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73화 (73/231)

073화

게다가 자신의 동료로 생각했던 길드원이 그 일에 가담하고 있었다면, 나라도 나오자마자 머리에 피가 올랐겠지.

그렇게 오랫동안 유은담이 자리를 비웠다면 그의 측근 몇 정도는 수상하게 생각하며 신고하거나 찾으려고 했을 법도 하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는 이야기는, 결국 유은담 말대로 그의 주변 사람 모두가 유은담의 납치를 묵인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거다.

이런 식으로 언론이 완전히 조작되어 있는 상황은 유은담조차 예상하지 못한 것 같다.

솔직히 나도 진짜 답답했다.

차라리 던전 보스 몇 마리 해치우고 나면 끝나는 게 훨씬 단순하지, 이걸 어떻게 막는단 말인가.

아니, 잠깐.

생각해보니 이렇게 일방적으로 당할 이유가 없다.

나에게도 있잖아.

저 거짓말만 하는 정체불명의 적에게 대항할 수 있는 수단.

진실이 찍힌 카메라.

그러려고 일부러 카메라 맨을 한참 따라가지 않았던가.

바르기스를 잡느라 혼을 뺐더니 인벤토리 안의 이 카메라를 완전히 잊어버리고 말았다.

“카메라! 카메라가 있잖아요.”

“아.”

“진실을 찍은 그 카메라.”

잠시 솔깃해하긴 했지만 유은담은 다시 회의적인 표정을 지었다.

“그게 통할까요? 언론에 제보한다고 해도…….”

나도 그게 걱정이긴 하는데.

최악의 경우 언론에서 이 영상을 꿀꺽 한 다음 제멋대로 편집해서 방송에 내보낼 수도 있다는 거다.

그래도 이 영상에 희망을 걸어보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일단 영상 보고 생각해보죠. 같이 보실래요?”

어쩌면 더 쓸 만한 내용이 찍혀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권하자 유은담이 조심스럽게 다가와 옆에 섰다.

그리고 영상을 재생한 순간, 그가 경악했다.

“지한이 형? 왜 서지한 헌터가…….”

배신감에 젖은 유은담이 입술까지 파르르 떨며 어쩔 줄 몰라했다.

“서지한 헌터가 아니에요.”

그가 더 흥분하기 전에 나는 빠르게 진실을 말해주었다.

하지만 유은담은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이었다.

나는 영상을 일시정지시키고 가짜 서지한의 낫을 확대해 보여주었다.

“무기가 달라요. 여기, 약간 진녹색이죠? 옆으로 번지는 이 검은 기운, 서지한 헌터 특유의 어둠이 아니라 독이에요. 자세히 보면 형태도 약간 다르고요. 목소리도 서지한 헌터가 아니었어요. 복면을 벗었다면 더 확실했을 텐데.”

진짜 사신의 낫은 내 인벤토리에 곱게 잠들어 있기 때문에 나는 저 낫이 가짜라는 걸 바로 알아봤지만 유은담은 어떨지 모르겠다.

다행히도, 유은담은 조금씩 흥분을 가라앉히며 화면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어쩌려나.

화면상으로는 진짜 정말 서지한처럼 보이긴 하는데.

다행히 유은담은 곧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완전히 다르네요.”

“그렇죠?”

그의 반응에 나는 안도하며 영상을 계속 재생시켰다.

별 내용은 없었다.

노미래 헌터와 만나는 순간부터 카메라를 켰는지 들어 있는 내용은 모두 다 내가 아는 내용이었다.

“중간에 화면이 검어진 다음 놈들이 사라진 건, 저 반서진이라는 사람 스킬인가요?”

김영길 헌터의 원한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아, 이것도 말해줘야 하는데.

갑자기 양심의 가책이 느껴진다.

당신네 억울하게 죽은 헌터의 원혼을 내가 가지고 있다고 말해야 하나?

그러려면 너무 많은 걸 설명해야 하는데.

유은담에게 그 정도로 정보를 오픈해도 괜찮을까?

