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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5화
휴대폰에서는 한창 한국의 생방송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타이틀은, 〈긴급 편성. 괌 던전 생성 폭발〉이다.
〈속보로 전해드린 손모아 헌터의 소식, 현지 기자 통하여 만나보시죠. 연결하겠습니다. 구아미 기자?〉
〈네, 구아미 기자입니다. 괌 지역뉴스는 늦은 시간인데도 불구하고 손모아 헌터의 이야기로 뜨겁습니다. 현지 분위기가 매우 궁금하실 텐데요. 여기, 한국인 생존자의 인터뷰를 준비했습니다.〉
머리가 반쯤 벗어진 중년 남성에게 마이크가 향했다.
안면이 있는 사람이다.
아까 탈출 게이트로 들어가던 때 봤었지.
〈……그래서 이제 꼼짝없이 죽었다고 생각했는데, 그 곰이 한 방에 쓰러진 겁니다. 다 놀랐죠. 말도 못 해요. 그런데 정작 본인은 ‘내가 한 거 아니에요’이러더라고요. 얼마나 겸손한지. 진짜 내가 큰 목숨의 빚을 졌습니다. 꼭, 꼭 감사하다고, 이뉴스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가족들도 정말 감사하다고…….〉
뉴스 영상은 인터뷰가 너무 길었던 모양인지 대충 중간쯤에서 인터뷰를 자르고 스튜디오로 돌아왔다.
나는 홀린 기분으로 영상을 보고 있었다.
이거, 꿈 아니지?
〈정말 뜻밖의 국위선양 소식이라 반갑기 그지없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사망자가 0명이라는 것인데요.지금까지 던전 생성 폭발에서 사망자가 없었던 적은 없지 않습니까?〉
아나운서의 말에 아직 연결되어 있던 구아미 기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맞습니다. 역사상 전례 없던 일입니다. 덕분에 현지는 공항이 반파되었는데도 축제 분위기입니다.〉
〈게다가 생존자의 증언으로는 B급 몬스터를 한 방에 처리했다고 했는데. 이 말이 사실이라면 상당한 강자의 등장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한국으로서도 반가운 소식입니다.〉
〈그럼, 이쯤에서 현지 기자 연결 종료하겠습니다. 구아미 기자, 감사합니다.〉
화면 한쪽에는 생방송이라는 알림이 깜빡이고 있었다.
연결이 종료된 후 스튜디오에 있던 패널이 문서를 뒤적이다가 입을 열었다.
〈손모아 헌터. 특이한 이력이 있는데요.〉
〈무슨 이력인가요?〉
〈최근 한국에서 발생한 던전 생성 폭발에 휘말렸다가 생환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짧은 사이에 두 번이나 던전에 휘말린 것이군요. 그럼 각성은 그때 했다고 추측할 수 있겠네요.〉
다행히 불규칙 균열에 휘말린 사실은 들키지 않은 모양이다.
아나운서는 내가 그때 각성했다고 거의 확신하는 말투였다.
하긴, 이제 와서 발뺌할 수도 없다.
엄마에게 ‘나 각성자야’하고 괌 던전에 뛰어들었으니.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그 폭발 이전까지는 평범한 직장인이었다고 하는군요.〉
〈그렇군요. 그리고 괌 정부 측에서 손모아 헌터의 신병을 보호하며 취재 금지 요청을 했다고 들었는데요.〉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가족여행을 떠난 도중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이라, 손모아 헌터도 그렇고 그 가족도 몹시 놀랐을 테니 배려하는 차원에서 기자들의 접촉을 막고 있는 상태입니다.〉
〈그래도 귀국 후에는 인터뷰가 가능하겠지요?〉
〈그렇습니다. 공항 취재팀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부디 성공적인 취재가 되길 바랍니다. 그럼, 다음 뉴스로 넘어가시죠. 괌 공항의 폐쇄로 인해 예정되어 있던 항공편이 긴급하게 인근 섬인 팔라우로…….〉
그쯤에서 승주가 뉴스를 끊었다.
그리고 화면을 바꿔서 다시 내밀었다.
“이것 봐. 기사도 떴어!”
정말이다.
〈속보〉 괌 공항 던전 생성 폭발로 폐쇄. 피해자 전원 귀환.
기사를 클릭해서 들어가니 댓글 창은 난리가 나 있었다.
kang**** 06:51:03
갓모아 갓모아 갓모아 갓모아 갓모아 갓모아 갓모아 갓모아 갓모아 유은담 보고 있냐
답글 1 ⇧ 76 ⇩ 44
↳ rain**** 06:52:04
유은담한테 비비는 건 무리수임.
