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2화
〈이걸로 한국에서는 벌써 일곱 번째 던전 생성 폭발이 있었는데요, 대지 면적에 비해 너무 자주 던전이 생성되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습니다.〉
〈네. 확실히 통계적으로 그런 흐름을 보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 중국, 일본 등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적은 숫자인 탓에, 일각에서는 이 던전의 소멸을 아쉬워하는 여론도 있는데요.〉
〈어디의 여론이죠?〉
〈익명을 요청한 한 헌터의 인터뷰를 보시겠습니다.〉
이어서 얼굴을 모자이크 한 한 남성의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마켓에서 비싼 가격으로 공략 아이템을 샀는데 던전이 사라진 덕분에 괜한 짓을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한참을 투덜거리다가 인터뷰가 종료되었다.
“미친놈 아니에요?”
내가 흥분해 욕설을 던지는 것과 대조적으로 서지한은 차분한 표정이었다.
- 저런 놈 너무 많이 봐서 나는 별 감흥도 없어.
“으. 진짜.”
진절머리를 치는 동안 뉴스는 몇 명의 헌터를 더 인터뷰 한 뒤 다시 스튜디오로 돌아왔다.
〈보시다시피 헌터들의 이러한 태도로 인해 비난 여론이 들끓고 있는데요, 이 부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확실히 희생이 큰 이 시국에 사익을 추구하는 행동은 도덕적으로 지탄받을 부분이 있지요.〉
〈역시 그렇지요?〉
〈하지만 다른 부분도 생각해야 합니다.〉
〈어떤 부분 말씀이신가요?〉
〈국가에서 보유한 던전이 많을수록 마석과 던전 공략 아이템을 수급하기가 용이해집니다.〉
스튜디오가 잠시 정적에 휩싸였다.
화면 왼쪽을 보니 생방송이라는 표시가 떠올라 있었다.
말실수 한번 잘못하면 시청자 게시판이 폭발할 테니 출연자들이 잔뜩 긴장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 말씀은 오해의 소지가 좀 있을 것 같은데요. 부연설명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앵커가 상황 수습을 위해 나서자 기다렸다는 듯 처음 ‘국가 보유 던전’에 대해 언급했던 출연자가 말을 받았다.
〈네. 한국의 첫 던전 생성 폭발 때를 생각해보면 이해가 빠를 것 같습니다. 그 당시에는 국내 헌터 중 던전을 경험한 헌터도 없었고, 탈출석 매물도 구하기 힘들어서 갓 각성한 헌터들에게 외화를 지급해 마켓에서 외화로 아이템을 구매하고, 해외 헌터들의 지원을 받아 겨우 구조 활동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요. 정말 큰 비극이었습니다.〉
출연자들이 안타까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그리고 이후 두 번째 던전 폭발 때도 비슷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래도 상황이 좀 나아지긴 했지만 아직 헌터 마켓 내 원화 아이템 시장이 작았기 때문에 빠른 대처가 힘들었습니다.〉
〈그렇죠. 그때는 지금처럼 길드가 있는 것도 아니고, 헌터들도 모두 제각각 개인적으로 활동한 데다 정체를 감추고 사는 헌터도 많았고요.〉
〈지금도 각성자들의 신분 은폐는 심각한 사회문제 아닙니까? 아무튼, 이야기하시는 요지는 알겠습니다.던전이 늘어나서 한국의 헌터 마켓 시장이 커질수록 이후 발생하는 던전 폭발에 대처하기 용이해진다는 것 아닙니까?〉
〈맞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가 새로운 뉴스를 하나 가져왔습니다. 요즘 헌터 업계 내부에서 은밀히 입에 오르내리고 있는 인물인데요. 여러분, 에비타니스의 등급…….〉
새로운 화제가 시작되기 전, 휴대폰이 맹렬하게 진동했다.
발신자는…… 차장님?
“여보세요?”
반가운 사람의 연락이라 얼른 받았더니 수화기 너머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 모아 씨? 통화 괜찮아요?
“네! 집이에요.”
- 몸은 괜찮아요?
긁힌 찰과상에는 벌써 딱지가 앉았다.
