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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화 (101/231)

101화

반서후는 조금 놀란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솔직히 저건 내가 가족들을 걱정하며 내내 했던 나쁜 상상의 일부였다.

워낙 걱정이 많은 성격이라 그런지 혹시라도 일이 잘못될 경우를 떠올리며 얼마나 무서운 상상을 많이 했는지 모른다.

그래, 차라리 이렇게 가족들을 데려오겠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홀가분해.

“왜 그렇게까지 생각해주지?”

“반서진 헌터와 같은 공략 팀이었으니까요.”

“그건 알고 있지만, 그 애 성격이……."

음.

나는 백대만을 공격하던 반서진을 떠올렸다.

그 모습은 아직도 종종 악몽에 나온다.

뭔지 모를 붉은 찌꺼기가 붙은 주먹을 들고 나에게 반서진이 걸어오는 꿈도 꿨다.

확실히, 거리를 두고 싶은 사람이긴 해.

“반서진 헌터와는 크게 다툰 기억 없어요. 좀 극단적인 성격이라곤 생각하지만.”

다툰 적이 없던가?

날 죽이려 해서 충왕뇌우를 쓰긴 했는데.

음, 끝이 좋았으면 된 거지 뭐.

"으음."

반서후는 약간 누그러진 표정이었다.

이 던전에 들어온 후 본 얼굴 중에 가장 부드러운 표정이다.

“아무튼, 영상은 아직 공개할 수없어요.”

반서후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사실 지금까지 영상 공개를 고민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당장에라도 ‘여러분, 이걸 보십시오.이놈들이 이런 짓을 했습니다. 이놈들이 나쁜 놈이에요!’라고 밝히고 싶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별로 효과적일 것 같지 않았다.

일단 언론은 분명 이 영상을 이슈화 하지 않을 거고, 대중이 별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면 허무하게 그냥 묻히겠지.

고민한 결과 영상은 일단 계속 가지고 있기로 했다.

최후의 보루다.

이건 우리가 그들과 여론전을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무기인데, 괜히 초반에 공개했다가 무력화되면 후폭풍을 감당하기 힘들었다.

그러니 이건 가장 효과적이고 절묘한 타이밍에 사용할 것이다.

뭐든 과열된 순간 터뜨리는 게 가장 효과가 좋으니까.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면 결국 우리는 여론의 주목을 받게 될 것이다.

그리고 모함도 받겠지.

그러니까 모두가 ‘우리’와 ‘그들’을 알게 될 때 사용해야지.

물론, 그렇다고 반서진을 계속 잡혀 있게 할 생각은 없었다.

나는 머릿속으로 그리고 있는 계획을 떠올리며 단호하게 말했다.

“대신 도와줄게요. 반서진 헌터 탈출.”

“뭐?”

“어디에 잡혀 있는지만 알면 도와줄 수 있어요.”

“도와준다고? 네가 왜?”

반서 후의 표정은 의문 그 자체였다.

열은 경계심마저 보여서 나는 약간 기가 찼다.

물론 반서진 헌터 성격과 반서후가 나에게 취한 태도를 생각하면 모르는 척하는 게 일반적인 반응이겠지만.

최후의 전당을 생각해서라도 아군은 많이 만들어두고 싶다.

“저도 습격당한 사람 중 하나거든요. 무고한 사람이 억울하게 누명을 쓰게 할 수는 없죠.”

나는 잠시 백대만을 떠올렸다.

나나 반서진이 100퍼센트 무고하냐고 하면 그런 것도 아니지만, 어차피 백대만도 우리를 죽이려고 했고 심지어 팀원 두 명을 진짜 죽였으니 피장파장이다.

“……그래? 서진이랑 많이 친했나 보군.”

반서후가 좀 터무니없는 오해를 하는 듯했지만 나는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

확연하게 태도가 부드러워진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도와주겠다니 고맙긴 하는데, 사실 어디에 수감되어 있는지 나도 아직 파악하지 못했어.”

“교도소 아니에요?”

“모든 일반 교도소, 특수 교도소를 다 확인해봤지만 아무 데도 없더군.”

으음, 이러면 일이 좀 번거로워지겠는데.

나와 반서후가 고민에 빠지는 순간 서지한이 슬쩍 나섰다.

- 내가 찾아볼까?

“어떻게요?”

- 너와 3미터 이상 떨어질 수 없다는 제한이 풀렸으니 나는 이제 어디든 갈 수 있잖아. 던전 관리청이든 대한 길드든 잠입해서 정보 좀 캐내는 것쯤이야 식은 죽 먹기지. 게다가 실체화도 할 수 있고, 인벤토리도 있으니까 적당한 문서 찾으면 바로 빼돌릴 수도 있고. 내가 구해올 수도 있어.

듣고 보니 꽤 괜찮은 방법 같다.

나는 반서후에게도 서지한이 도와준다는 말을 전했다.

내가 처음에 떠올린 계획은 그런 게 아니었지만 이 방법도 꽤 좋은데.

사실 처음에 나는 내가 벼룩으로 변해 잠입하는 것을 계획했다.

인정하기 싫지만 벼룩 변신은 제법 유용하다.

특히 잠입의 천재였다.

방법이야 여러 가지가 있으니 적당히 움직이면 되겠지.

“이제 진짜 나가야 돼요. 그놈들 올지도 모른다고요. 결계든 뭐든 하려면 서두르는 게 좋을걸요.”

유은담이 애가 닮아 다시 재촉했다.

하지만 나가기 전에 아직 할 일이 남아 있었다.

아직 결계를 치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던 것이다.

다행히 결계를 치는 방법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몇 차례 작은 결계를 쳐보니 대충 방법을 알 것 같았다.

엘파니스와 로드란은 함께 갈 수 없었다.

던전 출입 권한을 부여해주긴 했지만 그것과는 별개의 이야기였다.

그들은 우리와는 달리 이 던전에 속한 사람들이었다.

나중에, 몬스터들이 던전 밖으로 나오는 것을 시스템이 허용한 이후에나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금방 다시 올게요. 아직 배울 것도 많으니까요.”

알게 된 지 얼마나 되었다고 엘파니스는 벌써 내가 던전을 떠나는 게 섭섭한 눈치였다.

반쯤은 신하로서 강제로 부여된 유대감 때문이겠지만.

“예,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엘파니스에게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이제 정말 나갈 때가 됐다.

나는 탈출석을 꺼내는 유은담을 만류하고 손을 뻗었다.

탈출석은 필요 없다. 내가 이 던전의 왕이니까.

‘외부 게이트 생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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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출입 권한으로 외부와 통하는 게이트를 생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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