⇧ 6 ⇩ 3
drop**** 06:53:09
국뽕 한 사발 먹고 갑니다. 총총총
⇧ 44 ⇩ 23
aki**** 06:54:08
자랑스러운 대한의 딸! 장하다!
⇧ 36 ⇩ 8
kang**** 06:55:00
내 동년배들 다 갓모아 좋아한다.
⇧ 4 ⇩ 2
xue**** 06:56:02
그래 봤자 신인 헌터인데 너무 띄워주는 거 아님?
답글 2 ⇧ 82 ⇩ 89
↳ zho**** 06:57:04
응 아냐.
⇧ 26 ⇩ 2
↳ mei**** 06:57:46
네 다음 열폭.
⇧ 7 ⇩ 0
bae**** 06:50:04
어느 길드 들어가려나.
⇧ 8 ⇩ 2
bul**** 06:59:45
나만 불편함? 이름도 그렇고. 너무 노린 거 같음. 스타 헌터 만들려고 억지 스토리 짜는 거 아님?
답글 2 ⇧ 29 ⇩ 12
↳ lel**** 07:01:52
ㅇㅇ 나도 동의
⇧ 1 ⇩ 0
↳ daaa**** 07:50:04
던전 생성 폭발 언제 날 줄 어떻게 알고 헌터를 미리 파견시킴? 병원 가세요. 말이 됨?
⇧ 11 ⇩ 3
rub**** 07:40:04
팔자 폈네. 부럽.
⇧ 15 ⇩ 3
눈이 핑핑 도는 느낌이다.
댓글을 모두 읽고 고개를 들자 서지한이 씩 웃었다.
- 내가 말했지? 성공적인 데뷔라고.
웃는 서지한과 달리 나는 몹시 심란한 기분이었다.
손모아 헌터라고 불러줄 때 까지가 딱 좋았는데.
뉴스에 기사에.
일이 너무 커지고 있는 거 아닌가?
그리고 취재는 뭐야?
“이거, 한국에 있는 사람들이면 다 봤겠지?”
“당연하지. 내 폰으로도 문자 엄청 왔어.”
승주의 말에 나도 뒤늦게 내 휴대폰이 생각났다.
그러고 보니 던전에서 나온 후 한 번도 확인을 안 했다.
“근데 누나, 언제부터……."
“나 잠깐 화장실 좀.”
슬슬 이것저것 질문하려고 시동을 거는 승주를 내버려 두고 나는 도망치듯 화장실로 들어왔다.
정확히는 욕실이다.
금 도금한 욕조와 고급스러운 회색 타일이 무척 근사한데, 지금 중요한 건 이게 아니지.
휴대폰을 꺼내서 보니 쌓인 메시지가 꽤 많았다.
대부분은 ‘야, 이거 너야?’하고 기사 링크와 함께 묻는 친구들의 것이었다.
빼곡한 메시지 목록만 봐도 현기증이 나는 기분이라 나는 일단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 바로 대답할 필요 없잖아. 안색이 안 좋아.
“맞아요.”
사실 지금 반쯤 패닉인 상태다.
이런 때일수록 뭔가를 말하는 데 주의해야 한다.
언제 어떻게 말실수를 할지 모르니까.
- 가져온 아이템이나 마켓에 판매하지.
서지한이 언급한 덕분에 나는 그제야 잊고 있던 인벤토리를 떠올렸다.
사실 던전을 나오는 대로 아이템을 마켓에 올려놓을 생각이었는데, 이만큼이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면 그건 별로 좋은 행동이 아니다.
게다가 내가 한 나절 내내 던전에서 채집해온 아이템은 일반적인 수준을 한참 웃도는 수량이다.
판매하는 즉시 눈에 띄고 말 거다.
“지금은 그러면 안 될 것 같아요.”
- 왜?
“제가 충왕류 던전 다녀온 것도 알고 있으니 루터라는 이름으로 충왕류 던전 아이템이랑 수왕류 던전 아이템이 올라오면 바로 들킬 것 같은걸요.”
손모아라는 헌터가 괌의 수왕류 던전에서 출입한 후 대량의 수왕류 던전 아이템이 루터라는 이름으로 마켓에 등장한다?
게다가 그 이전에 충왕류 던전에서 얻을 수 있는 s급 에비타니스의 핵이 대량으로 공급되었는데, 손모아 헌터가 그 던전에도 출입했다?
어라 루터가 올린 아이템과 던전 출입이 겹치네?
