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32화 (32/231)

032화

다치고 두려움에 떨고 있는 이 사람들을 내버려 둔 채 나와 승주만 떠나는 건 도저히 못 하겠다.

B급 몬스터의 마석 가격이 어마어마한 건 알고 있지만, 여기 있는 사람들의 목숨만큼 비싼 것은 아니지.

그렇다고 기약 없는 구조팀을 기다리기에는 일분일초가 급했다.

당장 치료받지 못하면 죽을 만큼 다친 사람도 많았으니까.

이게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최선이다.

“이리로 오세요.”

영어로 말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지만 사실 이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내가 마석을 들어 올려 보여주자 넋을 빼고 있던 사람들이 그제야 서둘러 뛰어왔다.

다친 사람은 부축을 받아서, 멀쩡한 사람은 주변에 쓰러진 사람을 챙겨 하나 둘 모여들었다.

워낙 상황이 빨리 수습되어서 그런지 다행히 죽은 사람은 없어 보였다.

심각하게 물리거나 할퀴어져서 피를 쏟는 사람들은 있지만.

사람들이 충분히 가까워졌다 싶어 나는 망설임 없이 마석을 으스러뜨렸다.

강렬한 빛과 함께 탈출 게이트가 만들어졌다.

“들어가세요.”

게이트를 손짓하며 팔을 흔들자 대충 뜻을 알아들은 사람들이 연신 온갖 언어로 감사인사를 하며 게이트에 뛰어들었다.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로 다친 사람들은 내가 직접 부축하며 게이트 안으로 넣어주었다.

“누나……."

사람들을 탈출시키고 있으니 뭔가 할 말이 많은 표정으로 승주가 다가왔다.

하고 싶은 말이 많겠지만 지금은 적절하지 않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나중에. 지금은 어서 나가. 이거 오래 열려 있는 거 아니야.”

"누나는?”

“나는 사람들 다 탈출시키고 나갈게. 충분하니까 걱정하지 말고.”

"하지만……."

나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승주를 번쩍 들어서 게이트 안으로 밀어 넣었다.

놀란 승주가 팔다리를 휘저으며 누나, 누나 외치다가 사라졌다.

마침내 모든 사람들이 다 떠나고 나는 홀로 남았다.

금방 꺼질 듯 깜빡거리는 게이트를 보며 서지한이 의아하게 나를 돌아보았다.

- 안 가?

서지한은 조금 웃고 있었다.

나는 크게 심호흡하며 손바닥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손이 너무 차가웠다.

- 왜 그래? 아, 아까 한 말 부끄러워서 그래? 그건 진짜 역대급이었지. 오늘이 전투계 헌터 데뷔전이나 마찬가지인데 명대사 하나 생겼군.아까 한국인도 있던데 인터뷰할 때 네가 한 말하지 않을까?

신이 난 서지한이 나를 놀렸다.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어서 그가 무슨 표정인지 볼 수 없지만 안 봐도 훤하다.

목소리에는 감출 수 없는 장난기가 가득 묻어 있었다.

그 가벼운 목소리를 듣고 있으니 긴장하고 있던 다리에 힘이 풀렸다.

내가 갑자기 허물어지듯 바닥에 주저앉자 그제야 뭔가 이상한 것을 감지했는지 그가 깐족거리던 것을 멈췄다.

- 왜 그래? 안 나가? 뭔가 문제 있어?

서지한의 목소리에는 어렴풋한 걱정이 묻어 나왔다.

나는 숨을 가다듬었다.

“잠시, 잠시만요. 이 상태로 엄마를 만날 수는 없어요.”

얼굴을 쥐고 있던 손을 떼어내 내려다보았다.

차갑게 굳은 손이 뒤늦게 벌벌 떨리고 있었다.

손뿐만이 아니다.

얼음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온몸이 떨렸다.

모든 상황이 지나가고 나자 비로소 잊고 있던 두려움이 찾아왔다.

잘 해결되긴 했지만, 죽을 뻔했다.

승주가 다친 것을 보고 분노로 두려움을 몰아내긴 했지만 무섭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이만하면 충분히 견뎌냈다고 판단했는지 놀란 몸이 뒤늦게 무너지는 것 같았다.

“조금만 가라앉히고…… 이렇게 떠는 상태로 엄마를 만나면 분명 걱정할 테니까.

조금만 진정하고 나가자.

머리 위로 말 없는 서지한의 시선이 느껴졌다.

시야 가장자리에 투명한 손과 발끝이 보였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그 움직임에서 나는 어쩐지 그가 안절부절 못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서지한이 그럴 리가 없는데.

그 순간 투명한 팔이 내 몸에 둘러지는 것이 보였다.

당연히 감촉은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뒤늦게 그가 나를 감싸 안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어서 귓가에 나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 잘했어. 손모아. 정말 잘했어.

그 말에 갑자기 약간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 울면 분위기가 이상해질 것 같아서 나는 열심히 참았다.

그리고 몇 분 정도가 흘렀다.

근데 언제까지 안고 있을 생각이지?

물론 감촉 같은 것은 없다.

그냥 서지한도 허공을 안고 있는 느낌일 거다.

슬쩍 고개를 들자 굳은 얼굴의 서지한이 보였다.

그도 무척 당황하고 있는 것 같았다.

왜 당황하고 있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다.

지금까지 본 바로는 평소에 누구를 안아주거나 하는 성격은 아닌 것 같은데 스스로도 언제 포옹을 풀어야 하는지 타이밍을 못 재고 있는 것 같다.

