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81화 (81/231)

081화

“암현 길드에서 유은담 길드장이 찾아왔는데, 들여보낼까요?”

갑작스러운 보고에 반서후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지금 손안에 있는 내용만으로도 충분히 성가신 상황인데 골칫거리가 추가되는 느낌이었다.

나중에 다시 오라고 지시할까.

잠깐 고민하는 사이 밖이 소란스러워졌다.

두꺼운 마호가니 문을 관통하고 전해질 정도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안 보고도 알 것 같다.

만류하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더니 곧 발걸음 소리가 가까워진다.

반서후는 가라앉은 눈으로 문을 응시했다.

읽고 있던 서류도 조용히 내려놓았다.

“아직 들어가시면 안…….”

뒷말을 자르듯 두꺼운 문이 벌컥 열렸다.

생글생글 웃는 유은담 뒤로 짜증이 역력한 길드원들의 얼굴이 보인다.

반서후는 손을 들어서 가볍게 상황을 정리했다.

“다들 일 보시고, 유은담, 너는 들어와.”

“예에.”

장난스럽게 대답하며 냉큼 방으로 들어오는 유은담과 달리 길드원들은 저마다 곱지 못한 눈을 흘기며 구시렁 거렸다.

간간히 ‘어린놈이……’ 같은 목소리도 들렸다.

유은담이 듣지 못했을 리가 없지만 그냥 넘어가 주는 기색이었다.

달칵, 하고 문이 완전히 닫히자 유은담이 과장되게 심호흡을 했다.

“여기는 언제 와도 꼰대 냄새에 질식할 것 같네. 물고기라도 키우지 그래요? 걔는 숨 안 쉬어도 살잖아. 다른 동물은 숨 막혀서 금방 죽을걸.”

오자마자 헛소리부터 늘어놓는 걸 듣고 있자니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 같았다.

반서후는 아예 상대도 하지 않고 단칼에 잘라버렸다.

“쓸데없는 소리. 왜 왔어?”

“형이 보고 싶어서 왔지.”

반서후의 입에서 깊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나 바쁘다. 진짜 왜 왔어?”

“말했잖아. 형 보고 싶어서 왔다니까? 별일 없나 하고 안부나 확인할 겸.”

여상한 태도에 반서후는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유은담이 속 모를 소리 하며 이러는 게 하루 이틀도 아니고, 괜히 저 페이스에 휘말리면 피곤해지기만 한다.

“별일 없어. 걱정해줘서 고맙다. 이제 가봐.”

축객령을 내렸음에도 유은담은 가만히 선 채 입 꼬리만 말아 올렸다.

그러곤 고양이처럼 소리 없이 걸어 반서후가 앉은 탁자 바로 앞으로 다가섰다.

“뭐야?”

반서후는 그저 이런 시기에 찾아 온 유은담이 성가실 뿐이었다.

대체 왜 이러나 싶어 노려보자 도리어 유은담의 시선이 들러붙었다.

미간, 눈썹, 눈동자의 떨림 하나라도 잡아내려는 듯 집요한 시선이었다.

갑자기 노골적으로 관찰당하자 반서후의 기분이 몹시 더러워졌다.

갑자기 왜 이러는지 모르겠지만 제발 좀 꺼져줬으면 하는 심정이었다.

“별일 없는 건 아닌 것 같은데.”

반서후를 훑어 내린 시선은 이제 그의 탁자 위 신문에 내려앉았다.

그제야 어렴풋이 유은담의 방문 목적을 추측한 반서후가 불쾌감을 숨기지 않고 쏘아붙였다.

“네 알 바 아니잖아.”

“에이, 남처럼 왜 그래. 나도 그 기사 봤어. 그런데 범인으로 지목당한 사람이 되게 낯익은 성씨를 하고 있더라고.”

“유은담. 너, 긁으러 왔으면 이쯤 하고 가. 지금 그럴 기분 아니니까.”

반서후의 인내심이 점점 바닥나고 있었다.

원래부터 인내심이 강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지금은 평소보다 더 심했다.

반서후에게 모든 일은 철저한 계획을 바탕으로 진행되어야 하고 모든 돌발 상황은 예상 안에서만 발생해야 했다.

그런 사람에게 이런 예상치 못한 사건들은 스트레스 그 자체였다.

고리타분한 집안에서 자라서 그런지 반서후는 재미라고는 없는 사람이었다.

