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화
“바빠 보이네……."
내 혼잣말에 유은담이 반응했다.
“그 헌터들 모아둔 거 있잖아요. 거기 가는 거예요.”
“아, 그 사람들?”
“네. 근데 이제 한국 던전 다 닫았으니 필요 없어졌잖아요. 저는 그냥 신경 끄자고 했는데 형은 계속 관리할 생각인 것 같더라고요.”
"관리? 어떤 관리?”
“자기들끼리 두면 이런저런 소문도 돌고 괜히 불안감도 조성되고, 쓸데없는 싸움이나 파벌 같은 게 생기니까 그게 안 생기게 꼬박꼬박 얼굴 비추면서 식사하는 거죠.”
"너는 안 가도 돼?”
“저는 뭐, 어려서 무시하는 헌터반 불편해하는 헌터 반이라서요. 안 가는 게 돕는 거예요. 그리고 저도 저런 인맥 관리용 허례허식 너무 싫거든요. 진짜 쓸데없이.”
유은담의 말을 들으며 나는 테이블 위의 공략 정보를 집어 들었다.
분량도 분량이지만 꼭 필요한 정보들이 선별되어 정리되어 있었다.
결국 이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었던 것도 반서후의 인맥 덕이다.
“별로 쓸데없는 일은 아닌 것 같지만……."
조용히 중얼거리자 유은담이 갑자기 입을 딱 다물었다. 그러곤 조심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어, 누나 혹시 뭔가 기분 상했어요?”
“아니. 전혀. 어쨌든 모처럼 정보가 생겼으니까 확실하게 읽고 가는 게 좋겠다.”
“그럼 저도 공략에 끼워 주시는 거예요?”
어쩐지 평소보다 눈치를 많이 보더라니, 던전 공략에 끼워주지 않을까 봐 그랬나 보다.
“생각해보고.”
그 자리에서 나는 반서후가 가져온 공략 문서를 검토했다.
다른 사람들도 사본을 한 묶음씩 손에 들고 편하게 앉아 읽기 시작했다.
이렇게까지 본격적인 문서는 처음 본다.
새삼 예전에 백광 길드에서 받았던 공략집이 얼마나 허술한 것이었는지 깨닫게 되는군.
하긴, 지금 생각해보면 이상한 점이 한둘이 아니다.
아무리 급하게 공략을 진행해야 해서 이런저런 걸 따질 수 없더라도, 일반적으로 던전 공략 후 헌터들이 채집한 부산물로 탈출석 값을 변제한다는 계약서를 쓰기 마련인데 그런 것도 없었지.
어차피 우리가 던전 안에서 다 죽을 거라 생각해 작성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던 거였군.
그렇게 한참 동안 문서를 읽다가 문득 고개를 드니 다들 몹시 진지한 표정으로 종이에 눈을 고정하고 있었다.
유은담은 평소의 유들유들한 표정은 어디에 가져다 버렸는지 마치 반서후처럼 엄격 진지한 표정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좀 지루했다.
용어도 헷갈리는 게 많고 학술보고서 같은 내용도 별로 흥미롭지 않았다.
확실히 반서후 말대로 우리나라 던전도 아닌데 억지로 빨리 공략할 필요는 없긴 하지.
좀 쉬엄쉬엄 해야겠다.
나는 오랜만에 휴대폰을 꺼냈다.
인터넷에 들어가자 예상대로 오늘도 엄청나게 욕을 먹고 있었다.
한국 던전을 다 닫은 날부터 서지한은 진짜 죽여도 모자랄 천하의 대역적이 된 상태였다.
화면 가득한 원색적인 욕설들을 보니 눈앞이 아득해졌다.
전쟁 중인 인터넷과 달리 서지한은 담담한 표정으로 종잇장을 넘기고 있었다.
“왜?”
내 시선을 느낀 그가 바로 이쪽을 돌아봤다.
꽤 집중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바로 알아채네.
진짜 예민하긴 예민하다.
“아니에요.”
뭔가 더 물으려던 그가 내 손에 들린 휴대폰을 보더니 이해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피식 웃으며 말했다.
“너무 신경 쓰지 말고. 뭐 재밌는 거라도 보면서 기분 풀어.”
서지한은 그렇게 말했지만 다시 휴대폰 화면을 보니 한숨만 나왔다.
