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0화
마켓 관리자가 떠난 지금, 우리 뒤를 쫓아오고 있는 충왕류를 처리할 방법이 없다.
암담한 기분에 눈앞이 캄캄해지는데, 차장님이 한쪽을 가리켰다.
“아니, 아직 아니에요. 저쪽!”
이 공터의 구석,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우리를 향해 손짓하는 두 사람이 보였다.
둘 다 모르는 얼굴이다.
마켓 관리자는 아닌 게 분명했다.
그럼 그 싸우는 소리는 뭐였지?
가까이 다가가자 누가 싸웠는지 알 수 있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치명상을 입은 마켓 관리자 한 명이 바위 뒤에 기대어 몸을 숨기고 있었다.
바닥에는 그가 흘린 피가 흥건하게 웅덩이를 이루고 있다.
마켓 관리자 중에서도 싹수가 없기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얼굴도 잘생기고 나이도 어린데다 가지고 있는 스킬도 잠재력이 뛰어나서 콧대가 높은 사람이었지.
이름은 모른다.
각성자들의 개인정보는 예민한 부분이라, 우리 같은 일반사원에게는 알려주지 않으니까.
누군가를 도와줄 성격으로 보이지는 않았는데.
놀랍게도 그의 옆에는 그가 구해낸 것 같은 직원 두 명이 안절부절못하며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젠장, 젠장. 그냥 갔어야 했는데.제길, 개 같은……."
마켓 관리자는 연신 욕설을 내뱉고 있었다.
어울리지 않는 착한 일을 한 걸 깊게 후회하는 모양이었다.
그 옆에 선 두 명은 죄책감 때문에 말도 제대로 못 붙이는 듯했다.
그들은 대신 상대적으로 만만한 우리에게 말을 걸었다.
“그, 신세현 차장님이시죠? 전에 워크숍 때 같은 테이블에 앉았는데……. 김철수 대리입니다. 이쪽은 서민수 사원이고요.”
“네, 2팀 신 차장입니다. 이쪽은 김수현 대리, 손모아 사원이에요.”
고개 숙여 인사하며 자기소개를 하고 있으니 마치 외근이라도 나온 것 같은 느낌이다.
꾸벅꾸벅 고개를 숙이자 김철수 대리가 미소 지었다.
“아, 반갑습니다. 빈말이 아니라, 정말 반가워요.”
나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암담한 상황에 누군가를 만났다는 것만으로 얼마나 반가운지 모른다.
하지만 마켓 관리자는 끼고 싶지 않은 표정으로 우리들을 바라볼 뿐이었다.
“팔자 좋네. 저승 가기 전에 작별인사하냐?”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사람들을 한번 둘러본 그가 거친 숨을 가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보다시피, 나는 더 이상 못 싸워.마석을 못 구했으니 우린 다 죽을 거다. 재주도 좋게 살아서 여기까지 왔지만 이제 다 끝장이야. 그나마 좀 오래 살고 싶으면 당장 여기를 떠나는 게 좋을걸.”
“왜죠?”
“머리 없어? 여기 보면 모르겠어?한바탕 했으니 소리를 듣고 곧 떼로 몰려올 거 아냐. 아니면 더 센 놈이 오거나.”
김 대리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이곳으로 오는 동안 우리 뒤쪽에서 나던 충왕류의 소리.
우리를 쫓아오는 게 아니었던 것이다.
여기, 마켓 관리자를 제거하러 오는 거였다.
“혹시 탈출석이나, 가지고 있는 회복 아이템은 없으세요?”
"있으면 벌써 썼지. 탈출석 사려고 여기 출근하는 건데 있겠냐.”
별다른 기대를 가지고 물은 건 아닌지 김 대리님은 그다지 낙담하지 않았다.
“어서 가요, 관리자님.”
서민수 사원이 마켓 관리자를 부축해 일으켜 세우려 하자 그가 짜증스럽게 손을 뿌리쳤다.
