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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화 (155/231)

155화

“장비 아이템?”

“네. 세트 아이템이에요. 바르기스 세트인데, 독 저항이 붙어 있어요. 그 외 세트 효과는 아직 확인 못해봤지만 분명 좋을 거예요.”

‘바르기스 세트’라는 부분에서 유은담과 반서후의 눈이 튀어나올 듯커졌다.

보스 몬스터 부산물로 만든 장비 하나도 어마어마한 보물인데 그게 세트라고 하니 놀라지 않을 수 없겠지.

“나한테 줘도 돼? 네가 쓰는 게 더 낫지 않아?”

좋아라 하며 바로 받아갈 것 같았는데 의외로 반서진은 조심스럽게 나왔다.

워낙 아이템이 대단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아, 저는 이미 있어서.”

"나도 있어.”

반서진의 시선을 받은 서지한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이것보다 좋은 거 입고 있다고?”

"좋다기보다, 옵션이 더 잘 맞는 걸로 입고 있어요.”

S급 장비 세트에는 저마다 분명한 장점이 하나씩 존재했다. 그래서 어느 것 하나가 더 떨어진다고 말하기 힘들었다.

“그래? 그럼 나 얼른 입어보고 올게! 잠깐만 기다려!”

희희낙락한 표정을 숨기지 않고 반서진이 자리에서 일어나 2층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잠시 후, 계단을 부술 듯 격렬하게 달려 내려와 나를 강하게 끌어안았다.

“세상에! 너무너무 고마워! 옵션 진짜 장난 아니야! 나 이렇게 좋은 아이템 세트 처음 입어봐!”

"대부분의 헌터가 그렇겠지.”

서지한이 뿌듯하게 한 마디 보태더니 얼른 반서진을 떼어내 자신의 자리로 밀어냈다.

못 이기는 척 자리에 앉은 반서진은 여운이 가시지 않는지 나에게 반짝반짝한 시선을 보냈다.

“A급 이하 대미지 무시 옵션도 붙어 있는데, 진짜 장난 아니다. 이게 말이 되는 건가? 너무 좋다! 나 진짜 잘할게. 뭐든 시켜! 뭐든 다 해줄게!”

A급 이하 대미지 무시 옵션.

그 말에 유은담과 반서후가 동시에 움찔했다. 예상 이상의 성능이었던 모양이다.

“사실 입기 전에도 좀 기대하긴 했는데 입은 후에는 진짜 놀랐어! 이런 걸 받았는데 내가 뭔가 해줄 수 있는 게 없어서 미안하네. 아, 그래. 나 그냥 오늘을 내 생일로 할게!”

"네?”

“이런 끝내주는 선물을 받았는데 기념이라도 해야지! 지금부터 오늘이 내 생일이야!”

“어…… 고맙습니다……?”

"고맙긴! 잘 쓸게! 진짜 진짜 잘 쓸게!”

호들갑 떨며 기뻐하던 반서진은 급기야 손 키스까지 마구 날리며 쪽쪽거리기 시작했다.

“어디서 이런 예쁜 게 튀어나왔지! 모아야, 내가 사랑하는 거 알지?”

윙크까지 날리는 반서진은 지금까지 내가 알던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색다르게 보였다.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반서후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래도 생일까지 바꾸는 건 좀 아니지. 부모님이 알면 얼마나……."

“뭐? 야, 분위기 파악해라. 개서후.”

“너 오빠한테……."

“내 에뼤헨테〜”

두 사람은 여전하구나.

생일을 바꾼다는 둥 하는 말은 농담인 게 분명한데 농담으로 못 받아들이는 반서후도 참…….

“누나……."

내내 조용히 앉아있던 유은담이 갑자기 조심스럽게 나를 불렀다. 그리고 한껏 울망울망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 시선의 의미를 못 알아챈 건 아니지만, 좀 놀려줄까 싶어서 나는 모른 척 대꾸했다.

