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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9화 (59/231)

059화

“어이, 노미래 헌터. 뭐해?”

백대만이 소리 높여 부르자 노미래는 그제야 모닥불로 합류했다.

자리에 쓱 앉던 그는 갑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나를 쏘아보더니 작게 투덜거렸다.

“저러면 루팅은 어떻게 하라고……. 이래서 잘 나가는 놈들은 생각이…….”

- 죽고 싶어서 환장한 놈인가.

내가 반응하기도 전에 서지한이 차게 말했다.

그는 마치 배후령처럼 내 뒤에 서서 노미래를 노려보고 있었다.

맞아.

거기서 통로 안 무너뜨렸으면 그 많은 몬스터는 어쩌려고?

“노미래 헌터가 참아. 그럴 수도 있지. 우리 손모아 헌터 던전 경험이 별로 없어서 겁이 났을 수도 있지. 안 그래? 손모아 헌터? 다 생각해서 한 건데 섭섭하게 말한다. 그지?”

백대만이 실실 웃으며 끼어들었다.

전투 끝나고 얼굴이 벌겋게 되도록 숨을 몰아쉬고 있었으면서 말은 잘하네.

아니, 애초에 다른 사람들도 던전 경험이 많아 보이지는 않는데.

- 진짜 답 없는 새끼들이네.

등 뒤에서 짜증 어린 서지한의 목소리가 들렸다.

절대적으로 동감한다.

“뒈질 거 살려줬더니 헛소리를 하네. 안 그래? 손모아 헌터?”

반서진이었다.

맞장구를 치고 싶지만 나는 어색하게 웃었다.

제발 싸우지 말자.

얘들아, 제발 싸우지 마.

들어온 지 이제 한 시간 좀 지났어.

“죽을 만큼 힘들었어? 그럼 말을 하지. 그럼 내가 도와줬을 텐데.”

백대만을 백대만 때리고 싶다.

거듭되는 백대만의 말에 반서진은 고개만 절레절레 저어버렸다.

이어지는 어색한 침묵 사이로 노희망이 술을 들이켜는 소리만 간간이 났다.

이상하다.

던전 들어오기 전에는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물론 이야기를 많이 나누지는 않았지만 분명 이렇게까지 답 없는 사람들은 아닌 것 같았다고.

아, 차장님, 대리님.

두 분이 옳으셨어요.

두 분 말씀을 좀 더 귀담아 들었어야 했는데.

인벤토리에 있는 과자들을 생각하니 좀 울적해진다.

이럴 줄도 모르고 약간 들떠서는 같이 먹을 간식들도 이것저것 챙겼는데.

도저히 꺼낼 분위기가 아니네.

원래 공략이 다 이런 분위기인지서지한에게 묻고 싶은데 주변에 사람이 많아서 입을 열 수가 없다.

하, 갑갑하다.

이 사람들이랑 불침번을 번갈아 서며 서로를 의지해서 공략을 해야 한다고?

내 목숨을 맡기며 잠들어야 한다고?

가능할까.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면 반서진이랑 백대만 둘 중 하나가 혈투 끝에 죽어 있는 거 아냐?

그나저나, 노희망은 대체 언제까지 술을 마실 생각이지?

“형, 그만 마셔.”

연거푸 술병을 비우는 노희망의 기세에 보다 못한 노미래가 나섰다.

노미래의 두툼한 손에 음주를 제지당한 노희망이 삐딱한 눈으로 그를 응시했다.

“상관하지 마.”

“공략 중이잖아. 그만 마셔.”

두 사람이 실랑이하는 모습을 백대만은 그냥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구경하고 있었다.

반서진은 좀 짜증 난 것 같았다.

솔직히 나도 짜증 난다.

이게 뭐야.

그러다가 마침내 노미래가 노희망의 술병을 빼앗는 데 성공했다.

그러자 노희망이 이성을 잃었다.

“야, 내가 마신다는데 네가 무슨 상관이야. 너도 나 무시하냐? 어? 스킬 수준 낮다고 무시하냐고!”

“형!”

꽥 소리 지르는 노희망에 맞서 노미래도 언성을 높였다.

