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3화 (163/231)

163화

한편, 한국의 대한 그룹 사장실에는 살얼음판 같은 긴장감이 감돌았다.

“밖에서 연락 온 거 있어?”

"……없습니다.”

한국의 던전이 모두 닫힌 후 사장은 미친 사람처럼 소리치기도 하고, 집기를 깨부수며 날뛰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지금 그는 침통함에 사로잡혀 소리칠 기운도 없는 듯했다.

“개자식들. 이제 던전도 없으니 자기들 놀음판에 안 끼워주겠다 이거지? 간사한 새끼들.”

푸념 같은 욕설을 내뱉은 사장이 의자에 깊게 몸을 묻었다.

엄 비서는 욕설에 맞장구를 칠까 했지만 그러다가 괜히 한 대 얻어맞은 경험이 있었던 터라 침묵으로 몸을 사렸다.

“뭐 다른 소식은 없어?”

"그, 길드 내부에서 불만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불만?”

“던전 공략 일정이 전부 사라져서……."

갑자기 머리로 날아온 사장의 명패 때문에 엄 비서의 말은 도중에 끊겼다.

어깨너머로 지나간 금속 명패가 둔탁한 소리를 내며 뒹굴었다.

저런 걸 머리에 맞으면 다치는 정도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엄 비서의 콧잔등에 순식간에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던전이 없잖아! 던전이! 빌어먹을, 나더러 어쩌라는 거야!”

히스테릭한 사장의 외침에 엄 비서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괜히 말했네. 젠장.’

대한 길드의 권력은 던전을 독점함으로써 성립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독점할 던전이 사라진 지금, 눈치만 보던 헌터들이 하나둘씩 목소리를 높였던 것이다.

사실 던전이 모두 닫히면서 탈출한 농장 노예라든가, 악화하고 있는 길드 수익성 같은 난제들도 아직 보고해야 했지만 엄 비서는 순식간에 의욕을 잃어버렸다.

모두가 고개를 숙이고 눈치만 보는 사이 다시 사장의 발작 타임이 찾아왔다.

책상 위의 펜, 잉크, 찻잔 등 손에 잡히는 건 모조리 집어던져 깨뜨렸다.

그 위로 히스테릭한 외침이 양념처럼 끼얹어졌다.

“그런 거 말고! 내가 그런 소식 필요하다고 했어?”

“아닙니다.”

“빌어먹을, 김 회장 그 새끼가 얼마나 비웃겠어? 너희들은 자존심도 안상하냐?”

솔직하게 말하자면 엄 비서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하지만 대한 그룹 차남 김 사장의 오랜 열등감은 그룹 내에서 유명한 이야기였으므로 그는 고개만 숙였다.

“회장님은 별다른 말씀이 없으셨습니다.”

대한 그룹의 회장 김 회장.

그리고 차남 김 사장.

대한 그룹의 전대 회장은 오랜 승계 경쟁 끝에 간신히 그룹을 이어받았다.

그 과정이 얼마나 골치 아팠는지 그는 이런 후계 마찰을 방지하기 위해 태어난 자식들에게 애초부터 그 지위를 못 박았다.

첫째의 이름은 김 회장, 그룹의 총수로 키워질 장남이었고 둘째의 이름은 김 사장으로 첫째를 보좌하고 작은 업체를 이어받아 운영할 이인자로서 키웠다.

김 사장은 어릴 때부터 늘 이인자였다.

그 뿌리 깊은 콤플렉스로 인해 김 사장은 늘 그룹을 집어삼키고 회장 자리에 앉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그러나 승계 구도는 견고했고 사장 따위가 끼어들 여력은 없어 보였다.

그러나 던전이라는 신세계가 열린 것이다.

처음에는 작은 군수사업에 가까운 초라한 규모였지만 김 사장은 이 사업에서 희망을 봤다.

잘만 하면 이 나라를 통째로 집어삼키고 그룹까지도 다 먹어치울 수 있는 희망을.

바로 눈앞에 회장의 자리가 있었건만, 그 희망을 서지한이 산산이 조각내 짓밟은 것이다.

공무원에게 돈을 먹이고 온갖 언론사를 구워삶고 김 회장의 눈을 피해 차근차근 진행하던 그 사업이, 거의 다 됐던 그 사업이.