“응?”

“저, 저는요?”

“뭐가?”

“저는 뭐 없어요……?”

귀엽긴.

좀 더 놀려줄까 싶어서 나는 짐짓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으음, 이건 신하 특전이라서.”

"신하요?”

“응. 얼마 전에 반서진 씨가 내 신하가 됐거든. 어쨌든 믿을 만한 관계고, 내 사람이 되었으니 내가 챙겨야지.”

“아…… 그러고 보니 그런 것도 있었죠.”

"응."

하지만 은담이는 내가 특별히 챙겨줄게! 하고 덧붙이려는데 그보다 먼저 유은담이 입을 열었다.

“그럼 저도 누나 신하 할게요! 받아주세요!”

“어?”

“사실 그동안 바쁘고 정신없어서 잊고 있었던 것뿐이에요. 절대로, 누나를 못 믿는다거나 그런 게 아니라. 저기 반서진 씨도 누나 신하인데 제가 빠질 수는 없죠! 저도 받아주실 거죠?”

이 비슷한 말을 어딘가에서 들은 것 같은데.

어쨌든 본인이 먼저 나서 주면 나도 마다할 생각은 없다.

사실 내가 먼저 ‘나의 신하가 되지 않겠니?’라고 묻는 건 어쩐지 너무 거만한 것 같아서 말을 꺼내기 힘들었다.

“당연히 받아줘야지!”

반서진을 신하로 복속시켰던 때와 같은 절차로 유은담의 복속을 진행했다.

나의 신하 목록에 유은담이라는 세 글자가 선명하게 박힌 것이다.

“자, 여기 신하 특전이야.”

순식간에 모든 절차를 마치고 나는 지르기스 세트를 꺼내 유은담에게 건넸다.

사실 광역 스킬 랭크 업이라는 옵션을 봤을 때부터 유은담에게 주려던 물건이었다.

“세트 아이템이 또 있었어요?”

아이템을 받아 든 유은담이 경악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확실히, 보스 몬스터 장비 세트 하나까지는 그러려니 했어도 이렇게 연달아 보스 장비가 튀어나올지는 몰랐겠지.

“응……. 어쩌다 보니 생겼어.”

"어쩌다 보니.”

“응. 어쩌다 보니.”

유은담은 몹시 묻고 싶은 것이 많은 표정이었지만 꾹 눌러 참는 듯했다.

만약 말해줄 거였다면 내가 먼저 알려줬을 거라고 짐작한 거겠지.

이들을 믿지 않는 건 아니다. 하지만 모든 것을 말하고 공유하는 건 조금 조심스러운 일이었다.

“그럼 저도 입어보고 올게요.”

아이템을 받아 든 유은담이 그대로 자리를 떠났다.

그동안 반서후는 불편한 표정으로 반서진을 흘긋 쳐다보더니 애꿎은 맥주만 입에 털어 넣었다.

그리고 잠시 후, 유은담이 요란하게 계단을 뛰어 내려왔다!

“누나 누나 누나! 누나!”

반서진과 동일한 패턴으로 계단을 구르듯 내려온 유은담이 팔을 활짝 펼치고 나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그전에 서지한이 한쪽 발을 들어 유은담의 배를 걷어차 밀어냈다.

“은담아!”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는데 정작 유은담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이다.

“A급 이하 물리 대미지 무시…… 지한이 형, 성능 테스트 고마워.”

"홍.”

유은담의 능글맞은 말에 서지한은 코웃음만 쳤다.

한 대 얻어맞더니 정신이 좀 드는지 유은담은 약간 침착해진 태도로 자신의 자리에 착석했다.

그리고 반서진과 마찬가지로 열렬한 시선으로 나를 응시했다.

