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2화
솔직히 엄청 반가워할 줄 알았는데 약간 실망스러웠다.
그 감정이 얼굴로 드러났는지 대리님이 얼른 변명했다.
“아니, 모아 씨가 와서 좋긴 한데……."
말문을 흐리던 대리님이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자 차장님이 서류철을 턱짓하며 질문했다.
“이번에도?”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말을 들은 대리님의 얼굴이 팍 구겨졌다.
그리고 울컥한 얼굴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번에도. 이번에 들어오겠다고 온 헌터도 정말 등신이에요.”
"길드장님이 데려온 거 아니에요?”
"맞아요. 하, 길드장인지 등신 수집가인지 구분이 안 간다니까요. 대체 어디서 저런 다채로운 등신들을 찾아오는 건지. 혹시 스킬이 등신 수집가 뭐, 이런 거 아닐까요?”
오랜만에 만났지만 대리님의 입담은 여전하구나.
얼추 무슨 상황인지 알 것 같긴 하는데, 내가 끼어들 만한 문제는 아니라서 나는 잠자코 듣고 있었다.
“이런. 공략 참여는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본인은 자신만만하긴 하는데, 대미지 측정기는 F 랭크예요. F급 한 마리 잡는 수준? 근데 A급도 한 방에 잡을 수 있다고 큰소리를 얼마나 치는지. 죽고 싶어서 환장한 거죠. 헌터 죽으면 길드 신뢰도만 떨어지는데.”
차장님이 어색하게 웃으며 나를 눈짓했다.
아는 사람이긴 하지만 아직 길드 외부 사람인 내가 있는 자리에서 발언 수위를 조절하라는 뜻인 것 같았다.
하지만 대리님은 그 눈짓을 다르게 해석했다.
“그래, 모아 씨! 여기 가입하려고 왔다고요?”
나는 얼떨떨한 기분으로 그냥 고개만 끄덕였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요. 도망가요, 모아 씨. 여기는, 여기는 아니에요.”
“네?”
“혹시 다른 길드에서 가입 안 받아줘서 그래요? 그럴 리가 없을 텐데.모아 씨, 뉴스에서 그러던데 B급 몬스터 한 방이었다면서요.”
"아뇨, 천공 길드에서 가입하라고 찾아오긴 했는데……."
“먼저 찾아왔다고요? 대단하네. 왜 안 들어갔어요? 설마 우리 때문에?”
"그것도 있고, 좀 재수 없어서요.”
"아아. 알죠, 알죠.”
천공 길드의 태도는 꽤 유명한 모양이다.
나보다 먼저 길드 업계에 몸담은 사람들이니 이미 겪은 바가 있겠지.
“하긴. 근데 길드 어디를 가든 비슷할 거예요. 저도 여기 들어오기 전에는 마켓 관리자들만 봐서 헌터는 무조건 갑인 줄 알았는데, 어디든 슈퍼 갑은 따로 있더라고요. 그래도 어쩌겠어요. 던전 가려면 숙여야지.”
씁쓸하게 말한 대리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길드, 그렇게 좋은 곳은 아니지만 그런 이유라면 가입하는 것도 나쁘지 않죠. 나야 모아 씨 오면 환영이지. 안 그래도 헌터들이 엄청나게 탈퇴해서 길드가 휑해요. 처음에는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그럼, 가입 절차 준비 해올 테니까 회의실가 있어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차장님과 함께 회의실로 향했다.
그래도 탕비실은 빵빵한 모양인지 잠깐 자리를 비운 차장님이 과자와 마실 거리를 잔뜩 들고 돌아왔다.
회의실에 이렇게 둘이 앉아 과자를 먹고 있으니 정말 옛날 생각난다.
회사가 망하기 전 말이다.
두 달 남짓 된 일인데 무척 옛날 일 같은 기분이 들었다.
과자를 먹으며 차장님과 이런저런 근황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는데,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던 서지한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 여기 곧 망하겠는데. 사람이 없어.
“설마요.”
차장님의 시선을 피해 작게 웅얼거리며 대답하자 그가 팔짱을 꼈다.