유은담이 아는 사람 중에 가장 꼰대였다.

이런 성격을 가지고 그 자유로운 영혼인 서지한과 친구였다는 게 믿기지가 않을 정도다.

극과 극은 통한다더니, 그런 건가?

하긴, 서지한과도 곧 갈라섰지만.

“긁다니. 위로하러 왔지. 반 씨 집안 문중이 언론사 톱 페이지에 오르내리는데 형의 심정이 말이 아닐 것 같아서.”

“유은담.”

“진짜라니까. 위로하러 왔어. 나는 믿어, 형. 반서진 헌터가 결백하다는 거.”

반서후의 얼굴 위로 복잡한 심경이 그대로 떠올랐다.

그는 유은담의 진의를 파악하려고 노력하다가 꺼끌꺼끌한 어조로 대답을 내려놓았다.

“……고맙다.”

“에이, 뭘 그런 말을 해. 섭섭해지게.”

반서후의 얼굴에 어색한 기운이 서렸다.

유은담은 늘 불편하고 어색한 상대였다.

자신과는 너무나 다른 종류라 그럴지도 모른다.

사실 어디로 튈지 모를 성격에, 수습을 고려하지 않는 사고뭉치는 굉장히 부담스러운 존재다.

서지한이 길드에 있었을 때는 유은담이 찾아오면 주로 서지한과 어울려서 잡담을 하다 돌아가곤 해서 반서후는 유은담과 그리 가까운 사이가 아니었다.

“애초에 헌터가 사람 좀 죽였다고 체포하네 마네 하는 것도 웃기잖아. 안 그래?”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

“다 언론 플레이라는 거. 형도 알고 있잖아.”

탈출석 하나에 벌벌 떠는 약한 헌터들이야 부실한 아이템과 능력 때문에 일반인이나 다름없다고 할 수 있지만.

어느 정도 던전 경험이 많은 베테랑 헌터가 도주하기로 마음먹으면 그걸 잡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이동 스크롤로 지구 전역을 누비는 데다 투명화 스크롤까지 쓰며 추적을 끊어내고, 거기에 폐쇄 불가능한 금융거래 수단까지 가지고 있는 상대를 경찰이 잡는다고?

상상도 할 수 없는 양의 인력과 돈을 쏟아부어야 간신히 잡을 수 있을 것이다.

강한 헌터들의 범죄는 어차피 어떻게 할 수 없다.

그건 모두가 동의하는 암묵적인 룰이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랭커 급 헌터들은 대부분 초법적인 존재로서 취급되어왔다.

물론, 그들도 인간 사회를 등질 수는 없으니 서로서로 상식적인 선에서 균형을 맞춰왔던 것이다.

그 균형은 길드에서 범죄자들을 자체적으로 단죄함으로써 이뤄졌다.

각성자들이 일으키는 물의는 각성자가 처리한다.

그런 규칙이었다.

그 규칙만 따른다면 처벌의 강도가 너무나 강했던 나머지 범인이 죽어도 어쩔 수 없었다.

한 발짝만 떼면 무법지대인 세상을 아슬아슬하게 상식으로 균형을 맞춰가며 꾸려나가는 것.

그것이 현재 각성자와 사회의 관계였다.

그래서 헌터와 던전에 대한 정보는 철저하게 통제되며 대중들에게 제공되어 왔다.

섣부른 불안을 야기할 만한 폭력적이고 잔인한 뉴스는 모두 배제되었다.

안 그래도 질시와 두려움의 대상인데 그 두려움을 증폭시킬 필요는 없으니까.

헌터들의 세계가 힘이 지배하는 동물의 왕국 꼴이 된 것도 이 무법지대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

헌터들끼리의 다툼에서 서로 죽어나가는 건 심심찮은 일이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동료 살해를 이유로 체포를 하다니. 같은 헌터끼리 죽인 것 가지고.

민간인 살해라면 이야기가 좀 달라졌겠지만.

평소였다면 그냥 서로 싸웠나 보다 하고 적당히 사정 청취를 한 뒤 살아남은 헌터의 정신 감정에 별 문제가 없다면 가벼운 징계로 끝났을 일이었다.

그런데 그걸 이렇게 나라가 뒤집힌 것처럼 떠들어대는 건 뭔가 꿍꿍이가 있다는 뜻밖에 안 된다.