‘서지한 죽이기 게임’ 출시되어 논란…… 유저들 ‘그저 게임일 뿐.’
독도 던전 과연 되찾을 수 있을 것인가.
국내 던전 소멸로 포션 가격 급등.
마지막 뉴스는 정말 허위보도다.
지금도 김영길 헌터를 통해 만든 포션을 지속적으로 공급하고 있어서 가격은 크게 오르지 않았다.
서지한 지인 인터뷰. ‘학창 시절부터 이기적이었다.’
〈보도특집〉서지한은 왜 괴물이 되었는가?
한국 던전 소멸 사태 세계적 이슈.
각성자 범죄율 급증. 던전 소멸로 인한 영향으로 보여…
던전 소멸로 부동산 가격 폭등. 부동산 관계자 ‘서지한이 원인.’
올해 실업률 사상 최대. 던전 소멸로 인한 경제 위축.
난치병 환자들 포션 구하기 힘들어. ‘서지한이 던전만 안 닫았어도…….
아니, 각성자 범죄율은 그렇다 쳐도 부동산 가격 폭등은 뭔데?
실업률도 서지한 탓이야?
그리고 포션 구하기 힘들지 않다니까. 내가 계속 공급하고 있는데?
계속해서 뉴스를 스크롤했지만 짜증 나는 내용뿐이었다.
국내 뉴스는 이제 됐어.
어차피 비슷비슷한 내용만 계속되고 있잖아. 나는 국제 뉴스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주한 싱가포르 대사’ 한국의 던전 소멸 사태 유감.
서지한의 다음 타깃은 해외가 될 것인가? 한국 던전 소멸 사태에 긴장하는 국제 던전 협회.
해외 던전 소멸 시 외교 마찰 불가피.
베트남 정부, 자국의 하나뿐인 던전 소멸할 경우 한국에 피해보상 청구할 것. 엄포 논란.
국제 뉴스도 비슷하구먼- 하고 살펴보던 중 문득 눈에 띄는 내용이 몇 줄 있었다.
美 국방부 차관보, 한국의 던전 소멸 사례 진지하게 검토 중, 인구밀집지역 던전 공략 검토 의견 밝혀 파문 예상.
美 NSA에 익명의 한국 헌터가 보낸 이메일 전문 공개…… 던전 몬스터 해방 사태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어.
캐나다 정부, 던전 경제효과 보다 자국민 생명 우선. 던전 공략 계획 검토 중.
“앗!”
너무 기쁜 나머지 나도 모르게 작게 소리 지르자 서지한이 놀라서 다가왔다.
“왜 그래?”
“이거 봐요!”
나는 화면을 들어 서지한의 욕으로 가득한 인터넷에서 찾아낸 한 줄기 빛을 보여주었다.
잠시 화면을 읽던 그가 옅게 미소 지었다.
“잘됐네.”
“그렇죠?”
흐뭇하게 웃고 있었더니 유은담과 반서진이 ‘뭐야, 뭐야’하며 다가왔다.
“와, 이게 되네.”
“그러게요. 진짜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구나.”
뉴스를 본 두 사람이 몹시 감탄했다.
그래, 자국민이 본인 나라의 던전을 다 닫는다는 거 그들 말대로 진짜 미친 짓이잖아.
일반 적으로라면 절대 하지 않을 짓.
그러니 서지한을 보고 대부분의 사람이 미친놈이라고 생각할 때 한 명 정도는 ‘왜 이렇게까지 미친 짓을 하는 거지?’라고 생각해줄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믿었는데!
“이제 다른 나라들도 진짜 위험한 던전들은 차근차근 닫기 시작하겠죠 ?”
* * *
“정말 던전을 다 닫을 생각이십니까?”
미국 백악관의 집무실.
나른한 오후의 햇살이 쏟아지는 방에서 비서실장이 질문을 던졌다.
지시한 대로 발표하긴 했으나 내부적으로 반대가 많은 사안이었던 터라 그의 목소리는 몹시 조심스러웠다.
창가에 서 있던 대통령이 천천히 돌아섰다.
그의 입가에는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럴 리가 있나.”
“그러면 왜 그런 발표를……."
대통령은 유들유들하게 웃으며 가볍게 대답했다.
“쇼야. 쇼. 나는 검토한다고 했지 진짜 닫는다고는 안 했어.”
"그러면……."
