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화
이동 스크롤로 도착한 한국은 벌써 캄캄한 밤이었다.
방금까지 대낮이던 호숫가에 있었던 터라 급작스러운 밝기 변화에 눈이 따라가기 조금 힘들었다.
내가 눈을 깜빡이며 적응하는 사이 주변을 휙 둘러본 서지한이 입을 열었다.
“여기가 어디쯤이지?”
"지리산 근처일 거예요.”
오기 전 봤던 사진의 출처를 떠올려 대답하자 서지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래쪽부터 위로 홅으려고?”
"네. 주로 큰 산 중심으로 볼 거예요. 작은 도시나 마을 근처에서 던전이 터졌다면 사람들이 눈치채고 소문이 났을 것 같거든요.”
던전이 터지면 보통 커다란 소란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게다가 던전 입구의 소용돌이치는 게이트는 한눈에 보기에도 심상치 않은 것이라서 근처에 사람이 살고 있다면 알려지지 않을 리가 없었다.
“음, 날아오를 거지?”
“네. 서지한 씨는 실체화 해제할 거죠?”
당연히 그렇다는 대답이 돌아올 줄 알았는데 서지한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혹시 모르니까 이 상태로 되도록 유지하면서 같이 다니는 게 좋을 것 같아.”
“어, 뛰어서 따라오려고요?”
그의 이동속도는 인정하지만 날아다니는 사람을 뛰어서 따라잡는 건쉽지 않을 텐데.
지상에는 장애물도 많고 말이야.
물론 그는 점프력도 좋으니 어지간한 장애물은 그냥 뛰어넘어 버릴 수 있겠지만.
“아니.”
서지한은 이번에도 부정했다.
대체 어쩌려는 건가 하고 멀뚱멀뚱 쳐다봤더니 그가 낙엽을 밟으며 성큼 다가섰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내 어깨와 배에 팔을 두르고 딱 달라붙었다.
“……서지한 씨?”
“응? 이대로 날아서 같이 다니면 되지 않을까? 네가 이동하는데 집중하고 나는 탐색에 집중할게. 그게 효율도 좋을 것 같고. 어때, 문제없지?”
문제없지? 가 아닌데요. 문제투성이인데요.
일단 어깨는 그렇다 쳐도 배에 둘러진 팔이나 밀착한 몸 같은 것이 보통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다.
하지만 서지한이 너무 당당해서 도리어 내가 지나치게 의식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알았어요. 어쨌든 날아볼게요.”
"응."
그래, 어차피 나중에 날아다니며 사람들을 구조할 일이 생길지도 모르잖아.
그때를 대비해서 누군가를 매달고 비행하는 연습을 해두는 것도 좋겠지.
1인 비행은 해봤지만 누군가를 지탱하며 날아다니는 건 해본 적이 없으니까.
“확실히, 혼자 날 때랑은 느낌이 다르긴 하네요.”
서지한을 매달고 있어서 그런지 상승하는 속도가 혼자 날 때보다 훨씬 느렸다.
“으음, 무리일 것 같으면 말해.”
그가 조용히 말했으나 나는 오히려 오기가 생겼다.
“아니에요. 아주 못 할 정도는 아니니까 적응하면 좀 괜찮아지겠죠. 그리고 이런 것도 연습해두면 좋을 것 같아요.”
“그렇지?”
마침내 만족할 만큼의 높이까지 고도를 올리자 어두운 산이 한눈에 보였다.
“지금 몇 시쯤일까요?”
"새벽 세 시 좀 안 됐을 거야.”
등산객조차 없을 시간이라 그런지 야산은 고요했다.
우리는 빛이 없는 구역을 중심으로 천천히 비행하며 혹시나 있을 던전의 기척을 탐색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뭔가, 점점…….
“서지한 씨, 저기 팔에 힘이 너무 강한 것 같은데.”
“앗, 미안해. 아파?”
“아뇨, 아픈 건 아닌데……."
간간이 새 우는 소리만 들리는 야심한 시각에 체온이 적나라하게 느껴질 만큼 바짝 밀착해 있으니 이래저래 좀 심란한 기분이었다.
“이렇게까지 바짝 붙어 있을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무서워서 그래.”
“무섭다고요?”
“느슨하게 잡았다가 떨어지면 어떡해.”
엄살떠는 목소리와 달리 서지한의 얼굴은 한없이 담담했다. 아니, 옅은 웃음기까지 보였다.
