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7화
너무 갑작스러운 제안이라 나는 좀 곤란한 기분이었다.
유은담은 흥미로운 얼굴로 방관하고 있었고, 반서후는 ‘왜 네가 그걸 받는 거냐’라는 표정이었다.
서지한은 나와 마찬가지로 고민하더니 깐깐하게 조언했다.
- 영지를 받으면 무슨 변화가 생기는지 물어봐. 네가 이 던전에서 못 나가거나 하는 일이 생길지도 모르니까. 모든 좋은 제안에는 함정이 있다고.
그 말을 들으니 정신이 번쩍 든다.
엘파니스가 그럴 리 없다고 생각되지만, 뭐든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야 하는 법이다.
저 비슷한 괴담도 있잖아.
뱃사공의 노를 받았더니 그 배에 영원히 갇혔다는…….
“던전을 받으면 제가 여기 보스 몬스터가 되어서 공략당하는 처지가 되는 건 아닌가요?”
엘파니스는 당치도 않다는 듯 눈을 크게 뜨더니 손사래까지 쳤다.
“그렇지 않습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정 저를 믿기 힘들다 하시면 죽이고 획득하는 형태로 가져가셔도 괜찮습니다.”
“엘파니스 님!”
“그저 이 어린 로드란을 부탁드립니다.”
얌전히 서 있던 로드란이 기겁했다.
그것에 그치지 않고 엘파니스는 서슴없이 내 앞에 무릎을 꿇고 나의 구둣발 위에 입 맞추려 했다.
으악, 하고 발을 빼지 않았다면 연로한 할아버지에게 패륜을 저질렀을 것이다.
“복종하겠습니다.”
엘파니스의 눈에는 눈물마저 맺혀있었다.
나는 그를 얼른 일으켜 의자에 앉히고 관을 집어 들었다.
이야기를 할수록 그가 나를 속이려고 하거나 해치려 한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
처음 보는 사람이 하는 뜬금없는 소리를 백 퍼센트 믿을 만큼 순진하지는 않다.
하지만 이만큼이나 간절한 사람의 진심을 못 볼 정도의 장님도 아니다.
“받을게요.”
내 대답에 엘파니스는 뛸 듯이 기뻐했다.
나는 흐뭇하게 그걸 보다가 관을 눈앞으로 가져왔다.
보스 몬스터의 스킬을 계승하는 건 그들의 뿔을 먹는 형태로 이뤄졌다.
이 관이 그 뿔을 대신하는 것일 테니, 이걸 받아들이려면…….
먹어야 하나?
으음, 아무리 봐도 금속인데.
그래도 받는다고 했으니 지금 먹어야겠지?
아, 걱정 마요, 할아버지.
이 손모아, 키르기스 뿔도 한 달안에 다 먹은 사람입니다.
이런 조막만 한 왕관은 두 입 만에 끝장낼 수도 있다고요.
나는 자신만만하게 관을 베어 물었다.
금속으로 만든 것이라 쇠 맛이 나는군.
그래도 별 문제없겠지?
왜 이렇게 딱딱해? 좀 더 세게 깨물어야 하나.
힘을 줘서 왕관을 씹었지만 괜히 이만 아플 뿐 왕관은 멀쩡했다.
뭔가 잘못됐다.
불길한 느낌에 시선을 돌리자 사람들이 아주 이상한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을 대표하여 엘파니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시장하십니까? 제가 다과라도……."
일단 나는 깨물었던 관을 어색하게 내려 놓았다.
아무래도 이거 아닌가 봐.
어색하게 눈치를 살피는데 유은담은 입을 가리고 웃고 있고, 반서후는 미친 인간 보듯 나를 보고 있었다.
서지한만이 나와 같이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역시 서지한 뿐이야.
정말 위로가 된다.
“이렇게 하는 거 아니에요? 몬스터 뿔은 먹어야 계승되던데.”
변명하듯 말하자 다행히 엘파니스가 부드럽게 웃으며 움직였다.
“죽은 왕을 먹어치워 힘을 홉수 하는 것이라면 그게 옳습니다만, 지금처럼 왕이 살아서 신하로 들어가기를 청할 때는……."
그는 경건한 동작으로 관을 집어 들어 나의 머리에 씌워 주었다.
인왕 엘파니스가 당신에게 속하기를 원합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수락 거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