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5화 (165/231)

165화

무너진 벽돌집에서 다리를 다친 사람 한 명 구출.

쓰러진 나무 벽 아래 깔린 사람 두 명 구출.

건물 잔해 아래에서 공포에 떠는 모녀 두 명 구출.

뒤집어진 차 안에서 습격당하기 직전이던 사람 네 명 구출.

날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보이는 대로 부지런히 사람을 구했지만 구출 속도는 지지부진했다.

가장 큰 문제는 사람들이 몬스터를 피해 숨어 있는 탓에 수색하는데 시간이 든다는 점이었다.

서지한은 마치 달인 같은 경지로 사람을 쏙쏙 찾아내어 구하고 있었지만 나는 그와 같은 예민한 감각이 없어서 최대한 눈을 크게 뜨고 찾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 한 불타는 집이 눈에 들어왔다.

2층은 이미 완전히 화마에 휩싸여 시커먼 연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지금 상황에서는 특별할 것 없는 광경이었으나, 1층 창문 안쪽으로 무언가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집의 현관은 어디선가 떨어져 날아온 기둥으로 가로막혀 있었고, 창문은 철제 틀 스테인드글라스라 사람이 빠져나올 수 없는 형태였다.

나는 불길함을 느끼고 서둘러 그 집으로 달려갔다.

“Help……."

현관문 앞에 도착하니 누군가가 안쪽에서 현관 유리를 필사적으로 두드리고 있었다.

피와 그을음이 묻은 지저분한 주먹이 몇 번이나 창문을 더듬고 온갖 물건을 집어던졌다.

하지만 문은 마치 방탄유리로 만든 것처럼 굳건했다.

“물러서요.”

들릴지 모르겠지만 일단 그렇게 말한 후 나는 안쪽에 있는 사람을 피해 약하게 충왕포를 쏴서 벽을 부숴버렸다.

그러자 안쪽에서 잔뜩 겁먹은 사람들이 주춤주춤 걸어 나왔다.

엄마, 아빠, 아들, 딸. 전형적인 미국의 4인 가족이다.

“여기는 위험하니까 이쪽으로 들어가세요.”

내가 게이트를 열어 보이자 어른들은 모두 고마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으나 반항적인 표정의 아들이 빠른 영어로 뭔가 따지며 거부했다.

사실 처음에는 이런 상황에 일일히 소통 유과를 먹이며 설득하려고 했으나, 그럴 시간에 다른 사람을 하나라도 더 구하는 게 낫다는 결론 이후로는 무시하고 있었다.

게이트 안으로 억지로 밀어 넣을 필요도 없이 그냥 게이트를 열어놓고 그 자리를 떠나면 몬스터의 습격을 피해서 알아서 들어갔던 것이다.

“그냥 엉덩이를 걷어차 버리지 그랬어.”

내가 사람들을 구하는 걸 보고 있었는지 서지한이 다가와 슬쩍 말을 건넸다.

“그럴 필요 있나요. 어차피 안 들어가면 본인들 손해인데. 제 다리에 힘만 빠져요.”

“그건 맞아.”

이 와중에도 서지한은 내 말에 짧게 웃어주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먼 곳으로 시선을 돌려 초자연적인 광경을 연출하고 있는 반서진을 턱짓했다.

“대단하네요.”

반서진은 마치 중력을 역행하는 듯한 모습으로 무너진 건물을 모조리 들어 올리고, 그 안에서 사람들만 쏙 뽑아 내 구조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끼어드는 몬스터는 그대로 압살 해버리기까지 했다.

“그래, 확실히 대단하긴 하는데 이렇게 계속 하나씩 구조하는 건 너무 비효율적이야.”

서지한의 말을 들으며 나는 계속해서 충왕포를 쏴서 몬스터의 숫자를 줄여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거의 3초에 한 마리씩 죽이고 있는데도 숫자는 줄어들 기미가 안 보였다.

“일단 몬스터들만 다 죽여서 안전지대로 만들면 하나씩 구조할 필요도 없을 것 같은데, 왜 이렇게 숫자가 안 줄죠?”

“계속 보충되고 있거든.”

서지한이 가리키는 방향을 보니 그 말대로 떼를 지어 날아오는 몬스터들이 보였다.

밤이라 어두워서 어느 정도 숫자인지는 가늠이 되지 않았지만 엄청나게 많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오히려 점점 불어나고 있어.”

"정말 밑 빠진 독에 물 채우기네요.”

