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55화 (55/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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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5화

사실 이 부분이 마음에 걸려서 확인 차 전화한 것이다.

그냥 던전에 들어가는 소식만 전달할 목적이었다면 문자메시지만 남겨도 괜찮았다.

“그런데 승주야.”

-응?

“혹시 최근에 이상한 일 없었어?”

나의 낮은 목소리에 승주가 의아하게 되물었다.

-무슨 이상한 일?

“뭐, 모르는 사람이 주변에 서성거린다거나.”

-아니, 없었는데. 누나 길드 들어간 다음 파파라치 싹 없어졌어. 왜 그래? 누나는 아직 파파라치 있어?

“파파라치가 아니라. 별일 없으면 됐어.”

다행히 내가 시신을 루팅 해 온건 들키지 않았나 보다.

암현 병원의 보안이 허술해 보이긴 했지만 명색이 길드 병원이었다.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들어갔다고 해도 혹시 내가 뭔가 흔적을 남겼을지도 몰랐다.

만약 내가 김영길의 시신을 가져갔다는 게 들키면, 정체불명의 구린내 나는 짓 하는 놈들이 내 가족을 노리겠지. 물론, 나도 노릴 테고.

-응. 뭐 이상한 일 있으면 말해줄게.

마냥 태연한 승주의 목소리로 봐서는 아직 괜찮은 것 같다.

“그래, 꼭 말하고. 저녁은 먹었어?”

-이제 먹으려고. 좀 있다가 애들이랑 맥주 마시기로 했어.

“응. 너무 많이 마시지 말고.”

대충 안부를 나누고 전화를 끊자 그제야 좀 안심이 되었다.

괜찮겠지. 무슨 일 있을까 봐 아이템도 잔뜩 챙겨줬잖아.

- 별일 없을 거야.

내 마음을 읽었는지 서지한이 조용히 격려해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소파에 앉아 마켓을 열었다.

그 사이 서지한은 지푸라기 인형으로 들어가 TV를 켰다.

“음, 던전 들어가면 아이템 못 살 테니까 최대한 이것저것 사두고 싶은데.”

- 마력 증가 포션이랑 마력 회복 포션은 여유 있어?

“둘 다 100개 정도 있는데 더 사둘까요?”

- 마력 증가 포션은 어차피 중첩 안되니까 괜찮지만, 마력 회복 포션은 많을수록 좋지. 힐링 포션도 사고.아, 결계석도 사. 해독 포션도 있어야 할 거야.

나는 서지한의 조언에 따라 마켓에서 이런저런 능력치 증가 포션과 방어 아이템을 잔뜩 샀다.

탈출석도 여유 있게 넉넉히 챙겼다. 혹시 모르잖아.

그렇게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잘 준비를 하려는데 침대에 누워도 잠이 오지 않았다.

지금까지는 몰랐는데, 가슴이 콩닥콩닥 뛰는 것이 무척 설레는 기분이었다.

- 안 자?

“내일 던전 들어갈 거 생각하니까 너무 설레요. 긴장되기도 하고.”

- 무서워?

“그런 건 아닌데. 첫 출근 전날 같네요.”

- 으음.

서지한은 가볍게 혀를 차더니 이런저런 던전 공략에 대한 팁을 이야기해주었다.

조곤조곤 이어지는 낮은 목소리 속에서 나는 어느 순간 잠이 들었다.

* * *

서울의 한 고급 한정식집.

검은 세단 한 대가 그 앞에 미끄러지듯 주차했다.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정원 앞으로 차가 들어오자 기다렸다는 듯 점원이 달려 나와 깍듯하게 고개 숙였다.

점원은 이어서 굽실거리며 차 문을 열었다.

그러자 차 안에서 불혹이 넘은 남성이 담담하게 내렸다.

약간 작달막한 키와 주먹코, 전반적으로 볼품없는 외형이었으나 얼굴 가득한 오만함만은 특이했다.

“어서 오십시오. 모두 기다리고 계십니다.”

“내가 늦었군.”

자책하는 내용이었으나 남자의 말투는 전혀 달랐다.

오히려 기다린다는 말을 한 점원을 눈치 주는 것이었다.

