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7화 (117/231)

117화

잠깐만.

버러지는 벌레의 비하 표현이잖아.

벌레인 본인이, 아니지, 본 충이 다른 사람을 그렇게 부르는 건 좀 부적절하다고 생각되는데.

자기 종족을 스스로 비하하는 거 아니야?

게다가 누가 보더라도 벌레는 너잖아.

이름부터가 이미 충왕류인데.

아, 혹시 그런 건가?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는 인간도 고양이라고 생각한다던데, 그런 맥락으로 충왕류의 눈에는 모든 생물이다 벌레로 보이는 걸까?

그렇다고 해도 왜 버러지야? 벌레면 몰라도.

입이 좀 험한 편인가?

모르겠다. 이 몬스터와는 초면이라서 어떤 성격인지 모르겠어.

내가 혼란에 빠진 사이 충왕류는지체 없이 앞다리를 서지한에게 뻗었다.

뾰족한 가시 같은 것들이 날카롭게 솟아 있는 다리가 서지한의 머리통을 부술 듯 날아들었다.

서지한은 별로 놀라지도 않고 가볍게 그 앞다리를 잡아챘다.

한 손으로.

그리고 그대로 뽑아버리더니 몬스터의 머리에 박아 넣었다.

머리가 꿰뚫린 거대 개미는 그대로 즉사했다.

“갑자기 뭐야.”

지나가는 개미라도 밟아 죽인 것 같은 태도로 서지한이 중얼거렸다.

방금 벌어진 일이 믿기지 않아서 눈만 깜빡이는데 본인은 당연한 일을 했다는 듯 태연했다.

아니, 당신이야말로 뭐야.

이런 말도 안 되는 전투 방식은 대체 뭐냐고.

이걸 전투라고 불러도 되나?

무기도 없이 그저 힘으로 제 몸의 세 배는 되는 몬스터를 죽였는데?

“대화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이는데? 다짜고짜 공격이네.”

어깨를 으쑥한 서지한이 담담하게 나를 돌아보았다.

몬스터에게 공격을 당했으니 ‘괜찮아요?’라고 안부를 물어야 하는 게 맞겠지만, 즉사한 몬스터를 배경으로 선 그를 보니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나는 한참 동안 말을 고르다가 간신히 입을 열었다.

어쩌면, 어쩌면 말이야.

“혹시 악수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요?”

“모아야. 그건 정말 아니야.”

“그래도……."

“걔가 한 말 들었잖아. 버러지라고 했다고. 아무리 들어도 좋은 의도로 한 말이 아니었어.”

그래. 나도 듣긴 했어.

하지만 ‘그렇군요. 다 포기하고 지르기스 뿔에 올려먹을 소스나 찾아보죠’라고 할 수는 없었다.

이렇게 쉽게 포기할 수는 없어.

뿔 먹기 싫어. 뿔 먹기 싫다고.

아직 동맹의 희망은 남아 있어.

그렇게 믿고 싶다. 그렇게 믿어볼래.

겨우 첫 시도잖아. 한번 만에 포기하는 건 너무 이르다고.

필사적으로 긍정적인 사고를 거듭한 끝에 나는 고뇌어린 이론을 제시했다.

“버러지라고 했다고 우리를 적대시했다고 볼 순 없어요.”

“뭐?”

서지한은 기가 막힌다는 표정이었지만 그래도 가만히 내 말에 귀를 기울여 주었다.

“벌레가 다른 생물을 벌레라고 부르는 게 욕일까요?”

“흠.”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일단 계속 들어주겠다는 뜻인 것 같아서 나는 차근차근 다음 말을 꺼냈다.

“평범하게 부른 걸지도 몰라요. 우리도 종종 다른 사람을 ‘인간아’라고 부르지 않나요?”

“보통 싸우기 직전에 상대를 그렇게 부르지 않아?”

나는 잠시 침묵했다.

서지한은 가만히 눈을 깜빡이더니 짧게 사과했다.

“미안, 계속해봐.”

“우리가 오해한 걸지도 몰라요. 평범하게 그냥 부른 걸지도 모르잖아요. 어쩌면 버러지라고 부른 것 자체가 약간 동족의 테두리 안에 넣어준 게 아닐까요?”

나는 필사적으로 희망을 가지려고 노력했다.

포기하면 거기서 끝이야.

나의 이런 노력을 애처로운 듯 바라보던 서지한이 못 이기는 척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것 같기도 하네.”

“그렇죠? 그렇죠! 이건 첫 시도였잖아요. 그러니까 한번 더 해보죠.”

“근데 아무리 봐도 그 각도는 공격…… 알았어.”

뭔가 말하려던 서지한은 거의 울 것 같은 내 얼굴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제발, 제발 한 번만 더 해봅시다.

제발요. 부탁드려요. 제발. 절박해요. 살려주세요. 바르기스 뿔 간신히 다 먹은 게 바로 얼마 전인데.

“자, 다음 몬스터를 찾아보죠. 어쩌면 버러지라는 말이 애칭이나 친근감을 표현하는 말일지도 모르니까 참고해서 다시 해보자고요!”

열심히 의욕을 불태우는 나를 서지한이 애잔하게 응시했다.

나는 애써 그 시선을 무시했다.

“자, 여기. 소통 유과 받으시고.”

나는 소통 유과를 하나 꺼내 3등분 한 뒤 하나를 먹고 나머지 두 조각을 서지한에게 쥐여 주었다.

그는 떨떠름한 얼굴로 그걸 받아 들었지만 다행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조금만 더 해봐요, 우리."

유과를 받은 서지한의 손을 꼭 쥐고 간절하게 부탁하자 그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다른 쪽 개미굴을 턱짓했다.

“또 한 마리 오고 있는 것 같은데, 이거 빨리 루팅 해서 치워버리자.저놈이 보면 대화고 뭐고 재미없어질 거야.”

그건 그렇지.

물론 이 친구가 우리를 먼저 공격, 아니, 악수를 신청하는 바람에 놀라서 죽이긴 했지만 새로운 친구가 이걸 보면 오해할지도 모른다.

나는 허겁지겁 첫 번째 친구(였던 것)를 루팅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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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왕류의 등껍질(등급: E) x1 획득

충왕류의 어금니(등급: E) x2 획득

충왕류의 다리(등급: E) x6 획득

충왕류의 마석(등급: E) x1 획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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