“그렇지.”

“적어도 충왕뇌우 같은 광역 스킬이라도 쓸 수 있으면 좋겠는데.”

"그게 효율이 좋지.”

서지한이 부추기는 듯이 말했으나 나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분명 여기 어딘가 사람들 엄청 숨어 있거든요. 작은 마을이긴 하지만 사람이 이렇게까지 적을 리가 없어요.”

땅 아래 어디에 사람이 숨어 있는지 모르는 이런 상황에서 무분별한 광역 스킬을 쓰는 건 불가능하다.

잘못하면 몬스터와 함께 생존자까지 일망타진해버릴 수도 있었다.

“그러면 방법은 하나뿐이지. 원천 봉쇄하는 수밖에.”

“원천봉쇄……. 저놈들이 어디서 날아오는지 추적하면 던전 위치를 알 수 있겠네요.”

깨달음과 함께 나는 충왕 변이로 날개를 꺼내서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높은 곳에서 보니 확실히 저 멀리 치열하게 빛이 번쩍이는 장소가 보였다.

도시가 이렇게 작살이 났는데 왜 전투기 몇 대만 오고 헌터들은 하나도 안 오나 했더니 저기서 싸우느라 못 왔나 보다.

“저는 저쪽으로 가볼게요! 서지한 씨는 반서진 씨랑 같이 구조작업해주세요!”

아래쪽을 향해 외친 후 나는 마을 전체를 감싸는 성역 결계를 펼쳤다.

이 이상 몬스터들이 합류할 수 없게 하려는 것이다.

일단 이렇게 해두면 결계 안으로 이미 들어온 몬스터는 두 사람이 해결할 테니 상황은 금방 괜찮아지겠지.

나는 속도를 높여 날기 시작했다.

장비 덕분에 마력이 높아져서 그런지 부분 변이를 하는 것도 꽤 수월해진 느낌이다.

게다가 충왕포를 많이 쐈는데도 불구하고 지친 기분 없이 쌩쌩했다.

계속해서 전진해나가던 중 이쪽으로 날아오던 몬스터 떼와 마주쳤다.

여기는 도시도 아니고 아래쪽은 모두 숲이었다.

이곳이라면, 충왕뇌우를 써도 될 것 같았다.

앞으로 오래 싸워야 할 테니 마력을 조절해서 가능한 한 약한 위력으로 펼쳐야지.

시야에 들어오는 몬스터들을 쭉 홅으며 범위를 가늠했다.

마력을 끌어올리자 이마 위쪽에서 뿔이 새파랗게 빛나는 것이 느껴졌다.

“너네 다 죽었어.”

드디어 광역으로 쓸어버릴 수 있다는 생각에 반서진처럼 기세 좋게 말해봤는데, 괜히 말한 것 같다.

약간 머쓱하네. 이거 아무나 하는 거 아니구나.

듣고 있는 사람이 없어서 다행이다.

나는 고요히 숨죽인 채 몬스터들 이 범위 안으로 완전히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계속 이쪽을 향해 날아올 것 같던 몬스터들이 무언가 당황한 듯 멈칫하더니 갑자기 정지비행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곤 방향을 바꿔 왔던 길로 후다닥 되돌아가는 것이 아닌가?

마치 겁이라도 먹은 것 같은 움직임이었다.

왜 저래?

당황한 나머지 나는 놈들의 뒤꽁무니를 쫓아 날기 시작했다.

그러자 몬스터들은 더 속도를 높여 도망쳤다.

저놈들끼리 사람 없는 데 있을 때에 쓸어버려야 하는데?

어, 이게 아닌데?

뒤늦게라도 충왕뇌우를 쓰려고 했지만 아래를 보니 어느새 헌터와 몬스터가 뒤섞여 싸우는 전장에 도착해버린 상태였다.

“아니, 뭐야.”

밤이라서 나를 못 알아챌 줄 알았는데 아래쪽에서 경계 어린 시선이 날아오는 것이 느껴졌다.

헌터들의 시선이다.

몬스터들이 나를 경계하는 건 그러려니 했지만 사람은 왜?

아, 내가 낯선 헌터라서 그런가?

그나저나 이쪽 상황도 버거운 건 마찬가지였다.

헌터라는 한정된 자원으로 간신히 재난을 틀어막고 있는데, 종종 전장을 이탈한 몬스터들이 여러 방향으로 흩어져 날곤 했다.

