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6화 (166/231)

16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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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연방 헌터 관리국 소속 A급 전투계 헌터 톰 스미스 하사.

어디를 가더라도 절대 무시당할 신분은 아니며 스스로도 자신의 힘에 무척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왔던 그였지만 각성 후 오늘만큼 무력감을 느낀 적은 없었다.

새벽녘, 갑작스러운 출동 명령을 받고 도착한 작전지에는 생전 처음 보는 지옥이 펼쳐져 있었다.

출발 전 확인한 시스템 메시지와 간략하게 전달받은 작전 개요를 통해 어느 정도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지만 실제로 도착해서 눈으로 확인하는 건 완전히 다른 차원이었다.

“빌어먹을, 이걸 어떻게 막으라는 거야!”

브리핑할 시간도 없이 바로 작전지로 보내진 그가 받은 명령은 단 하나, 던전에서 몬스터가 해방되어 민가를 덮치고 있으니 그들을 저지하라는 것이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이걸 어떻게 막으라는 건가.

아군의 수에 비해 수백 배는 되어 보이는 몬스터 떼 앞에서 톰이 느낀 것은 그저 새카만 절망감이었다.

일반적인 공략이었다면 사냥감으로 보였을 놈들이 마치 지옥문에서 튀어나온 악마처럼 보였다.

압도적인 수적 불리함.

그리고 그 격차는 점점 더 벌어지고 있었다.

눈앞의 던전에서 그야말로 끝없이, 끝없이 몬스터가 쏟아져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눈앞의 적에 정신이 팔린 사이 갑자기 머리 위에서 섬뜩한 기운이 엄습했다.

톰이 허겁지겁 그 자리를 피하자 그의 두 배는 되어 보이는 거대한 몬스터가 콱, 하고 그 자리를 내리찍었다.

만약 피하지 않았다면 최소 머리, 아니, 상체가 날아갔을 거다.

간신히 죽음을 피한 톰의 눈동자에 순식간에 두려움이 밀려들었다.

그것을 읽은 듯 몬스터가 소름 끼치는 소리로 웃었다.

“캬아악, 키키킥! 키킷!”

이런 전장은 처음이다.

이런 싸움 자체가 처음이었다.

던전 공략 체계가 어느 정도 자리 잡은 이후부터 헌터들은 공략을 하며 ‘위험’을 느낀 적이 별로 없었다.

미지의 괴수 앞에 목숨을 걸고 싸운다기보다 원양어선을 타고 가서 어획하고 돌아오는 어부에 가까운 생활이었다.

그런 평화가 영원할 거라고 생각했다.

‘던전에서 몬스터가 해방될 것’이라 주장하는 헌터가 있다는 풍문을 들었지만 온몸을 잠식한 안정적인 생활이 눈과 귀를 막아버렸다.

그냥, 지구가 오염되어 곧 사람이 살 수 없어질 테니 환경보호를 해야 한다는 과학자들의 주장처럼 멀고 먼 이야기로 느껴졌다.

헛소리라고 생각했다.

아니, 설령 헛소리가 아니더라도 왜 자신들이 던전을 닫아서 그 손해를 감수해야 한단 말인가?

우리가 혜택을 볼 만큼 본 후 닫아도 되지 않을까?

당장 위험한 신호가 있는 것도 아닌데 미치광이의 주장 한 마디를 믿고 손해를 보겠다고?

미친 소리지.

빌어먹을, 그 미친 소리를 믿었어야 했는데.

“젠장, 젠장……."

어렵사리 몬스터 하나를 해치우고 고개를 들자 포위망을 뚫고 날아가는 몬스터 무리가 보였다.

사방팔방으로 흩어지는 놈들은 분명 민가를 덮치겠지만, 저걸 막을 여력 같은 건 없었다.

아니, 애초에 포위망도 없었다.

“지원은 언제 오는 거야? 차라리 후퇴 명령이라도 내려달라고!”

톰보다 먼저 와서 싸우던 헌터가 비명처럼 외쳤다. 이름이, 빌이었던가?

그 마음은 이해하지만, 톰은 이를 악물고 반발했다.

“너 미쳤어? 우리가 후퇴하면 여긴 다 죽어!”

