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화
“지르기스 던전 닫았을 때는 기사 하나도 안 나더니……."
- 두 개나 닫히니까 정신이 번쩍 드나 보지.
‘던전 소멸’이라는 키워드로 검색하자 5천 개가 넘는 기사가 나타났다.
나는 착잡한 기분으로 기사의 제목을 훑어보았다.
정말 쏟아졌다는 표현이 정확할 정도로 무지막지하게 많은 기사들이었다.
하나같이 던전을 닫은 범인을 비난하는 논조였다.
던전을 미리 닫아두지 않으면 나중에 몬스터가 쏟아져 나올 거라는 정보는 어디에도 없었다.
설령 그런 기사가 있다고 해도 이런 압도적인 물량 앞에서는 그냥 묻혀버리겠지.
이 소식을 최초로 전한 기사가 불과 3시간 전의 것이었다.
우리가 게오기스 던전을 닫자마자 바로 기사화된 거였다.
의도적으로 엠바고를 해제한 건지, 아니면 더 이상 막을 수 없었던 건지 모르겠다.
- 개네 뭐라고 썼어? 대충 예상은 가지만.
서지한의 말에 기사 하나를 클릭해봤다. 예상대로의 내용이었다.
기사 본문은 이틀 만에 던전 두 개가 소멸한 사실과 그로 인해 얼마나 큰 손해가 일어났는지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었다.
기사 말미에 서지한의 랭킹 점수가 크게 올랐음을 일부러 언급한 부분에서 공격의도를 읽은 건 나의 자의식만은 아닐 거다.
예상대로 댓글은 엉망이었다. 올라온 지 30분도 안 된 기사인데 벌써 댓글이 1만 개가 넘는다.
하긴, 최근 한국에 일어난 일 중에 가장 큰 사건 사고지.
“엄청 욕하고 있네……."
- 그렇겠지.
서지한은 심드렁한 반응이었다. 댓글 대부분이 서지한을 욕하는 내용인데도 그는 신경도 쓰지 않은 것 같았다.
댓글의 발언 수위는 범죄와 광기 사이를 헤매고 있었다.
kang**** 08:51:03
서지한 사형 찬성하시는 분 추천 눌러주세요.
답글 79 ⇧ 9375 ⇩ 1
이 댓글의 추천 수는 거의 1만에 육박하고 있었다. 하지만 딱 한 명이 비추천을 눌러놓았다.
나는 홀린 듯이 비추천을 눌렀다.
이제 비추천 수는 2.
별 의미 없는 숫자겠지만.
abe**** 08:51:03
전에 살인하고 아직도 못 잡았음? 지겹네 진짜.
⇧ 79 ⇩ 5
ahh**** 06:51:03
던전 닫으면 손해가 얼만데……머리가 나쁜가? 진짜 멍청하네.
답글 1 ⇧ 92 ⇩ 2
↳ papa**** 06:52:04
혼자 독식하면 손해 아니지.
⇧ 6 ⇩ 4
norae**** 06:51:03
서지한 때문에 한국 망하죠?
⇧ 53 ⇩ 1
bilue**** 06:51:03
아이템 구하기 힘들어지면 다른 나라에 빌어야 하는 거 아님?
답글 2 ⇧ 88 ⇩ 4
↳ mar**** 06:52:04
마켓에서 사면되는데?
⇧ 44 ⇩ 89
↳ all**** 06:52:04
등급 높은 아이템은 마켓에 안 풀려. 알못은 쉿.
⇧ 2 ⇩ 3
jug**** 06:51:03
저거 하나를 못 잡는다고? 진짜 한심 하다.
⇧ 96 ⇩ 3
hae**** 06:51:03
지금도 중환자는 힐링 포션이 없어서 죽어 가는데 아이템 독식하겠다고 추하다 진짜.
⇧ 36 ⇩ 2
michin**** 06:51:03
던전 하나 경제가치가 얼만데 미친놈.
⇧ 93 ⇩ 1
kun**** 06:51:03
던전 아이템에만 희망 가지고 있는 난치병 환자입니다. 제발 던전 닫지 마세요.
⇧ 76 ⇩ 3
wuu**** 06:51:03
내일 우리나라에 던전 10개 생기면 좋겠다. 진짜 개 화나네.