아래쪽에서 누군가가 조심스럽게 말을 건네는 소리가 들렸다 거리가 멀기도 하고, 사방에서 울리는 소음 때문에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 힘들다.

어차피 할 말이야 뻔할 것 같아서 나는 그를 무시하고 상황 수습에 집중했다.

“야아악!”

위협적으로 울부짖으며 몬스터 한 마리가 나에게 기습을 걸어왔다.

다들 주춤주춤 물러서는 와중에 꽤 용기가 있는 녀석이었다.

하지만, 충왕폿!

나에게 달려든 놈은 그 용맹함이 무색하게 한 방에 목숨을 잃었다.

그걸 본 몬스터들은 다시 주춤주춤 나와 거리를 벌리며 피하기 시작했다.

눈앞의 몬스터를 되는대로 치워버리며 전장의 안쪽으로 들어가니 드디어 던전이 보였다.

원래 보안시설이었을 잔해가 너저분하게 뒹구는 중앙에 던전 게이트가 있었다.

마치 지옥문 같은 풍경이었다.

몬스터가 들어 있는 자루를 쏟고 있는 것 마냥 살기등등한 몬스터들이 우르르 튀어나왔다.

놈들은 지체 없이 바로 가까운 헌터에게 달려들었다.

더 이상 몬스터를 상대할 여력이 없어 보이는 헌터가 그대로 스크롤을 찢고 전장을 이탈하는 것이 보였다.

심각한 상황에 비해 시신이 없다 싶었는데 이런 이유였군.

그나저나 던전 게이트 근처에는 사람이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여기까지 왔는데, 이렇게 헌터들이 뒤섞여 있으면 충왕뇌우를 못 쓰는 건 마찬가지였다.

자칫하면 안 그래도 수 적은 헌터들이 휩쓸려 죽을지도 모르니까.

“아, 들어가야 하나.”

이 상황을 해결하려면 던전을 닫아야 한다.

아무래도 던전 안에 있는 몬스터 수십만이 다 튀어나올 건가 본데, 그걸 일일이 상대하고 있을 시간도 체력도 없으니까.

하지만 도저히 저 몬스터의 폭포 속으로 들어갈 엄두가 안 났다.

거리를 좁히면 불리한 건 나였다.

결국 나는 계속 허공에 뜬 상태로 일단 충왕뇌우를 좁은 범위에 펼쳐 써 보기로 했다.

몬스터가 튀어나오고 있는 던전 게이트를 범위로 잡고 충왕뇌우!

이렇게 좁은 범위에 써보는 건 처음이라 잘 될지 불안했지만, 평소에 비하면 아주 작고 하찮은 수준으로 펼쳐진 충왕뇌우가 삐요옹하고 한 줄기 빛을 남기며 솟구치더니 던전 게이트 근처를 내려쳤다.

오, 되네. 그러면…….

충왕뇌우! 뇌우! 뇌우!

그렇게 한참 게이트 근처에 충왕뇌우를 쓰고 있었더니 아래쪽 헌터들도 내가 아군이라는 걸 깨달았는지 어느 순간부터 경계 어린 시선이 사라졌다.

아무튼 몬스터가 나오는 대로 바로바로 충왕뇌우로 한 판씩 쓸어버렸다.

덕분에 아래쪽에도 약간씩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튀어나오는 숫자가 점점 줄어든다 싶더니 어느 순간 뚝 끊겼다.

끝인가?

그러나 그런 생각도 잠시, 아래쪽 헌터들이 몹시 웅성거리는 기척이 느껴졌다.

그 이유는 곧 알 수 있었다.

고요해진 게이트에서 새빨간 불똥이 튀더니 거대한 무언가가 불쑥 모습을 드러냈던 것이다.

10미터? 아니, 20미터쯤 되어 보이는 거대한 불사조였다.

한눈에 보기에도 보스 몬스터라는 걸 알 수 있을 만한 위용이었다.

거대한 불사조는 던전 게이트를 가로막고 목을 쭉 빼어 길게 울부짖었다.

꽤 거리가 있는데도 귀가 아플 만큼 큰 울음소리였다.

그나저나 쟤 이름 뭐야?

평소에는 ‘OOOO의 등장으로’ 같은 메시지가 떠올랐는데 지금은 아무것도 안 떠오른다.

하긴, 이름이 무슨 상관이람.

새벽도 아닌데 우는 저 닭을 죽이고 이 상황을 어서 끝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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