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화. 3. 대마법사와 악녀 메이커 (40)
‘어, 라이칸과 휴고가 저택에 찾아왔었다고?’
발데르의 말을 들어보니 그런 것 같은데, 내가 계속 잠들어 있었으니 그냥 돌아간 걸까?
아니, 어째 이 사람 말을 해석해 보자면 직접 쫓아냈다는 말 같은데.
“저, 발데르. 제가 이해한 게 맞다면 발데르가 두 사람을 쫓아낸 건가요?”
“네, 맞아요.”
“……왜요?”
“우선 환자는 절대 안정이 필요하니까요?”
“아하.”
“-라고 말하니 알아서들 가더군요. 좋은 핑계였어요.”
“예?”
발데르가 처음으로 상큼하게 미소했다.
“대마법사인 제가 사람이 좀 많다고 치료에 집중 못 할 리 없잖아요?”
나는 2차로 할 말을 잃었다. 여기서는 무슨 말을 해야 하는 걸까.
“엄, 그래요. 네……. 그럴 수 있죠.”
“이해하는 건가요?”
“이해, 라기보다는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어쨌거나 발데르가 제 목숨을 살려주신 건 맞잖아요?”
“…….”
조금 전엔 정말로 위험했던 것 같은데.
건강 수치가 0이 되어서 ‘불굴의 의지’ 스킬이 발동하더라도 결국 1시간 이내에 회복하지 못하면 말짱 꽝인데, 이 남자가 스킬 발동 전에 나서준 셈이었으니까.
‘게다가 불굴의 의지가 발동하면 건강 수치가 한 자릿수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회복하기 진짜 어렵더라고…….’
첫 번째 메인 퀘스트를 깼을 때, 퀘스트 완료 보상으로 건강 수치를 왕창 얻지 못했다면 정말 거기서 올리느라 매우 고생했을 터였다.
“달린은 이상한 곳에서 합리적이네요.”
“발데르에게 그런 말 듣고 싶지 않아요…….”
댁은 초면에 애인 대행 좀 해달라는 황당한 요구도 흥미롭게 받아들이던 사람이었잖아요. 당신도 만만치 않은 사람이라고.
“아무튼 간에 더는 독으로 죽을 일은 없다는 거죠?”
“더 먹지만 않는다면요?”
“아, 안 먹을 거예요.”
“그럼 이제 다른 방식을 찾으려는 건가요? 나 때문에 죽음이 막혔으니까?”
“네? 무슨 그런 무서운 오해를 하세요. 아니에요. 저 죽으려고 안 했다니까?”
“뭐, 다른 방식을 찾아도 괜찮아요.”
발데르가 내 손을 살짝 덮었다.
“나는 어떤 순간에도 살릴 자신이 있으니까.”
……대체 왜 안 믿어줄까. 이건 둘째치고, 정말 든든한 말이긴 한데.
그럼에도 소름이 끼치는 것도 참 신기한 일이다.
‘설렘과 소름이 한 번에 느낄 수 있는 거였다니. 내가 아주 요상한 경험을 하네.’
한창 독에 대한 설명도 들었겠다, 이제 그걸로 더 죽을 일도 없겠다.
내 안에서는 이미 산뜻하게 해결이 된 상태였다. 좋아, 멀리하기만 하면 되겠군!
‘일단 그 주치의는 잡아들여야겠지만.’
그리고 나는 몇 시간 뒤, 황당하고 당혹스러운 소식과 마주했다.
“뭐? 죽었다고?”
“……어, 그래.”
다름 아닌, 내게 약을 만들어주었던 주치의가 싸늘한 시체로 발견되었다는 소식이었다.
나는 황당함을 숨기지 못했다. 죽었다니, 왜? 아니, 하필 이 시점에?
소식을 알려준 건 오빠인 파올로였다.
파올로는 본인도 심경이 복잡한지,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내 침대 옆에는 발데르가 방에 처음부터 있던 물건인 듯 무생물처럼 서 있었는데, 파올로는 발데르를 한번 보면서 더욱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황당한 얼굴을 숨기지 못하며 재차 물었다.