하나도 안 무서워하는 것 같은데?
“무섭다고 하기엔, 웃고 계신데요.”
"나는 원래 무서울 때 웃어.”
"……무서우면 웃는다고요?”
"응. 알다시피 헌터 업계가 좀 그렇잖아. 얕보이면 힘들어지니까. 무섭더라도 티를 내면 안 되거든.”
어, 그런가? 사실 처음에는 무슨 헛소리인가 했는데 듣고 보니 일리가 있다.
하긴, 나도 회사 생활을 하면서 화가 나면 웃게 되었지.
화를 내 봤자 문제가 해결되기는커녕 더 악화되니까.
트러블이 생길 때마다 감정이 시키는 대로 움직였다면 나는 벌써 팀장을 수십 번 죽이고 교도소에 들어가 있었을 거야.
“알았어요.”
"응."
잠깐만.
“그런데 지금 낙하 대미지 무시하는 신발 신고 있지 않아요?”
"응."
너무나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한 서지한은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슬쩍 말을 돌렸다.
“그런데, 저거 사람 아냐?”
"어디요?”
“저기, 저쪽.”
그가 턱짓하는 곳을 가만히 살펴보자 확실히 어둠 속에서 나무 사이로 뭔가 꿈지럭거리는 것이 보였다.
최소한 고라니 정도는 되어 보이는 큰 동물이었는데, 살짝 아래로 내려가서 보니 정체가 확실해졌다.
“진짜 사람이네.”
“그러게요. 이 시간에 혼자 산을 타네요? 뭐 하는 사람이지?”
"수상한데. 뭘 하는지 좀 지켜봐야겠어.”
“그러게요. 여기는 등산로도 아닌데.”
지리산 근처에는 등산로가 있지만 여기는 그쪽에서 한참 떨어져서 아무런 시설물도 없는 장소였다.
산세도 꽤 험해서 일반적으로는 누군가가 찾아오지 않을 법한 곳인데, 다른 때도 아니고 이 시각에 혼자산을 오르는 사람이라.
“헌터는 아닌 것 같아. 민간인인데?”
그는 손전등을 여기저기 비추며 유심히 무언가를 찾는 듯 움직였다.
머릿속으로 흉흉한 뉴스가 지나갔다. 야산에서 시신이 발견됐다거나 하는 그런.
그리고 어느 순간 그 사람이 달리기 시작했다.
길이 험한 산중에, 게다가 밤이라 발 밑이 제대로 보이지도 않을 텐데 민간인의 몸이라곤 믿어지지 않을 속도였다.
“어? 저기 또 한 명 있네.”
서지한이 가리키는 쪽을 보니 아주 약한 조명을 켜고 있는 사람이 한 명 더 보였다.
그는 자신 쪽으로 달려오는 사람을 발견했는지 허겁지겁 몸을 일으켜 반대 방향으로 뛰기 시작했다.
“뭐죠?”
“으흠.”
우리가 지켜보는 동안 잠시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이어졌다.
영문을 몰라 그들을 한참 따라가는데, 마침내 쫓는 쪽의 사람이 크게 외쳤다.
“저놈 잡아라!”
숨이 턱까지 찬 것 같은데도 산을 다 깨울 것 같이 쩌렁쩌렁한 소리였다.
그 목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도망치는 사람의 발은 바쁘게 움직이기만 했다.
오히려 더 다급해졌는지 속도가 좀 더 올라갔다.
“저놈! 저놈 잡아라! 송이 도둑놈이다! 거기 서라, 이 도둑놈아! 송이 도둑놈아! 버섯 도둑 잡아라!”
그 외침을 듣고 서지한이 뭔가 깨달은 듯 ‘아’하고 짧게 소리를 냈다.
“송이 도둑?”
내가 상황을 파악해나가는 사이 추격전은 더욱 치열해져 있었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외침을 듣고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튀어나와 추격에 가세한 것이다.
그 소란을 내려다보며 서지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지금 여름이지?”
"아, 네.”
“송이버섯이 제철인 시기네. 이맘때쯤 되면 송이버섯을 훔치러 오는 도둑도 많고 그걸 지키는 사람도 많다고 하더라고.”
“송이버섯 도둑요?”