“해결할 수 있어. 네 말대로 어차피 헌터는 중징계받지 않으니까.”

“뭐, 그렇겠지? 천공 길드 길드장의 친인척인데 누가 건들겠어. 제정신이면 안 그러겠지. 길드와 사이가 틀어지고 싶은 게 아니라면.”

비아냥 거리는 건지 아닌 건지 애매한 어조의 말에 반서후는 유은 담을 노려보았다.

다시 낮은 목소리가 목을 긁으며 흘러나왔다.

"너 진짜 왜 왔어?"

"말했잖아. 위로하러 왔다니까."

"헛소리 그만하고."

그쯤에서 유은담은 어깨를 으쓱이며 물러났다.

애초에 방문했던 목적은 이미 달성했다.

그러니 더 시간낭비할 필요는 없었다.

"확인하고 싶은 게 있었거든."

"확인?"

자세한 내용을 묻는 반문에 유은담은 생긋 웃었다.

그리고 돌연 심각한 얼굴을 하더니 낮게 경고했다.

“형, 조심해. 분위기가 좀 변하고 있어.”

“갑자기 무슨 소리야?”

“형도 느끼고 있잖아.”

유은담은 늘 이렇다.

수수께끼 같이 진심인지 농담인지 모를 소리를 한 번씩 던지고 가는데, 그게 영 짚이는 게 없는 건 아니어서 사람을 미쳐버리게 만들었다.

모든 것이 명확하고 반듯해야 성이 차는 반씨 가문 장남에게는 정말 마음에 들지 않는 화법이었다.

“슬슬 가야겠다.”

갑자기 쳐들어와서 실컷 헛소리를 하더니 제 할 말만 하다가 신경 쓰이는 소리만 남기고 뭐 하나 매듭짓는 것 없이 떠나겠다니.

이래서 반서후는 유은담이 올 때마다 피곤해졌다.

“그래, 가라, 가.”

질렸다는 듯 손을 팔랑팔랑 젓는 반서후에게 유은담은 다시 웃었다.

“근데 형, 나는 진짜 반서진 헌터 결백하다는 거 믿어.”

“하.”

끝나가나 했는데 또 시작인가.

한숨 쉬는 반서후를 재미있다는 듯 바라보던 유은담이 갑자기 폭탄을 던졌다.

“직접 봤거든.”

“뭐?”

“영상으로 본 거지만.”

“잠깐, 영상이 있다고?”

반서후가 정신이 번쩍 들어 몸을 당겨 앉았지만 유은담은 할 말 다 마쳤다는 듯 손만 팔랑팔랑 흔들었다.

이제 가겠다는 뜻이었다.

“아무튼 형도 조심해.”

“기다려봐, 유은담.”

“나는 청소하러 가야 해서.”

“기다리라고.”

“그럼 몸조심해.”

뭐라고 말해도 들은 척도 안 하면서 이동 스크롤만 꺼내 쥐는 유은담을 보고 반서후는 결국 포기했다.

어차피 이 새끼는 내 말을 절대 안 듣는다.

언제나 어린애답게 하고 싶은 대로만 움직인다.

“너나 조심해라. 사고 치지 말고.”

“걱정해주는 거야?”

반서후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답례로 밉살스러운 대답이 돌아왔다.

“근데 형, 내가 형보다 더 강한 거 알지?”

“개소리.”

“하하.”

웃어넘기는 유은담은 이제 정말 떠날 태세였다.

어차피 간다면 나도 하고 싶은 말은 해야겠다.

반서후는 내내 신경 쓰이던 부분을 지적했다.

“그리고 너 틀렸어.”

“어?”

“물고기도 숨 쉬어.”

유은담은 폭소를 터뜨렸다.

다분히 의식적인 웃음이었다.

이런 반응이 돌아올 줄은 알고 있었지만 신경 쓰여서 지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반서후는 약간 자괴감을 느끼면서도 꼿꼿하게 앉아 있었다.

“그 부분을 바로잡아주고 싶었어? 아무튼 바른생활 사나이라니까. 나중에 봐. 몸조심하고, 내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해.”

“근데 너 어디 가냐?”

“청소하러.”

“그게 무슨…….”

뒷말은 유은담이 사라진 허공에 떨어졌다.

바라던 대로 유은담이 사라져 줘서 좋긴 하는데 더 많은 고민거리가 남고 말았다.

동영상이라니, 그런 게 진짜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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