“우리가 다 죽는 것보다는 낫지! 빌어먹을, 난 이 상태로는 더 못 싸우겠어. 이탈한다.”

그 말을 끝으로 빌이 스크롤을 꺼내 찢었다.

톰은 욕설을 내뱉었다.

전장 곳곳에서 비슷한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빌이 이탈한 덕분에 톰에게 밀려드는 몬스터의 공격은 곱절이 되었다.

죽겠다. 이러다 진짜 죽겠다.

나도 이탈할까?

그런 유혹이 고개를 들 무렵, 뒤에서 물빛 섬광이 날아와 톰의 앞에 있던 몬스터의 가슴을 꿰뚫었다.

“톰 하사님, 조금만 더 힘내십시오!”

"제임스!”

방금 도착했는지 톰에 비해 제법 쌩쌩한 헌터가 그를 지원하고 나섰다.

이탈하는 헌터만큼 전장에 새로 보충되는 헌터들이 있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인원 보충이 된다고 해도 이건 안돼. 추가 지원에 대해 들은 거 없나?”

“군 병력으로 지원할 거라고 듣긴 했습니다만.”

그 말을 증명하듯 전장 곳곳에 탱크와 중화기로 무장한 병력이 나타났다.

이동 스크롤을 사용해서 바로 이곳으로 온 것이다.

이어서 쐐애액 하는 소리와 함께 머리 위로 전투기가 날아가는 것이 보였다.

추가 지원에 희망이 샘솟은 것도 잠시, 톰의 얼굴은 다시 어두워졌다.

아무리 무장했다고 해도 헌터가 아니라 일반인이다.

그들의 반사 신경으로는 날쌘 몬스터의 속도를 따라갈 수 없었다.

순식간에 치명상을 입고 전장을 이탈하는 군인들이 속출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탱크가 제 할 일을 좀 해주고 있다는 것이었다.

전투기에도 어느 정도 기대해볼 수 있을 듯했다.

그러나 이어진 일에 톰의 얼굴이 다시 굳었다.

“어? 잠깐, 쟤네 왜 떠나는 거야? 제임스, 탱크들이 왜 떠나는 거냐고.”

기껏 전투에 도움이 되던 탱크들이 갑자기 한 대 두 대 모두 모습을 감추기 시작했다.

톰이 당황해 다그치자 제임스가 씁쓸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난리가 난 것은 여기뿐만이 아니라서요. 시험 배치를 하고 전투능력이 입증되니 더 우선순위가 높은 곳으로 보낸 것 같습니다.”

뭐? 우선순위? 여기보다 더 급한 데가 어디 있어?”

“뉴욕과 워싱턴 근처에도 던전이……."

“이런 개 같은!”

톰은 이제야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해했다.

시스템 메시지를 보고 어렴풋이 추측하긴 했지만 몬스터가 돌아다니는 곳은 여기뿐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나마 여기는 민가가 멀리 떨어져 있어 상황이 좀 나은 편이었다.

뉴욕이나 워싱턴, 캘리포니아처럼 인구밀도가 높은 곳에도 같은 상황이 펼쳐져 있다고 생각하면 오싹했다.

윗선의 결정을 이해하지 못 하는 건 아니었지만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가슴으로 느끼는 분통은 별개의 문제였다.

“그래도 다 뺄 필요는 없지 않냐?”

"하하.”

제임스는 마른 웃음만 지으며 바쁘게 스킬을 사용했다.

난전이 벌어지고 있어서 스킬을 조준하는 것조차도 버거웠다.

제임스는 톰의 머리를 노리고 수직강하 하는 몬스터에게 마력을 모아 한 발 날렸다.

꽤 강하게 쓴 스킬인데 놈은 주춤하며 잠시 비틀거렸을 뿐 멀쩡했다.

등급이 꽤 높은 듯했다.

“저쪽에 마을이 하나 있던데. 저기 사람들은 다 죽었다고 봐야겠군.”

톰이 우울하게 중얼거렸다.

떼를 지어 날아가는 몬스터들을 본 것이다.

“그래도 전투기는 계속 출격하는 것 같은데 그나마 다행 아닙니까?”

제임스가 애써 긍정적인 의견을 피력했다.

톰도 동의했지만 저 전투기도 언제 대도시 쪽으로 차출될지 몰랐다.