내 생각을 읽었는지 서지한이 손을 뻗어 내 입술을 꽉 쥐는 듯한 동작을 했다.

그 엄숙한 얼굴을 보니 결심이 섰다.

그래. 말하지 말자.

너무 큰 카드다.

최악의 경우, 유은담이 나에 대한 걸 적에게 발설한 다음 날 팔아넘길지도 모른다. 아니면 이용하려고 할 수도 있고.

“그, 그건 저도, 잘. 모르겠네요. 저도.”

“그렇군요.”

유은담은 다행히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는 표정이었다.

지금 생각할 게 너무 많아서 그럴 여력이 없는 걸지도 모른다.

어쨌든 나에게는 다행이었다.

하지만 역시 모든 것을 말하지 않는 건 마음이 너무 불편하다.

나는 어차피 그가 알게 될 사실 하나를 말해주기로 했다.

“얼마 전 뉴스에 서지한 헌터가 김영길 헌터를 살해했다는 소식이 나왔는데, 그것도 진짜 서지한 헌터가 아니라 이놈이에요.”

“예?”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 유은담이 경악해서 나를 내려다보았다.

“서지한 헌터로 분장한 이놈이 사람들을 죽이고 서지한 헌터가 그런 것처럼 누명을 씌우고 있……“

그게 아니라, 김영길 헌터가 살해당했다고요?”

“네. 암현 길드 제작계 김영길 헌터.”

너무 큰 충격을 받았는지 유은담은 잠시 말없이 멍하니 서 있었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해가 안 가요.”

“네?”

“김영길 헌터를 죽일 이유가 없는데.”

“무슨 말인지…….”

“동류예요.”

유은담은 나를 똑바로 내려다보며 다시 또렷하게 말했다.

“그러니까, 영상의 그놈들이랑 동류라고요. 이 사람, 진짜 오만하고 재수 없는 성격이라 평소에도 적이 엄청나게 많았거든요. 근데 엄밀히 말하자면 엄청 비열하고 사악해서, 남을 죽이면 죽였지 본인이 이렇게 당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음.”

그것 참 뜻밖의 말씀이시군요.

나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알 수 없어서 애매한 얼굴로 고개만 끄덕였다.

“사실 저를 납치한 배후 중에 김영길 헌터도 포함되어 있지 않을까 생각했거든요. 근데, 죽었다고요?”

“네.”

“으음, 하긴, 남의 말을 절대 안 듣는 타입이긴 하죠. 툭하면 저한테도 어린놈이라고 하면서 덤비셨으니.”

“되게 꼬장꼬장한 성격이셨나 봐요.”

“꼬장꼬장요? 그런 수준이 아니죠. 담당 비서가 일주일에 한 번씩 바뀌었는데, 너나 할 것 없이 인간 말종이라는 말만 하더라고요. 퇴사할 때는 꼭 울면서 나가고. 그분을 담당한 다음에 자살시도 한 사람도 많았어요. 악몽에나 나올 것 같은 상사라나.”

와아, 그렇구나.

자살시도…….

사람을 얼마나 괴롭혔으면.

김영길 헌터를 향한 동정심과 가책이 눈 녹듯 사라지는 것이 느껴진다.

김영길의 사념체가 복수를 직접 해치운 것도 그 고약한 성격의 발로였을지도.

악을 악으로 물리친 느낌이다.

어쨌든 나에게 손해 되는 건 없으니 상관없다.

퀘스트 보상이 김영길 헌터의 사념체라고 했지?

유은담이 그의 성격을 알려준 덕분에 한층 마음 편하게 부려먹을 수 있게 되었군.

사실 아직 망자의 넋을 부려먹는다는 죄책감이 아주 약간 남아 있었다.

“그 정도로 원한을 샀으면 아마 누군가가 사주해서 죽였을 수도 있겠네요. 음, 하지만 유은담 씨도 그 뉴스를 보면 아실 텐데, 꼭 김영길 헌터를 죽여야 했다기보다는 서지한 헌터를 범인으로 만들기 위해서 중요한 사람을 하나 골라서 죽였다는 느낌이었거든요.”

