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7화
그래, 페널티까지는 좋다 이거야.
이제 시작하는 관계니까 무턱대고 믿어달라는 말은 하지 않겠어.
하지만 내용이 좀 아니잖아?
서지한 씨의 의사를 정말 무시하고 있는 것도 그렇고 여러모로 문제가 많다고 생각한다.
“무슨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내 사람을 내기에 거는 짓 안 해.”
들끓는 화를 꾹꾹 눌러 참으며 페르기스를 노려보았다.
내 시선을 받은 페르기스가 주춤하며 앞다리를 굽힌 채 반걸음 뒷걸음질 쳤다.
“그, 그러나 무조건 그대의 말을 믿을 수는 없다. 임무를 핑계로 내 던전을 휘젓고 다닐 그대가 딴마음을 먹지 않을 거라고 어떻게 장담하는가.”
그래, 안전장치는 필요하지. 이해는 한다. 하지만.
"페널티를 걸지 말라는 건 아니야.내용을 좀 바꿔.”
“원하는 내용이 있는가?”
“이건 너와 나 사이의 일이니까 실패의 대가는 내가 치를게.”
“모아야!”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듯 서지한이 다급하게 나섰다. 나는 그에게 눈짓해 일단 진정시켰다.
“직접?”
약간 위축되어 있던 페르기스의 기색이 변했다.
짧은 단어에는 노골적인 흥미가 묻어 나왔다.
잠시 무언가 생각하던 흰 사슴은 어느새 위엄 어린 태도를 되찾아 나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이 퀘스트에 실패하면 나의 신하로 복속되겠다고?”
머리 굴러가는 소리 들린다.
기대와 설렘, 계산이 뒤섞인 은은한 목소리에 나는 속으로 혀를 찼다.
그럴 리가 있어?
“아니. 그건 아니지. 당장 네 목을 받아갈 수도 있어. 그런데 왜 그런 위험을 감수하겠어?”
"읏……."
모욕당했다고 생각했는지 페르기스가 짧게 신음했다.
서지한의 검은 낫에서 다시 새카만 기운이 물씬 풍겼다. 수작 부리지 말고 순순히 말 들으라는 협박이다.
“믿음이 필요하다고 했지? 그러면 이 임무가 실패했을 때 나도 어느 정도 손해를 보면 되잖아. 그러면 믿겠어?”
“페널티로 걸고 싶은 내용이 있는가?”
나는 인벤토리를 열었다. 그리고 아이템을 하나 꺼내 내려놓았다.
“왕관에는 왕관이지.”
쿠웅- 하는 효과음이 어울릴 것 같은 기세로 거대한 금빛 뿔이 나타났다. 실제로 소리는 하나도 안 났지만.
“마룡왕 게오기스의 뿔이야.”
가볍게 소개하자 페르기스가 침을 삼켰다.
이렇게 멀쩡한 뿔은 정말로 귀한 아이템이다.
비록 나에게는 너무 커서 언제 다 먹나 싶은 애물단지지만 지금은 그 거대함조차 장점으로 보였다. 어쨌든 크기가 크니까 임팩트가 강하잖아.
“굉장히 거대하군……."
약간 질린 기색으로 페르기스가 중얼거렸다.
사슴은 감탄을 숨기지 않았다. 만약 이 녀석과 게오기스가 맞붙었다면 이 흰 사슴은 거대한 용의 적수가 되지 못했겠지.
원래대로라면 감히 상대도 하기 힘든 강력한 왕의 뿔.
고요하던 사슴의 푸른 눈에 탐욕이 서렸다.
“내가 실패하면 이거 너 줄게.”
“받아들이지.”
페르기스는 내가 말을 번복할까 무섭다는 듯 냉큼 대답했다.
내가 다시 뿔을 인벤토리로 회수하자 동시에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실패 페널티가 변경되었습니다.
실패 페널티 : 마룡왕 게오기스의 뿔을 페르기스에게 상납.
수락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