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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3화 (93/231)

093화

경악한 시선이 서지한에게 향했다.

나는 방관하는 자세로 서지한이 머쓱하게 옛 친구를 마주하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말도 안 돼.”

입으로는 부정하고 있었지만 반서후는 눈도 깜빡이지 않고 서지한을 바라보고 있었다.

“너, 정말 너야? 지한이 너 맞아?”

가늘게 떨리는 반서후의 목소리와 달리 서지한은 상대적으로 담담했다.

- 내 영혼석에 손가락 올리고 있잖아.

저기, 반서후 헌터 울려고 하잖아요.

좀 더 친절하게 대해주면 안 돼요?

어휴.

그 와중에 유은담은 끼어들고 싶지만 분위기상 참는 모습이다.

하지만 유은담만 이 상황에서 배제시킬 이유는 없지.

나는 그에게도 손짓했다.

“닿으면 돼요?”

눈치 빠르게도 기다렸다는 듯 냉큼 다가온 유은담이 약간 설레는 얼굴로 영혼석에 손을 가져다 댔다.

그리고 서지한을 발견하더니 감격 어린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형!”

- 오랜만이다.

“형, 진짜. 이거 진짜야?”

- 당연히 진짜지.

서지한은 담담하게 말했지만 두 사람은 눈으로 보고도 상황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했다.

서지한이 진짜 죽었다는 것과 영혼이 되어 이곳에 서 있다는 사실 중 어느 것에 더 놀라야 할지 갈피를 못 잡겠다는 표정이었다.

“형, 왜 이렇게 됐어! 어쩌다가……."

질문을 쏟아내는 유은담과 달리 반서후는 말이 없었다.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서 오히려 아무 말도 하지 못 하는 것 같기도 했다.

서지한은 반서후를 흘끔 보더니 그저 어색하게 웃을 뿐이었다.

- 보스 잡다가 죽은 거지 뭐. 헌터가 죽으면 그 이유밖에 더 있냐.

“그놈들이 함정 판 거에 당하기라도 했어? 형이 일개 보스 몬스터 좀 잡다가 죽을 리가 없잖아.”

- 으음. 그런 건 아니고.

그걸 설명하려면 꽤 많은 부분을 이야기해야 한다.

잘못하면 내 스킬까지 흘러나올지도 몰랐다.

서지한은 내 눈치를 슬쩍 살피더니 괜히 말을 돌렸다.

-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어. 이미 이렇게 된 걸 어쩌겠냐.

씁쓸한 어조의 말에 반서후가 울컥한 표정을 지었다.

유은담도 비슷한 표정이었다.

- 원래 그냥 넘어가려고 했는데 서후가 너무 자책하는 것 같아서.

“우리를 계속 모른 척하려고 했어?”

유은담의 말에 서지한은 그저 어깨만 으쓱였다.

- 여기 손모아 헌터 잘 도와주고.내가 죽은 후에도 나를 계속 돌봐준 좋은 사람이야.

되도록 그냥 없는 사람처럼 있고 싶었는데 그 말 덕분에 부담스러운 시선을 한 몸에 받게 되었다.

둘 다 궁금한 게 많은 표정이었다.

반서후는 고민하는 듯하더니 무언가 결심한 듯 눈빛이 단호해졌다.

별로 좋은 느낌은 아니다.

“그러고 보니, 들어본 적이 있어.”

이야기하며 반서후는 손가락을 대고만 있던 영혼석을 엄지와 검지로 꽉 잡았다.

그 덕분에 유은담이 영혼석에서 밀려났다.

나는 불길한 느낌에 영혼석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반서후는 엄지와 검지로 잡고 있을 뿐인데, 내가 영혼석을 아무리 잡고 당겨도 꿈쩍도 하지 않는다.

애초에 힘 능력치 차이가 엄청나게 나기 때문이겠지.

반서후 능력치는 적어도 세 자리일 테니까.

“반서후 헌터?”

- 야? 뭐 하는 거냐?

“서후 형?”

기묘한 분위기를 감지하고 제각각 그의 이름을 불렀지만 반서후는 이미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듯한 표정이었다.

“아는 제작 헌터 중에 장비 아이템에 에고를 불어넣을 수 있는 능력자가 있어.”

- 야……. 별로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은데.

“재료 아이템이 영혼석이라고 하면서 도무지 어디서 구하는 건지 모르겠다고 하더군.”

- 너, 설마.

반서후는 고집스러운 얼굴로 서지한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지한아, 내가 도와줄게.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검으로 아니, 방패로.네가 원하는 것으로 만들어 줄게.”

서지한은 질린 얼굴로 반서후를 바라보고 있었다.

유은담도 고개를 젓고 있다.

나는 서지한에게 묻고 싶었다.

당신 친구 원래 좀 이상했나요?

아니면 지금 당신이 죽은 걸 보고 이상해진 건가요?

“음, 서후 형. 나는 아직도 형이 하는 이런 미친놈 같은 생각 때문에 가까워 지기가 힘들어.”

적절하게도 유은담이 친근하게 막말을 해 주었다.

원래 이랬구나.

- 아니, 이 새끼가 미쳤나.

더 이상은 못 참겠다는 듯 나름대로 감동적이던 분위기를 박살 내며 욕설을 내뱉었다.

하지만 반서후는 이미 혼자만의 세상에 빠져 들어가 흐뭇한 미소를 지을 뿐이다.

“늘 같이 싸우는 거야.”