- 으음, 보면 알겠지.
잠시 기다리자 밖이 약간 소란스러워졌다.
그리고 회의실 문이 열리더니 두 사람이 들어왔다.
대리님과 훤칠한 외모의 중년 남자였다.
“이쪽은 백광현 길드장님이고, 여기는 손모아 헌터예요.”
내키지 않는 얼굴의 김 대리님이 소개하자 그가 볼우물이 패도록 활짝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이야, 만나서 반갑네. 지금 한국에서 제일 유명한 헌터 아닌가.”
너스레를 떠는 모습이 헌터나 길드장이라기보다 그냥 동네 아저씨 같다.
어라, 내가 생각하던 길드장의 이미지와는 너무 다른데.
“천공 길드를 걷어차고 우리 길드에 왔다는 이야기 들었다네. 보는 눈이 있구먼!”
내가 엉겁결에 손을 잡고 악수하는 사이 서지한은 날카로운 얼굴로 길드장을 탐색하고 있었다.
가늘게 뜬 눈으로 길드장을 꼼꼼히 뜯어보던 그가 흥미로운 어조로 말했다.
- 엄청 약한데? 너도 이길 수 있는 수준이야.
사실 악수를 했을 때 느꼈다.
악력이 형편없는 수준이라고.
그래서 마력계 헌터인가 싶었는데 그것도 아닌 것 같다.
마력 능력치가 개화한 뒤 나는 어느 정도 상대의 마력을 알아볼 수 있게 되었는데, 이 길드장에게는 그것도 거의 없었다.
- 제작계도 아닌 것 같은데, 특이하군.
특이하긴 하다.
- 이렇게 전투력이 약한데 어떻게 길드장씩이나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네.
그의 말에 동의한다.
나만 해도 전투능력이 없어서 이용당할까 봐 각성 사실도 제대로 못 밝히지 않았던가.
“지금은 우리 길드가 작지만 결국 대성할 수 있을 거네. 천공이나 대한 길드도 함부로 못 하게 될 거야.왜냐면, 나에게는 인재를 알아보는 눈이 있기 때문이지. 우리 열심히 해서 대한 길드를 짓밟고 일인자가 되어보세! 손모아 헌터에게도 아주 기대가 커!”
갑자기 뜨거운 열정을 쏟아내니 좀 황당하긴 하는데 나에게 기대가 크다는 말이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는 대리님이 티 나지 않게 고개를 살짝 젓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비록 지금은 공략 허가를 못 받고 있어서 길드가 힘든 시기이지만, 우리 힘을 합쳐서 잘 넘겨 보세나.”
그렇게 말한 길드장은 혼자 기세를 올리더니 일정이 있다며 회의실을 나가 버렸다.
그리고 우리 세 사람만 덩그러니 회의실에 남게 되었다.
잠시 길드장이 멀어지는 것을 기다리던 대리님이 한숨을 푹 내쉰다.
“또 저러네. 저거 믿지 마세요. 나랑 차장님도 저 말에 속았잖아요.실상은, 이 길드 1년이 넘었는데 아직 던전 공략 허가가 한 번도 안 났어요.”
만들어진 지 1년이나 되었는데 던전 공략 횟수가 0회.
정확히는 공략 ‘허가’가 0회라는 것은 생각보다 심각한 소리다.
이전에는 그래도 인원수만 맞추면 사설 공략 허가를 잘 내주는 편이었지만 최근 들어서는 그런 사설 공략이 아예 없어졌다.
던전 관리청에서 공략 허가를 모두 길드에만 내어주고 있는 실정이라, 길드에 가입하지 못한다는 건 던전에 가지 못한다는 것과 동의어가 되어 버렸다.
그런데 그 길드에도 공략 허가를 안 내준다는 건 길드로서 제대로 인정을 못 받고 있다는 소리나 다름없다.
그렇다면 사실상 여기는 길드도 뭣도 아니었다.
서지한이 무언가 생각하더니 눈살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 아마 앞으로도 던전 공략 허가는 안 나올 가능성이 높아. 결국 대한 길드가 던전 관리청을 장악해버린 것 같은데.