“내가 술 좀 마시는 게 어때서. 이 도박쟁이 새끼야. 도박으로 번 돈 다 날려놓고 빚도 진 놈이. 너나 나나 똑같은데 어딜 가르치려고 해? 내놔!”

형제가 나란히 술과 도박이라니.

노미래가 아이템에 집착하는 이유도 대충 알겠다.

도박 빚 때문에 던전을 돌고 있는 것 같은데, 아이템 한 개 한 개 가 아쉬운 처지인 모양이다.

“그만. 두 사람 지금 뭐 하는 거야. 노미래 헌터, 그냥 술병 줘. 조용해지게.”

백대만으로서는 노희망이 알코올 중독으로 죽든 말든 상관없으니 술을 줘서 조용해지면 그걸로 만족이다.

그 노골적인 태도에 노미래가 뭔가 입술을 씰룩이다가 입을 다물었다.

“어이쿠, 감사합니다. 역시 리더라 그런지 판단력이 좋으시구먼.”

방금 버럭버럭 소리 지르며 화내던 노희망은 언제 그랬냐는 듯 술병을 받자마자 방긋 웃었다.

그러곤 기분이 좋아졌는지 이런저런 넋두리를 늘어놓다가 갑자기 나에게 시선을 던졌다.

“그나저나, 우리 손모아 헌터, 남자친구는 있나?”

아, 세상에.

천장에 충왕포 쏴서 다 묻어버리고 싶다.

느물거리는 표정과 풀풀 나는 술냄새.

여기가 던전인지 진상 부장님이 있는 회식자리인지 모르겠다.

천장을 보며 한숨을 푹푹 내쉬던 서지한은 이제 내 옆에 앉아 간절하게 나를 조르고 있었다.

- 손모아. 한 대만 치자. 저거 한 대만 치자. 응? 너도 치고 싶잖아. 딱 한 대만. 술 깰 정도만. 응?

글쎄. 나도 짜증이 나지 않는 건 아닌데.

냉정하게 말하자면 이 팀은 개판이다.

완전히 개판이다.

오히려 중심을 잡아줄 사람이 좀 있고 일부만 개판이라면 나도 같이 마음 놓고 성질을 부려볼 수 있겠는데, 이렇게까지 엉망이니까 오히려 이성이 견고해졌다.

정신 바짝 차려야 해.

이 개판에 휩쓸리면 끝장이다.

최대한 이성을 유지하고 냉정하게.

“어? 손모아 헌터도 나 무시하네? 에라이, 더러운 세상. 퉤엣.”

다행히 전투계 헌터에게 시비를 걸지 않을 만큼의 이성은 남아 있었는지 그는 다시 웅얼거리며 찌그러졌다.

나는 잔뜩 긴장한 노미래가 나를 살피고 있던 것을 눈치챘다.

혹시나 내가 노희망을 공격할까 봐 대비한 모양이다.

쯧.

저렇게 긴장할 거면서 왜 긁는담.

“그나저나 통로를 저렇게 막아버리면 나갈 때는 어떡하려고?”

백대만은 언제 꺼냈는지 무언가를 질겅질겅 씹고 있었다.

체력 회복을 도와주는 아이템 같다.

“그러게. 저거 누가 다 옮기라고.”

아까부터 곱지 않은 시선으로 나를 보던 노미래가 말을 보탠다.

나는 어깨만 으쓱했다.

“스킬로 뚫고 나가도 되는데, 소리 들어보니 밖에서 애들이 치우고 있는 것 같네요.”

두 남자는 조용해졌다.

그제야 나와 그들 사이에 있는 격의 차이를 떠올린 표정이었다.

전투계 헌터라고 다 같은 전투계 헌터가 아니다.

상성과 능력치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일반적으로 마력계 스킬을 사용할 수 있느냐 없느냐로 급이 나뉘었다.

그들처럼 특수 능력 하나 없는 단순 신체 강화형은 전투계 헌터 중에서도 아래쪽에 위치했다.

내가 스킬을 사용한다면 그걸 막을 수 있는 건 여기 있는 사람 중 노미래 정도뿐이었다.

방어 스킬이 있으니까.

그걸 알기 때문에 더 뻗대는 건가?

으음.

대화가 끊어지고 잠시 시간이 지난 후 백대만이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나에게 눈짓했다.