- 야, 진짜 미친 소리 좀 하지 마라.소름 끼치니까.

이제 감동 같은 건 부스러기도 찾을 수 없어졌다.

사실 나도 서지한의 말에 몹시 동의하는 편이지만, 일단 본인의 확답을 들어보자.

확실하게 거절하는 말을 들으면 반서후도 폭주를 멈추겠지.

“서지한 씨, 혹시 장래희망 중에 명검이나 방패가 되는 거 있었어요 ?”

- 없어. 당연히 없지.

“승주는 한때 장래희망이 탱크였던 적이 있긴 했거든요.”

- 특이하네.

“사실 그 유치원에서 장래희망에 탱크가 되고 싶던 애가 세 명 정도 있었어요. 비행기는 다섯 명?”

- 요즘 애들은 이해를 못하겠다. 나는 절대, 절대로 사람이 아닌 것이 되고 싶었던 적이 없어.

분위기를 좀 풀어볼 겸 농담을 한 거였는데 약간 소득이 있긴 했다.

아무튼 이 정도면 확실하게 거절의 의사를 표시한 거겠지?

“반서후 헌터, 마음은 이해하지만, 본인이 이렇게 싫어하니까 그건 그만두는 게 좋겠어요.”

서지한이 ‘진짜 저걸 이해한다고?’하는 표정으로 나를 돌아보았다.

아니, 사실 전혀 이해가 안 가는데 그냥 하는 말이지.

하지만 반서후는 내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 표정이었다.

마치 귀찮은 파리를 보는 것 같은 눈으로 나를 쳐다보더니 당당하게 선언했다.

“내 친구의 영혼석은 내가 가져가지.”

- 나는 모아랑 있고 싶은데?

서지한은 기가 막힌 것 같고 반서후는 귀가 막힌 것 같다.

반서후는 막무가내였다.

결국 나는 소리 높여 외쳤다.

“그건 안 되겠는데요.”

"왜?”

“몰라서 물어요?”

널 뭘 믿고 영혼석을 넘기냐.

그랬다가 다음에 만났을 때 서지한이 방어력 +100의 암흑 방패가 되어 있을지도 모르는데.

“모르겠는데.”

위험한 분위기를 풍기며 반서후가 낮게 으르렁거렸다.

예전 같았으면 겁을 좀 먹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반서후가 그냥 너무 답답하고 화가 났다.

“본인이 싫다고 하잖아요.”

그렇게 실랑이하는 사이에도 영혼석은 점점 내 손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힘으로는 안 되겠다.

지금 이만큼이나 버틴 것도 대단한 거다.

나는 결국 실력행사에 나섰다.

영혼석을 잡지 않은 반대쪽 손을 반서후에게 내밀고, 충왕 폿!

콰앙!

워낙 근거리라 빗나갈 확률은 거의 없었다.

폭음과 함께 반서후가 떨어져 나갔다.

하지만 상대는 반서후. 최고의 방어계 헌터가 내 약한 스킬에 다칠 일은 거의 없다고 생각해서 안심하고 쓴 것이다.

“그렇게 나오시겠다?”

예상대로 고개를 든 반서후는 대미지를 전혀 받지 않은 모습이었다.

그 얼굴에 선명한 적의가 드러났다.

“제가 할 말인데요.”

태연한 척 말하고 있었지만 솔직히 꽤 긴장한 상태였다.

갑자기 시작된 대인전에 심장이 터질 듯이 뛰었다.

아마 전투 경험 많은 반서후도 그걸 눈치챘을 것이다.

“으악, 지금 뭐 하는 거예요. 싸울 때가 아닌데.”

유은담이 작게 비명을 지르며 안절부절 못 했다.

그런 유은담은 아무래도 좋다는 듯 반서후의 기세가 확 타올랐다.

내 쪽으로 금빛 섬광이 날아왔다.

공격만 해봤지 무언가를 피한 적이 없던 나는 그대로 얼어붙었다.

“서후 형, 뭐 하는 거야!”

눈앞에 두터운 얼음벽이 치솟더니 반서후의 공격을 상쇄하며 바스러졌다.

유은담이 막아준 것이다.

반서후에게 버럭 외친 그는 나를 돌아보며 걱정스러운 말을 건넸다.

“누나도 괜찮아요? 왜 안 피하시고……."

“여태까지는 피할 일이 별로 없었어서요.”

얼떨결에 대답하는데 옆에 있던 서지한이 살기가 감도는 얼굴로 이를 갈았다.

- 저 새끼, 진짜 널 죽이려고…….

심상치 않다고 느끼긴 했지만, 진짜 나를 죽이고 영혼석을 빼앗아 가려고 했구나.

놀란 심장이 쿵쿵 뛰는데 반대로 머리부터 손끝까지 찬물을 뒤집어쓴 듯 시렸다.

그리고 서지한이 망설임 없이 나를 부추겼다.

- 죽여, 죽여 버려, 모아야 저 새끼는 이제 내 친구도 뭣도 아니야.

그가 말하기 전에 나는 이미 마력을 모으고 있었다.

머리에 모여드는 빛줄기에 심상치 않음을 느꼈는지 반서후도 서둘러 방어 스킬을 쓰는 게 보였다.

유은담은 딱 환장하겠다는 얼굴로 천장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반투명한 금빛 방패를 두른 반서후.

그러나 그 순간, 눈앞에 알림 메시지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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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왕 엘파니스의 등장으로 ‘상태 이상: 위압’에 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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