공장째로 날아가다니.

“아니야. 이게 끝일 리가 없어. 나 김 사장, 이렇게는 안 끝낸다. 내가 어떤 놈인데.”

핏발 선 김 사장의 눈에는 독기가 가득했다.

다시 집안의 냉대를 받으며 천덕꾸러기 이인자 취급을 받을 생각을 하니 저절로 어금니가 악 물렸다.

“이렇게는 안 끝내. 절대로. 그래, 던전은 계속 터질 거야. 한국에 던전이 하나만 더 터지면 이번에야말로 진짜 철두철미하게 지킨다.”

원한 가득한 김 사장의 목소리가 사장실을 차갑게 얼렸다.

모든 비서진이 바짝 긴장하는 와중에 김 사장이 서릿발같이 명령했다.

“새 던전 열리면 바로 나한테 알려. 외부랑 연락 시도해보는 것도 멈추지 말고.”

“그, 길드 내부 헌터들 불만은 어떡할까요?”

“그렇게 던전 돌고 싶으면 돌게 해 줘. 해외에 몸값 받고 팔아넘기든가 해.”

미친 사람처럼 번들거리는 눈으로 김 사장이 말했다.

그의 머릿속에는 오직 새 던전만이 가득했다.

한국에 새 던전이 하나만 더 열리면 이번에는 절대 안 빼앗기겠다는 집념이.

“……알겠습니다. 새 소식 생기는대로 바로 전달드리겠습니다.”

엄 비서는 오늘도 한숨을 삼키며 고개를 숙였다.

* * *

각국에서 연이어 발표되는 던전 공략 계획으로 인해 손모아의 해외 던전 닫기는 일시 중단되었다.

원래대로라면 괌 던전을 시작으로 차근차근 위험도가 높은 던전을 공략해 갈 예정이었으나 돌연 나타난 반서후가 제동을 걸었던 것이다.

“해당 국가에서 본인들 땅에 있는 던전을 닫겠다고 한 이상 우리가 개입하는 건 좋지 않아.”

모두가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보는 시대, 어디에서 구했는지 종이 신문을 들고 나타난 반서후가 테이블 위에 신문을 내려놓으며 나직하게 말했다.

반서진은 ‘갑자기 튀어나와서 무슨 개소리야?’라는 표정으로 반서후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제 표정에 떠올린 문자를 그대로 입으로 말했다.

“뭔 개솔?”

반서후는 눈길도 주지 않고 테이블 위에 신문을 펼쳤다.

국제면이었다.

던전 공략이 화제긴 화제인지 요 며칠 내내 각국에서 던전 보스 몬스터 공략을 검토한다는 내용이 우후죽순처럼 샘솟고 있었다.

“봐. 미국이 나선 걸 보고 다른 나라들도 이 흐름에 동참하고 있어. 보다시피 벌써 유럽에서도 몇몇 던전 정말 공략을 검토한다고 했고.”

"근데?”

삐딱한 반서진의 질문에도 반서후는 담담했다.

“가만히 둬도 다들 알아서 할 거라는 거지.”

“잘도 알아서 하겠다.”

"반서진.”

“뭐? 그럼 손 놓고 그냥 구경하자고? 쟤네가 안 닫으면 어쩔 건데?”

"닫는다고 한 이상 닫겠지.”

성의 없이 대꾸한 반서후는 잠시 망설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다른 나라에서도 끝까지 던전을 안 닫겠다고 했다면 모를까 본인들이 닫는다고 한 이상 이제 우리가 끼어드는 건 좀 거북해졌어. 생각보다 복잡한 문제가 된 거지.”

"복잡? 뭐가? 이것보다 심플한 문제가 어디 있어? 던전에서 몬스터 튀어나오면 민간인들이 엄청 죽을 테니까 우리가 먼저 가서 공략해주겠다는 거 아냐. 사람 목숨 살리자고 하는 일인데 복잡하긴 뭐가 복잡해?”

“반서진.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야.”

반서후는 한숨을 내쉰 뒤 오히려 반서진을 향해 되물었다.