내 말에 유은담은 약간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으음, 하긴. 김영길 헌터 정도면 적당하죠. 워낙 성격이 나빠서 친구도 없으니 죽어도 사건을 깊게 수사할 사람도 없을 테고. 국내 소비 아이템 시장에 아이템 공급을 잔뜩 해주니 나름 중요한 인간이기도 했고요.”

그렇게 말하던 유은담이 갑자기 활짝 웃으며 만족스럽게 끄덕였다.

“탈출하고 나서 알게 된 소식 중 처음으로 좋은 소식이네요.”

유은담이 몹시 홀가분한 얼굴로 말하는 걸 보니 김영길 헌터와 평소 사이가 어땠는지 알겠다.

나도 상상이 가는 사람이다.

지금까지 살면서 그런 타입의 인간들을 몇 명 보기도 했고.

그래서 남의 죽음을 듣고 ‘좋은 소식’이라고 칭하는 유은담을 비난하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런데 서지한 헌터도 놈들 타깃이 되었다는 거죠?”

나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딱히 대답을 바란 질문이 아니었는지 유은담은 혼자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나를 바라보며 질문했다.

“서지한 헌터는 지금 어디에 있죠?”

“네?”

왜 그걸 나한테 물어?

순간 등이 쭈뼛 곤두설 정도로 놀랐다.

나는 어색하게 눈을 피했다.

“저도 잘…….”

“모르신다고요?”

“네.”

으흠 하고 다시 생각에 빠진 유은담이 불쑥 입을 열었다.

“혹시 놈들에게 이미 당했을까요?”

“글쎄요. 자, 잘. 모르. 겠. 어요.”

이 와중에 서지한은 팔짱을 끼고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필사적으로 유은담의 눈을 피하며 괜히 딴짓을 하는 척했다.

“뭔가 살인 누명을 씌운 것도 서지한 헌터를 찾아내려고 하는 수작 같단 말이죠. 이러면 지명수배를 내릴 수 있으니까. 나타나면 검거해서 가둬버리면 그만이고.”

“음.”

“그 형 성격이면 억울해서라도 벌써 튀어나왔을 텐데.”

유은담의 말에 서지한이 약간 불만 어린 표정으로 끼어들었다.

- 얘 나를 너무 생각 없는 놈으로 보는 거 아니야?

나는 잘 모르겠다.

둘 사이가 어떤 관계인지 모르니까.

한 가지 확실한 건, 예전에 서지한이 잠깐 언급한 것보다는 훨씬 친밀해 보인다는 점이다.

나는 괜히 눈치를 살피다가 슬쩍 떠보듯 질문했다.

“서지한 헌터와는 친한 사이예요?”

“예?”

“형이라고 부르는 것 같아서.”

“실라기스 공략 때부터 만났으니까 꽤 오래된 사이죠. 게다가 그때는 제가 워낙 어렸을 때라 형한테 조언도 많이 구했거든요. 그런데 그쪽은요?”

“네?”

“지한이 형이랑 무슨 사이예요?”

“네? 그, 아무런 사이도 아닌데요.”

좋아.

간신히 더듬지 않았다.

너무 갑자기 훅 들어오는 질문이라 하마터면 모든 걸 다 말해버릴 뻔했다.

서지한이 감촉 없는 팔로 내 어깨를 두드리며 ‘숨 쉬어, 숨’하며 말하는 게 들렸다.

“그래요? 그런 것 치고는 잘 아는 것 같던데. 저 낫이 지한이 형 물건이 아닌 건 어떻게 알았어요? 직접 만나서 전투까지 같이 해보지 않은 이상 절대 모를 만한 특징인데.”

등줄기를 따라 식은땀이 흘러내린다.

뭐라고 변명하지?

적당한 게 안 떠올라.

팬? 팬이었다고 할까? 팬 이어서 사사건건 다 알고 있다고?

아니야. 역시 너무 이상해.

서지한의 생일도 모르는데 무슨 팬이야.

“그…….”

“애인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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