성깔 하곤.

잠시 속으로 욕설을 내뱉은 점원이 이전보다 배는 속살거리는 태도로 웃었다.

“아닙니다, 다른 분들도 막 도착하셨습니다.”

점원의 말투에는 남자의 비위를 상하게 할까 두려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남자는 내로라하는 기업의 경영가였지만, 더러운 성격과 잔혹한 손속은 칼 밥 많이 먹은 조직폭력배보다 더했다.

“그래? 들어가지.”

“모시겠습니다!”

우렁차게 외친 점원이 CLOSED 간판이 걸린 문 안으로 남자를 안내했다.

이 한정식집은 정해진 회원들만 받는 고급 음식점이었다.

철저한 보안을 지키며 운영되고 있었는데, 그 보안 너머에서는 온갖 더럽고 불법적인 이야기가 오갔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겉으로는 늘 문을 닫고 있는 장사 안 되는 음식점일 뿐이니까.

“들어가시지요.”

점원이 자동문처럼 매끄럽게 문을 열자 고급스럽게 장식된 별실이 나타났다.

열리는 문 사이로 남자의 얼굴을 알아본 몇몇이 재빨리 일어나서 고개를 숙였다.

“먼저 먹고 계시지 않고.”

고개 숙이는 사람들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은 채 남자는 가만히 앉아있는 나머지 인물들에게 말을 건넸다.

바짝 긴장해서 눈치 보는 자들은 어차피 급도 안 맞는 잔챙이니 신경 쓸 필요 없다는 태도였다.

노골적인 무시를 눈치챘음에도 일어선 남자들은 도로 엉거주춤 앉을 뿐이었다.

“사장님 없이 먹는 밥이 무슨 맛이 있겠습니까. 오셨으니, 여기. 음식 내와라.”

콧수염을 기른 남자가 지시하자 점원이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물러갔다.

그 태도 사이에 있는 확연한 계급은 현재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의 국가라는 것을 무색하게 만들 만큼 강렬했다.

“그렇습니까?”

별 감흥 없이 대꾸한 ‘사장’이 자리에 앉자 금세 테이블이 진수성찬으로 채워졌다.

“그래, 다들 잘 지내셨습니까?”

"별일이야 있겠어요.”

음식이 나오는 동안 우아한 척하는 안부인사가 오갔다.

누군가 이 자리를 봤다면 경악했을 것이다.

한국을 좌지우지하는 업계 최고의 인물들이 모두 자리하고 있었으니까.

회 한 점을 집어 먹고 술잔을 두세 번 기울인 후, 본론으로 들어가도 괜찮다고 생각했는지 한 명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시신이 사라졌다고 들었는데……."

앉아 있기가 힘들어 보일 정도로 배가 나온 남자였다.

배불뚝이의 말에 콧수염이 ‘사장’을 흘긋 쳐다보았다.

“서지한 짓이겠죠.”

‘사장’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배불뚝이가 은근슬쩍 자신의 정보력을 자랑한 것이었는데 사장의 반응은 너무나 담담했다.

머쓱해진 배불뚝이가 헛기침을 하자 콧수염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렇게 뉴스를 많이 때렸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안 옵니다. 그 성격이면 억울하다고 펄떡거리면서 튀어나올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머리가 있는 놈인가.”

“그래 봤자 개돼지 아니겠습니까.”

‘사장’의 말에 한차례 테이블 위로 웃음이 쏟아졌다.

“그리고 제까짓 게 튀어나온들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걸 이미 아는 거지요. 여기 헌터 일보 사장님께서 그동안 길을 잘 들여 주셨어요.”

콧수염의 말에 배불뚝이가 으쓱해진 얼굴로 술잔을 기울였다.

“그래도 이렇게 수배 내렸으니 잡히는 것도 금방입니다. 애들한테 특별히 신경 써서 작업하라고 했어요.해외로 튀어도 해외에서도 협조 중이니 정보가 들어올 겁니다.”

"청장님이 잘 잡아주시면 이후는 제가 손수 기사 하나 잘 뽑아보겠습니다. 나머지는 다 받아 적을 테니, 여론 잘 타서 사형 정도 받는 건 일도 아닐 거예요.”

