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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화 (161/231)

161화

더 돌아볼 필요가 없다는 의견에는 나도 동의했지만 그래도 나는 계속해서 한국 곳곳을 살펴보았다.

혹시나…… 하는 생각이 계속 들었던 것이다.

나의 이런 성의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추가로 발견된 던전은 없었다.

군사 분계선도 방문했는데, 오히려 어지간한 지역보다 경계가 삼엄했다.

이런 곳에 던전이 터지는 아수라장이 일어난다면 세계 뉴스 핫 토픽으로 떠오를 거다.

아무튼, 덕분에 당초 네 명이서 일주일 이상은 탐색해야 할 거라고 예상했던 한국 탐색 계획은 이틀 만에 완료되었다.

일단 던전에서 몬스터가 튀어나오는 사태가 일어난다고 해도 한국은 안전할 것 같았다.

한국의 안전이 확실해진 이 시점에서 다음으로 할 일은 하나뿐이었다.

우리나라는 괜찮으니 이제 다른 나라를 살펴보기로 한 것이다.

해외 던전은 한국 던전과 달리 공략 정보가 전무했다.

던전 관련 정보는 각국에서 군사기밀로 취급해 정보를 감춘 탓에 알려진 것이 거의 없었다.

한국도 사정은 비슷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수월하게 공략해온 것은 전적으로 서지한 덕분이다.

그가 한때 천공 길드의 간부였기도하고, 국내 헌터 생활이 길었던 만큼 누구보다 국내 던전 사정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서지한이라도 외국 던전에 대한 정보까지 얻는 건 힘들었는지 이번만큼은 그도 자신이 없어 보였다.

“그냥 가서 막 때려잡아도 괜찮지 않을까?”

과자를 바삭바삭 소리 내 먹으며 반서진이 느긋하게 말했다.

사실 예전이었다면 저 말에 나도 동의했겠지만…….

“솔직히 내키지 않네요. 나프기스 던전 같은 사태가 두 번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고.”

"으음, 그래도 그만큼 강한 녀석이 흔할 것 같지는 않은데.”

반서진은 쉽게 납득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그녀 앞에서 보여준 L급 충왕포 쇼가 너무나 강렬했던 모양이다.

하긴 반서진의 말도 일리가 있긴 하네.

그러나 듣고 있던 서지한이 바로 끼어들었다.

“공략 정보 없이는 절대 안 돼.”

반서진이 무안해질 정도로 딱 잘라 말한 그가 유은담, 반서진을 번갈아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너희들이 공략하러 가는 거 아니라고 위험한 상황에 대해 쉽게 말하지 마.”

좀 심할 정도로 날을 세운 말에 나는 두 사람이 마음이 상하지 않았을까 얼른 얼굴을 살폈다.

그러나 반서진은 크게 놀란 표정으로 다급하게 나를 보며 물었다.

“뭐? 나 안 가? 이번에도 나 못 가는 거야? 나 안 끼워준다고?”

"누나? 저 못 가요? 또 두 사람만 가겠다고요? 진짜요? 진심이에요? 왜요?”

반서진과 유은담은 진심으로 놀란 것 같았다.

마치 본인들 없이 던전 공략을 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는 듯했다.

하지만 나도 놀랐다.

어떻게 같이 갈 거라고 생각했어?

“그야 숨어서 은밀하게 들어가야 보스 몬스터 찾아다닐 시간을 벌 텐데 두 사람은 던전 감시 장비에 바로 발견될 테니까요.”

“투명화해서 들어가면 되잖아.”

"당연히 감지 시설 있겠죠. 그리고 체온 감지 같은 것도 할 거고요.”

"너는 그거에 안 걸리고 갈 수 있다는 거야?”

“지금까지 안 들키고 잘 들어갔는걸요.”

열화상 카메라로 아무리 찍은들 찍히는 건 벼룩뿐이고, 유령인 서지한은 찍히지도 않을 거다.

나의 태연한 태도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반서진이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

“어떻게?”

“그건……."

무심코 대답하려는데 서지한이 바로 내 앞을 막아섰다.

“알아서 잘.”

짧게 대답한 서지한은 그 이상 묻지 말라는 경고의 시선을 던졌다.

반서진은 아니꼬운 표정으로 서지한을 보긴 했지만 손사래 치며 조용히 물러났다.

“아, 눈꼴셔 죽겠네. 알았다, 알았어. 안 갈게. 둘이서 알콩달콩 공략 데이트 잘하고 오세요. 응?”

