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6화
“잠시만요! 저기, 여기 응접실에 있는 테이블이랑 의자 다 치워줄 수 있나요? 좀 넓은 공간을 쓰고 싶어서……."
“네. 금방 치워드리겠습니다.”
다행히 무리한 요구가 아니었는지 잠시 뒤 직원 몇 명이 더 들어와 테이블과 의자를 가지고 떠났다.
나는 이런 호텔에 묵는 것도, 스위트룸도 처음이라 이 모든 게 너무나 신기할 따름이었다.
“더 필요한 건 없으십니까?”
"네. 감사합니다.”
너무나 공손한 태도에 나도 모르게 마주 공손하게 인사하자 직원이 약간 웃는 것 같았다.
마침내 모든 사람이 떠나고 이 궁전 같은 방에는 나와 서지한만 남게 되었다.
스위트룸이라니.
가슴이 두근거린다.
너무 설렌 나머지 나는 직원이 떠나기가 무섭게 방 안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와, 이거 봐요. 욕조가 창문 앞에 있어요! 앗, 여기에도 작은 방이 있네. 오. 냉장고에 먹을 것도 있다.침대도 엄청 커요!”
커다란 욕조에 들어가 보기도 하고, 냉장고의 문도 열어보고.
와인 랙도 구경한 다음 네 명도 누울 수 있을 것 같은 거대한 침대에서 뛰고 있자니 서지한이 슬쩍 말을 건넸다.
- 즐거워 보이는데.
서지한은 웃음을 참는 듯한 이상한 표정이었다.
나는 그제야 내가 마치 첫눈 본 강아지처럼 흥분해서 신나게 뛰어다녔다는 것을 깨달았다.
갑자기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그, 서지한 씨는 이런 거 익숙하겠지만 저는 처음 와봐서……."
- 누가 뭐래? 즐거워 보이니까 좋다는 거지. 더 놀지 그래?
“아뇨……."
- 그럼 갈까?
“네.”
나는 앞장서는 서지한을 머쓱하게 따라갔다.
도착한 곳은 직원에게 테이블과 의자를 모두 치워달라고 했던 응접실이었다.
모든 가구가 사라진 덕분에 응접실은 가볍게 농구도 할 수 있을 만큼 넓은 빈 공간이 생긴 상태였다.
- 이 호텔 스위트룸은 응접실이 넓은 게 장점이지. 이제 꺼내봐.
“그, 꼭 꺼내야 해요? 여기 호텔방 부술까 봐 불안한데.”
- 꼭 꺼내야 해.
나는 최대한 조심스럽게 인벤토리에서 케르기스의 뿔을 꺼냈다.
그 덕분인지 뿔은 응접실 벽과 약 1미터 정도의 간격을 두고 카펫 위에 사뿐하게 놓였다.
크기가 크고 단단해서 그렇지, 무게는 얼마 나가지 않아서 내가 들고 옮길 수 있을 정도다.
고풍스러운 응접실의 카펫 위에 놓인 거대한 황금색 뿔.
형태는 마치 장수풍뎅이의 것 같다.
조명을 받아 반질거리는 모습이 마치 어떤 예술가가 빚어낸 작품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그래서 이걸 이제 어쩌라는 거지?
다음 지시를 기다리며 서지한을 바라보았다.
- 으음, 쉽지 않겠군.
뿔을 바라보며 그가 무언가를 가늠하듯 미간을 모았다.
덩달아 나도 심각해지는 기분이었다.
- 미리 말해두지만, 쉽지 않을 거야.내가 실라기스의 뿔 조각을 얻었을 때보다 상황이 더 힘들어졌어.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영화에서 봤던 주인공의 수련 장면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목각 인형 부수기?
뜨거운 모래에 주먹질하기?
숯 위를 걸어가기?
좀 이상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데, 이게 내가 생각하는 어려운 수련이라서…….
각오를 다지며 서지한의 뒷말을 기다렸다.
내 결연한 얼굴을 마주 보며 서지한은 갑자기 터무니없는 소리를 했다.
- 이걸 다 먹어.
네?
“어…… 제가 잘못 들은 것 같은데. 먹으라고 하신 거 아니죠?”
- 아니, 맞아. 먹어.
잠시 어처구니없는 정적이 찾아왔다.
뭐야. 농담인가?
하지만 농담하는 표정 같지는 않은데.
나 가지고 노는 건 아니겠지?
진심으로 이걸 먹으라고 한 거야?
왜? 아니, 그보다 어떻게?
“진짜요? 착각한 거 아니죠?”
케르기스의 뿔은 단단하다.
내 자취방 시멘트 벽 정도는 쉽게 부술 정도로.
그런데 그걸 먹으라고?
사슴벌레처럼 생겼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이게 무슨 녹용이야 뭐야.
도무지 뭘 어떻게 하라는 건지 감도 안 잡혀서 나는 막막하게 케르기스의 뿔을 쓰다듬었다.
반질반질한 뿔은 무슨 재질인지 손때도 묻지 않았다.
- 응. 먹어야 해.
당연한 사실을 말한다는 듯 서지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벽에 비스듬히 기대어 남 일 보듯 태연한 모습이 얄밉기 그지없다.
“어떻게요?”
- 입으로.
혹시 웃음기를 발견할 수 있을까 해서 서지한의 얼굴을 유심히 살폈지만 그는 매우 진지했다.
서지한은 진심으로 이 뿔을 먹으라고 하는 것이다.
- 농담하는 거 아니야. 실라기스의뿔 조각을 얻었을 때 나도 그렇게 스킬을 얻었어. 경험자의 말이니까 믿어.
그렇게 말해도 나는 도무지 믿기지가 않았다.
오히려 서지한이 진짜로 이 뿔을 먹어 봤다는 게 의심스러웠다.
“서지한 씨도 먹었다고요?”
- 응.
그렇게까지 말하니 할 말이 없다.
당혹스러워서 뿔을 매만지기만 하고 있자 그가 재차 재촉했다.
- 속는 셈 치고 한입 물어봐.
“이도 안 박힐 것 같은데요?”
- 아니야. 먹을 만해.
그렇게 말한 서지한은 여기, 이쯤을 베어 물면 되겠다며 직접 적당한 곳을 짚어주기까지 했다.
두툼한 케르기스의 뿔에서 그나마 약간 얇아서 입으로 깨물기 쉬워 보이는 부분이었다.
“그, 스킬을 얻었다고요?”
- 그래. 보스의 뿔을 먹으면 스킬이 생기더군.
“아니, 아무리 그래도……."
내가 망설이기만 할 뿐 움직이지 않자 그가 답답하다는 듯 딱 잘라서 지시했다.
- 어서 한 입 먹어봐.
어차피 직접 해보기 전까지는 답이 안 나오는 문제다.
나는 결국 속는 셈 치고 케르기스의 뿔을 깨물었다.
이도 박히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사과를 베어 무는 것 같은 아삭한 식감과 함께 그 단단한 케르기스의 뿔이 입안으로 들어왔다.
아무 맛도 안 나는 비쩍 마른 사과를 먹는 느낌이다.
그와 동시에 눈앞에 알림 메시지가 떠올랐다.
충왕 케르기스의 뿔을 섭취하였습니다.
100% 섭취 완료 시 충왕 케르기스의 스킬을 계승합니다.
현재 진척도 1%
계승 가능 스킬
〈s급 충왕포〉(액티브)
〈s급 충왕뇌우〉(액티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