“뚫어. 또 싸워야지. 시간이 다 돈이야.”

“누구 때문에 루팅도 못 하고 첫 성과물을 날렸으니 부지런히 움직여야지.”

“가자고. 이번에는 겁나도 무너뜨리지 말고.”

백대만과 노미래가 죽이 착착 맞는다.

예이 예이. 둘이 몬스터 사이에 파묻혀도 절대 안 써드리죠.

그나저나 캠프 꾸릴 생각은 진짜 전혀 없나 보네.

나는 모닥불을 회수하고 충왕포를 사용했다.

솔직히 반쯤 포기한 상태다.

해보자고. 이 개판 공략 팀이 어떻게 되는지.

* * *

이후 공략은 삭막한 분위기에서 진행되었다.

사실 몬스터는 별 걱정거리가 아니었다.

감당하기 힘들어지면 탈출석을 쓰면 그만이니까.

게다가 아직까지는 운이 좋았는지 계속 약한 몬스터만 나오고 있었다.

가장 큰 문제는 사람이었는데, 차라리 전투를 계속했으면 좋겠다 싶을 정도로 서로 싸워댔다.

그래도 몬스터가 나오면 몬스터와 싸우느라 팀원끼리 다투지는 않았으니까.

그래도 위험한 현장에서 같이 구르고 있기 때문인지 점점 서로에게 세우는 날이 무뎌지는 느낌이었다.

내가 둔해진 건지도 모르지만.

- 서로의 지랄에 적응하고 있는 거지.

“그런 거 같기도 해요.”

작게 대꾸하며 나는 물티슈로 대충 얼굴을 닦고 침낭을 정리했다.

팀원들 때문에 서지한과 편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없었기 때문에 그와 대화하는 건 자기 전이나 잠을 깬 후 잠깐 혼자 있는 시간 정도였다.

텐트 밖으로 나가니 모닥불에 앉아있는 반서진과 백대만이 보였다.

나는 개인 텐트를 대충 접어 인벤토리에 넣은 후 불가로 다가섰다.

비슷한 때에 노미래도 불가에 합류했다.

“고생하셨어요.”

고개를 까딱여 내 말을 받은 반서진이 늘어지게 기지개를 켰다.

백대만도 무척 졸린 표정이었다.

처음에는 반서진과 신경전을 벌이며 힘들지 않은 척 기싸움을 엄청하더니 이제는 그냥저냥 서로를 무시하는 느낌이다.

반서진과 교대하며 모닥불 곁에 앉자 백대만이 떠난 자리를 채우며 노미래가 앉았다.

그는 내 쪽을 힐끔 보더니 인벤토리에서 발열 도시락을 꺼내 말없이 먹기 시작했다.

불침번은 나와 노미래, 백대만과 반서진이 짝이 되어 서고 있었다.

처음에는 한 사람씩 세우려고 했는데 반서진이 백대만이 불침번을 설 때 절대 자지 않으려고 하고, 백대만도 마찬가지여서 결국 이렇게 되고 말았다.

‘저놈을 어떻게 믿고 자?’

‘나도 마찬가지야.’

결국 두 사람의 고집 때문에 아이러니하게도 제일 불편한 사람끼리 밤을 새우게 된 것이다.

그리고 노희망은 자연스럽게 불침번 멤버에서 제외되었다.

본인 말로는 전투계 헌터와 달리 체력 능력치가 낮은 보조계는 불침번을 설 체력이 없다나.

체력 능력치는 나도 없는데.

솔직히 핑계 같은데 딱히 노희망에게 불침번을 부탁하고 싶지도 않아서 그냥 그러려니 해버렸다.

이들과 며칠 지내면서 나는 서지한이 헌터들을 왜 그렇게 싫어하는지 좀 이해하게 됐다.

물론 이 사람들이 그중에서도 특히 개판인 경우겠지만, 내가 본 마켓 관리자들 성격을 생각해보면 대충 비슷할 것 같았다.

헌터들은 대부분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고, 본인 이익에만 매달린다.

변변찮은 형편이다가 각성으로 인생역전이 된 부류, 원래 잘 나가다가 각성해서 헌터가 된 부류 모두 관계없이 공통점이 있다.

특권 의식과 서열 의식.

팀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이들은 제멋대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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