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
정원이 고개를 끄덕였기 때문에, 석주는 멈추지 않았다. 들어찬 성기는 안을 부드럽게 풀어주려는 듯 부드럽게 움직이다가 한순간에 기세를 바꿔 난폭하게 들쑤셔 왔다. 정원은 헛숨을 들이켜며 석주의 등을 강하게 끌어안았다. 그 감각이 괴로우면서도 달가웠다.
“하, 으읏……. 아!”
통증을 참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 쾌감으로 아픔을 달래려는 듯 손을 뻗어 앞을 더듬었다. 거칠게 허리를 움직이는 석주는 정원의 사정에 신경을 쓰기 힘들 정도로 흥분한 상태 같았지만, 그러면서도 정원의 모습에는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그가 허리 짓을 멈추지 않으며 정원의 손을 끌어당겨 물었다. 손가락 끝에서 뜨거운 혀의 감촉이 느껴졌다.
정원은 제 앞을 매만지며, 물린 손가락으로 석주의 입안을 쓸어내렸다. 감겨 오는 혀를 손톱을 세워 헤집었다. 상처를 내고 싶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자국 정도는 남기고 싶었다. 그의 혀에까지 어떤 흔적을 남겨주고 싶었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이 입에 손가락 대신 자신의 것을 물려 주고 싶다는, 자신답지 않은 외설적인 상상이 부피를 키웠다. 드러난 석주의 배 위로 제 성기를 문지르며 상상을 덧씌웠다. 입술을 조여 자신의 성기를 빠는 석주의 모습을 자꾸만 떠올리게 됐다. 이건 무슨 감정일까. 자신에게도 이런 생각이 존재한다는 게 신기했다.
“아, 흐으……!”
“힘들어요?”
참으려 해도 문득문득 흐르는 신음을 숨길 수 없었다. 처음에는 아픔이었지만, 지금은 순전히 그것만은 아니었다. 정원의 헐떡이는 소리를 들으며 석주가 입을 열었다. 가쁜 숨에 질문이 섞여 나왔다. 그의 말을 똑바로 알아들을 정신이 없어 대답은 하지 못했다.
석주의 움직임이 느려진 것이 느껴졌다. 대답을 하지 않아서일까. 혼곤한 시야를 틀어 그를 바라보았다. 속을 알 수 없는 눈이 정원을 바라보고 있었다.
배려라고 해도 지금은 전혀 반갑지 않았다. 정원은 그를 강하게 당겨 안으며 중얼거렸다.
“멈추지…… 마세요.”
석주는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 입을 열어 대답하지도 않았다. 대신 정원의 둔부를 쥔 채 제 쪽으로 강하게 당겨 앉혔을 뿐이었다. 극점을 찌르는 충격이 정원에게로 흘러들었다.
“아으, 하아…… 흣!”
눈앞이 절절 끓었다. 힘이 빠져 내려앉은 뒤 연달아 안쪽을 후벼파이자 머릿속으로 하던 상상과는 비교할 수 없는 것이 밀려와 덮쳤다. 앞을 매만지고 있던 손에서 저절로 힘이 풀렸다. 그 자리를 석주의 손이 대신 채웠다. 귀두를 자극하는 손가락에 대고 무심코 허리를 움직이게 됐다.
두꺼운 손가락에 대고 욱신거리는 기둥을 마구 비볐다. 동시에 허리를 찧었다. 그가 한 번 처박힐 때마다 안이 녹진하게 풀리는 기분이었다. 입구 끝에 걸렸던 귀두가 한 지점을 자꾸만 난잡하게 두드렸다.
계속해서 살이 부딪는 소리가 들리고 주변이 욱신거렸다. 성기를 받는 것이 아니라 엉덩이를 얻어맞는 듯한 기분이었다. 온몸을 불사를 듯 치미는 자극과 쾌감이 한도를 넘어 머릿속이 녹아버릴 것 같았다. 입 밖으로 흐르는 신음과 헐떡이는 숨소리가 자신의 것 같지 않았다. 참다 못해 벌린 입에서 침이 뚝뚝 떨어졌다.
“아, 흣… 너무…….”
