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8화
만두를 우물거리는 사이 뉴스에서는 이번 사건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이 방송되고 있었다.
대부분 ‘그놈 언젠가 그럴 줄 알았다’라는 반응이다.
이렇게 서지한의 영혼석을 줍지 않았다면 나도 저 수많은 시민과 비슷한 반응이었을 것 같다.
그의 대외 이미지는 그만큼 최악이었으니까.
충왕류 던전에서 서지한에게 도움을 받고도 어리둥절해하지 않았던가.
유명인의 소문은 과장되기 마련이라지만 서지한은 뭔가 지나치게 헛소문이 많은 것 같다.
그리고 본인의 다소 난폭한 성격과 나쁜 상승작용을 일으켜서 해명하기도 힘들게 된 느낌?
- 너무 신경 쓰지 마. 어차피 한두 번도 아닌 일이야.
“예전에도 이렇게 누명 쓰는 일이 많았어요?”
- 응. 사칭하는 인간도 많고, 나를 질투해서 일부러 악소문 만들거나 사고 치고 내 이름 대는 놈도 많고.사람 패고 내가 시켰다고 하는 새끼도 있고.
“사람들이 그걸 다 믿어요?”
- 믿지.
“해명은 해봤어요?”
- 그걸 일일이 어떻게 다 해명해.천공 길드 시절에야 길드 차원 해서 대응해줬지만 지금은 뭐.
그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더니 말끔한 얼굴로 당당하게 말했다.
- 원래 대인배는 그런 사소한 거에 신경 쓰지 않는 거야.
나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그와 달리 소인배인 나로서는 이해할 수가 없는 경지다.
나는 얼마 전 우연히 인터넷에서 내 헛소문 몇 개를 발견한 것으로 밤잠도 못 이뤘는데.
- 뭐 뻔하지. 이 정도까지 일 크게 벌이는 거면 반서후겠지.
“천공 길드 길드장이요?”
- 응. 그 새끼. 내가 길드 탈퇴한 다음에 앙심이라도 품은 모양이더라고. 그 이후로 구린 일 하고 내 이름 팔아먹는 거 한두 번이 아냐.
“그걸 그냥 뒀어요?”
- 짜증 날 때마다 찾아가서 깽판은 좀 쳤는데.
“그럼 괜찮아졌어요?”
- 아니. 그냥 여전히 나는 개새끼로 남았지.
“이런.”
내 안타까운 목소리에 서지한이 후련하게 웃었다.
- 그래도 기분은 괜찮아지더라고.
뭐랄까, 서지한은 좋게 말해서 참 산뜻한 성격이고 나쁘게 말하면 무식하고 단순한 성격인 것 같다.
난폭하고 감정에 솔직하게 직선적으로 움직이면서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지만 반면에 뒤끝은 없는 타입?
당장 본인이 죽어서 유령이 되었는데 ‘어쩔 수 없지 뭐’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으로도 충분히 느꼈지만.
오지 않은 미래를 걱정하지도 않고 어쩔 수 없었던 과거를 후회하지도 않는 성격.
개인적으로 좀 부러운 성격이다.
나는 늘 오지 않은 미래를 불안해하며 이것저것 준비하고 꽤 자주 지난날을 돌아보며 후회하는 쪽이라서.
“그 반서후라는 사람이랑 그래도 꽤 친하지 않았어요? 어쩌다가 이렇게까지 틀어진 거예요?”
예전에 잠깐 성격차이 때문에 길드를 탈퇴했다고 듣긴 했지만 그걸로는 좀 부족한 감이 있다.
만약 살해 누명을 덮어 씌운 사람이 반서후라면 이건 단순히 틀어진 수준을 넘어서서 원한을 가진 것이다.
- 몰라. 그 새끼가 갑자기 앞으로 던전 보스 잡지 말자고 하더라고.