“몇 번 말해. 그냥 버리고 가라고.피를 이렇게 흘리는데. 헨젤과 그레텔 알지? 내 피가 빵조각이야. 이놈들은 피 냄새를 엄청 잘 맡는다고.”
"그래도……."
“아, 가라고! 안 들려? 다 뒈지고 싶어? 당장 꺼지라고!”
그의 외침 뒤로 모두 침묵했다.
서민수 사원과 김철수 대리는 떠날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하긴, 어차피 여기를 떠나도 살아남을 확률은 거의 없다.
차라리 이 각성자를 챙겨서 이동하는 게 그나마 살 확률이 높겠지.
“같이 가야 해요. 어차피 우리끼리 가도 다 죽어요.”
나는 그렇게 말하고 서민수 사원과 함께 마켓 관리자에게 손을 뻗었다.
부축을 도울 생각이었다.
관리자는 황당한 얼굴로 나를 보다가 될 대로 되라고 생각했는지 눈을 감아 버렸다.
그러다가 흠칫 눈을 떠 출입구 쪽을 바라보았다.
“잠깐, 내려놔. 나 내려놔.”
조용히 귀를 기울이던 그가 돌연 쌍욕을 내뱉었다.
우리보다 능력치가 월등히 높아서인지 뭔가 들린 모양이다.
“젠장, 그러게 진작 가지. 이미 늦었잖아. 지금 나가도 다 죽어. 하, 진짜. 왜 안 가고……."
반쯤 울먹이듯 그가 웅얼거렸다.
사실 여기에 도착했을 때부터 나는 이미 불길한 예감을 느끼고 있었다.
마켓 관리자가 다친 걸 봤을 때도, 이동 통로에서 충왕류의 걸음소리를 들었을 때도.
불길한 느낌은 빗겨나가지 않는구나.
옅은 진동이 느껴진다 싶더니 출입구로 무언가가 들어왔다.
아주 단단해 보이는 외피를 가진 몬스터였다.
생각보다 덩치가 작은 것 같은데.
그리고 좀 둔해 보인다.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몬스터가 접고 있던 몸을 확 폈다.
그러자 순식간에 키가 네 배는 껑충 커져서 놈은 우리를 내려다보게 되었다.
흡사 등대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이래서는 바위 뒤로 숨는 것도 의미가 없었다.
“C급 충왕류……."
마켓 관리자가 죽을 것 같이 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얼굴에는 절망감이 가득했다.
사마귀 같은 앞다리에 톱 사슴벌레 같은 두 턱.
몸통은 자 벌레처럼 위로 길쭉하다.
크기가 너무 커서 오히려 싸워야겠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무슨 코끼리보다 열 배는 커 보인다.
각성한 헌터들은 이런 거랑 싸우는 건가? 정말로?
이런 상황이 되자 나는 오히려 담담해졌다.
내내 죽음을 각오하고 여기를 돌아다녔더니 막상 일이 닥치자 올게 왔다는 기분이었다.
아니, 솔직히 이미 죽은 것 같은 느낌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탈출석만 찾아보지 말고 힐링 포션이라도 하나 사서 들어올걸.
그러면 마켓 관리자한테 먹였을 텐데.
하지만 시간이 너무 없었지.
“크르르.”
우리를 발견한 C급 충왕류가 낮게 울었다.
아니, 왜 벌레인데 크르르 하고 우냐고.
잘하면 짖겠다. 어?
나야말로 진짜 울고 싶다.
무섭게 왜 우냐고…….
몬스터가 천천히 입을 벌렸다.
아니, 실제로는 빨리 벌렸을지도 모른다.
그냥 이 모든 순간이 한없이 느리게 느껴졌다.
죽나? 이대로? 진짜 죽는 건가?
마침내 그 입에서 쐐기가 뿜어져 나올 때도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와, 침이나 뱉을 줄 알았는데 입에서 가시를 뱉네.
“붙어!”
마켓 관리자가 외마디 비명 같은 소리를 외치며 한 손을 앞으로 뻗었다.
