챙기며 허겁지겁 움직였다.
최대한 많은 수를 태우고 싶었지만 밥 차의 작은 공간은 단숨에 사람들로 가득 차 버렸다.
남은 사람들은 어떻게든 안으로 들어가 타려고 하다가 연이어 터지는 폭음에 깜짝 놀라 사방으로 흩어져 도망치기 시작했다.
“김 대리, 타요!”
신 차장이 먼저 운전석에 앉자 뒤이어 김 대리가 조수석에 앉았다.
안전벨트를 당기며 김 대리가 초조하게 물었다.
“어디로 가시게요?”
“지하철. 운전해서 이 사람들 지하철에 내려줄 거예요.”
“지하철이면, 저쪽 방향인데, 저 괴물들 뚫고 간다고요?”
언제 나타났는지 길목에는 속속들이 몬스터가 나타나 사람들을 학살하고 있었다.
차도, 인도할 것 없이 아비규환의 모습이었다.
신 차장은 어금니를 단단히 깨물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가야죠. 다만, 좀 돌아서 갈 거예요. 몬스터는 저쪽에서 나타났으니까 반대쪽으로 차를 몰아서 돌아서 가면 많이 마주치지는 않을 거예요.”
"그랬으면 좋겠네요.”
신 차장이 강하게 액셀을 밟았다.
한시도 지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대체 어디서 나오는 건지 몬스터가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마치 다시 던전에 들어오기라도 한 것 같았다.
“신 차장님, 앞!”
상체는 인간, 하체는 문어처럼 생긴 몬스터가 갑자기 트럭 앞으로 떨어져 내렸다.
신 차장은 다급하게 방향을 틀었다.
바퀴가 길을 할퀴는 소리가 날카롭게 울려 퍼지며 고무 타는 냄새가 진동했다.
“우아악!”
“여기, 깔렸어!”
“아악!”
거친 운전에 트럭 뒤에 탄 사람으로부터 아우성이 터져 나왔다.
몬스터들이 차를 노리기 시작하자 아예 차를 버리고 도망치는 사람들도 많았다.
덕분에 도로는 곳곳이 정체되어 제대로 달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신 차장은 거칠게 핸들을 꺾어 인도를 침범했다.
그리고 그대로 공원을 가로질러 달리기 시작했다.
잘 조성된 화단이나 잔디밭이 마구 파헤쳐졌지만 이 판국에 그런 걸 신경 쓰는 사람은 없었다.
신 차장의 머릿속에는 오직 가장 안전한 경로의 길을 찾아가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좋은데요? 이대로 순조롭게……."
쾅!
거침없이 달리는 트럭에 희망을 본 신 대리가 밝게 말하는 순간, 강한 충격이 트럭을 덮쳤다.
차체가 쓰러질 듯 아슬아슬하게 기우뚱하다가 쿵 하고 간신히 제대로 섰다.
뒤에서 공포에 질린 비명이 터져 나왔다.
“차장님, 왼쪽! 왼쪽!”
김 대리의 비명을 듣고 사이드 미러를 살피자 거대한 메뚜기 같은 것이 트럭에 달라붙어 있는 것이 보였다.
이어서 다른 몬스터들도 속속들이 도착하는 중이었다.
달라붙은 메뚜기가 머리로 강하게 트럭을 들이받자 차벽이 움푹 파이며 안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끄아아악!”
“나, 그냥 내릴래! 내리게 해 줘!”
"우아악, 뭐야! 뭐냐고!”
신 차장이 질끈 눈을 감았다.
제발 뒤에 탄 사람들이 많이 다치지 않았기를 바랄 뿐이었다.
어딘가 차를 몰 수 있는 길을 찾아 신 차장의 눈이 다시 바쁘게 움직였다.
그런 그녀의 귓가로 김 대리의 떨리는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차, 차, 차장님. 너무 많아요…… 몬스터가, 너무 많아요."
김 대리의 목소리는 이미 반쯤 울음기에 잠겨 있었다.
몬스터들은 이제 본격적으로 트럭 뒤쪽 카고 벽을 갉고 뜯으려 하고 있었다.
안에서 들리는 비명소리가 놈들에게는 흥미로운 장난감의 노랫소리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제발, 제발! 제발!”
신 차장은 필사적으로 액셀을 밟았다. 엔진이 공회전하며 사납게 신음했다.
그리고 그 순간, 메뚜기가 카고 벽을 찢어 버렸다.
뜯겨나간 차체 조각이 텅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땅에 나뒹굴었다.
“와아아아악!”
“괴물, 괴물이다!”
“살려줘! 으아악, 와 아아악!”
무방비하게 몬스터 앞에 노출된 사람들이 비명을 질렀다.
그 광경을 근거리에서 보고 있는 신 차장은 살아 있는 기분이 아니었다.
그저 원망스러운 엑셀만 강하게 밟을 뿐이었다.
그러나 차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순간, 카고에 바짝 붙어있던 몬스터가 뭔가에 후려쳐진 듯 휙 날아갔다.
깜짝 놀란 신 차장의 눈에 아까 배식을 받아가던 외팔의 시민이 보였다.
