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3화 (123/231)

123화

하루 일과를 마친 야심한 시각.

나는 야식으로 지르기스의 뿔을 좀 갉아보기로 했다.

원래는 새우만두와 함께 맥주를 마시고 싶었는데.

“후우.”

내가 한숨을 내쉬자 의자를 거꾸로 돌려 등받이를 안은 채 앉아 있던 서지한이 피식 웃었다.

- 그냥 먹고 싶은 거 먹지. 새우만두, 네가 먹고 싶었던 거 아니야?

“맞아요.”

- 그런데 왜 엘파니스에게 줘버린 거야?

그럴 수밖에 없었다.

채집을 하러 던전에 갔더니 오랜만에 보는 엘파니스가 반갑게 달려왔다.

그리고 바리바리 싸 둔 나무 열매며 손질한 뿌리 같은 것을 꺼내다가 좀 드셔 보시라며 내게 권했던 것이다.

들어오기 전에 서지한이 차려준 애호박 된장찌개와 생선 조림, 각종 나물에 언제 만들었는지 모를 식혜까지 받아 마셔 몹시 배가 불렀던 나는 그걸 거절했다.

그리고 그때 깨달았다.

이들의 식량 사정이 그렇게 좋지 않다는 것을.

‘원래는 쓸 만한 농토도 많고 좋은 땅만 골라서 영지를 꾸려 피난했습니다만…….'

오랜 싸움을 하며 농토는 모두 훼손되고 요리를 할 만한 식재료도 대부분 소실되었다.

시스템에 의해 아이템으로 판정된 자원들은 그나마 무사한 편이었지만 그래도 식생활이 궁핍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 이야기를 듣고 다람쥐나 먹을 것 같은 단출한 식단을 보니 눈물이 앞을 가렸다.

결국 나는 바로 던전에서 나와 먹을 것을 왕창 쓸어 담아 엘파니스에게 주었다.

거기에 내가 야식으로 먹으려던 새우만두나 맥주 같은 것이 포함되어있던 건 사소한 문제였다.

“도저히 그냥 있을 수가 없더라고요.”

- 그래도 내가 만든 반찬까지 줘버리다니…….

서지한이 불만스럽게 중얼거렸다.

반찬 중에 먹고 싶었던 게 있었나? 하지만 그럴까 봐 주기 전에 분명 확인했는데.

“하지만 냉장고를 뒤지며 ‘이것도 줘도 돼요?' 라고 물었을 때는 괜찮다고 했잖아요.”

- 네가 주고 싶으면 주는 거지.

“그런데 왜……."

- 그거랑 이건 별개야. 네가 먹었으면 하고 열심히 만든 건데…….

“어차피 저는 당분간 뿔 말고 다른 음식은 못 먹는걸요.”

그는 다시 말없이 한숨을 내쉬었다.

엘파니스에게 가기 전 서지한은 남은 실체화 시간이 아깝다며 부지런히 움직여 냉장고를 반찬으로 꽉 채워놓았었다.

메뉴는 주로 지푸라기 몸으로는 하기 힘든 까다로운 음식들이었다.

서지한은 그렇게 만든 반찬들이 고스란히 엘파니스에게 가게 된 것이 몹시 기분이 상한 모양이었다.

실체화 시간이 끝나 지푸라기 인형에 빙의한 서지한은 채집을 마치고 돌아온 후에도 냉장고 앞을 슬프게 서성거렸다.

작은 지푸라기 인형이 냉장고 문을 열어보더니 맥없이 고개를 떨어뜨리는 모습은 안타까운 기분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했지.

- 그 뿔 먹는 데 한 4일은 걸리겠지?

“그보다 짧을 수도 있고요.”

- 그러면 게장이나 숙성이 필요한걸 좀 만들걸 그랬어. 뿔 다 먹으면 바로 먹을 수 있게.

게장? 방금 게장이라고 했어?

그걸 직접 만든다고?

“그런 것도 만들 줄 알아요?”

깜짝 놀라서 묻자 서지한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 별로 어렵지 않은데.

이쯤 되자 나는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낮에 새우만두를 직접 빚어서 냉장고에 넣을 때도 엄청 놀랐다고. 만두피 반죽부터 시작하는 만두 만들기라니.

“대체 왜 그렇게 요리를 잘하는 거예요?”

그래, 인정하기는 싫지만 서지한의 요리 실력은 나를 월등하게 웃돌았다.

먹는 것에는 집착이 강해 보이지 않는데 의외로 다양한 요리를 할 줄 알았다. 게다가 메뉴를 선정하는 능력도 탁월했다.

- 나는 운동을 오래 했잖아.

“아, 그랬죠. 그런데 그게 무슨 상관이죠……?”

-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식단 관리도 능숙해졌거든. 게다가 헌터가 되기 전에는 돈이 없었으니까 외식보다 집에서 만들어 먹는 게 싸게 먹혀서.