탱크와 달리 전투기가 계속 이곳을 지원하고 있는 이유는 이 근처에 공군 비행 연습장이 있기 때문이었다.

“제길, 그걸 고마워해야 하나. 제임스, 뒤!”

위에서 강하하는 놈에게 시선이 팔린 사이 다른 놈이 제임스를 습격했다.

다급하게 지원하려 했지만 몬스터가 훨씬 빨랐다.

제임스의 등에서 선혈이 튀었다.

순식간에 안색이 나빠진 제임스가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스크롤을 꺼냈다.

“톰 하사님, 죄송합니다. 먼저 이탈하겠습니다.”

그대로 지운 듯이 모습을 감춘 제임스의 빈자리를 보고 톰이 다시 쌍욕을 내뱉었다.

이어지는 전투기의 폭격 소리가 귀를 먹먹하게 만들었다.

저 폭격 덕분에 전황이 나빠지지는 않고 있었지만 그것도 시간문제였다.

톰의 마음에 점점 포기라는 글자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순간 무서운, 엄청나게 무서운 느낌이 들었다.

뭔가 크고 무서운 것이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피부를 찌릿찌릿하게 만드는 위압감. 눈앞의 적도 도외시하게 할 만큼 압도적인 존재감.

온몸의 생존 본능이 당장 여기서 이탈하지 않으면 죽는다고 외치는 것 같았다.

보스 몬스터?

아니, 던전은 눈앞에 있는데 왜 보스 몬스터가 저기서 나오겠어.

아니지, 설마 다른 던전의 보스 몬스터가 여기로 오는 건가?

톰은 전투를 이어가며 죽지 않을 만큼만 신경을 분산시켜 위압감이 느껴지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나 캄캄한 밤하늘과 비행하는 몬스터 외에 딱히 보이는 건 없었다.

이 두려운 감각은 점점 강해지고 있는데.

뭔지는 모르겠지만 놈이 이쪽으로 오고 있는 게 확실한데!

빌어먹을, 지금이라도 튈까?

여기가 던전이 아니라서 좋은 점은 스크롤만 있다면 언제든지 도망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다른 헌터들도 그 위압감을 느끼고 그 방향을 흘끔거리기 시작했다.

안 보이는 보스 몬스터인가?

제길, 어디야?

어디냐고.

적어도 정체라도 알아내서 보고해야겠어.

“사람?”

눈이 밝은 누군가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 후 여기저기서 확신 어린 외침이 터져 나왔다.

“사람이다! 사람!”

“왜 저기에 혼자 날고 있는 거지?”

"저거 누구야? 아군인가? 위험하게 왜 저기 혼자 있어?”

톰도 한 박자 늦게 비행 중인 그것을 발견했으나 사람이라는 말에는 동의하기 힘들었다.

마치 충왕류에게나 붙어 있을 것 같은 기다란 날개가 바쁘게 움직이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다.

자신들을 덮치는 이 수왕류들도 새와 사람이 합쳐진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놈이 종종 있었다.

그것처럼 저것도 충왕류의 일종일지도 몰랐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이 느낌. 졸라 무서운데.”

근처에 있던 헌터 하나가 긴장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아군인가 적군인가.

누군가가 사람이라고 했지만 확신할 수 없었다.

만약 적이라면 지금 당장 여기서 도망치는 게 옳았다.

모두가 흘끔거리는 와중에 그 자가 있음 직한 위치에서 빛이 연속적으로 터져 나왔다.

한 발에 한 마리씩.

조준은 정확했다.

긴장했던 헌터들은 그가 몬스터들을 공격하기 시작하자 아군이라고 판단하고 다시 전투에 집중했다.

중앙에서 강한 헌터라도 파견한 모양이었다.

그 강한 헌터 덕분에 이 전장에도 숨구멍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다.

그가 나타난 덕분인지 몬스터들의 기세도 한풀 꺾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던전 게이트 쪽에서 불길한 기운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감각은 여지없이 적중했다.

“키에에에!”

던전 안에서 보스 몬스터가 나타났다.

30미터는 되어 보일 법한 거대한 불사조가 고개를 쳐들고 날카롭게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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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왕 피에기스의 등장으로 ‘상태 이상 : 위압’에 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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