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4화
나는 울면서 웃었다.
눈물이 나는데, 살아남아서 너무 기뻤다.
“차장님, 저 드릴 말씀 있어요.”
"네? 모아 씨, 뭐든. 뭐든 말해요.다 들어줄게요.”
“저 퇴사할게요.”
내 대답에 굳었던 차장님은 북받치는 감정을 누르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둘 다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환자분 어디세요?”
차장님과 손을 부여잡고 있으니 어디선가 의사가 불쑥 나타났다.
피를 뒤집어쓴 몰골의 나를 보고 조금 놀란 듯하더니, 그래도 의사짬이 있는지 단순 찰과상이라는 걸 알아챘다.
“찰과상이 심하네요. 감염 위험이 있으니 일단 구급차 타고 같이 가시고요. 여기, 찾던 분 오셨으니까 이제 같이 가실 거죠?”
그 말에 나는 차장님이 병원도 가지 않고 내내 여기서 나를 기다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왜 안 가셨어요.”
“그렇게 헤어졌는데 어떻게 가요,정말……."
차장님은 무척 냉철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또 차장님의 눈에 눈물이 고이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의사의 지시에 따라 병원으로 호송되었다.
병원에 도착해 소독을 하고 간단한 처치를 받고 나니 그제야 제정신이 들었다.
다시 이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왔다는 게 와 닿았다.
차장님과 대리님은 회사의 뒷수습을 위해 자리를 비웠기 때문에 나는 혼자 앉아서 의사의 퇴원 지시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나도 돕겠다고 따라나섰지만 차장님이 연고와 거즈로 범벅된 내 팔다리를 가리키며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저었으므로 얌전히 남기로 했다.
그나저나 엄마도 이 소식 들으셨겠지?
오는 길에 본 병원 TV에서 이 일에 관한 뉴스가 보도되고 있었으니 아마 알고 계실 확률이 높다.
걱정하실 게 분명하니 무사하다고 안부 전화를 할까 해서 휴대폰을 꺼냈는데, 액정이 완전히 박살나 있었다.
하긴, 땅을 구르고 돌을 그렇게 많이 맞았는데 뒷주머니에 대충 꽂아둔 휴대폰이 무사할 리가 없었다.
나가는 대로 일단 휴대폰부터 사야겠군.
차장님과 대리님이 팀별로 살아남은 사람들을 취합해서 가족에게 일괄 연락을 한다고 했으니 아마 엄마도 그 편으로 소식을 듣겠지.
죽은 사람들을 떠올리자 기분이 가라앉았다.
분위기를 보니 희생자가 적지 않은 듯했다.
그 지옥도에서 생존자가 이만큼이나 나왔다는 게 오히려 대단하다.
여기저기서 합동 장례식 명단을 위해 조사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주위는 방송국에서 나온 사람들과 간호사, 환자를 실어온 구급대원, 울부짖으며 병원으로 뛰어 들어오는 보호자들로 무척 소란스러웠다.
서지한은 죽은 사람의 명단에 들게 되는 걸까.
내가 그의 죽음을 알려야 하는 거겠지?
장례식 전에 염이라도 하려면 집에 가기 전에 여기 병원 영안실에 그의 시신을 맡기는 게 좋을지도 모른다.
아까 채집 후 뭘 얻었는지 확인하고, 겸사겸사 서지한의 시신도 확인할 겸 나는 인벤토리를 열었다.
인벤토리에는 수많은 아이템이 있었다.
충왕 케르기스의 갑각과 뿔, 마석, 그리고 서지한의 무기인 사자의 낫, 다양한 충왕류의 부산물이 어지럽게 많았다.
그 사이에서 서지한의 시신을 한참 찾는데, 이상하게도 시신이 안 보였다.
뭐야?
분명 채집했는데?
어디 갔지? 시신 어디 갔어.
다급하게 인벤토리를 뒤졌지만 서지한의 시신처럼 생긴 것은 보이지 않았다.
장례 치러줘야 하는데.
정말 챙겼는데.
설마 그 던전에 남겨둔 건가? 챙겼다고 착각한 건가?
혼란에 빠진 순간, 인벤토리 한 구석에 놓인 작은 돌멩이가 눈에 들어왔다.
오묘한 빛을 뿜어내는 마석들 사이에서 초라할 만큼 작고 단순한 하얀색 돌.
그 돌의 아이템 이름은 이렇게 떠있었다.
서지한의 영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