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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1화 (71/231)

071화

바르기스가 똬리를 풀고 빠르게 피했지만 꼬리 끝에 스킬이 적중하는 것은 막지 못 했다.

“키이이!”

비명을 지른 바르기스가 빠르게 벽을 기어올라 천장을 타고 이쪽으로 쇄도했다.

위에서 떨어지면서 공략하려는 시도인 것 같았다. 하지만 우리가 피하는 것이 더 빨랐다.

그리고 일방적인 바르기스 때리기가 계속되었다.

몸통, 머리, 꼬리를 가리지 않고 얼음 창을 계속 얻어맞은 바르기스는 점점 느려지기 시작했다.

다리 몇 개는 떨어져 나가고 갑각도 몇 군데가 부서졌다.

이대로 몇 방만 더 맞추면 완전히 잡을 수 있을 것 같다.

나만 그렇게 생각한 것이 아니었다. 유은담도, 서지한도 그렇게 여기고 있는 표정이었다.

바르기스의 숨통은 끊어지기 직전이었다.

벽과 천장을 달려 피하면서도 계속 공격을 시도하던 바르기스가 어느 순간 몸을 둥글게 말고 꼼짝도 하지 않았다.

순간 죽은 건가 했는데, 보스 몬스터 사망 알림 메시지가 뜨지 않았으므로 그건 아닌 것 같다.

바르기스는 약한 배를 감추고 몸을 공처럼 말아 외부 갑각만으로 유은담의 공격을 견디고 있었다.

확실히 방어력이 높아지긴 했는데 그래도 갑각이 얼어붙고 그 위에 얼음 창의 충격이 더해지면서 바르기스의 육체에는 대미지가 착실하게 누적되고 있었다.

바르기스의 갑각 몇 군데가 계속해서 깨져나갔다.

그러나 어느 순간 나는 위화감을 느꼈다.

녹색 피가 흘러나와야 할 갑각 안쪽이 텅 비어 있었던 것이다.

마치 알맹이가 사라진 것처럼.

“바르기스, 피가 안 나는 것 같은데.”

“얼어서 그런 거 아니에요?”

내 중얼거림에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는 유은담과 달리 서지한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었다.

전투에서 원인을 파악하지 못한 이변은 상황을 불리하게 만든다.

- 케르기스의 스킬은 두 개였지. 그러니까 바르기스도 독무 외에 두 번째 능력이 있을 수 있어.

서지한이 그렇게 말하는 순간 바르기스의 갑각이 다시 한번 부서지고 놈이 완전히 반 토막이 나버렸다.

그쯤 되자 유은담도 이상함을 느꼈는지 쏟아붓던 공격을 중지했다.

“저놈, 왜 안 죽죠?”

나는 유은담의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 마력 회복 포션을 건넸다.

아무래도 불길하다.

갑각은 벌써 걸레짝처럼 너덜너덜해졌고 몸뚱이는 반 토막이 났다.

죽어도 벌써 죽어야 했을 상태인데 보스 사망 메시지가 뜨지 않는다.

껍데기만 남겨두고 도망치는 스킬을 가지고 있는 건가?

나름대로 상황을 유추하는 순간, 이변이 발생했다.

껍데기만 남아 있던 바르기스의 갑각이 파삭 파삭 부서졌다.

그리고 그 틈에서 거대한 무언가가 치솟았다.

날개.

지네에게는 붙어 있을 리가 없는, 마치 벌의 것과 같은 날개였다.

바르기스는 이제 더 이상 지네가 아니었다.

이마에 솟은 두 갈래 붉은 뿔은 여전했지만 놈은 완전히 말벌과 같은 형상으로 변신했다.

사기 아냐, 이거?

놈이 하늘로 솟구침과 동시에 우리는 땅으로 내려왔다.

바르기스가 날 수 있게 된 이상 허공에 떠 있는 건 아무런 이 점도 주지 못 했다.

기동력은 오히려 이쪽이 떨어졌다.

바르기스는 단순히 날 수 있게 된 것이 아니었다.

속도도 엄청나게 올라갔다.

“이건 처음 보는 건데.”

난감한 얼굴의 유은담이 중얼거렸다.

하지만 태평하게 이야기나 나눌 상황이 아니었다.

기세 등등하게 하늘을 점령한 바르기스가 입에서 독액을 내뿜었다.

다급하게 유은담이 냉기를 응축해 독액을 얼렸다.

하지만 미처 얼어붙지 못한 독액 줄기가 땅에 떨어져 돌을 녹여버렸다.

해도 해도 너무한 거 아냐?

스치기만 해도 한 방에 죽겠네.

이어서 바르기스가 다시 독무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놈의 날갯짓 덕분에 독은 아까 보다 더 빠르게 퍼져나갔다.

