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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7화 (57/231)

057화

“이제 입장하지. 여기 전송 포탈 안으로 들어와.”

기묘한 모양의 검은 판 위에서 백대만이 팀원을 불렀다.

가까이 가보니 무슨 검은 돌 같은 것에 불규칙한 선이 홈으로 파여 있었다.

노미래와 반서진이 합류하고, 노희망까지 비틀거리며 원판 위로 올라서자 내내 옆에 서 있던 사람이 입을 열었다.

“백대만, 노미래, 노희망, 반서진, 손모아. 이상 5인 맞습니까?”

“네.”

“5인용 탈출석 확인하겠습니다.”

“여기.”

백대만이 내민 탈출석까지 확인을 마친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 살짝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우리가 올라선 원판의 홈이 빛으로 채워졌다.

마치 마법진 같은 형태였다.

나는 신기하게도 눈앞의 관리자가 내뿜는 마력을 느낄 수 있었다.

나보다 더 강한 마력을 가진 사람이다.

하긴, 내 기본 마력은 25밖에 안되니까.

나보다 많은 마력을 가진 사람은 흔하겠지.

“그럼, 무운을 빕니다.”

뭔가 무협지에 나올 것 같은 비장한 인사를 마지막으로 관리자는 마법진에 마력을 강하게 불어넣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한 차례 빛이 지나간 후 우리는 던전 입구 바로 앞에 서 있었다.

오오. 신기해.

내가 지금까지 본 던전은 모두 방금 열린 자연 그대로의 던전이었다.

그래서 이렇게 관리되고 있는 던전의 입구를 보는 건 처음이다.

뭔가, 정말 한눈에 보기에도 제한구역이라는 느낌이 엄청나게 팍팍 든다.

일단 현대적인 감성과는 백만 년 정도 떨어져 있는 것 같은 이상한 마력탑 같은 게 여섯 개 정도 흩어져 있었다.

이곳에 도착한 순간부터 저 탑들이 뿜어내는 이상하고 무거운 기운 때문에 몸이 축축 늘어지는 느낌이었다.

젖은 이불을 온몸에 두르고 있는 감각이라고 할까.

별로 좋은 느낌은 아니다.

- 마력 제어장이야.

내 시선을 따라간 서지한이 친절하게도 설명해주었다.

- 저 여섯 개의 탑이 특수한 진을 형성해서 던전 관리청 전송 포탈이 아니라 이곳으로 바로 공간 이동해서 들어오는 것을 전부 비틀어. 즉 여기로 들어오려면 반드시 던전 관리청 전송 포탈을 통해야 한다는 뜻이지. 그리고 항상 작동되는 투명화 감지 마법 때문에 투명화 스크롤로 잠입한다고 해도 금방 들켜버려. 거기에 밖에서는 이곳의 존재를 인식할 수 없게 은닉 마법도 걸고 있지.

뭔가 이것저것 되게 많이 하네.

정리하자면 여기서는 공간이동, 투명화 금지라는 거지?

“음.”

- 그러니 사실상 던전 관리청에 있는 특수 포탈로만 여기에 들어올 수 있어.

“보안이 정말 철저하구나.”

혼잣말로 해도 이상하지 않은 수준으로만 말하려니 좀 어색하다.

그래도 어쩔 수 없지.

지금 팀원들이 바로 옆에 있단 말이야.

- 그렇지도 않아. 관리자 기절시키고 마력만 불어넣으면 포탈을 쓸 수 있으니까. 그래서 저기 보안 헌터들이 지키고 있긴 하는데, 뒷목 한 대 쳐서 숙면하게 해 주고 던전에 들어가곤 했지. 나는 던전 들어가서 좋고, 쟤네는 푹 쉬어서 좋고. 이게 윈윈인가 하는 그거지.

아니. 좀 다른 것 같은데요.

나는 씩 웃고 있는 서지한을 어처구니없는 기분으로 쳐다보았다.

- 왜?

아닙니다.

대답 대신 나는 가볍게 고개만 저어버리고 어느새 앞서가고 있는 팀원들을 따라갔다.

던전 입구는 통제되고 있는 이 장소의 중앙에 있었다.

그리고 여기저기 흩어진 보안 헌터들이 수상한 사람이 무단으로 던전에 들어가는 것을 막고 있었다.