솔직히 좀 놀리고 싶지만, 칭찬이 고마워서 한 번만 봐준다.

나는 서지한을 무시하고 자리를 털며 일어났다.

나를 안는 자세로 굳어 있던 투명한 팔이 내 몸을 그대로 통과했다.

멋쩍은 듯 자세를 푼 서지한이 매우 어색한 얼굴로 헛기침을 했다.

아주 작게, ‘내가 왜 그랬지’하는 목소리도 들렸다.

역시, 평소에 누굴 안거나 하는 성격이 아니었구나.

이쯤에서 화제를 좀 돌려볼까.

솔직히 나도 좀 어색하고.

“으으. 그나저나 왜 힘 조절하라고 했는지 알겠어요. 지금 또 쏘라고 하면 못 할 거 같아요.”

내내 괜찮은 척했는데 사실 눈앞이 어질어질하다.

충왕포를 쏜 이후에는 너무 놀라고 긴장해서 몰랐는데 온몸의 기운이 다 빠진 느낌이었다.

두 번 쓰라고 하면 못 쓸 것 같다.

- 좀 기다리면 회복될 거야. 그런 단일 공격용 포격 마법은 자주 쓸 수 있는 기술이 아니야. 너처럼 모든 마력을 다 쏟아부어서 한 방을 때렸다면 더욱.

"으음."

- 진정됐으면 이제 나가는 게 어때?

그렇게 말한 서지한이 날카로운 눈으로 사방을 잠시 훑었다.

- 슬슬 다시 모여들고 있어.

그 말대로 잘 보이지는 않지만 저 멀리서 나뭇잎이 불길하게 흔들렸다.

간혹 작은 그림자도 보였다.

하지만 아직 꽤 멀리 떨어져 있어서 시간적인 여유가 좀 있었다.

“기다리면 회복된다고 했죠?”

흐리던 눈앞이 회복되고 점점 체력이 돌아오고 있었다.

저것들이 근처까지 올 무렵에는 그래도 꽤 상태가 괜찮아질 것 같다.

- 그래.

“써보고 싶은 스킬이 하나 더 있어요.”

이런 기회는 흔치 않다.

생각해보니 앞으로의 헌터 생활을 위해서라도 이왕 던전에 들어온 김에 모든 기술을 확인해두는 게 좋을 것 같았다.

- 그것도 나쁘지 않지. 하지만, 괜찮겠어?

“괜찮아요. 여차하면 도망가면 되고.”

나는 인벤토리에서 1인용 탈출석을 꺼내 들었다.

상황이 나쁘다 싶으면 바로 움켜쥐어서 부숴버릴 생각이었다.

잠시 기다리자 나무 사이로 몬스터들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몇 마리나 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꽤 많은 숫자였다.

놈들이 충분히 가까워졌다 싶은 순간, 나는 다른 스킬 하나를 시전 했다.

충왕뇌우.

이마가 확 뜨거워졌다.

보이지는 않지만, 아마 충왕 케르기스가 스킬을 쓸 때도 그랬듯 내 머리 위에 빛의 형태로 에너지가 모여들고 있겠지.

탈진하지 않도록 주의하며 어느 정도 수준까지 기운이 모였을 때 최대한 넓은 범위로 스킬이 시전 되도록 유도했다.

두 번째라 그런지 그래도 처음 쓸 때보다는 꽤 나았다.

충왕포를 썼을 때와 달리 대충 어떻게 컨트롤하는지 감이 좀 잡혔다.

이마에 모여든 기운이 하늘로 솟구치더니 사방으로 넓게 퍼져 낙뢰처럼 쏟아졌다.

귀가 따가운 폭음이 빗소리처럼 울린다.

스킬의 시전이 끝난 후, 스킬 범위 안에 살아 있는 몬스터는 하나도 없었다.

- 괜찮군. 몸은 어때?

“견딜 만해요.”

사실 약간 기절할 것 같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았으니까.

내가 몸을 추스르며 걷기 시작하자 의아한 얼굴로 따라붙었다.

그리고 걱정 어린 말이 이어졌다.

- 상태 별로 안 좋아 보이는데, 슬슬 돌아가지.

“아직요.”

그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나도 그를 이해할 수 없었다.

“루팅 해야죠.”

다 잡아놓고 그냥 가는 게 말이 돼?

- 괜찮겠어?

서지한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있다.

거울을 보지 않아도 내 안색은 처참할 것이 분명했다.

입안의 침은 다 말라버린 듯하고 눈앞은 가물가물 흐려졌다.

대충 이틀 연속 철야했을 때의 몸상태 같네.

탈진하지 않게 힘을 조정한다고 하긴 했는데 생각처럼 잘 되지 않았던 것 같다.

“버리고 갈 순 없잖아요. 이게 다 얼만 데.”

대충 대꾸하며 루팅을 하려고 걸어가는데 다리가 사방팔방을 헛디뎠다.

결국 앞으로 쓰러지기도 하고 반쯤 기듯이 움직였더니 따라오던 서지한이 잡아주려는 듯 손을 내밀었다.

물론 서지한의 손은 나를 그대로 통과했다.

제 손을 잠시 내려다본 그가 짧게 한숨을 내쉬더니 체념한 듯 말했다.

- 돌부리 조심해.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죽은 몬스터에게 팔을 뻗었다.

채집 스킬이 켜진 황금빛 손이 작은 곰의 몸에 닿자 시체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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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왕류의 가죽(등급: F)x1 획득

수왕류의 발톱(등급: F)x16 획득

수왕류의 고기(등급: F)x1 획득

수왕류의 마석(등급: F)x1 획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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