유은담이 얼음 창을 만들어 바르기스에게 던졌지만 아까보다 훨씬 빨라진 놈에게 맞을 만한 것이 아니다.

뭔가 더 빠른 공격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레이저 빔 같은 거.

빔.

마침 내가 또 그런 스킬을 가지고 있네.

나는 일단 손으로 충왕포를 몇 발 쏴 보았다.

확실히, 내 충왕포가 유은담의 얼음 창보다 훨씬 빨랐다.

처음에는 좀 빗나갔지만 곧 놈의 움직임을 예측해서 적중시킬 수 있었다.

“적중률은 좋긴 하는데, 대미지가 약해요.”

알고 있다.

손으로 쏘는 충왕포는 바르기스의 갑각을 전혀 뚫지 못 했다.

날개에는 대미지를 좀 주는 것 같았지만.

차라리 날개를 계속 쏴서 날아다닐 수 없게 할까?

아니, 좀 더 좋은 방법이 있다.

“날아다니는 거 좀 느리게 할 수 있어요? 아까 그 냉기 같은 걸로.”

“많이 느려지게 하지는 못 해요.”

“약간이라도.”

유은담은 자유로운 두 손을 뻗어 냉기를 응축하기 시작했다.

바르기스의 독무와 유은담의 냉기가 팽팽한 접전을 이어갔다.

당연하게도, 우세한 것은 유은담의 냉기였다.

얼음으로 인해 낮아진 온도가 대기에 옮겨 붙기 시작했다.

마력은 충분했다.

아까 마신 마력 증가 포션의 효과도 아직 유지되고 있었다.

나는 심호흡을 한번 하고 유은담이 준 스크롤을 찢었다.

한 방이다.

바르기스를 죽일 수 있을 만한 한 방.

내가 낼 수 있는 최고의 출력으로 모든 힘을 짜내어 바르기스를 치는 거다.

충왕포.

보스 몬스터 케르기스에게서 계승한 S급 스킬이 나의 모든 마력을 먹어치운다.

그리고 지금까지 내가 써본 것 중 가장 강력한 형태로 구현되기 시작했다.

“와우.”

등 뒤에서 유은담의 나직한 감탄이 들렸다.

나는 마력을 넣고 또 넣었다.

온몸을 쥐어짜 마력 한 방울 남지 않을 정도로 쏟아부었다.

영혼까지 긁어모았다.

제발, 드라마틱한 위력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어차피 내 마력 수치는 하찮으니까.

마력 증가 포션으로 부풀리고 공격력 증가 스크롤을 썼다고 해도 기초 수치가 하찮은 건 변함이 없다.

그저 바랄 뿐이다.

저 바르기스의 갑각을 뚫어 상처라도 내 주기를.

마침내 완성된 스킬을 머리 위에 띄우고 나는 바르기스를 노려보았다.

냉기 덕분에 조금 느려진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안심할 정도로 느린 건 아니다.

딱 한 번만 쓸 수 있는 스킬이다.

‘맞출 수도 있는’ 가능성에 걸지 않겠다.

반드시 맞을 수밖에 없도록 해야 한다.

“유은담 씨. 아까 쓴 그 얼음 창. 빠르게 바르기스의 머리 위로 쏴주세요. 지금.”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내 바로 앞에서 거대한 얼음 창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창이 정확히 바르기스의 머리 위로 쏘아지는 순간, 나는 그 아래를 겨냥하고 충왕포를 날렸다.

빛의 뿔 위에 응축되어 있던 거대한 힘이 일직선으로 날아간다.

목표는 얼음 창을 피하기 위해 아래로 회피 비행한 바르기스의 몸뚱이였다.

제발, 맞아라.

맞고 조금이라도 효과가…….

콰이앙.

“엑.”

“워.”

- 허.

눈앞의 광경에 모두 할 말을 잃었다.

충왕포가 빗나간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였다.

지나치게 적중해버렸던 것이다.

빛과 같은 속도로 뻗어나간 내 충왕포는 말 그대로 바르기스를 꿰뚫어 버렸다.

바르기스의 배와 가슴엔 누가 쿠키 틀로 꾹 눌러 떼어낸 것 같은 구멍이 뚫렸다.

기껏해야 갑각을 좀 부수거나, 혹은 몸을 좀 파이게 하는 정도를 기대했는데 터무니없을 정도로 효과가 좋았다.

바르기스가 말랑하다고 서지한이 아무리 말했어도 믿지 않았는데, 진짜 말랑하네.

그나저나, 이 공격력 증가 스크롤 효과가 얼마나 좋은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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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왕 바르기스가 사망하였습니다.

잠시 후, 바르기스의 힘으로 유지되는 공간의 연결이 해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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