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98화 (98/231)

098화

영혼석을 만진 적도 없는 엘파니스가 서지한을 볼 수 있을 리가 없는데.

혹시 그의 스킬 중에 ‘영혼 보기’ 같은 것도 있었나?

아, 그러고 보니 이 사람 사제였잖아.

그러면 서지한을 성불시킬 수도 있는 거 아니야?

갑자기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입버릇처럼 서지한 씨 성불시켜야 하는데- 하고 말해왔지만 막상 진짜로 그 일이 현실이 되려 하니 생각보다 기쁘지가 않았다.

서지한이 본래 가야 했던 길로 가는 것이 그에게는 좋을 텐데.

그를 볼 수 없다고 생각하자 섭섭함이 밀려왔다.

“그가 보여요?”

무척 놀란 표정의 서지한을 홀긋거리며 엘파니스에게 물었다.

“아니요, 보이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느낄 수는 있습니다. 왕을 몹시 아끼는 기색의 영혼이 곁에 있다는 것을.”

- 저 영감탱이가 쓸데없는 소리를.

서지한이 쑥스러움을 감추려는 듯 괜히 화를 냈다.

사실 서지한이 나를 무척 아낀다는 건 이미 알고 있다.

내가 위험에 처할까 봐 전전긍긍하며 늘 걱정 어린 말을 건네 오는 데 모를 리가 없지.

“그렇군요. 음, 제 생명의 은인인데 사정이 있어 성불하지 못 하고 있어요.”

나는 주머니에서 영혼석을 꺼내 엘파니스에게 보여주었다.

그는 뭔가 느껴지는 것이 있는지 가만히 살피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마석의 일종이군요. 아직 포식자의 힘을 타지 않아서 그런지 변질되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만.”

“예? 마석요?”

나는 깜짝 놀랐다.

내가 입을 열기 전에 유은담이 먼저 선수를 쳤다.

“형, 몬스터였어? 어쩐지 보스 급 뺨치게 세다고 생각하긴 했는데.

야.

어차피 유은담은 듣지도 보지도 못할 테지만 서지한은 괜히 험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런 우리를 바라보던 엘파니스는 싱긋 웃더니 부연설명을 했다.

“피난을 하며 포식자의 힘에 노출되면 영혼이 변질되어 마석이 되지만, 그 전에는 이렇게 영혼석인 상태로 나타나죠. 피치 못 한 사정으로 원주민을 죽이며 가끔 얻은 적이 있습니다. 아이템으로 만들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모두 성불시켜 주었죠."

“성불시킬 수 있어요?”

설마 진짜 가능했다니.

내가 놀라 묻자 엘파니스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예. 모든 의식과 에너지를 흩어버리고 무의 상태로 되돌리는 거지요.하지만 음, 아깝지 않습니까? 무척 강한 영혼인 듯한데.”

“무슨 말씀이신지……."

“신하로 받아들여 실체화시키면 왕에게 힘이 되지 않겠습니까?”

실체화.

생각지도 못 한 단어에 나와 서지한은 잠시 말을 잃었다.

그리고 먼저 정신 차린 서지한이 다급하게 재촉했다.

- 실체화에 대해 물어봐.

나는 그가 성불보다 실체화 쪽에 흥미를 가지는 것에 괜히 마음이 놓였다.

나도 미처 깨닫지 못할 만큼 그에게 많이 의지하고 있었나 보다.

어쨌든 바로 떠날 생각이 없어 보여 다행이다.

“실체화는 뭐예요? 어떻게 하는 거예요? 신하로 받으면 되는 건가요?”

거푸 쏟아지는 질문에 엘파니스는 내 다급한 마음을 느낀 듯 진정시키려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리고 간결하게 실체화와 그 방법을 알려주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영혼석에 등급 높은 마석을 하사해서 그 힘으로 짧은 시간 실체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대신 그 존재는 나의 신하가 되어 영원히 나에게 귀속되어 버린다.

영원한 귀속이라.

생각지도 못 한 무거운 말에 나는 조금 심란해졌다.

서지한이 과연 그걸 원할까.

그가 몸을 가질 수 있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 지금 하자.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서지한은 나를 똑바로 보고 있었다.

오히려 내가 놀랐다.

“괜찮겠어요? 제 신하가 된다니까요? 영원히 귀속이라고요.”

- 예, 나의 왕이시여-

서지한이 괜히 너스레를 떨며 말했지만 나는 가볍게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장난치지 말고 진지하게 생각해봐요. 몸을 가질 수 있다곤 해도 완벽한 것도 아니에요. 짧은 시간 실체화할 수 있다고 하잖아요. 좀 더 고민을……."

- 고민을 왜 해? 내 마음은 확고한데.

그가 호불호가 확실한 성격이라고는 생각했지만 이런 문제에서도 그럴 줄은 몰랐다.

내 반응에서 우리 이야기를 유추했는지 유은담이 슬쩍 끼어들었다.

“제가 A급 마석 하나 가지고 있는데 드릴까요? 등급 높은 마석이라고 하면……."

“가능하다면 S급이 좋긴 하지만 없다면 A급도 괜찮지요. 다만 강한 마석을 쓸수록 실체화했을 때 얻는 힘이 강해지니, 되도록 좋은 마석을 쓰는 게 좋습니다. 급 낮은 마석을 여러 개 먹이는 방법도 있지만, 효율이 안 좋아요.”

“이런, S급 마석은 보스 몬스터에게서나 얻을 수 있을 텐데. 흔히 나오는 물건도 아니고……."

그래도 던전이란 던전은 다 털다 보면 하나 정도는 나오지 않을까? 하며 유은담이 쓸데없는 고민을 하는 동안 나는 이미 인벤토리에서 마석을 하나 꺼냈다.

서지한이 무언의 눈초리로 재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걸 어떻게 하죠?”

이번에 꺼낸 건 충왕 바르기스의 마석이다.

이것 외에도 내가 가진 S급 마석은 하나 더 있다.

키르기스의 것이다.

엘파니스의 말로는 여러 개의 마석을 먹일 수도 있는 모양이니, 이것도 나중에 서지한에게 먹여야지.

"그건……."

“아니, 어디서 났어요?”

깜짝 놀란 유은담이 바르기스의 마석과 나를 번갈아 본다.

나는 그 시선을 그대로 무시했다.

바르기스의 마석이라는 걸 알아보지 못하는 것 같네.

“누나? 대체 어떻게 구한 거예요?진짜 신기하네.”

“왕께서는 이미 준비가 다 되어 있으셨군요. 간단합니다. 가지고 계신 영혼석에 마석을 접촉시키시지요.”

나는 그 말대로 바르기스의 마석을 서지한에게 접촉시켰다.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렇게 하는 거 맞아요? 아닌 거 같은……”

- 수락했어.

서지한의 목소리와 동시에 손에 들고 있던 마석이 영혼석에 스며들 둣 사라졌다.

그리고 서지한의 영혼석이 빛나며 허공에 떠올랐다.

찬란하게 빛나는 그 광채를 막아서듯 알림 메시지가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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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체 서지한이 당신에게 속하는 것에 동의하였습니다.

개체 서지한이 하사 받은 마석의 힘으로 실체화 능력을 획득하였습니다.

개체 서지한이 마석의 힘을 흡수하는 중입니다. 예상 소요시간: 48시간

개체 서지한의 실체화는 흡수한 마석의 힘에 비례하여 길어집니다.

현재 실체화 시간: 60초 (쿨타임: 6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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