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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화 (105/231)

105화

“세 명? 유은담 빼고?”

예상 범주에도 없던 숫자라 ‘사장’은 잠시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유은담을 포함하든, 제외하든 적은 숫자라는 건 변하지 않지만 그는 일단 그렇게 물었다.

“아닙니다. 유은담 포함해서 세 명입니다.”

“누, 누구누구인지 말해봐.”

“확인된 건 일단, 천공 길드 반서후 길드장입니다.”

반서후.

‘사장’이 탐탁잖은 낯으로 짧게 혀를 찼다.

엉덩이가 가벼운 놈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예상외였다.

반서진을 봐서라도 경솔하게 행동하지는 않을 거라고 계산했건만.

역시 유은담이 바람을 불어넣은 것이겠지.

하지만 반서후가 함께 있다고 해도 그의 공격력은 그리 높지 않다.

유은담의 전투력을 감안해도 작전이 실패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결국 그쪽에 가담했군. 그놈이 힘을 쓴 건 아닐 것 같은데. 어차피 공격 능력이라곤 없는 놈 아닌가.”

“예. 실제로 공격대를 패퇴시킨 사람은 나머지 한 명이라고 합니다만, 정체를 알 수가 없어서.”

“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고 합니다.”

얼굴을 가렸다고?

‘사장’은 조금 의아해졌다.

왜지?

의미 없는 짓을 하는군.

반서후, 유은담이 있다면 세 번째 인물의 정체는 자연스럽게 나온다.

“서지한이겠지. 그놈, 어디 갔나 했더니 셋이 다시 뭉쳤군. 옛날처럼 어린애들 소꿉장난이라도 다시 하겠다는 건가.”

소꿉장난이라고 해도 300명이 넘는 헌터를 격퇴시킬 정도면 스케일이 보통 큰 소꿉장난이 아닐 것이다.

‘사장’은 순순히 인정했다.

자신이 그들의 전투력을 과소평가했음을.

“진짜 서지한일까요? 광역계 마력 스킬을 썼다고 하던데요. 서지한은 근접계 헌터고, 여태까지 알려진 정보들로 보면 그만큼의 무력을 보유하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요.”

머리가 이렇게 안 돌아가서야.

엄 비서의 멍청한 소리에 ‘사장’은 명치가 답답해지는 것 같았다.

“뭔가 수를 써서 전투력을 강화한 거겠지. 아이템이든 뭐든.”

“아.”

‘사장’은 무엇이 서지한을 그렇게 강하게 만들었는지 잠시 추측해보았다.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서지한이 가장 최근에 모습을 드러냈던 사건.

서울에 열렸던 던전이 공략되어 사라지고 서지한의 랭킹 보드 점수가 큰 폭으로 올랐던 일.

“서울 던전에서 보스 몬스터를 독식한 게 영향이 있었을까요?”

비슷한 추측을 했는지 엄 비서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렇다고 봐야겠지. 짜증 나는 놈이야.”

“유은담의 은거지 근처에 열린 던전 소식을 듣고 공략하려고 모여든 것이군요.”

“그래. 그놈 은거지가 독도였지?”

“예.”

“거기 열린 던전도 곧 없어지겠군.정비되는 대로 다시 사람 모아서 한번 더 가봐. 이미 도망쳤을 가능성이 크지만. CCTV 계속 확인하고.특히 다른 던전들 경계 강화해. 반서진도.”

셋이 모였으면 하려는 짓거리야 뻔하다.

보스 몬스터를 잡아서 소중한 내 던전을 모두 닫으려고 하겠지.

서지한이야 원래 호시탐탐 던전 독식을 노리는 미친놈이고, 유은담은 자신에게 원한이 있을 테니까.

회유할 수 있는 건 반서후 정도인가.

“반서후한테 한번 연락해보고, 연락 닿으면 잘 대해주겠다고 해.변절시켜서 일망타진할 수 있을 수도 있어. 반서진이랑 유은담, 서지한의 신병을 교환하자고 해도 좋고.”