“진짜야? 정말로 죽었어?”
“그래…….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하.”
부친이 데려온 주치의는 제국에서 내로라하는 명의였다.
부르는 곳이 많아 에스테 백작 가에만 머무르지 않았지만, 부친이 그 많던 재산을 반 이상 탕진해서 데려온 자답게 이곳에 자주 들려 진찰하고 약을 주던 사람이었다.
‘온 지 꽤 되긴 했었지…….’
어느 날부터 나를 진찰하던 건 사라지고, 약만 남기고 가곤 했었다.
희미하던 인상을 떠올리던 나는 그대로 얼굴을 찌푸렸다.
“사인이, 어떻게 된다고?”
“살해당했어. 칼로 난자당했다던데, 직접 봤지만 말 그대로더라.”
현재, 발데르가 아직 말하지 않은 터라 가족들은 주치의가 준 약이 사실은 독이었고, 내 몸에 치명적이었다는 사실을 몰랐다.
나는 아직 이걸 가족들에게 알리는 게 맞는지 고민 중이었다.
‘모르긴 몰라도 막 회복된 아버지는 분명 다시 쓰러지실 것 같은데…….’
더군다나 무슨 영문인지는 몰라도 주치의가 이렇게 맥없이 죽어 버림으로써 ‘만약 내게 독을 먹도록 사주한 사람이 있었다면?’ 하고 가정했을 때. 용의 선상에서 가족들은 사라진 셈이었다.
물론 단 한 번도 의심해본 적은 없지만.
‘만약 부모님이 나를 죽이려 한 거라면 내가 죽을 때까지 주치의를 살려뒀겠지, 죽일 리는 없어.’
거기다 주치의 죽음은 뭐랄까…….
‘약의 행방을 쫓지 못하게 죽인 것 같은데, 내가 망상이 지나친 건가? 아니야. 일리가 있어.’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눈 앞에서 파올로가 심각한 표정과 함께 무척이나 염려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떡하냐. 지금 받아둔 약이 떨어지면 너는, 하아….”
파올로가 자신의 얼굴을 문지르더니,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괜히 무섭게 만드는 소릴 해서 미안하다고. 나를 바라보는 우묵한 눈에는 오직 걱정으로 가득했다.
이런 가족이 나를 해치려 할 리 없다. 나는 파올로의 얼굴을 보며 확신했다.
평소 꽤 장난스러운 편이고 어째서인지 연애에는 눈치도 없고 숙맥인 오빠였지만, 가까이 지낼수록 느껴졌다. 정말로 나를 아끼고 사랑하는 오빠라는 것을.
그렇기에 나는 결심했다.
‘아버지에겐 말 못 해도, 파올로에게는.’
말해야겠다.
“약은 더 이상 필요 없어 오빠.”
“뭐? 그게 무슨 소리야. 너 또 이상한 소리 한다. 그런 소리 하지 말랬지? 너는 살 수 있어, 앞으로도 쭉 살 수 있을 거라고!”
또? 나는 고개를 갸웃했지만, 이내 절레절레 저었다.
“아냐, 오빠. 그런 말을 하고 싶은 게 아니야. 나도 살고 싶어. 그리고 오래 살 거야.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나는 더는 아프지 않을 거란 거야.”
“그게 무슨 말이야?”
“그 약을 먹지 않으면, 아프지 않을 거라고.”
파올로는 순간 이해하지 못한 표정을 했다.
오히려 ‘너 아직 많이 아프냐?’ 같은 표정을 했다. 나는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내 얼굴에서 차차 미소가 사라졌다.
“오빠, 잘 들어. 나는 그 약 때문에 쓰러졌던 거야.”
이런 말을 하는데, 웃으면서 할 순 없으니까.
“그리고 그 약은…… 나를 죽일 뻔했대.”
“……뭐?”
말을 할까 말까 짧은 시간 수없이 망설였지만 이토록 나를 사랑해준 가족에게 진실을 말하지 않는 건 아닌 것 같았다.