이 정도는 누구라도 생각할 수 있는 추측이다.
이건 정말 확실한 정황 증거가 되겠지.
하지만 서지한은 고개를 저었다.
- 그러진 않을걸. 마켓 품목 전부를 모니터링하는 게 아닌 이상, 루터라는 이름의 판매자가 무슨 아이템을 판매했는지 일괄적으로 확인할 방법은 없어. 그저 단편적으로 알 수 있을 뿐이지.
듣고 나니 그럴듯했다.
하긴, ‘이 판매자가 지금까지 판매한 아이템’을 보는 기능 같은 건 없으니까.
하지만 그래도 좀 불안하긴 하다.
품목이 너무 겹치잖아.
“그래도 마켓 중개회사에서 헌터 마켓을 보고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아.잠깐, 물어보고 싶은 거 있어요.”
- 뭔데?
이쯤에서 확인해야 할 중요한 것이 있다.
“서지한 씨 마켓 닉네임이 혹시‘나이프’예요?”
서지한이 악령류 던전을 다녀오면 나이프라는 이름으로 악령류 던전 아이템이 올라오고.
충왕류 던전을 다녀오면 충왕류 던전 아이템이 올라오곤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모두 나이프가 서지한이라고 추측하고 있었다.
아무리 판매자별 추적이 안 된다고 해도 이만큼이나 투명하게 시기가 겹치면 아무래도 심증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실 내가 닉네임이 탄로 날 거라고 걱정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나이프가 서지한이 아니라면 사람들의 추측이 신빙성이 없다는 뜻이니 크게 걱정할 필요가…….
- 응. 나이프가 나야.
야. 서지한.
나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진짜 어처구니가 없다.
“아니, 본인 닉네임부터 이미 들킨 사람이 안 들킬 거라고 말해도 신뢰가 안 가요.”
- 으음. 그것도 그렇군.
서지한은 순순히 납득했다.
그러더니 다른 방법을 제안했다.
- 그러면 아이템 세탁을 해. 나는 귀찮아서 안 하는 짓이지만 너는 사정이 좀 다르니까.
“아이템 세탁이요? 그, 돈세탁이나 뭐, 그런 거예요?”
- 비슷하지.
귀가 솔깃해지는 단어다.
흥미를 보이는 나에게 서지한이 입을 열었다.
- 헌터 마켓에서 닉네임이 노출되는 건 거래를 등록한 사람뿐이야. 그러니까 특정 아이템을 구매하려고 공고를 등록하거나 판매할 아이템을 등록한 사람만 노출되는 거지. 등록된 거래에 대가를 지불하는 사람의 이름은 남지 않아.
하긴, 그랬던 것 같다.
S급 에비타니스의 핵을 판매했을 때도 얼마에 팔렸는지 판매 이력을 확인할 수는 있었지만 누가 사갔는지는 알 수 없었다.
- 아이템 세탁은 이런 맹점을 이용해서 하는 거지. 헌터 마켓은 물물교환이 되잖아? 네 아이템을 원하는 구매 거래를 찾아서 대가가 무슨 아이템이든 교환한 다음, 그 아이템을 되파는 거야.
오, 괜찮은 것 같다.
“이런 방법을 알고 있으면서 왜 안 했어요?”
- 딱히, 할 필요 없잖아.
참 직진만 하는 사람이다.
하긴, 이런 식으로 아이템 세탁을 하는 헌터들이 많다면 정상적인 거래와 뒤섞여서 닉네임과 특정 헌터를 연관 짓기 힘들 만도 했다.
게다가 던전을 다녀왔다고 바로 모든 던전 부산물을 마켓에 올리지도 않을 테니.
본인이 사용하려고 가지고 있다가 필요 없어지면 한참 나중에 마켓에 등록하기도 하겠지.
가격이 오를 때까지 기다리는 사람도 있을 것 같고.
그런 부분을 생각하면 확실히 던전 공략 시기와 판매 아이템이 마켓에 등록되는 시기만으로 특정 헌터를 추측하는 건 억측에 가깝다는 서지한의 말도 이해된다.
물론 서지한처럼 지나치게 정직하게 마켓을 이용하는 바람에 닉네임이 완전히 탄로 난 사람도 있지만.
음, 한편으로는 이렇게 투명한데도 다들 심증만 가졌지 확신은 못했지?
게다가 아까 뉴스에서는 내가 최근 충왕류 던전 생성 때 각성한 것으로 추측되고 있었는데.
사실 나는 그 이전에도 루터라는 이름으로 아이템을 판매한 적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