우리는 보안 헌터의 검문을 지나 마침내 던전 입구에 도착했다.

안으로 들어가기 전, 백대만이 마지막으로 팀원들의 상태를 확인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별 문제없지?”

“저는 문제없어요.”

백대만의 질문에 소리 내어 대답한 건 나뿐이었다.

다들 작게 고개를 끄덕였을 뿐이었다.

황당한 건 질문한 백대만 조차 딱히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던전의 소용돌이 속으로 몸을 던졌다는 것이다.

왜 물어본 거야.

조금 어이없었지만 나는 팀원들의 등을 놓칠세라 서둘러 그 뒤를 따랐다.

던전에 오는 것도 벌써 네 번째다.

자다가 얼떨결에 휘말린 충왕류 던전.

회사에서 휘말린 충왕류 던전.

괌에서 뛰어든 수왕류 던전.

그리고 지금.

죽느냐 사느냐 하던 게 바로 얼마 전 같은데 어느새 어엿한 헌터가 되어 이렇게 공략을 하러 오다니.

약간 감격이다.

마냥 무서워서 떨기만 하던 예전과 달리 이젠 좀 익숙하게 여기저기 둘러보는 여유도 생겼다.

아무래도 충왕류 던전이 두 번째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첫 번째였던 충왕 케르기스의 영역과 비교하게 된다.

전체적으로 케르기스 때와 비슷하긴 하다.

지하 동굴이고, 여기저기 발광 이끼 같은 것이 돋아나 있다.

덕분에 아주 어둡지 않았다.

저 발광 이끼는 아마 케르기스의 던전에서 봤던 것과 같은 놈인 듯했다.

한 가지 차이점은, 이곳은 케르기스 던전보다 더 습하고 공기 질이 굉장히 안 좋다는 거였다.

환풍이 안 되어서 공기가 답답하다는 수준이 아니라 마치 독가스를 마시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미세먼지 같은 것과는 비교가 안된다.

아무래도 기분 탓은 아닌지 공기 중에 부유하는 안개 같은 것이 눈에 들어왔다.

점점 멍해지고 어지러워지는 걸 보면 역시 이거, 독인가?

- 독 안개야. 해독 포션 꺼내서 마셔. 그러면 하루 정도는 괜찮을 테니까. 넉넉히 사 왔지?

때마침 서지한이 조언했다.

나는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헌터들이 근처에 있으니 입을 열어 대답하기 곤란했다.

그나저나, 역시 독이구나.

다른 사람들도 해독 포션 가져왔나?

슬쩍 둘러보니 이미 저마다 공략 준비를 하느라 주섬주섬 무언가를 마시고 꺼내고 있었다.

백대만이 인벤토리에서 발광구를 꺼내 허공에 띄우자 시야가 한층 쾌적해졌다.

저 발광구, 나도 사긴 했는데 꺼내도 될지 판단이 서지 않아서 그냥 가만히 있었다.

서지한의 말로는 소유자 근처에 띄워둘 수 있어서 충왕류 던전에서는 거의 필수였다.

하긴, 손전등 들고 싸우기는 좀 그렇지?

그래도 저거 마법 아이템이라서 꽤 비싼데 백대만 씨도 돈 많나 보네.

남들을 구경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일단, 나도 해독 포션 먹어둬야지.

으웩, 써.

하지만 마시자마자 속이 메슥거리던 게 확연히 괜찮아졌다.

“가자.”

한차례 사방을 둘러본 백대만이 방향을 잡더니 무작정 전진하기 시작했다.

어? 이래도 되나?

그런데 방향은 뭘 기준으로 가늠한 거지?

일단 그가 리더니까 따라갈까.

- 뭐 하는 거지?

“지금 뭐 하는 거야?”

서지한의 목소리에 반서진의 목소리가 겹쳐 들렸다.

나는 팀원들과 한 발짝 정도 떨어진 거리, 대열의 가장 후미에 서 있었다.

덕분에 다른 사람들의 표정을 살피기 좋았다.

대부분은 별생각 없이 움직이고 있었으나 반서진은 무언가 심각하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그나저나, 뭐 잘못되었나?

“내 리딩에 무슨 불만 있나?”

백대만이 미간을 꿈틀거리며 싸늘한 표정으로 반서진을 쏘아보았다.

