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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화 (130/231)

130화

“케르기스만큼 단단하지도 못 하고, 지르기스만큼 빠르지도 못 하고. 맞지도 않는 브레스나 쓰는 느려 터진 새끼가 어딜. 그러게 대화하자고 할 때 했어야지.”

“감히! 씹어먹어 주마!”

분을 참지 못 하고 게오기스가 서지한을 향해 돌진했다. 그러나 턱도 없는 공격이었다.

“느려.”

“크아아!”

돌진 공격에 실패한 게오기스는 다시 브레스를 날렸으나 서지한의 말대로 그 숨결은 그의 옷깃도 스치지 못했다.

틈틈이 서지한의 공격이 날아들었기 때문에 게오기스는 점점 너덜너덜한 꼴이 되어가고 있었다.

가죽 등급 떨어지겠다.

결국 게오기스는 하늘을 포기하고 땅에 내려섰다. 그러나 뒷발이 잘렸기 때문에 제대로 설 수 없어 무릎을 꿇은 상태였다.

“이 멍청한 하수인들아! 네놈들의 주인을 도와라!”

궁지에 몰린 게오기스가 별안간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서지한의 뒤쪽에서 게오기스를 작게 줄인 것 같은 몬스터들이 그를 포위하듯 우르르 나타났다.

이런, 저건 내가 도울…… 필요는 없겠군.

갑자기 나타난 몬스터 둘을 그대로 썰어버린 서지한은 다시 튕기듯 이동해 게오기스와 남은 몬스터를 앞에 두고 섰다.

그리고 두 배로 거칠게 요동치는검은 낫을 휘둘렀다.

낫으로부터 쏘아져 나간 검은 기운은 거대한 부채꼴을 그리며 닿는 모든 것을 두 동강 내버렸다.

그 한 방의 공격 이후 남은 것은 반토막이 난 몬스터와 배의 비늘이 모조리 깨져나간 마룡왕뿐이었다.

가죽 S급은 확실히 무리겠지……?

“못 막으면 죽어야지.”

서지한이 차갑게 중얼거렸다.

게오기스는 용의 표정을 잘 모르는 나조차도 알 정도로 아연해하고 있었다.

"어, 어디서 이런 괴물 같은……."

용의 말이 들리지도 않는지 서지한은 한 손으로 낫을 고쳐 잡고 죽은 몬스터를 가리켰다.

“더 불어볼래? 아이템 좀 벌어가게.”

“죽어! 죽어라, 이 괴물!”

게오기스가 발악하듯 다시 연신 브레스를 쏘아붙였다.

하지만 서지한은 별로 힘들이는 기색도 없이 가볍게 툭툭 몸을 튕겨 공격을 전부 회피했다.

와…….

저 몬스터의 행동 패턴은 연구가 다 끝난 상태라더니, 정말이지 압도적일 정도로 몰아붙이는구나.

잠시 게오기스를 가지고 놀던 서지한은 놈이 지친 숨을 몰아쉬자 그대로 천장을 박차고 올랐다가 하강하며 게오기스의 한쪽 날개를 잘라버렸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놈의 머리를 짓밟아 땅에 처박았다.

“크르르……."

서지한이 밟고 선 게오기스의 머리는 땅에 거의 파묻힌 상태였다.

놈의 머리를 비벼 불을 끄듯 한번 더 짓밟은 그가 날렵하게 몸을 뒤로 물렸다. 그리고 생글생글 웃으며 말했다.

“이제 대화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어?”

너덜너덜해진 게오기스는 보기에도 참혹한 꼴이었다.

“살려. 다오.”

마침내 놈의 입에서 기운 빠진 말이 홀러 나왔다. 서지한은 잔인할 정도로 밝게 웃는 얼굴로 대답했다.

"살고 싶어? 그러면 여기까지 와서 내 낫이라도 핥아볼래? 그러면 살려줄게.”

말을 마치며 서지한은 다시 낫을 휘둘러 게오기스의 남은 나머지 한쪽 날개마저 잘라버렸다.