“거짓말이 아니야. 증인은 여기 대마법사님이 해주실 거야.”
만약 가족 중에 꼭 한 사람이 알아야 한다면 파올로가 괜찮을 것 같았고.
“……그, 그게 무슨, 무슨 말이야?”
하지만 이런 표정을 지을 줄 알았으면…… 조금만 더 고민해볼 걸 그랬다.
마치 세상이 무너진 것 같은 표정을 짓는 오빠 앞에서 나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약이, 너, 널 살리는 약이 너를 주, 죽였다니? 무슨 말이야! 무슨 말이냐고! 아…… 소리 질러서 미안하다. 대체 무슨 말이야…… 달린…….”
파올로가 무너져 내렸다.
마지막까지 그건 거짓말이라고 말해달라는 듯 간절한 표정을 한 채로.
“부모님과 내가, 달린 네가 살길, 얼마나 바라왔는데…….”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파올로의 손을 덥석 붙잡았다.
“나도 잘 알아, 오빠. 그리고 나도 살고 싶어.”
“…….”
생각해보니, 이 세계에서 눈을 뜨고 ‘살고 싶다’고 이렇게 많이 말하는 건 처음인 것 같았다.
늘 나 혼자만의 싸움이었다. 모두가 내가 얼마나 치열하게 사는지 몰랐다.
홀로 외롭게 걸어온 길을 파올로에게 약간이나마 보여주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 조금 머뭇거렸지만, 나를 붙잡아오는 연약한 힘에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지금 오빠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마. 오빠의 탓이라느니, 부모님의 탓이라느니. 잘못된 약을 준 놈이 문제지, 우리 가족이 문제겠어? 결과적으로 난 살았어. 오빠는 그것만 생각해.”
“…….”
“그리고 앞으로도 살 거야.”
나는 파올로에게 간략하게 설명했다, 중간중간 발데르를 바라보면 그는 내 말이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주거나 짧게 보충 설명을 덧붙였다.
모든 이야기가 끝났을 때, 파올로는 눈물을 그쳤지만, 눈가가 물기로 흥건했다. 덩치는 산만해서는 의외로 눈물이 많았다.
으음, 갑자기 리제에게 미안해지는걸. 이런 울보 오빠를 보내게 된다니.
“오빠, 부탁이 있는데 부모님께는 말씀드리지 말아줘. 오빠랑 나만 알고 있자.”
“하지만, 달린.”
“나 아버지가 또 쓰러지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아. 회복된 지 얼마 안 됐잖아.”
나는 파올로의 손을 잡고 또박또박 말했다.
“지금은 주치의가 왜 죽었는지 파헤치는 게 먼저야. 주치의의 죽음을 조사하는 건 부모님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으실 거야. 모든 진실이 밝혀진 뒤에 사실을 밝혀도 늦지 않아.”
“……이거 하나만 묻자.”
어느새 파올로는 나를 보며 종종 짓던 진지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 약을 더 먹지만 않으면, 넌 더는 쓰러지지 않는 거야?”
나는 대답 대신 발데르를 한번 보았다. 발데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쓰러지지는 않을 겁니다. 이미 체내에 있는 독은 어찌할 수 없겠지만. 더 먹지만 않으면 죽지는 않겠지요.”
이리 말하는 발데르의 시선은 파올로를 향하기는커녕 나만을 보고 있었다.
내가 조금 당황할 정도로.
“내가 반드시 옆에 있어야 합니다.”
자기주장 확고한 발데르의 말에 오빠는 잠시 당황한 듯했지만, 이내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달린, 이것도 물어보자.”
“그래. 그래. 다 물어봐.”
“넌 그럼 주치의가 네게 독을 먹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냐?”
파올로는 황실 기사단이었다.
내가 알기로 황실 기사단은, 단순히 황실을 지키는 것뿐만이 아니라 마치 경찰처럼 황실 내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범죄 또한 담당한다고 들었다.
그래서일까, 늘 다정하거나 장난스럽던 눈이 예기를 띄고 있었다.
“네 죽음을 사주한 사람이 있다고 생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