“왜요? 막무가내로 그러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 이유를 설명하긴 했지. 던전 보스를 다 잡아서 던전이 사라지면 다음 던전이 열릴 때 상황을 ‘통제’할 수 없다나? 안전을 위해서라면 던전 보스를 잡지 말고 구조대를 꾸릴 아이템을 얻을 수 있게 여력을 둬야 한다더군.
아무래도 방어계 헌터들은 안전에 대해 보수적이고 상황 변화를 싫어한다. 그런 부분에 있어서 서지한과 의견이 갈린 모양이었다.
- 어이없는 소리지. 다들 알고는 있지만 일부러 말 안 하는 사실을 하나 알려주지.
“뭔데요?”
- 처음에 던전이 열릴 때는 6개월에 하나 꼴이었어. 그리고 점점 그 주기가 짧아지더니 어느새 한 달반, 한 달이면 새 던전이 열리고 있거든?
“네.”
- 그리고 악령 왕 실라기스를 잡고 던전을 닫았더니 다음 던전이 열리는 시기가 원래 주기에서 며칠 늦춰졌어.
“음.”
- 그러니까 기존에 열려 있는 던전이 많을수록 점점 던전이 생기는 주기가 짧아진다는 거야. 즉, 던전 개수가 줄어들면 다음 던전이 열리는 주기도 늦춰진다는 거지.
신문 기사 어디에서도 이런 정보는 없었다.
실라기스 공략 후 던전 생성 늦춰져…….
뭐 이런 제목으로 하나 뜰만도 하는데.
“처음 듣는 이야기네요.”
- 그렇겠지. 만약 여론이 돌아서서 빨리 던전을 다 닫아버리자고 하면 던전 아이템을 얻을 수 없어지고 상황이 혼란에 빠질 테니까.
“그럼 반서후 씨는 아직 한 달에 한번 던전이 생기는 정도는 충분히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네요?”
- 그런가 봐.
한 달에 한번.
전 세계를 기준으로 보면 그렇게 큰 면적이 아닐지도 모른다.
실제로는 사람이 살지 않는 땅에 던전이 열리는 경우도 있으니 냉정하게 보자면 던전에서 얻는 아이템으로 인한 이득과 저울질했을 때 감당할 만한 위험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나는 쉽게 납득하기 힘들었다.
감정적인 이유였다.
내가 겪은 던전 생성은 모두 인구밀집 지역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거기에 빨려 들어간 사람이 어떤 공포를 느끼는지 나는 이미 실감해버렸다.
하나의 동이 빨려 들어가든, 하나의 빌딩이 빨려 들어가든 누군가가 갑자기 던전 안에 내던져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으면 했다.
하지만 반서후 같은 강한 헌터는 이런 공포를 공감하기 힘들겠지.
민간인이야 전투력 없고 탈출석 없어서 안에서 다 죽는다고 쳐도 반서후나 삼대 길드 출신 헌터처럼 힘 있는 사람들은 그렇게 죽을 일도 없으니 완전히 남 일이겠지.
어쩌면, 서지한의 말대로 악령 왕 실라기스 공략 이후로 던전을 계속 닫고 있었다면 내가 휘말렸을 충왕류 던전도 훨씬 나중에 열렸겠지.
열려 있는 던전이 전부 공략되었다면 던전이 아예 다시는 열리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고?
은은하게 달아오르는 분노에 속이 끓어오른다.
이 사실을 눈치채고 알리려고 한 헌터가 없었을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서지한도 분명 시도했겠지.
하지만 그 정도 고발은 손쉽게 막을 만한 거대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백광 길드를 언급하자 모조리 사라진 나의 인터뷰처럼.
와, 헌터 업계 진짜 싫다.
내가 환멸감에 빠져 있는 동안 서지한은 예전 추억이 떠오른 모양이었다.
오랜만에 옛날이야기를 해서 그런 것 같다.
- 그래도 예전에는 사이가 좋았는데.