⇧ 38 ⇩ 5
나와 함께 댓글을 확인한 서지한은 몇 개 읽어보더니 곧 흥미 없는 표정으로 시선을 돌렸다.
- 응? 왜?
내가 가만히 바라보는 것을 느낀 그가 의아하게 물었다.
“괜찮아요?”
- 당연하지. 아무것도 모르는 녀석들이 뭐라고 지껄이든 알 게 뭐야.
그렇게 말한 서지한은 잠시 턱을 만지작거리더니 가볍게 미소 지었다.
- 그래도 다행이야.
“뭐가요?”
- 랭킹 보드에 네 이름이 올라갔으면 지금 이 댓글들 전부 널 욕하는 내용으로 가득했겠지. 너는 이런 거 신경 많이 쓰잖아.
그의 말대로 서지한이 없었다면 이 비난은 모두 나를 향했을 것이다.
그래서 내 대신 욕을 먹고 있는 그에게 더욱 미안했다.
“혼자만 욕먹게 해서 미안해요.”
- 뭐? 아냐. 신경 쓰지 마. 오히려 이렇게 되어서 다행이야.
“네?”
- 너에게도, 저놈들에게도 잘 된 거지.
“저놈들이라면, 이 댓글 쓴 사람이요?”
- 응. 예전에야 뭐, 몸이 없었으니 그냥 넘길 수밖에 없었지만 지금 네가 이런 헛소리에 앓는 걸 보고 내가 이놈들을 그냥 둘 것 같아?
예전이라면 내가 막 각성한 무렵을 말하는 것이었다.
미국으로 이민을 간다던가 하는 헛소문이 인터넷에 마구 떠돌아다니던 시절.
밤잠을 제대로 자지 못 하고 뒤척거리는 나를 보며 그는 아닌 척했지만 꽤 걱정했었다.
“욕 좀 했다고 사람을 어떻게 하면 안 되죠.”
- 뭐 어때. 어차피 네가 던전 안 닫고 다니면 나중에 다 죽었을지도 모를 목숨인데.
서지한은 그저 잔잔하게 웃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도 농담이라니. 역시 거물이야.
그래도 그 덕분에 기분이 좀 가벼워졌다.
“이건, 그만 봐야겠어요. 괜히 기분만 상하니까.”
휴대폰을 닫자 서지한은 마음대로 하라는 듯 가볍게 미소 지었다. 역시, 그가 곁에 있어서 몹시 든든하다.
“하, 그래도 이렇게 서지한 씨 욕하는 거 보니까 영상 확 공개해버리고 싶네요.”
차라리 나를 욕하고 있었다면 혼자 속상하고 말았을 텐데 고생하는 서지한이 욕먹는 걸 보니 참기 힘들다. 게다가 본인이 담담하니까 더욱.
- 별로 좋은 생각은 아닌 것 같은데.
“왜요?”
- 그 영상으로 알릴 수 있는 건 거대 길드의 기득권 구도 계획뿐이잖아.
“그건 그렇지만, 서지한 씨의 결백도 밝혀지겠죠.”
그것만으로도 꽤 큰 소득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거대 길드의 횡포에 지금까지 피해받아왔다는 것도 겸사겸사 알릴 수 있잖아.
“서지한 씨도 피해자라는 걸 사람들이 알아야 하는데.”
내 말에 서지한은 황당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더니 작게 뺨을 긁적였다.
- 으음, 그거 하나 공개된다고 내 이미지가 확 좋아지거나 하지는 않을 것 같지만.
“하지만 이쪽이 이렇게 욕을 먹으니 저쪽도 욕을 좀 먹었으면 해요.”
내가 볼멘소리를 하자 서지한이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 그건 그렇지.
몇 번이나 영상을 공개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가짜 서지한이 떠들어대는 진실을 세상에 알리면 적어도 이렇게 일방적으로 당하지는 않을지도 모르지.
그러나 문제는 ‘알리면’이다.
과연 온전하게 우리의 의도대로 이 영상을 알릴 수 있을까?
상대는 3시간 만에 수천 개의 기사를 쏟아내는 여론전의 대가이고, 우리에게 있는 건 그저 영상 하나뿐이었다.
그리고 우리가 영상으로 변호하게 될 서지한의 대외 이미지는 그리 좋은 편이 아니지.