지시하긴 했지만 ‘사장’은 그렇게 기대하지 않았다.

반서후가 변절할 가능성은 낮다.

어린놈이 고지식하기가 아흔 살 노인보다 딱딱하니까.

하지만 제 혈육과 친구 사이에서 고민하며 좀 흔들릴 수는 있겠지.

그렇게 흔들다 보면 빈틈이 나오는 것이다.

어차피 젊은 놈들의 우정 어린 관계란 모래성처럼 덧없는 것.

감정 위에 쌓인 관계는 감정을 흔들면 무너진다.

불신.

아주 작은 불신만 있으면 된다.

어쩌면, 혹시, 그럴지도 같은 불확실한 불신들.

그것만큼 사람을 제멋대로 다루기 쉽게 만드는 것도 없다.

“가봐. 빨리 진행해.”

“예.”

엄 비서는 공손히 고개를 숙이고 물러나려는 채비를 했다.

막 돌아서는 그의 등을 ‘사장’이 다시 불러들였다.

“잠깐.”

“예?"

“루터는? 그쪽 추적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나?”

“계속 찾고 있습니다.”

세 사람이 할 수 있는 건 그리 많지 않겠지만, ‘사장’은 서지한의 강력한 무력이 조금 신경 쓰였다.

최악의 경우 이곳으로 직접 쳐들어올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었다.

어쨌거나 저쪽은 이미 적을 특정지은 상태니까.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날벼락을 맞는 건 사양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호락호락 잡혀줄 생각은 없지만.

“그래. 찾으면 아주 융숭하게 대접해서 이쪽으로 전향시켜야 해. 절대, 절대 심기를 거스를 일은 하지 말라고.”

S급 핵을 어떻게 얻었는지 비밀을 알아낼 때까지는.

뒷말을 삼킨 ‘사장’은 손을 저어 비서를 내보냈다.

방에 혼자 남은 그는 인벤토리를 열어 아이템 하나를 꺼내 들었다.

자신의 비밀병기, s급 능력치 향상 포션이다.

얼마 전 갑자기 마켓에 S급 에비타니스, 펌토피스, 라니아드 등의 식물 채집 핵이 판매 등록되었다.

전대미문의 어마어마한 등급을 가진 아이템에 모두가 깜짝 놀랐다.

아이템의 등록자는 루터.

마켓 닉네임 외에는 정보라곤 없는 존재였다.

길드 소속인지, 어느 나라 사람인지 조차 알 수 없었다.

던전 출입 기록을 모두 뒤져 가며 수색해도 마치 연기처럼 그의 흔적을 알 수 없었다.

그저 확실한 건 판매 대금을 대한민국 화폐로 받았으므로 한국인일 거라 추정할 뿐이었다.

이 새로운 사건에 많은 사람이 주목했으나 뉴스는 곧 사그라졌다.

마켓에 아이템이 등록된 당시 아주 잠깐 떠들어대긴 했으나 곧 그에 대한 모든 정보가 대중들에게서 은폐되었다.

‘사장’이 입단속을 시킨 것이다.

그럴 필요가 있었다.

운 좋게 S급 핵 몇 개를 손에 넣은 사장은 휘하의 제작계 헌터에게 그것을 포션으로 만들도록 지시했다.

그리고 만들어진 포션은 말도 안 되는 효과를 제공했다.

능력치를 무려 영구 증가시켜줬던 것이다.

그걸 확인한 즉시 ‘사장’은 이 정보를 단속하기 시작했다.

이건 황금알이다.

루터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이고.

보물의 존재는 아는 사람이 적을수록 좋았다.

물론 능력치를 일시 증가시켜주는 효과도 있는 듯했으나 그걸 확인하지는 않았다.

일시 증가는 A급 능력치 향상 포션으로도 얼마든지 얻을 수 있는 것인데, 몇 개 없는 S급 포션을 왜 그런 곳에 낭비하겠는가.

‘사장’은 입맛을 다셨다.

마켓에 풀린 모든 핵을 다 사들였다면 좋았을 것을.

