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0화
폭발음과 함께 앞쪽에서 후끈한 바람이 불어 닥쳤다.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간신히 눈을 뜨자 책상과 집기, 의자가 잡동사니처럼 마구 엎어져 있는 모습이 보였다.
입국심사장 건너편에서 터져 나온 강력한 충격파가 가구와 사람을 가리지 않고 모조리 쓰러뜨린 것이다.
머릿속이 새빨개지는 것 같았다.
다급하게 옆을 둘러보니 엄마가 앉아 있던 의자에 깔려 신음하고 있었다.
“엄마!”
나는 얼른 의자를 치워버리고 엄마를 끌어냈다.
꽤 무거운 4인용 철제 의자였지만 묵시의 청금석 반지 덕분에 어렵지 않게 들어 올릴 수 있었다.
엄마는 정신이 없는 표정이었다.
나도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서지한은 침착했다.
- 빨리 나가야 해. 던전 생성 폭발이다. 여기는 무너질 거야.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천장에서 불길한 소리가 들렸다.
벌써 반쯤 잘라 먹힌 입국심사대 복도 너머에서 뼈를 드러낸 철골이 천천히 기울어지고 있었다.
건물 일부가 던전 안으로 빨려 들어간 탓에 구조를 유지하지 못하고 쓰러지고 있는 것이다.
“엄마! 엄마, 어서 일어나.”
"어, 어?”
이를 악물고 엄마를 일으켜 세웠지만 엄마는 너무나 갑작스러운 상황이라 넋이 나가버린 것 같았다.
아무리 잡아끌어도 제대로 달리지 못하기에, 나는 결국 엄마를 번쩍 안아 들고서는 반대편으로 냅다 뛰었다.
던전 생성 폭발로 인한 충격파가 연쇄적으로 터져 나왔다.
다행히 미숙 아주머니는 벌써 앞에서 뛰고 계셨다.
사방에는 무너진 콘크리트와 건물 잔해에 깔린 사람들이 신음하고 있었다.
나는 엄마를 안고 달리면서도 중간중간 무너진 건물 파편을 걷어차거나 발로 밀어버리면서 아래에 깔린 사람들이 나올 수 있게 도와주었다.
그리고 심사장을 벗어나 복도로 뛰쳐나왔다.
“아……."
나에게 안긴 채 내 등 뒤를 보고 있던 엄마가 바람 빠지는 소리를 냈다.
나는 한참을 더 뛰어가서 안전하다고 생각되는 곳까지 도착한 뒤에야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내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활주로가 있어야 할 자리가 없어지고 소용돌이치는 일그러진 공간이 보였다.
허공에 거대한 수챗구멍이 생겨서 활주로와 공항 복도를 빨아들이는 것 같은 모양새였다.
던전 생성 폭발이 일어날 때 빨려 들어가는 쪽이 아니라 밖에 있으면 이렇게 보이는구나.
나뿐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눈앞의 이 비현실적인 광경에 압도되어 있었다.
서지한만 빼고.
멍하니 생각하는 내 귓가로 서지한의 목소리가 나직하게 흘러들었다.
- 이전 던전 생성 폭발로부터 거의 한 달이 넘게 지났으니 새로운 던전이 생길 때가 되긴 했지.
서지한은 씁쓸하게 읊조렸다.
이 아비규환의 현장에서 서지한의 침착함은 이질적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스, 승주!”
조금 정신이 돌아온다 싶던 엄마가 갑자기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뒤늦게 그 뜻을 깨닫고 나도 짧게 비명을 질렀다.
안에, 던전 생성 폭발의 영역에 승주가 있었다.
그 복도의 화장실에 있었으니 분명 복도와 함께 던전으로 빨려 들어갔을 것이다.
“승주야, 우리 승주 어떡해. 우리 승주 어떡해!”
엄마가 넋이 나가서 헛소리 같은 말을 반복하며 나를 부여잡았다.
하얗게 비어버린 머리에 한 가지 생각만이 떠올랐다.
내가 두 번이나 들어갔던 그 지옥에, 이번에는 승주가 들어갔다.
겁도 많은 녀석인데 지금 얼마나 무서워하고 있을지 상상도 가지 않았다.
머릿속에 동생의 우는 얼굴이 꽉 차올랐다.
동시에 눈앞에서 울상으로 눈물이 그렁그렁한 엄마의 얼굴이 덧씌워졌다.
“엄마.”
나를 움켜쥔 엄마의 손을 포개 잡았다.
다리에 힘이 풀려 제대로 서지도 못 하는 엄마를 앉히며, 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모아야?”
“엄마, 나 각성했어.”
알아듣지 못 할 외국어를 들은 표정으로 엄마가 멍하니 나를 응시했다.
내 말의 의도를 모르겠다는 듯한 표정이다.
“내가 승주 데려올게.”
"모아야?”
울음기 어린 불안한 목소리가 내 이름을 불렀다.
이 목소리가, 마치 던전 안에서 울먹이는 승주의 목소리 같았다.
내가 손을 뿌리치고 자리에서 일어나자 엄마는 멍하니 쳐다보다가 뒤늦게 경악해서 허겁지겁 나를 움켜잡으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이미 앞으로 달려 나간 후였다.
“모아야, 잠깐만. 모아야 안 돼. 모아야! 모아야!”
누가 우리 모아 좀 말려주세요.
그렇게 말하며 비명같이 내 이름을 외치는 엄마의 목소리를 등 뒤에 남겨두고 나는 던전 안으로 뛰어들었다.
사고로 휘말리는 것이 아니라 내 의지로.
처음이었다.
충왕 케르기스로부터 계승한 스킬이 모두 S급이긴 하지만 이게 어느 정도의 성능을 보여줄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확신이 없다.