“만약 반대라면 어떡할래? 우리나라에 있는 던전을 중국이나 일본 같은 타국 헌터들이 들어와서 ‘너희들 안전을 위해 공략해줬으니 감사히 여겨라’ 하고 보스 몬스터를 죽이고 온갖 아이템을 다 루팅 해간다면?”

"화나지. 지네가 뭔데 우리 던전을 털어가?”

“그런 거야.”

손모아는 가만히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한시라도 빨리 위험한 던전을 공략하고 싶었지만 반서후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그러네요. 사람 마음이라는 게, 어차피 닫으려고 생각했더라도 다른 나라 사람이 와서 닫고 아이템도 다 챙겨 가면 반발심이 생길 테니까요.”

“맞아.”

조용히 맞장구친 반서후가 손모아를 응시했다.

자신이 제안하긴 했지만, 해외 던전 공략을 할지 말지 결정하는 건 손모아의 몫이었다.

어차피 손모아가 하겠다고 마음먹으면 막을 사람은 이 자리에 없었다.

아니, 막을 수 있더라도 막지 않을 거라는 말이 옳았다.

“으음, 그러면 이 건은 반서후 씨 이야기대로 조금 더 지켜보는 게 좋겠어요. 상황이 우리 예상보다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 같으니까요.”

던전이 해방되어 몬스터들이 튀어나올 거라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손모아는 마냥 마음이 급했다.

그래서 연일 바쁘게 움직여 일주일도 안 되는 시간 동안 한국의 던전을 모두 닫았다.

그렇게 모든 일이 끝난 후 남은 것은 서지한을 향한 원색적인 비난과 욕설 뿐이었다.

인터넷에서 그런 욕설을 읽고 있을 때면 차라리 빨리 몬스터들이 튀어나오면 좋겠다 하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물론 그 생각은 떠오른 순간 화들짝 놀란 이성에 의해 빠르게 지워졌지만.

어쨌든, 금방이라도 터져 나올 것 같던 던전은 생각보다 오랫동안 얌전했다.

너무 빨리 닫은 게 아니냐는 후회감이 들 정도로.

하루, 이틀, 사흘. 며칠이 지나도 아무 일 없는 던전은 손모아에게 약간의 여유를 불어넣었다.

“지켜본다면 얼마나요?”

방금까지 던전 공략하러 간다고 신이 나 있던 유은담이 다급하게 물었다. 놀이공원 자유이용권을 사자마자 놀이공원이 폐업했다는 소식을 받은듯한 표정이었다.

“음, 오래 지켜보는 건 안 되고 한 일주일 정도? 그전에 혹시 던전 공략을 하려는 국가 중에 도움을 요청하는 곳이 있으면 도와주는 식으로 공략을 진행하고 싶어.”

"일주일 ”

유은담이 우울하게 중얼거렸다.

미뤄진 일정이 마음에 안 드는 기색이 역력했으나 손모아의 결정에 감히 토를 달 생각은 없는 모습이었다.

“에이, 그러면 괌 던전 공략은 물 건너간 거네? 괜히 열심히 읽었다.”

맥 빠진 표정으로 반서진이 공략집을 툭 던졌다.

손모아는 그 공략집을 주워서 다시 반서진의 손에 쥐여 주었다.

“완전히 공략을 안 하는 건 아니니까 언젠가는 도움될 거예요.”

그리고 그날부터 손모아는 해외 발표를 자세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검토한다는 것보다 조금이라도 진전된 의견을 발표한 국가가 있는지, 도움이 필요한 곳은 없는지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다리는 소식은 실제로 던전을 공략해서 닫았다는 소식이었지만, 안타깝게도 그렇게까지 빠른 속도로 일을 진행하는 국가는 없었다.

그리고 모두가 기다리던 새로운 소식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왔다.

누구도 바라지 않는 충격적인 형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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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해- 포식자 이오니켈이 현 차원의 추적을 완료하였습니다.

포식자 이오니켈의 차원 방벽 공격을 감지하였습니다.

던전 봉쇄 자원을 차원 방벽 차원으로 전환합니다.

차원 방벽이 강화되었습니다.

던전 봉쇄가 해제되었습니다.

차원 난민 구조〉 메인 프로토콜을 전개합니다.

최후의 전당 전야제가 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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