“누나, 진짜 고마워요. 특히 이 무기 옵션……. 진짜 고마워요. 덕분에 광역 스킬 엄청 세졌어요! 전에 주신 바르기스 뿔도 광역 스킬이어서 이거랑 궁합이 엄청 좋네요. 저 생각해서 이거 챙겨주신 거죠?”

나는 부정하지 않았다. 살짝 눈을 감고 고개를 까딱이자 눈물이 흐르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유은담이 감동 어린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 보니 바르기스 뿔, 다 먹었구나.”

“네. 얼마 전에 겨우 다 먹었어요. 제가 입이 좀 짧은 편이라……."

그 이야기를 듣고 나니 나는 내내 신경 쓰이던 부분을 확인하고 싶었다.

“그런데 뿔 다 먹고 나서 머리에 왕관 같은 건 안 생겼어?”

"아뇨? 제가 먹은 건 두 쪽 중 한쪽이잖아요. 두 개 다 먹어야 생기는 거 아닐까요?”

예상대로다. 하긴, 나도 그렇지 않을까 생각하긴 했다.

“그렇구나.”

“네! 아, 그리고 그때 얻은 독 스킬 아이템 덕분에 SS급 됐어요. 독 스킬 필요하시면 말만 하세요. 저도 뭐든 누나가 하는 거라면 다 도울테니까요!”

“당연히 그래야지.”

나 대신 서지한이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싸늘한 그 반응에도 유은담은 주눅 들지 않고 방글방글 웃어 보였다.

참, 이런 면을 보면 승주랑 또 다르다니까.

저 능글맞은 성격은 어릴 때부터 헌터 활동이나 길드장을 한 탓에 키워진 거겠지? 나이답지 않은 면이 역시 좀 짠하다.

“은담아, 옷은 괜찮아? 불편하지는 않고? 반서진 씨도 괜찮아요?”

"아주 편해! 좀 불편하면 뭐 어때 옷에 몸을 맞추면 되는 거지!”

내 말에 어딘가 광기 어린 패션업계 종사자 같은 말을 하며 반서진이 쾌활하게 웃었다.

이 사람도 정말 첫인상이랑 다르단 말이야. 역시 사람은 한번 보고 속단하면 안 돼.

“반서진 씨 처음 봤을 때는 이런 성격인 줄 정말 몰랐어요.”

무심코 생각하던 게 입 밖으로 툭 튀어나오고 말았다.

앗. 이런, 나도 모르게 편견과 평가가 동시에 들어 있는 말을 하고 말았다.

하지만 반서진은 기분 상한 기색도 없이 어깨만 으쓱했다.

“하긴, 우리 첫 시작이 좀 강렬했지?”

“네.”

“나는 그냥 단순해. 나한테 잘해주는 사람은 나도 잘해주고 나한테 개같이 굴면 나도 개같이 구는 거지.”

대부분이 그렇지 않을까 싶지만 반서진은 좀 극단적인 편인 게 아닐까?

나쁜 건 아니지. 솔직히 개인적으로는 좀 부러운 성격이다.

하지만 가만히 듣고 있던 반서후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끼어들었다.

“잘해주는 사람한테는 잘해준다면서? 나한테 그러는 건 상관없지만, 가족들도 좀 챙기고 그래. 가족들이 널 얼마나 걱정하는지 알아?”

그 말을 들은 반서진의 표정은 정말로 대단한 것이었다.

길가다가 갑자기 돌을 맞아도 저렇게 어처구니없는 표정이 나오지는 않을 것 같다.

그리고 심호흡을 하더니 빙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왈왈! 왈왈왈! 왈왈! 컹컹! 왈왈왈왈!”

그리고 반서후를 향해 맹렬히 짖기 시작했다. 그녀는 한바탕 속이 풀릴 만큼 짖고 나더니 멍한 반서후에게 우아하게 말했다.

“아무래도 내 말을 잘 못 알아듣는 것 같아서 네가 알아들을 수 있을만한 언어로 말해줬어. 다시는 나한테 그런 개소리 하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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