서지한의 말로는 내가 스킬을 간신히 사용할 수 있는 마력 능력치를 가지고 있다 했으니 그 말을 믿을 뿐이었다.
최악의 경우에는 스킬이 제대로 발동이 되지 않을 수도 있고, 발동이 되더라도 하찮은 위력에 그 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던전에 뛰어들기를 망설이지 않았다.
사실 어느 정도 믿는 구석이 있긴 했다.
여차하면 사자의 낫도 있고, 다른 아이템들도 있다.
서지한의 물건이니 임의로 건들지 않겠다는 결심이라든가, 내가 사자의 낫을 사용하게 되면 매스컴에서 몰려들 거라는 걱정 같은 것은 그 순간 아무래도 좋았다.
던전 안에 겁 많은 내 동생이 혼자 있다.
내게는 그 사실만이 중요했다.
그렇게 막연히 충왕류 던전의 어두컴컴한 굴을 예상하고 뛰어든 내 눈앞에, 청명할 정도로 맑은 하늘과 풋내를 뿜어내는 울창한 숲이 펼쳐졌다.
“어?”
끝없이 펼쳐진 창공.
처음 들어간 던전도, 두 번째로 휘말린 던전도 모두 충왕류 던전이었던 터라 나는 막연하게 던전은 모두 동굴 같은 형태일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나의 고정관념을 박살 내는 풍경에, 나는 다급한 와중에도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 모든 던전이 다 충왕류 던전 같지는 않아. 거기에 있는 몬스터가 누구냐에 따라 환경은 천차만별이지.
서지한이 눈치 빠르게 설명해 주었다.
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차라리 잘됐다.
구불구불한 지형 탓에 몇 걸음 앞도 가늠하기 힘들었던 충왕류 던전 때와는 달리 비교적 멀리까지 볼 수 있는 환경이다.
굵은 나무들이 시야를 가리고 있긴 하지만 충왕류 던전의 폐쇄적인 구조에 비하면 사방이 굉장히 잘 보이는 축에 속했다.
승주를 찾으려면 이게 오히려 나았다.
나는 서둘러 사방을 훑어보았다.
빼곡한 나무들 사이로 승주의 그림자를 찾는 것이다.
하지만 덤불과 수풀 탓에 생각보다 멀리까지 보이지는 않았다.
승주뿐만이 아니라 함께 말려들었을 다른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다들 어디에 있지? 나 혼자 외따로 떨어진 건가?
생각보다 먼저 발이 움직였다.
어딘가 있을 사람의 흔적, 누군가의 목소리를 찾아 방향도 가늠하지 않고 나는 무작정 뛰기 시작했다.
“승주야!”
나는 동생의 이름을 크게 외쳤다.
숨이 턱까지 차도록 뛰는데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니 애가 닳았다.
이 소리를 듣고 몬스터가 올지도 모르지만, 그런 걸 신경 썼다면 이렇게 무작정 던전에 뛰어들지도 않았겠지.
여기로 들어오기 전 마켓에서 전투에 도움이 될 만한 포션이라도 좀 사 왔다면 좋았겠지만 포션을 사는 그 잠깐 사이 승주가 잘못될 수도 있었다.
던전 안에서 얼마나 순식간에 사람이 죽어나가는지 봤으니까 그저 서둘러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 침착해. 조용히 집중해서 소리를 들어봐.
어쩔 줄 몰라하는 나에게 서지한이 진정하라는 듯 말했다.
맞아. 진정하자.
침착해야 해.
나는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소리를 들으려고 노력했지만 귓속에서 뛰는 것 같은 심장소리 때문에 쉽지 않았다.
하지만 심장이 없는 서지한은 소리를 들은 모양이었다.
- 이쪽. 이쪽으로 뛰어.
“승주 목소리 들었어요?”
- 아니. 누군가의 비명.
그 대답에 나는 이성을 잃었다.
듣지 못한 비명이 마치 승주의 단말마였을 것 같은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이미 많이 지쳐 있었지만 나는 다리를 재촉했다.
뛰고 또 뛰었다.
내가 심장이 터지도록 뛰지 않으면 승주가 죽을 것 같아서.
뜀박질하는 내 옆으로 예리한 나뭇잎들이 칼날처럼 뺨을 할퀴었다.
피가 나는 것 같긴 하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풍경이 제대로 맺히기도 전에 잔상처럼 스쳐 지나간다.
목에서 피 맛이 나게 뛴 이후 나는 마침내 서지한이 말한 비명의 진원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살육의 현장이었다.
나무와 나무 사이로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를 거대한 늑대들이 뒤쫓고 있었다.
누군가가 쓰러지며 내지르는 단말마가 축제의 신호탄이라도 되는 것처럼 짐승의 형상을 한 몬스터들이 신이 나서 날뛰었다.
- 모여들고 있다.
그의 말대로 몬스터는 사방에서 모여들고 있었다.
아마 내가 달려온 방향에서도 몇 마리 오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마주치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할까.
아니, 그런 생각을 할 여력은 없었다.
나는 쓰러지고 뛰는 사람들 사이에서 승주를 찾느라 바빴다.
가만히 서서 한눈팔고 있는 내가 좋은 먹잇감이 될 거라는 생각도 하지 못 할 만큼.
- 손모아, 뒤!
서지한의 목소리를 듣고 돌아보았지만 내 반응은 한참 늦은 것이었다.
눈앞 가득 늑대의 아가리가 덤벼들었다.
내 몸통 정도는 우습게 먹어치울 수 있을 것 같은 거대한 입이었다.
상상조차 하지 못한 무시무시한 광경에 나는 그대로 얼어붙었다.
서지한이 비명처럼 외치는 피하라는 소리만 선명했다.
“아.”
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