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9화
엄마가 머리끝까지 덮은 이불이 작게 들썩였다.
저 이불 안에는 카메라가 없겠지.
마침 두터운 이불이라서 안의 내용물이 사라져도 크게 표시가 안 날 것 같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나는 온몸에 먼지를 묻히고 카메라에 뿌려서 화질을 흐리게 만들었다.
화장대에서 크림을 몸에 칠해 그것도 덕지덕지 발랐다.
이 정도면, 화질이 흐려지겠지.
모든 준비를 마친 뒤 나는 이불 안으로 기어들어갔다.
그리고 엄마의 손등에 몸을 기대고 연상형 이동 스크롤을 두 장 찢었다.
“뭐, 뭐야?”
갑자기 눈앞의 풍경이 바뀌자 누워있던 엄마가 깜짝 놀라 몸을 일으켰다.
이동한 곳은 호숫가 오두막집, 내 은신처다.
시간이 얼마 없어 허겁지겁 변신을 풀렸는데, 몸을 일으킨 엄마의 시선이 한 곳에 닿았다.
내가 변신하며 벗어둔 허물 같은 옷 들이다.
엄마는 대번에 그게 내 옷인 걸 알아차렸다.
“이건…….”
떨리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나는 그쯤에서 엄마의 몸에서 푝 하고 뛰어내려와 정신을 집중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엄마가 몸을 낮춰 내 앞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설마, 너 모아니?”
아니, 대체 어떻게 알아차린 거지?
이게 어머니의 초인적인 직감인가?
나는 너무 놀라서 변신을 푸는 것도 잠시 잊어버렸다.
서지한도 턱이 빠질 것 같은 얼굴로 서 있었다.
나에게 뭔가 했느냐는 시선을 던졌지만, 나는 앞다리만 흔들어 부정했다.
그동안 엄마는 혼자서 슬픔에 젖어 통곡하고 있었다.
“모아가, 모아가 여기서 죽었구나. 벌레가 되어서 엄마를 만나러…….”
오해가 더 깊어지기 전에 얼른 변신을 풀었다.
커지면서 망토를 집어 드는 것도 잊지 않았다.
점점 인간 모습을 되찾아가는 나를 본 엄마의 눈이 크게 뜨였다.
마침내 완전히 원래 모습으로 돌아온 후, 나는 머쓱하게 엄마를 마주했다.
음, 뭐라고 하지.
엄마가 너무 놀란 것 같은데.
“헤헤, 엄마 놀랐지……?”
엄마가 어금니를 꽉 깨물더니 성큼성큼 다가왔다.
안아주려나? 하고 생각했는데 날아온 건 매서운 등짝 스매시였다.
“이, 이 나쁜 것아! 이 나쁜 것! 살아 있었으면서! 내가 얼마나…….”
감정이 북받쳐 오른 엄마가 눈물을 터뜨리려고 하기에 나는 얼른 손을 뻗어 막았다.
감정적인 해후도 좋지만 시간이 없다.
놈들이 뭔가 이상한 걸 깨달으면 상황이 힘들어진다.
“엄마, 시간이 얼마 없어. 우선 내 말을 들어줘.”
먼지와 크림으로 카메라를 가려놓긴 했지만 금방 이상한 걸 알아차릴 것이다.
나는 빠르게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공략 팀이 전멸한 것과 그게 거대 길드 또는 그 배후에 있는 권력자의 음모라는 것.
그들에게 대항할 작전이 완성되기 전까지 이렇게 죽은 척 살아야 한다는 것까지.
“승주랑 여기로 그, 스크롤이라는 걸 써서 도망치면 그들도 못 쫒지 않겠니?”
“나도 그걸 생각해봤는데, 그러면 수배 범위가 전 세계로 확장될 수도 있어서. 그리고 그들이 무슨 수를 쓸지 예상하기가 힘들어.”
“하지만…….”
“엄마나, 엄마 주변 사람들에게 누명을 씌우거나 죽이려고 할 수도 있어. 도망치고 있는 우리를 잡아내려고. 엄마 주변 사람, 그 주변 사람의 주변 사람. 끝이 없잖아. 평생 도망치며 살 수는 없으니까.”
다행히도 엄마는 금방 상황을 이해하고 납득해주었다.
내 목숨과 가족들의 목숨이 달려있다고 말해서 그런 것 같았다.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야. 엄마, 꼭 내가 그놈들 물리치고 곁으로 다시 돌아갈게. 약속해.”
“그래.”
“혹시라도 위험해지면 손등의 아이템 써서 여기로 도망쳐. 알았지? 나 여기 살아.”
“그래.”
엄마는 내가 이야기하는 내내 손으로 내 뺨이며 몸을 쓰다듬고 있었다.
꿈이 아닌지 확인하려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팠다.
“안 물리쳐도 되니까, 죽지 마. 연락도 종종 하고.”
“당연하지. 아, 이거 가져가. 휴대폰은 감시당하고 있을 테니 그쪽으로는 연락 못해.”
나는 인벤토리에서 소통 유과 몇 개를 꺼내 유은담이 한 것과 마찬가지로 엄마와 서로 나눠 가졌다.
엄마에게 먹인 유과의 반쪽은 내가 보관하고, 내가 먹은 유과 반쪽은 엄마에게 준다.
엄마는 인벤토리가 없었기 때문에 손등에 넣어 주었다.
“이건 소통 유과야. 나랑 연락하고 싶으면 하나 꺼내서 아주 조금만 갉아먹어. 그러면 나머지 반쪽을 먹은 나랑 연결될 거야. 한 번에 다 먹지 말고, 틈틈이 연락해. 알았지?”
“소통……?”
이제 정말로 시간이 얼마 없었다.
너무 오랫동안 이불을 덮고 있으면 의심받을 수 있다.
나는 마지막으로 엄마를 꼭 안아준 뒤 스크롤을 쥐여 주었다.
“그럼, 이제 돌아갈 시간이야.”
“모아야, 잠깐만.”
“의심받으면 안 돼. 엄마, 어서. 그 이불 안을 떠올리면서 스크롤 찢어야 해. 알았지?”
내가 몹시 다급해 보였는지 엄마는 더 묻지 않고 스크롤을 잡았다.
손등의 문양을 두 번 세 번 확인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알았어. 이제 갈게. 살아 있는 거 봤으니까 이제 괜찮아.”
괜찮다곤 했지만 엄마는 울먹이고 있었다.
나는 결국 엄마를 다시 한번 안아주었다.
“엄마, 사랑해. 꼭 다시 돌아갈게.”
그리고 품 안의 부피감이 사라졌다.
비로소 마음을 꽉 막고 있던 큰 돌덩이를 조금 덜어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잠시 후, 알림 메시지 하나가 떠오르자 더욱 기분이 가벼워졌다.
‘아이템: 소통 유과’의 효과가 적용됩니다.
‘아이템: 소통 유과’: 지속시간 1분 59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