동시에 앞에 반투명한 기운이 서리더니 방어막의 형태로 변했다.
이어서 쩌엉하는 충격이 닥쳐왔다.
쐐기는 그대로 방어막을 반쯤 꿰뚫었다.
방어막이 조금만 약했다면 우리 몸도 꿰뚫렸을 것이다.
그 한 번의 공격을 막아낸 방어막이 분해되어 흩어지자 마켓 관리자는 피를 토했다.
뒤를 돌아보니 피에 젖은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거의 보라색이다.
“한번. 한번 더 막을 수 있으니까. 그 사이에 어떻게든 발악해서 도망쳐 봐. 저 새끼 가랑이 사이로 뛰어서 튀면 한둘은 도망칠 수 있을지도 모르지.”
산송장 같은 몰골인데 마켓 관리자는 용케 말을 했다.
그가 그렇게 말하긴 했지만, 성공확률이 거의 없는 방법이었다.
모두가 죽음을 각오한 순간, 입을 벌려 2차 공격을 하려던 몬스터가 멈칫 굳었다.
“뭐야? 왜 저래?”
약 10초 정도.
몬스터는 굳은 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가지고 놀다가 죽이려는 걸까?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갑자기 몸에 무수한 구멍이 뚫리더니 놈이 그대로 파삭하고 박살 내버렸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왜 죽었지?
이 마켓 관리자가 뭔가 한 건가?
모두 동시에 마켓 관리자를 돌아보았지만 그는 빠르게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안 했다고? 그럼 쟤는 왜 죽었어?
모든 사람의 의문을 꿰뚫고 어둠 속에서 목소리가 날아와 꽂혔다.
“생존자, 있나?”
전신에 일렁이는 검은 기운을 추스르며 들어선 사람.
랭킹 1위, 서지한이었다.
믿기지가 않는다.
헛것을 보고 있나 싶어 몇 번이나 눈을 깜빡였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인지 입을 다물지 못 하고 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인물의 등장에 모두 할 말을 잃은 듯했다.
“서지한…… 맞죠?”
누군가가 더듬더듬 묻는 소리에 우리를 향해 걸어오던 서지한은 고개만 까딱였다.
그 턱짓을 보고 나니 비로소 현실감이 들었다.
살았다. 이제 살았다.
안도 섞인 한숨이 터져 나왔다.
차장님도, 김 대리님도, 마켓 관리자까지도 모두 기쁨을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
마침내 이 지옥 같은 시간이 끝난 것이다.
“구조대가 꾸려지려면 일주일은 걸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김 대리님의 말에 나도 매우 동의한다.
안에서 헤매느라 들어온 지 오래된 것 같지만 사실 던전이 열린 후 반나절도 지나지 않은 상태였다.
이 정도면, 새 던전 소식을 듣자마자 바로 진입 준비를 해서 들어왔다고 봐야 한다.
사실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무슨 금요일 저녁 삼겹살 번개 구하는 것도 아니고.
‘새로운 던전 터졌는데 가실 분 손?’ 이렇게 모집해서 ‘저요, 저요’하고 헌터들이 손을 들면 ‘네, 그럼 탈출석 가지고 강남역 3번 출구에서 봐요’ 이런 식으로 모으는 것도 아니잖아.
일단 구조대의 주체를 정하는 것부터 하루는 걸릴 거다.
게다가 공략 정보가 없어 위험이 큰 던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려는 헌터도 없을 테니 어르고 달래서 보상을 약속하고 나서야 무거운 엉덩이를 움직이겠지.
그나저나 구조대의 다른 사람들은 어디 가고 저 사람만 여기 있는 거지?
차장님도 나와 같은 의문을 느꼈나 보다.
“구조대는 아닌 것 같아요. 저 사람 외에 다른 헌터들이 안 보여요.”
"눈썰미가 좋군.”
무심하게 대답한 서지한이 차장님에게 무언가를 휙 던졌다.
“이거 쓰고, 나머지 일은 알아서 하도록.”
나머지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