얕은 상처들은 이미 아물어서 딱지까지 다 떨어진 상태였다.
힐링 포션을 쓸 것도 없을 정도로 경미한 상처들이었는데, 차장님은 그게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다.
“그럼요. 잘 지내고 있어요. 차장님은 몸 괜찮으세요?”
-덕분에 저는 멀쩡해요. 병원에서 본 이후로 만나지를 못해서 어떻게 지내고 있나 확인 차 연락했어요.
“아, 그렇죠. 회사가……."
- 맞아요. 모아 씨는 퇴사 처리 요청했다고 들었어요. 맞나요?
“그날 퇴사한다고 그랬잖아요.”
-맞아요. 그랬죠. 진심인 줄은 몰랐지만.
잠시 차장님의 작게 웃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사실 좀 더 일찍 연락하고 싶었는데, 개인적으로 일이 좀 많았어요.그리고 주변정리를 좀 하느라 경황이 없었네요. 혹시 오늘 일정이 어떻게 돼요?
일정?
딱히 일정은 없었다.
이사 갈 만한 집을 계속 찾고 있지만 급한 일은 아니다.
“그냥 집에 있으려고요.”
-그래요? 괜찮으면 잠깐 만나서 차 한 잔 어때요? 김 대리, 아니, 김수현 씨도 올 거예요.
“좋아요. 갈게요! 몇 시에 어디로 가면 될까요?”
-내가 차 몰고 수현 씨 태워서 모아 씨네 동네로 갈게요. 이사 안 했죠?
“네, 아직 거기 살고 있어요.”
-그럼 조금 이따가 봐요.
전화를 끊고 나자 서지한이 나를 흘긋 쳐다보더니 다시 TV를 응시했다.
통화하는 동안 토론은 새로운 화제로 넘어간 상태였다.
〈새로운 던전의 보스는 역시 서지한이 공략한 거겠죠?〉
〈그렇다고 봐야겠죠. 현 랭킹 1위 서지한의 공략 점수가 큰 폭으로 오른 게 확인되었습니다. 헌터 마켓의 어제 자 랭크 보드를 보시죠. 여기 이게 이번 던전 생성 폭발 이전의 서지한의 점수입니다. 그리고 이게 현재 서지한의 공략 점수고요. 보시다시피 굉장히 큰 폭으로 올랐죠?〉
〈이건 보스급 정도를 잡지 않으면 이 정도 점수가 안 나오죠.〉
〈단독으로 공략한 걸까요? 전투계 헌터 중에는 역시 발군이네요.〉
〈생존자 중 목격자의 말로는 그렇다고 합니다. 새로운 던전을 원하던 헌터들 사이에서는 서지한을 향한 비난의 여론도 생성되는 분위기입니다. 관련 인터뷰, 보시죠.〉
다시 인터뷰가 흘러나오고 서지한은 무미건조한 낯으로 그것을 주시했다.
약간 지루한 것 같기도 하고 경멸하기도 하는 것 같은 기색이다.
“저기, 서지한 씨. 저 씻으려고 하는데.”
아침에 일어나서 대충 세수 한 이후로 방에서 뒹굴고 있었던 탓에 머리가 약간 기름져 있어서 나가기 전에 좀 씻어야 할 것 같다.
오랜만에 보는 차장님인데 더러운 상태로 만날 수는 없지.
- 인벤토리에 넣으려고?
“그래야죠?”
그와 함께 지내면서 개인적인 시간이 필요할 때는 서지한을 잠시 인벤토리에 넣어두곤 했다.
인벤토리 안에 넣으면 서지한은 의식이 있는 상태로 온통 새하얀 공간에 존재하게 된다고 한다.
잠깐이면 몰라도 긴 시간 홀로 그렇게 있는 건 좀 불안한지 그는 영혼석을 인벤토리에 넣는 걸 무척 꺼렸다.
- 씻으려고 그러는 거면 그냥 씻어.안 봐.
“안 볼 거라곤 생각하지만 그래도 불편해요.”
서지한은 입을 다물었다.
무척 마음에 안 든다는 표정이다.
하지만 어쩌겠어? 내가 넣으면 들어가야지.