“응. 비싼 건 버섯 하나에 10만 원도 하니까. 어지간한 던전 채집물 뺨치는 가격이지? 그래서 산 주인들이 밤새 텐트를 치고 도둑을 잡으려고 지키곤 한다더라고.”
"서지한 씨는 별 걸 다 아네요.”
"저거 지키는 거 하루 일당이 꽤 세거든.”
“서지한 씨도 해봤어요?”
"아니, 하고 싶었는데 나는 시간이 안 맞아서 못했어. 아직 각성하기 전에는 뭐든 몸 쓰는 일을 해야 했으니까 일 구하다가 전해 들은 거야.”
우리가 대화를 나누는 사이 상황은 점점 도망자에게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가만히 놔두면 산 아래로 완전히 내려가 도망칠 수 있을 것 같았다.
저 멀리 교묘하게 숨겨둔 오토바이 한 대가 보였다. 도망자의 것이겠지?
“그럼 저 사람 도둑이네요?”
"응.”
“도망치게 두면 안 되는 거 아니에요?”
“아, 잡게 할까? 알았어.”
대수롭지 않게 대답한 서지한은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작은 구슬 같은 것을 꺼내 아래로 던졌다.
서지한의 동작이 워낙 빨라서 나는 뭘 한 건지도 몰랐다.
그러나 다음 순간, 한 나무의 가지가 칼로 벤 듯 잘리더니 아래로 뚝 떨어져 도망자의 앞을 막아섰다.
“뭘 던진 거예요?”
“응? 너 후식으로 주려고 챙겼던 사탕. 먹을래? 레몬이랑 사과 맛 두 종류 있어.”
“괜찮아요.”
도망자는 갑작스럽게 떨어진 나뭇가지를 뛰어넘으려 했지만 아쉽게도 가지가 너무 컸다.
꽃꽂이할 때 쓸 법한 그런 작은 가지가 아니라 내 허리둘레 정도 되는 커다란 가지였던 탓이다.
그는 결국 호되게 넘어져 아래로 데굴데굴 굴러갔다.
“아이고, 아프겠다.”
“자업자득이지.”
뒤이어 달려온 버섯 채취꾼들이 금방 도망자를 포위했다.
‘많이도 훔쳤네, 이놈! 너 콩밥 먹을 각오해!’같은 목소리가 여럿 들렸다.
"이동할까요?”
“그래.”
그 이후 대한민국에서 인적이 드물만한 산을 잔뜩 찾아다녔는데 놀랍게도 그때마다 사람을 마주쳤다.
날이 밝아오는 새벽녘쯤 되자 산나물을 캐러 온 사람들로 작은 산, 큰 산을 가리지 않고 북적거렸던 것이다.
결국 우리는 더 둘러볼 의욕을 잃고 금방 호숫가로 돌아오고 말았다.
“어? 왔어? 빨리 왔네.”
호숫가로 돌아오자 벤치에 걸터앉아 있던 반서진이 가볍게 말을 걸었다.
“제가 할 말인 것 같은데. 반서진 씨는 다 둘러봤어요? 해안선 따라 계속 이동해야 해서 꽤 시간이 걸렸을 텐데.”
“아, 보긴 봤는데, 사람이 워낙 많아서 살펴보는 게 의미가 없는 것 같더라고. 나는 동해부터, 유은담이 서해부터 훑기로 했는데 난 그냥 먼저 왔어.”
“사람이 많다고요?”
“응. 근해에 배들이 다닥다닥 있던데. 좀 가면 배가 있고, 또 조금 가면 배가 있고.”
“어선이요?”
“응. 오징어 잡더라. 아, 나 농땡이 친 거 아니야. 근해는 안 되겠다 싶어서 좀 먼바다까지 가봤는데 거기도 배가 있더라고.”
“그것도 어선이었어요?”
"응. 대게 잡이. 거기에 암초 같은 작은 바위에도 낚시꾼들이 한둘은 꼭 서 있더라.”
반서진이 간 바다 쪽도 우리와 사정이 비슷했던 모양이다.
나는 인정하기로 했다.
내가 한국인들의 치열한 삶을 너무 얕봤다는 것을.
내가 상상하던 것 이상으로 사람들은 이 나라를 알뜰살뜰하게 훑어 먹으며 살고 있었던 것이다.
“이 나라에 남의 눈이 안 닿는 땅이 있을 리가 없지.”
나와 똑같은 생각을 했는지 반서진이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으며 어깨를 으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