그의 하나밖에 없는 팔이 파르스름하게 빛나고 있었다.
“저 사람 헌터였어요?”
김 대리가 놀라 외쳤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외팔의 헌터는 거칠게 외쳤다.
“어서 밟아! 지하철까지! 바퀴 잡고 있던 놈 떨궈냈어!”
신 차장은 묻고 싶은 게 많았지만 일단 차를 몰기 시작했다.
지금은 가야 할 때였다.
“젠장.”
외팔 헌터는 반서후와 유은담의 연합에 소속된 헌터였다.
이런 몸이 된 후 보상을 요구하다 대한 길드의 블랙리스트에 올라 어디에도 갈 수 없는 신세가 되었다.
세상에 환멸을 느끼고 부랑자처럼 떠돌던 차, 반서후의 말을 듣고 그쪽에 몸담았던 것이다.
지금까지는 한국이 안전해서 할 일이 아무것도 없었지만 그는 그런대로 만족했다.
하지만 얼마 전부터 들려오는 뉴스가 슬슬 불안해져서 이렇게 사람들 사이에 섞여 상황을 살펴보고 있었다.
되도록 이런 순간이 오지 않기를 바랐건만.
“개같이 많네.”
한 번의 고비는 넘겼으나 몬스터는 점점 더 많아지고 있었다.
다시 달리기 시작한 트럭은 결국 얼마 못가 공원을 절반쯤 지난 후 다시 멈춰 섰다.
도저히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몬스터들이 앞을 막아섰다.
“한 500미터만 가면 되는데, 빌어먹을.”
거칠게 가래침을 뱉은 그가 트럭에서 내려왔다.
차에 남은 사람들은 혹시 그가 혼자 도망갈까 불안한 시선을 보냈다.
그는 등 뒤로 빽빽이 느껴지는 시선을 외면하며 눈앞의 몬스터에 집중했다.
저렇게 수가 많으면 차로 가는 것도 불가능하다.
하지만 내려서 달리는 건 완전히 자살 행위였다.
“나 혼자 안 도망가니까 그렇게 보지 마쇼.”
인벤토리에서 마력 회복 포션을 한병 꺼내 마신 그가 다시 스킬을 시전 했다.
이 포션도 반서후 쪽에서 지원해준 물건이었다.
몇 개 받지 못해 되도록 아껴두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오늘은 써야겠다.
“내가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중얼거리는 그를 향해 몬스터 한 마리가 달려들었다.
그의 손에서 뻗어나간 파르스름한 권기가 몬스터를 그대로 후려쳤다.
이어서 또 한 마리, 다시 한 마리.
정신없이 몬스터를 상대하며 그가 발악하듯 외쳤다.
“젠장, 여기 지원 좀 하라고! 나 혼자서 어쩌라는 거야!”
신경질적으로 소통 유과 반쪽을 씹어 먹은 그가 다시 어딘가로 다급하게 연락하기 시작했다.
“여기, 잠실역 옆 올림픽대로 쪽에 지원 좀 해! 개떼들 졸라 많아! 뭐? 그쪽도 급하다고? 아니, 빌어먹을 반서후든 뭐든 센 놈들 좀 오라고 하라고! 여기 난리 났어! 같은 편이라며? 이런 일 있으면 사람들 도와달라고 우리보곤 그렇게 말했으면서 정작 그놈들 어디 있는 건데! 빌어먹을!”
건너편에서도 비슷한 아우성이 다시 되돌아왔다.
식은땀이 눈 안으로 들어가 따끔거렸지만 그는 눈조차 깜빡일 수 없었다.
잠깐이라도 한눈팔면 바로 죽는다.
그러면 뒤에 있는 민간인들도 함께 몰살당하는 거였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그는 잘 우는 성격이 아니었지만 이런 상황을 앞두니 진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배급받은 이동 스크롤 한 장이 인벤토리에 고스란히 있었지만 사람들의 간절한 시선을 받으니 도저히 쓸 엄두가 나지 않았다.
“마지막 마력 포션인데, 젠장.”
포션 한 병을 다시 비운 그가 발악하듯 마구 스킬을 사용했다.
애초에 스킬 등급이 낮아 마력 효율이 나쁜 탓에 몇 발 쏘면 바로 지쳐버렸지만 그는 필사적인 힘으로 버텼다.
결국 스킬을 써도 몬스터가 물러나지 않을 정도로 그의 기운이 완전히 소모되었다.
이제 정말 이판사판이었다.
스킬이 안 되면 이빨이라도 써야겠다.
“덤벼, 이 개새끼들아! 난 가진 것도 없어서 미련도 없어! 죽여 봐, 이 새끼들아!”
그가 몸을 날리려는 순간, 본부로부터 희색이 만연한 목소리가 날아왔다.
“야! 간부 한 명 간대!”
믿을 수 없는 말에 그가 눈을 크게 떴다.
진짜 온다고?
반서후가?
아니면 유은담이?
그러나 도착한 것은 그가 생각지도 못했던 인물이었다.
인왕 손모아의 등장으로 ‘상태 이상: 위압’에 걸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