“누구요? 반서후 씨요?”
- 응. 스킬 조합이 끝내주잖아. 전투 상성도 좋았고.
"흠."
- 사실 처음 같이 던전 공략을 다녔을 때부터 마음에 들었어. 개인용 방어 스킬도 있고, 타인에게 써줄 수 있는 방어 스킬도 있어서 몸 사릴 필요 없이 과감하게 공격할 수 있었거든. 막상 녀석은 내가 그러는 걸 싫어했지만……. 잔걱정이 많은 놈이었어.
뭔가 좀 이상하다.
상황을 통제하는 게 더 안전하니까 그렇게 한다고 했지?
근데 안전을 추구한다면서 민간인들을 한 달에 한번 수천 명씩 희생시킨다고?
앞뒤가 좀 안 맞는 거 아냐?
안전은 핑계고 그냥 민간인이야 어떻게 되든 상관없이 아이템 욕심부리는 거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다가도 한편으로는 또 다른 사실이 걸렸다.
아무리 사이가 틀어졌다고 해도 서지한이 무모하게 전투하는 걸 싫어할 만큼 걱정하던 사람이 이제 와서 살해 누명까지 씌운다고?
물론 관계가 끊어지면 누구보다 매정해지는 사람이 있긴 하지만…….
무언가 석연찮은 느낌이 좀 있다.
으음, 어차피 나는 반서후라는 사람을 잘 모르니까 혼자 생각해 봐야 소용없네.
그나저나 서지한은 단순히 강한 보스를 때려잡는 걸 즐긴 게 아니라 던전을 닫으면 세상이 좀 더 안전해진다고 믿어서 그런 거였구나.
생각지도 못한 이타적인 이유다.
새삼스러운 눈으로 그를 바라봤더니 그가 찜찜한 얼굴로 눈살을 찌푸렸다.
- 왜 그렇게 봐?
“제가 뭘요?”
- 뭔가, 기특하다는 눈으로 보고 있는 거 같은데.
“오, 눈치채셨군요.”
- 너 내가 너보다 나이 많다는 건 알고 있지?
“엑, 이제 와서 위아래 찾는 거예요?”
- 그게 아니라……. 근데 넌 대체 우리 관계가 뭐라고 생각하는 거냐.
갑작스러운 질문이다.
서지한도 별생각 없이 한 말이었는지 오랫동안 대답이 돌아오지 않자 약간 당황한 얼굴이었다.
그리고 점점 시간이 길어질수록 긴장하기 시작했다.
“우리 사이라……."
곰곰이 생각에 빠졌다.
흠.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 주제로군.
- 그냥 한 말이야. 잊어버려. 딱히 생각할 필요도…….
뭔가 주절거리는 그의 말을 끊고 나는 방금 정리한 결론을 말해주었다.
“세상에 이런 사이가 또 있을까요.내가 살면서 맺어왔던 모든 관계 중 가장 특별한 관계이자 유일무이한 관계죠.”
- 어, 어떤?
일부러 뒤를 질질 끌자 침을 삼키며 대답을 기다리는 게 느껴졌다.
진짜 놀리는 거 재밌단 말이야.
“채집물이랑 채집주요.”
그는 잠시 자신이 들은 말을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깜빡였다.
그리고 맥 빠진 듯 대꾸했다.
- 너무하네.
울적한 얼굴을 하곤 있지만 연기가 분명하다.
나는 웃으며 바로 덧붙였다.
“농담이고. 당연히 친구죠!”
- 네네, 그렇겠지요. 주인님.
“오냐.”
서지한은 역으로 나를 놀려보려고 했던 것 같지만 거만한 내 대답에 다시 할 말을 잃었다.
분위기가 좀 풀리긴 했지만 나는 서지한의 속마음이 신경 쓰였다.
뉴스에서 떠드는 누명이나 루머도 별로 개의치 않는 척하고 있긴 하는데, 과연 진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