“그래 주시면 수월하지요.”

배불뚝이는 국내 최고의 언론사 헌터 일보의 사장이었고, 그에 맞춰 대작하는 콧수염은 경찰청장이었다.

절대 한 자리에 있어서는 안 될 것 같은 인물들이 모두 모여 있는 것이다.

“서론은 그쯤 하고, 오늘 모인 이유는 다들 아실 거라 생각합니다.”

가장 늦게 도착했던 ‘사장’의 말에 이야기를 나누던 입들이 모두 조용해졌다.

이 자리는 이들이 거대 길드에 심어둔 밀정들에게 각 길드의 동향을 듣고 앞으로의 계획을 이야기하기 위한 자리였다.

“준비는 다 됐나?”

‘사장’의 눈짓에 내내 기가 눌려 눈치만 보던 남자가 재깍 나섰다.

“물론입니다. 내일 바로 출발할 겁니다.”

“수상하게 여기지는 않았지?”

"전혀요. 던전 간다고 마냥 좋아 죽던데요.”

“죽어?”

“죄송합니다, 제가 말실수했습니다.아무튼 걱정하실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사장’의 앞에서 진땀을 흘리던 남자가 눈치를 살피는 듯 살짝 고개를 들었다.

그 모습을 탐탁잖게 바라보던 ‘사장’은 눈살을 찌푸리더니 손을 뻗어 남자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래, 잘하라고, 백광현. 이 건만 잘 끝내면 대한 길드에 자네 자리 만들어 놓으라고 해 줄 테니까.”

"가, 감사합니다. 은혜 받들어 꼭 실망시키지 않겠습니다.”

"뭐, 됐어. 큰 거 기대하는 것도 아니고.”

백광현은 제 어깨를 두드리는 통통한 손이 괴수의 손이라도 되는 것처럼 흠칫 흠칫 몸을 떨었다.

백광 길드.

애초에 이 길드를 만든 것도, 이 길드의 길드장이 된 것도 모두 눈앞의 ‘사장’이 설계한 것이었다.

때가 되어 필요해지면 써먹어주겠다는 ‘사장’의 말을 믿은 백광현은 기꺼이 이 자리를 맡았다.

능력도 별 볼 일 없고 던전을 공략할 전투력에도 미달되어 대한 길드에 가입조차 불가능했다.

하지만 각성 전에 다니던 회사에서 어떻게 소개를 받아 그저 굽실거리다 보니 운 좋게 여기까지 온 케이스였다.

말하자면 백광현은 이들의 입장에서 볼 때 ‘개돼지’쪽에 좀 더 가까운 신분이었지만 주제 파악을 잘한다는 호평을 받아 겨우 살아남았다.

그리고 드디어 때가 온 것이었다.

이번 일만 잘 마무리되면 지금까지 자신을 무시하던 잘 나가는 헌터 놈들에게 똑같이 되갚아줄 수 있다.

그런 희망으로 백광현은 버티고 있었다.

“하루살이들은 준비가 됐으니 이제 ‘서지한’만 준비하면 되겠군요.”

‘사장’의 말에 내내 조용히 앉아있던 남자가 대답했다.

“이미 던전에 들여보내 놓은 상태입니다.”

“빨라서 참 좋단 말이야.”

"감사합니다.”

‘사장’이 비릿하게 미소 지었다.

던전이 터진 후 세상이 바뀌었다.

각성자라는 신흥 세력이 생겨나 기존의 규칙을 무시하고 세상을 휘저어 댔다.

던전이라는 신대륙을 마치 자신들의 것처럼 종횡무진하는 헌터들의 모습은 이들의 입장에선 거슬리기 짝이 없었다.

싸움질이나 하는 깡패 같은 놈들이, 혈통도 연줄도 없이 그저 운으로 각성한 놈들이 안하무인 돌아다닌다고? 말도 안 되지.

가만히 앉아 있으면 점점 세력을 이룬 각성자들이 그들의 턱 끝까지 치받아 올 상황이었다.

이런 세태가 불편한 세력은 한둘이 아니었다.

헌터들이 본격적으로 세력화되기 전에 싹을 밟아버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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