“그래도 보통 외식이 더 저렴하지 않아요? 저는 한번 사서 요리하면 남은 재료는 대부분 버리게 되더라고요. 싹이 나거나, 썩거나……."

반지하 자취 시절 내 냉장고는 싹을 틔운 온갖 작물로 작은 화원을 이뤘었지. 냉장고에서 감자 꽃을 볼 줄은 몰랐어.

키르기스의 뿔로 집을 부숴먹고 이사하던 날 냉장고를 비우다 발견했던 감자 꽃.

그걸 ‘와, 이거 봐요!’ 하고 보여줬더니 서지한이 기겁했던 게 생각난다.

크흠, 내 자취 경력은 서지한 보다 훨씬 짧은 데다 출근하기 시작하면 냉장고에 뭐가 있는지는 금방 잊어버리게 된다고.

아무리 재료를 사서 해 먹는 게 저렴하다고 해도 재료의 대부분을 버리게 되면 해당되지 않는 말이었다.

결국 돈 낭비와 냉장고에 식물을 키우기 싫다는 이유로 주로 레토르트나 외식으로 배를 채우곤 했는데, 서지한은 그런 나를 못마땅하게 보는 일이 종종 있었다.

아무튼, 서지한도 그런 일을 겪지 않았을까 했는데 그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 나는 운동하니까 많이 먹어서 버리는 일은 거의 없었어. 게다가 꽤 재능이 있었는지 한번 먹어본 음식은 비슷하게 만들 수 있더라고.

“진짜요? 뭐든? 그런 건 드라마에서나 나오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 재료야 대충 추측 가능하니까, 나머지는 조합해보면서 기억하는 맛에 가깝게 맞춰 가는 거지.

“사실 요리 방면으로 가면 대성할 수 있었던 거 아니에요?”

- 그럴지도 모르지만……. 꼭 그게 아니더라도 기본적으로 감각이 예민한 편이야. 그래서 다른 사람이랑 함께 있는 것도 별로 안 좋아하고.특히 다른 사람 체취 같은 것도 짜증 나고.

체취라는 말에 나는 움찔했다.

그, 그랬구나. 그러면 나랑 계속 붙어 있는 것도 스트레스였겠다. 그를 좀 더 배려해줬어야 했는데.

“이런, 저는 그런 줄도 모르고. 지금부터라도 개인 공간을 좀 가지는 게……."

- 아니, 그럴 필요 전혀 없어.

내 말을 자르고 서지한이 재빨리 대답했다.

혹시 내 기분이 상할까 봐 그러나 싶어 나는 재차 권했다.

“혼자 있는 시간이 중요한 사람들이 있죠. 제 주변에도 그런 사람 많으니까 이해해요.”

- 모아야. 진심으로 하는 말이야. 그럴 필요 없어.

“하지만 스트레스 받잖아요?”

- 내가? 아니. 너는 괜찮아.

의자에 느슨하게 앉은 그 자세 그대로 서지한이 살짝 웃었다.

천천히 눈을 깜빡이며 다시 한 번 그가 말했다.

- 너는 괜찮아.

말에도 향이 있다면 그가 방금 한 말은 캐러멜 향일 것 같다.

그의 말이 방 안에 달콤하게 풀려나오는 것 같았다.

공기가 너무 달콤해지는 것 같아서 나는 견디지 못 하고 그 분위기를 깨듯 질문했다.

“왜요?”

진짜 대답이 궁금한 건 아니었다.

서지한도 그걸 알고 있는 표정이었다. 그는 의자 등받이를 더욱 바짝 끌어안더니 고개를 천천히 기울였다.

“왤까?”

더욱 진해진 미소와 지긋하게 따라오는 의미심장한 시선.

얼굴이 확 달아오른다.

이유는, 이제 모르겠다. 그냥 아무래도 좋다.

“아, 아, 아아 아무튼 뿔부터 먹죠.시간이 너무 늦게 전에 좀 먹어두고 자야겠어요.”

서둘러 말을 돌리며 나는 지르기스의 뿔을 꺼내 들었다.

- 소스 없이 먹게?

“이미 챙겨 왔죠.”

준비한 소스는 매운 치즈 소스다.

인벤토리에서 꺼내 뿔 위에 쭉 짠 후 가볍게 한 입 베어 물었다. 와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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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왕 지르기스의 뿔을 섭취하였습니다.

계승 가능한 S급 스킬 개수가 한도에 도달하였습니다.

S급 스킬을 추가 습득하려면 기존 S급 스킬의 삭제가 필요합니다.100% 섭취 완료 시 특수 선택지〈강화〉가 발동합니다.

현재 진척도 1%

계승 가능 스킬

〈S급 충왕 현혹〉(액티브)

〈S급 충왕 저주: 마비〉(액티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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