반서진은 그렇게 물러나긴 했지만 유은담은 아직 미련을 떨치지 못한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아니, 나보다 키가 훨씬 큰데 어떻게 올려다보는 거지?

아, 무릎 꿇고 있구나.

“누나, 진짜 안 돼요? 저 던전 공략 진짜 오래 쉰 것 같은데. 솔직히, 어떻게든 숨어 들어간다고 거짓말은 안 할게요. 투명화 감지장치에는 아마 무조건 걸릴 거예요.”

"무조건?”

“네. 그게 말이 감지지, 투명화는 외부에서 대미지 입으면 무조건 풀리잖아요. 그래서 아프지 않을 정도의 약한 외부 간섭을 발생시키는 마법을 광범위하게 걸면 그 안에서는 투명화를 써봐야 바로 풀리거든요.”

“아하, 그런 원리구나.”

"네. 그래서 투명화는 못 써요. 그래도 누나는 방법이 있잖아요.”

"방법?”

“그 결계요. 던전 근처 감지장치다 때려 부수고 누나가 결계 펴서 막은 다음 들어가면 어차피 던전 공략 끝낼 때까지 사람들 못 들어올 거잖아요.”

그 방법, 나도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너무 소란스러워져서 되도록 피하고 싶었던 건데.

그리고 이번에도 서지한이 바로 나섰다.

“안 돼. 모아가 너무 노출돼.”

"노출? 그 결계 사람들이 이미 다 알거든? 독도 주변에 펼쳐둔 결계 주변으로 개미떼들이 얼마나 모여드는지 알아?”

날카롭게 눈을 치뜬 유은담이 물러서지 않고 받아쳤다.

그러고 보니 유은담 거처 근처에 쳐 둔 결계, 거의 신경 쓰지 않고 있었네.

“헌터들이 많이 찾아와?”

나의 질문에 유은담이 울상을 하고 나에게 매달렸다.

“네. 국내에 남은 유일한 던전이잖아요. 지푸라기라도 잡으려고 얼마나 오는데요. 물론 제가 다 수장시켜주고 있지만요. 그러니까, 누나아.”

“안 된다고 했어, 유은담.”

계속되는 서지한의 말에 결국 유은담이 꿇어앉아 있던 자세를 풀고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서지한에게 맹렬하게 따지기 시작했다.

“형! 진짜 너무한 거 아니야? 예전 같았으면 앞뒤 안 가리고 형도 뛰어들었을 거잖아. 이제 와서 신중한 척 하는 거 하나도 안 어울리거든? 내가 보스 공략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면서 형이 이럴 수 있어?”

내내 유지하고 있던 어른스러운 태도를 집어던진 유은담이 반쯤 떼쓰듯 서지한을 향해 외쳤다.

그러면서도 나를 흘긋흘긋 살피는 시선에 나는 곤란하게 웃어줄 뿐이었다.

그나저나, 이렇게까지 말하니 마음이 좀 약해지네.

“서지한 씨, 은담이 말대로 결계는 이미 알려진 스킬이고 그렇게 한다고 해서 제가 많이 노출되거나 하지는 않을 것 같은데……."

나의 조심스러운 말에 서지한이 유은담을 날카롭게 노려보았다.

유은담은 갑자기 어둠 속에서 한 줄기 빛을 발견하기라도 한 표정으로 나를 보며 기대 어린 시선을 보냈다.

“……그렇게 공략한다고 해도 외부에서 던전을 찾는 것부터가 문제야. 감시 중인 던전은 다 은폐 결계 치고 있어서 결국 포탈 통해서 이동해야 하는데, 포탈이 있는 시설을 공격하자마자 바로 포탈 이동이 차단될 거야.”

서지한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으나 유은담은 오히려 싱글벙글 웃었다.

“위치 확실하게 아는 던전 하나 있잖아.”

“어디?”

“괌 던전! 괌 공항에 열린 던전, 누나도 알죠? 누나도 갔던 던전이잖아요.”

아, 거기.

그러고 보니 나도 잊고 있었네.

“누나, 제발요. 모처럼 보스 장비도 풀세트로 입었는데 던전 보스 공략도 못 가고 진짜……. 결계만 쳐주시면 보스는 제가 다 잡을게요. 누나는 그냥 쉬고만 계셔도 돼요. 네?”

으음. 어쩔까.

너무 경솔하게 결정하는 건 아닐까.

그러고 보니 괌 던전은 수왕류 던전이었지?