“일단 우리가 던전을 닫는다고 하면 다른 나라도 진짜 이 사태를 심각하게 생각하게 되겠지. 보게나. 캐나다도 벌써 동조해서 후속 발표를 했지 않나?”
“그건 그렇습니다만.”
"그렇게 참여하는 나라가 점점 많아지다 보면 진짜 던전을 닫는 나라들도 생기겠지. 그때 가서 우리는 온전하게 보존한 던전을 가지고 이득을 취하면 되는 거야.”
대통령이 씩 웃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우리는 계속 검토만 할 거야. 그 검토가 20년이 될 수도, 50년이 될 수도 있지.”
“아.”
“게다가 그 발표만으로 얼마나 이득이 많은지 보라고. 벌써 던전을 닫자는 둥 하던 불만 종자들이 나를 지지한다고 하지 않나.”
"하지만 던전을 닫지 말자고 하는 지지자의 이탈이 우려됩니다만.”
실제로 그 발표 후 지지율이 5% 감소했다는 보고서를 받았던 터라 비서실장의 표정이 몹시 어두웠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인 대통령은 태연하기만 했다.
“그 사람들은 내가 진짜 던전을 닫기 시작하기 전까지는 괜찮을 거야. 그리고 또 다른 장점이 있지.”
"어떤 장점 말이십니까?”
"저 테러리스트들이 우리 던전을 공격하지 않을 거라는 거. 우리가 닫는다고 먼저 말했는데 왜 굳이 끼어들어서 닫겠어?”
“만약 그들이 끼어든다면요?”
"그 손해는 한국 정부에 청구하면 되는 거고. 내가 한 건 그냥 밑밥을 좀 깐 거야.”
“어느 쪽이든 저희 손해는 없군요.”
"그런 거지.”
비서실장은 그제야 안심한 표정을 지었다.
관련 업계에 얽힌 기업들이 얼마나 노심초사하는지, 던전 폐쇄를 검토 중이라는 발표를 하자마자 로비스트들이 구름 떼처럼 찾아왔다.
그들을 어떻게 상대하나 걱정했는데, 다행히 대통령은 정말로 던전을 닫을 생각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데, 곧 던전이 해방되어서 몬스터가 던전 밖으로 뛰쳐나올 거라는 그 정보. 신뢰하십니까?”
"자네는?”
“음, 정보 제공자인 천공 길드 Mr. 반을 좀 조사해봤는데 꽤 진지한 성격 같던데요.”
“사람을 겉으로 봐서는 몰라. 그런 딱딱한 인간들이야말로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믿어버리면 답이 없는 법이거든.”
“던전에서 몬스터들이 나올 수 있다는 이야기를 안 믿으신다는 겁니까?”
대통령은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했다.
“전혀.”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대통령이 던전에 대해서는 전혀 걱정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됐지만 도리어 비서실장은 조금 불안해졌다.
“혹시 모르니 던전 근처에 헌터들을 좀 배치해둘까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음, 그래. 나쁘지 않은 생각이야. 던전 소멸 지지자들한테 어필도 되겠지. 시민 안전을 걱정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할 거고. 진행하게.”
"알겠습니다.”
비서실장은 조용히 집무실을 걸어 나왔다.
그리고 로비스트들을 만나 달래는데 며칠을 꼬박 써야 했다.
타국까지 속이는 쇼이니만큼 이 정보가 조기에 새어 나가서는 안 된다.
그래서 공식적으로 대통령은 던전을 닫으려 하고 있고, 비서실장인 자신이 던전을 유지하도록 설득하고 있다는 그림이 되었다.
던전 반대파는 대통령을 지지하고 던전 지지파는 비서실장을 지지한다.
어느 쪽이든 자신들이 속한 정당의 지지층이 이탈하는 일은 없었기 때문에 당에서도 매우 만족스러워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의 발표를 기폭제로 전 세계에 불안이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미국도 닫는데 우리도 던전을 닫아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여론이 스멀스멀 기어 나왔다.
실제로 던전을 닫겠다는 나라까지 나타났다.
그러나 그 나라 중 진심으로 던전을 닫으려는 국가는 단 한 군데도 없었다.
결국 생각하는 것은 다들 비슷했던 것이다.
우리는 닫지 않고, 타국만 닫도록 하는 것.
그렇게 각국이 계산기를 두드리며 눈치를 보는 사이에도 시간은 계속해서 흘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