사방은 벌써 게오기스가 흘린 용암 같은 핏물로 붉게 빛나고 있었다.

“크아아악!”

게오기스의 입에서 다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서지한은 그 모습을 미동도 없이 바라보며 다시 덧붙였다.

“기어서 와. 기어 와서 핥아보라고.”

차갑게 말한 서지한을 향해 게오기스가 남은 앞발 두 개로 힘겹게 무거운 몸을 끌기 시작했다.

그러나 거리가 좁혀지자 서지한은 획 하고 몸을 날려 게오기스와의 거리를 다시 벌렸다.

“빨리 와야지. 살기 싫어?”

와…… 서지한 씨. 진짜 성격이…… 나쁘네요.

처음의 위엄도 체면도 던져 버리고 살아남으려고 땅을 기는 용을 보니 없던 동정심마저 생기는 기분이다.

게오기스가 이미 전투불능이 된 듯 했기에 나는 그쯤에서 싸움을 소강시키기로 했다.

“서지한 씨. 그만해요.”

가까이 다가서자 게오기스의 힘없는 시선이 나를 향했다.

소통 유과의 지속시간이 거의 끝나가고 있었기에 나는 새로운 유과를 하나 더 사용해 시간을 갱신했다.

“게오기스 씨. 지금이라도 왕관과 던전을 양도하면 해치지 않을게요.지금 심정이 말이 아니시겠지만, 가엾은 동족을 생각해보세요.”

게오기스는 느릿하게 눈을 끔뻑였다. 무슨 헛소리를 하고 있느냐는 태도였다.

“동족? 하수인을 말하는 건가? 그놈들의 목숨을 위해 왜 내가 굴욕을 자처할 거라 생각하는 거지?”

“네?”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나는 던전의 왕들이 당연히 제 동족을 소중하게 여길 거라고 생각했다.

왜냐면 내가 그렇게 생각하니까.

하지만 세상 사람들의 생각이 다 나 같지는 않은 것인데, 그걸 간과했다.

“그래서 제 부하들이 다 죽어가도 여기서 잠이나 자고 있었던 거군.”

서지한이 혀를 차며 한심해하는 어조로 중얼거렸다.

“부하? 하수인은 왕을 위해 존재하는 것들이다. 이상한 소리를 하는군.”

그래, 그런 개념이었군.

어쩌면 지르기스도 게오기스와 비슷한 부류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자신이 죽으면 모든 동족이 던전과 함께 소멸하는데도 목이 아주 뻣뻣했지.

다른 충왕류들을 위해 내게 던전을 넘긴다는 굴욕을 감수할 생각이 전혀 없던 지르기스의 태도가 이제 이해가 간다.

자신의 자존심은 너무나 소중하고, 다른 동족의 목숨은 너무나 하찮았을 테니.

“역시, 너는 왕이 될 재목이 아니군. 그런 물러 터진 생각으로는 전당에서 살아남지도 못할 거다.”

갑자기 게오기스의 기세가 일변했다.

“너희들은 이 위대한 게오기스의 관을 받기에는 너무 부족하다.”

그 말과 거의 동시에 게오기스가 숨을 크게 들이켰다.

우리가 가까워지기를 기다렸다가 반격을 꾀한 것이다.

그러나 서지한의 낫이 더 빨랐다.

뜨거운 숨이 채 놈의 목을 통과하기도 전에 서지한의 낫이 게오기스의 목을 파고들었다.

“두 번은 안 되지.”

낫에 묻은 용암 같은 용의 피를 툭툭 털어낸 서지한이 씹어 뱉듯 말했다.

게오기스의 머리는 몸통과 깨끗하게 분리된 상태였다.

그 상태로 잠시 눈꺼풀을 파르르 떨던 게오기스는 나를 향해 조롱하듯 짧게 웃더니 그대로 숨이 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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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룡왕 게오기스가 사망하였습니다.

잠시 후, 게오기스의 힘으로 유지되는 공간의 연결이 해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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