수왕류는 사실 별로 부담되는 몬스터는 아니니까 공략 자체는 위험하지 않을 것 같은데.

고민에 빠진 나를 향해 유은담이 계속해서 기대 어린 눈빛을 보냈다.

그런 그를 서지한이 노려보고 반서진은 이 모든 촌극이 우습다는 듯 과자를 먹으며 방관하고 있었다.

그런 현장에 내내 자리를 비우고 있던 반서후가 갑자기 등장했다. 이동 스크롤로 온 것이다.

“……다 모여서 뭐 하고 있는 거야.”

우리를 쓱 훑어본 반서후가 떨떠름하게 물었다.

“아, 다음 계획으로 잡아뒀던 해외 던전 공략하는 거 진행하려는데 은담이가 자기도 가고 싶다고 해서요.”

내 말에 그는 두 손 모아 나를 간절하게 바라보는 유은담을 향해 짧게 혀를 찼다.

“유은담. 이게 놀러 가는 건 줄 알아?”

반서후의 엄한 소리에 유은담은 생글생글 웃으며 마력을 옅게 퍼뜨렸다.

그리고 스킬을 구현해 안개 같은 얼음으로 반서후를 감싸더니 짠하고 두 팔을 벌려 소개했다.

“두둥, 꼰대 등장!”

유은담이 도발했지만 반서후는 상대할 가치도 없다는 듯 아예 내 쪽으로 몸을 돌려 무시해버렸다.

“해외 던전?”

“네. 위치를 확실하게 알고 있는 던전이 하나 있거든요.”

"어디?”

“괌이요. 거기에 광역 스킬 한 방 먹이고 보안시설 무력화시킨 다음 결계 펼쳐놓으면 아무도 못 들어오잖아요. 그렇게 하면 숨어 들어가는 게 아니니까 은담이도 같이 갈 수 있어서……."

“음. 그렇긴 하지.”

“그런데 그 던전 공략 정보가 하나도 없어서 좀 망설여지긴 하는데.”

"전혀 없다고?”

“아, 수왕류 던전이라는 건 알아요. 사실 수왕류는 그렇게 위협적인 몬스터가 아니니까 같이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반서후는 미간에 잔뜩 주름을 잡았다.

“그래도 공략 정보 없이 던전에 들어가는 건 너무 위험해. 거기는 우리나라도 아닌데 괜히 위험한 리스크를 감수하면서 급하게 갈 필요 없지. 공략 정보 숙지하고 가는 게 나아.”

"그건 그렇지만 공략 정보 구하는 것도 시간이 드니까……."

내 말에 반서후는 짧게 피식하고 웃었다.

이 사람이 웃는 건 처음 본다.

그나저나 내 말에 뭔가 웃긴 부분이 있었나?

아니, 재밌어서 웃는다기보다…….

이런 말하기 좀 그렇지만 좀 재수 없는 웃음이야.

“구할 필요 없어.”

당당하게 말한 반서후가 인벤토리에서 무언가를 꺼내 테이블 위에 툭 던져 놓았다.

꽤 두꺼운 종이 뭉치다.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는 해외 던전 공략 정보다. 한국 던전 다 닫고 나면 어차피 필요하게 될 것 같아서 미리 구해뒀지. 괌 던전도 있을 거야.”

“오, 웬일로 쓸모 있는 일을!”

반서진이 칭찬인지 욕인지 애매한 감탄사를 터뜨렸다.

반서후는 이번에도 그 목소리를 무시했다.

“와, 어떻게 구하셨어요?”

"아는 사람이 좀 있어. 길드장을 하면 인맥 관리는 필수지.”

그렇게 말하면서 반서후가 유은담을 흘깃 쳐다보았다.

유은담의 얼굴에 잠시 ‘재수 없다’라는 감정이 스쳤으나 곧 그 위에 꾸며 낸 듯한 여유로운 미소가 덧씌워졌다.

“아, 그리고 네 가족 감시하던 감시꾼들 완전히 없어졌더라. 없어진 지 좀 된 것 같던데.”

종이 뭉치를 향해 손을 뻗는데 반서후가 아무렇지도 않은 척 툭 말했다.

유은담은 몰라도 반서후가 내 가족문제를 신경 써 줄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던 터라 내심 좀 놀랐다.

“그것도 알아보셨어요?”

"그래. 내가 직접 가서 살펴봤으니까 확실한 정보야.”

“고맙습니다.”

“별거 아냐.”

무뚝뚝한 얼굴로 대꾸한 반서후는 다시 일이 있다며 금방 떠나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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