하지만 몇 개라도 손에 넣은 건 다행이었다.

마켓을 내내 보고 있는 것이 아니어서 루터가 등록한 아이템을 직접 사들이지는 못했지만, 부하 몇 명이 사서 바쳐온 덕분에 간신히 손에 넣었다.

그 이후로 ‘사장’은 혹시라도 루터가 다른 s급 아이템을 등록하는지 마켓을 철저하게 감시하도록 지시했다.

루터에게는 내부적으로 현상금까지 걸어두었다.

‘사장’은 인벤토리에 있는 S급 능력치 향상 포션을 떠올리며 만족스럽게 미소 지었다.

이것은 언젠가 자신의 조커 카드가 되어 줄 것이다.

비록 한 개당 올려주는 능력치의 크기가 큰 건 아니지만 루터만 찾아내면 포션을 계속 만들어 능력치를 올릴 수 있게 된다.

무력과 권력을 모두 손에 넣은 자신의 미래가 그려지는 듯했다.

* * *

새소리.

바람에 나뭇잎이 흔들리는 소리.

잡음 같은 소리들이 의식 너머에서 너울거린다.

아직 깨고 싶지 않은 마음에 다시 잠을 청해 보지만 쉽지 않았다.

눈꺼풀을 달구는 뜨거운 햇볕이 일어나라고 뺨을 치는 듯했다.

"으음……."

결국 눈을 뜨자 강렬한 햇살이 눈으로 파고들었다.

내가 왜 커튼을 안 달았지?

안대라도 사둬야 했는데.

대충 이불로 얼굴을 가리기라도 해야겠다 싶어 덮고 있는 것을 끌어당기는데 익숙한 목소리가 말을 걸었다.

- 일어났어?

나는 게슴츠레하게 뜬 시선으로 멍하니 서지한을 바라보았다.

빛살에 관통되는 서지한의 모습은 이만저만 거룩한 게 아니었다.

이 세상 사람 같지 않은 아름다움까지 느껴졌다.

순간 천국에 온 줄 알았다.

- 몸은 좀 괜찮아?

나는 눈을 뜨려고 애쓰면서 반투명한 서지한을 바라보았다.

그 말을 들으니 굳어 있던 머리에 생각이라는 게 자리 잡기 시작한다.

그러니까, 뭐였더라.

아.

포션 후유증으로 정신을 잃었던가?

“왜 침대에……."

- 내가 옮겼어. 실체화 쿨타임이 돌아오는 대로 옮기긴 했는데, 차가운 곳에 오래 누워 있었으니까 컨디션이 좋지는 않을 거야.

그렇군.

분명 자갈 위에서 피를 토하며 기절했던 것 같은데 어떻게 침대에 누워있나 의아했다.

듣고 보니 확실히 몸 여기저기가 욱신거리는 게 검증받지 않은 돌 깔개 위에서 잔 부작용인 듯싶었다.

그래도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상태였다.

통증은 꽤 줄어들었고 피를 뱉고 싶은 기분도 아니다.

하지만 체한 것 같은 아릿한 불편감은 남아 있어서 나는 앓는 소리를 내며 반쯤 일어나 앉았다.

몸을 일으키자 이마에서 무언가가 툭 굴러 떨어졌다.

반사적으로 집어 들고 보니 젖은 물수건이었다. 체온 덕분에 약간 미지근하다.

- 좀 더 쉬어. 열이 많이 났어.

서지한이 달래듯 말했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기절하기 전 상황이 속속들이 떠오르자 더욱 초조해졌다.

“나 얼마나 잤어요?”

물어보는 동시에 포션 중독의 남은 시간이 눈에 들어왔다.

15시간쯤 남았군. 대략 9시간 정도 잤나 보다.

이 정도면 많이 잤네.

그래서 몸 상태가 좋았나 보다.

- 너는 좀 더 쉬어야 해.

서지한이 단호하게 말했다.

내가 거부하면 강제로라도 쉬게 하고 싶은 표정이었지만, 안타깝게도 서지한에게는 그럴 몸이 없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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