옆에 놓아둔 영혼석을 집어들자 뜸 들이던 그가 새로운 제안을 했다.
- 방 모서리에 두면 어때? 나는 영혼석에서 멀리 떨어지지 못하니까, 네가 있는 공간까지 어차피 닿지도 않을 거야. TV나 보고 있을게.
괜찮은 생각 같았다.
나는 이리저리 재면서 욕실에서 가장 떨어진 대각선 모서리의 방구석에 영혼석을 내려놓았다.
집이 워낙 좁아서 충분한 거리를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
“그럼 씻을게요.”
욕실로 들어오면서 그렇게 말하자 서지한은 고개만 까딱했다. 눈은 여전히 TV에 고정한 상태다.
정말, 어서 이사를 가든가 해야지.
며칠 내내 집을 구하고 있는데 생각보다 쉽지가 않았다.
일단, 세금 문제가 있었다.
나처럼 어린 사람이 거액의 집을 구매하면 필수적으로 자금 출처를 조사하게 되어 있다.
상속이면 상속세를 물거나 해야 하니까.
이전에도 있는 제도이긴 했지만, 각성자의 각성 사실 은폐, 헌터 마켓의 지하경제 거대화를 막기 위해 더욱 제도가 강화되었다.
물론, 각성한 사실을 밝히고 나면 자금 출처를 말할 필요가 없다.
당연히 헌터 마켓일 테니까.
뭐, 한때는 헌터 마켓에서 거래한 내역까지 밝히라며 마켓 닉네임을 요구하던 시절도 있었는데 그 탓에 국내 헌터들이 우르르 해외로 빠져나가는 사태 이후로는 마켓의 익명성은 보장해주게 되었다.
아무튼 이 문제가 나오자 엄마에게 돈을 주는 것도 덩달아 난관에 부딪혔다.
엄마가 내가 준 돈을 쓰다가 자금출처를 밝힐 일이 생기면, 자연스럽게 내가 자금 출처를 밝혀야 했으니까.
각성자 신분을 감추고 있는 나로서는 자금출처를 소명할 방법이 없다.
복권에 당첨된 게 아니니 복권 당첨금 수령 내역 같은 게 있을 리가 없고.
편법으로는, 집을 사는 대신 월세를 내고 사는 방법이 있지만 이것도 딱 마음에 드는 집을 찾기가 힘들다.
사실 가장 큰 이유는 이사 갈 지역을 확정하지 못한 것이 컸다.
어차피 퇴사를 하고 회사를 다니지 않을 거라면, 차라리 엄마가 사는 거제도에 가서 함께 지내는 것도 좋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다가도 막상 서울을 떠나 기는 싫은 마음이 든다.
친구도,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알게 된 지인도, 나의 인간관계 대부분이 서울에 있기 때문이다.
갈피를 잡지 못 하는 상태로 몸을 씻고 나오자 TV에서는 홈쇼핑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서지한이 믹서기를 시연하는 쇼 호스트를 홀린 듯한 얼굴로 응시하고 있다.
“재밌어요?”
- 아니.
그래? 엄청 재밌어 보이는 얼굴인데.
“저 나가려는데, 같이 갈 거죠?”
대답 대신 서지한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차피 내가 영혼석을 주머니에 넣고 걸으면 자동으로 따라오게 되어서 걸을 필요가 없는데도 그는 외출을 할 때면 내 옆에서 걷곤 했다.
혼잣말 위장용 이어폰도 귀에 꽂고, 반지도 잘 끼고.
나가면서 버릴 쓰레기도 챙기고.
준비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자 찬 공기가 덜 마른 머리카락 사이로 스며들었다.
추위에 몸을 떨자 서지한이 혀를 차면서 제 유령 외투를 벗었다가 머쓱하게 다시 입었다.
아니, 본인은 유령이라 춥지도 않으면서 왜 나갈 때마다 꼬박꼬박 외투까지 챙겨 입는 것인지.
서둘러 집 근처 카페로 들어선 나는 핫 초코와 치즈케이크, 그리고 차가운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돈 많으니 1인 3 메뉴도 여유롭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