문득 그가 조금 전 비행기에서 말한 길드 간의 알력 다툼이라는 말이 생각났다.
대강 돌아가는 상황을 알 것 같다.
한국에 있는 던전은 총 여섯 개.
그리고 길드는 세 개.
공교롭게도 딱 한 길드에 던전 2개씩 맞아떨어지는 숫자 때문에 현재 헌터 업계는 기묘한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최초의 던전 생성 폭발을 제외하면 사실 던전은 일반인들에게는 크게 위험한 것이 아니었다.
그 순간만 지나가면 던전은 막대한 던전 부산물을 창출해내는 자원 광산이 된다.
인간의 과학 수준으로는 불가능한 것들을 던전 아이템으로는 쉽게 할 수 있다.
던전 아이템을 얼마나 보유하고 있는지, 얼마나 강한 헌터를 데리고 있는지가 국방력의 지표로 여겨지는 세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런 현실에서 던전 공략이 가능한 헌터를 많이 보유하고 있는 길드는 자연스럽게 권력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그 권력으로 던전 공략권을 장악하면, 던전 공략을 위해 헌터들은 더욱 길드로 몰려들게 된다.
효율을 위한다는 교묘한 논리 아래에 길드의 힘은 점점 강대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힘은 언론과 법, 사회 전반을 주물럭거리고 있다.
백광 길드에 던전 공략 허가가 떨어지지 않는 것은 결국 이 영향이겠지.
“사실 우리 길드장, 대한 길드에서 나왔잖아요. 그때 밉보인 탓에 이렇게 된 것 같은데. 아무래도 공략 허가는 안 나올 가능성이 높으니 모아 씨도 다른 곳 알아보는 게 좋겠어요.”
내 추측을 짐작하는 듯 차장님이 조용히 말했다.
김 대리님도 마찬가지 의견인지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쳤다.
“길드장 말로는 던전 관리청에 아는 사람이 있으니 곧 공략 허가가 나올 거라는데, 그 말만 벌써 몇 달째인지. 게다가 허가가 나온다고 해도 공략 팀을 제대로 꾸릴 만한 헌터가 없어요. 그럭저럭 쓸 만한 헌터들은 잠깐 가입했다가 다른 길드로 빠져나가 버려서……."
확실히, 던전 공략을 하지 못한다는 건 길드로서는 치명적인 단점이다.
하지만 내게는 아니었다.
던전에 정 가고 싶으면 몰래 들어가면 그만이니까.
그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다.
“두 분은 여기 계속 계실 거예요?”
내 질문에 두 사람은 의미심장하게 미소 지었다.
“여기 돈 꽤 많이 주거든요. 대신 헌터들이 안 와서 일은 없고. 딱히 그만둘 이유가 없으니 계속 다니려고요. 사택도 주고.”
“저도 그래요. 그냥 다니긴 나쁘지 않은 곳이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저도 여기 가입하죠, 뭐. 어차피 큰 길드 가입해서 거창하게 활동하고 싶은 생각도 없어요. 피곤하기만 하지. 길드 가입하려고 한 것도 언론사 피하려고 그런 거예요.”
"아아, 그럼 여기가 딱이네. 우리 길드, 이상할 정도로 언론에서 외면하거든요.”
확실히 좀 심할 정도긴 하다.
대한 길드에서 나온 사람이 차렸다든가, 길드장이 약하다든가 이래저래 가십거리가 될 만한 부분이 상당히 많은데 이상할 정도로 언급이 없다.
마치 아무도 모르는 사이 해체해서 사라지기를 바라는 양.
언론이 그렇게나 외면하는 길드라면, 나도 이 길드에 편승해서 무관심한 평화를 누려볼까.
“그럼, 여기 헌터 계약서에 서명해요.”
나는 김 대리님이 내민 헌터 계약서를 받아 들었다.
그리고 조금 당황했다.
서너 장이 넘던 천공 길드와 달리 백광 길드의 계약서는 딱 한 장짜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