반서진은 기가 찬다는 듯 한숨을 내쉬며 눈을 가늘게 떴다.

뭔가 의심하는 듯한 표정이다.

“무작정 어디로 가는 거야? 일단 캠프부터 꾸려야지. 세이프 존도 안 만들고 간다고?”

- 그러게. 세이프 존은 만들어 놓고 이동해야지. 부상이라도 입으면 어쩌려고.

던전에 입장한 공략 팀은 가장 먼저 ‘세이프 존’ 이라고 불리는 안전지대를 구축한다.

땅을 파 임시로 참호를 만들거나 거기에 스크롤로 펼칠 수 있는 보호 결계를 덧붙이기도 하면서 장기 체류 준비를 하는 것이다.

이렇게 만든 세이프 존은 숙소 겸 은신처로 쓰거나, 부상자를 보호하는 데 쓰인다.

또는 휴식할 때 갑자기 습격받는 경우 요긴하게 사용되기도 한다.

반사 신경 좋고 기동력 좋은 근거리 전투계는 허허벌판에서 습격받아도 빠르게 피할 수 있다.

하지만 기동력도 낮고 공격에 시간이 많이 필요한 보조계, 원거리 헌터는 기습에 무척 취약했다.

이런 최소한의 안전지대도 없으면 도망칠 곳도 없고, 누가 막아주지 않으면 그대로 죽을 수도 있다.

나는 마력계 헌터 치고 시전 시간이 무척 짧아서 갑자기 공격당해도 어느 정도는 알아서 할 수 있지만.

으음, 세이프 존을 안 만들어서 제일 손해 보는 건 결국 나 같은데.

반서진이 먼저 지적해줘서 좀 고맙다.

그녀가 백대만을 무척 싫어한다는 걸 생각하면 나를 위해서 그런 건 아닌 것 같지만.

“입장할 때 개별 입장하질 않나. 진짜 공략 경험 있는 거 맞아? 아니, 던전 들어와 본 적은 있어?”

반서진의 목소리에 강한 불신이 담기자 백대만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하지만 반서진의 말이 모두 옳았다.

던전 입구의 소용돌이는 마치 빙글빙글 돌아가는 수천 개의 워터슬라이드와도 같아서 때를 잘못 맞추면 팀원이 던전 여기저기에 흩어질 수도 있었다.

각기 다른 방향으로 빠지는 워터슬라이드를 타버리는 것처럼.

그 때문에 팀원들과 손을 잡거나 몸을 묶어 한 덩어리로 들어가는 게 정석이 었다.

뭐, 어지간히 늦게 들어가지 않는 이상 그렇게까지 멀리 떨어지진 않는다고 하는데.

조심할수록 좋은 거니까.

“말조심해라. 지금 리더가 누군지 생각하고.”

“그러면 제대로 된 리딩을 하시죠, 리더님?”

백대만의 빳빳한 목에 분노로 시뻘건 물이 차올랐다.

아직 소리 지르지 않고 있는 게 신기할 정도다.

그보다, 반서진 씨도 잘 참네.

“일단 주변정리부터 하고 캠프 파는 게 낫지. 어차피 캠프는 나중에도 만들 수 있어.”

“그게 무슨 개소, 아니, 캠프를 파둬야 전투하다가 안 뒈지지 않겠습니까? 리더 님?”

참고 있는 것 같지만 반서진 씨의 말 틈틈이 상소리가 섞여 나오고 있다.

노희망, 노미래 두 사람은 이 소란에 끼고 싶지 않은지 남 일처럼 시선을 회피하고 있었다.

아, 이러다 싸우겠네.

“말조심하라 했지. 아, 캠프를 그렇게 차리고 싶으면 아예 팀을 둘로 나눠서 너는 캠프 준비하고, 우리는 출발하면 되겠네. 집안일이 그렇게 하고 싶으시다면야, 어디 집 한 번 예쁘게 꾸려봐. 아, 여기 꽃무늬 커튼 같은 건 없는 거 알지?”

이죽거리는 백대만의 얼굴이 발광구에 반사되어 무척 비열한 색으로 번들거렸다.

서지한은 아연한 표정으로 눈을 감더니 중얼거렸다.

- 눈에 암이 걸릴 것 같아. 보기 드문 머저리인데. 팀에서 가장 인내심이 강해야 하는 리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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