최악의 경우엔 기껏 알리려고 인터넷에 영상을 올렸더니 우리 것은 삭제되고, 적의 손에 편집된 영상만 수만 개의 기사와 매체로 퍼져나갈지도 모른다.
완전히 적의 손에 무기를 가져다 바치는 꼴이다.
“영상 증거가 확실하게 있는 이런 일도 힘든데, 최후의 전당이나 던전 몬스터들이 뛰쳐나오는 걸 사람들이 믿게 하려면 얼마나 힘들까요.”
던전으로 얻는 이득은 확실하게 존재하지만, 우리 이야기는 긴가민가한 모호한 정보였다.
게다가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믿으면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정보.
- 많이 힘들겠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던전을 환영해. 아까 못 봤어?던전이 10개 생겼으면 한다는 놈도 있었잖아.
“불안하지도 않은 건가?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이해가 안 가요.”
- 던전에 휘말려 죽는 사람은 ‘남’이고 던전 아이템이 풍부해져서 편해지는 건 ‘나’니까.
냉소적으로 설명한 서지한은 나를 바라보며 조용히 덧붙였다.
- 아주 소수의, 던전에 실제로 휘말렸다가 생환하거나 사고로 소중한 사람을 잃은 사람들. 즉, ‘던전 공포증’을 가진 사람 외에는 다들 던전을 환영하지.
서지한의 말을 듣자 기분이 더욱 가라앉았다. 그런 내 표정을 보고 그가 갑자기 장난스럽게 제안했다.
- 짜증 나는 데 그냥 던전 닫지 말고 다 터지게 놔둘까?
“네?"
- 던전 닫으러 다니는 시간에 너 아는 사람들 찾아가서 네 던전에 피난시키는 거야.
“진담이에요?”
- 나중에 던전 터지고 나면 저 사람들도 던전을 왜 닫고 다녔는지 알겠지. 네 친지들은 모두 대피했을 테니 상관없는 문제고.
나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그를 잠시 바라보다 고개를 저었다.
“욕 좀 들었다고 사람들이 다 죽게 둘 수는 없죠.”
역시 그냥 떠보는 것이었는지 서지한은 더 말하지 않고 싱긋 미소 지었다.
“아무리 방해하고 비난한다고 해도 던전 다 닫아야죠. 어차피 이런 비난으로는 저를 막지 못해요. 변하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 맞아. 변하는 건 아무것도 없어.
결국 진실은 밝혀질 것이다.
던전은 한국에만 있는 게 아니고, 한국 던전을 다 닫은 후 전 세계가 난리가 나면 그때는 우리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들도 많이 생기겠지.
물론 다른 나라 사람들이 몬스터한테 다 죽었으면 좋겠다는 뜻은 당연히 아니다.
지금은 사정을 잘 아는 한국 던전부터 닫고 있긴 하지만, 한국 던전을 다 닫고 시간이 남으면 해외 던전도 닫을 생각이다.
- 모아야. 아무 고민하지 마. 고민할 필요 없어.
매우 진지한 표정으로 서지한이 내 손을 감싸 쥐며 당부했다. 뭔가 그럴듯한 조언을 하려고 하는 것 같아서 귀를 기울여보았다.
- 고민은 약한 놈들이나 하는 거야.
“네?”
- 강하면 그런 거 할 필요 없어. 네가 하고 싶은 것, 네가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해.
“……네?”
- 힘이 있는데 고민을 왜 해? 반서진 구출하는 것도 힘이 있으니 그냥 쳐들어가서 감옥 부수고 빼왔잖아.그러면 되는 거야.
“어, 그건 좀……."
-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해,
“아, 예……."
서지한이 주먹을 불끈 쥐고 응원해줬지만 나는 갑자기 모든 것이 피곤해졌다.
그래, 어차피 해야 할 일은 변하지 않는다.
“슬슬 내일 공략하러 갈 던전 이야기 좀 해요.”
나는 엘파니스의 던전으로 통하는 문을 열었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그의 던전에서 아이템을 채집하고 늦은 시간이 되어서야 돌아왔다.
그리고 다음 날, 예정했던 대로 세 번째 던전으로 떠났다.
이 던전을 닫으면 이제 한국에 남은 던전은 두 개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