그 말을 뱉는 게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석주가 요청에 답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못내 답답하게 느껴졌다. 겨우 입을 열자 불분명한 발음이 흘러나왔다.
“강석주, 씨. 석주 씨…….”
그런데도, 구명줄이라도 되는 것처럼 이름을 불렀다. 그로 인해 몸이 반으로 갈라지는 기분을 느끼면서도 그에게 매달렸다. 뭔가 모자란 듯한 기분이 사라지지 않았다. 거의 본능적으로 이를 세워 석주의 어깨를 깨물었다. 눈앞이 점멸하고, 앞에서 물컥 뜨거운 것이 터졌다. 석주의 배 위를 타고 정액이 줄줄 흘러내렸다.
사정하는 도중에도 안을 들쑤시고 들어오는 동작에 눈앞이 아찔하게 튀었다. 머릿속이 끓고 있는 것인지 별이 보이는 것인지 눈물이 나고 있는 것인지조차 알 수가 없었다. 움직임을 멈추게 하려고 뒤를 조였지만 소용없다 못해 역효과였다.
“아, 흑… 아흐…… 흐읏!”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멍청한 판단이다. 이어지는 자극에 정신이 나가 버릴 것 같아서 몸을 뒤틀었다. 그래 봤자 잡힌 팔로부터 좀처럼 빠져나갈 수가 없었다. 그 상태로 일어서 버리는 통에 성기가 이번에는 다른 각도로 안을 찔러 왔다. 석주의 몸에 속절없이 매달리며 작게 흐느꼈다. 그만 가고 싶어, 그만…….
중얼거리던 말은 잠깐 사이 해체되어 그만, 과 가고 싶어, 두 조각으로 나뉜다. 스스로 움직일 수 없는 탓에 힘을 주었다 풀며 가볍게 허리를 들썩이는 것이 고작이었다.
머지않아 안쪽이 왈칵 젖어들었다. 귀두 끝이 부푸는 것이, 꿈틀거리며 정액을 토해내는 성기가 치가 떨리도록 선명하게 느껴졌다. 급하게 시작한 탓에 콘돔 같은 걸 생각할 겨를도 없었던 상황이다. 덕분에 한 겹조차 없는 생생한 감각이 안을 채웠다.
“흐으으……”
우는 것 같은 소리가 자신의 입에서 흘러나왔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정원은 천천히 빠져나가는 기둥을 느끼며 몸을 떨었다. 바깥으로 질질 흐르는 감각이 기묘한 수치심을 불러일으켰다.
한 사람을 대상으로 갖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는 것. 그에게 의지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버렸다는 것. 그건 정원에게는 너무나 낯설고 생경한 감각이었다. 거부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스스로를 부정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나 두려웠다. 그의 성기가 빠져나가는 것을 느끼며 막연한 불안감을 함께 느낀 것은 그 이유 때문이었다. 정원은 자기도 모르게 손을 뻗어 석주의 등을 끌어안았다. 그가 멈칫하는 것이 여실히 느껴졌다.
뱃속이, 등허리가, 목구멍이, 뒤통수가 징징 울렸다. 정원은 작은 숨소리처럼, 흐느끼는 것처럼 들리기도 하는 목소리로 입을 열어 중얼거렸다.
“더……”
더 해주세요.
그만하지 마세요.
이어지는 말은 제대로 완성되지 못했다. 그러나 그가 그 말을 알아들었다는 것을 정원은 이미 알고 있었다.
다시 파고드는 성기가 전보다도 깊은 곳을 두드리는 게 단순히 착각 때문인지, 아니면 한참을 비벼진 끝에 안이 부어오른 탓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런 생각 때문에 부딪쳐 오는 입술을 거부하지 못했다. 아니, 거부하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감겨 오는 혀를 마주 빨아 당겼다. 그러다 보면 다시 한번 그의 혀에 흔적을 남기고 싶다는 생각. 기묘한 충동이 고개를 들었다. 그의 혀를 아프지 않게 잘근잘근 씹으며, 일부러 아래쪽의 감각에 더욱 집중했다.
“아……!”
얼마 가지 않아 정원의 입에서 탄성 같은 신음이 흘렀다. 정원은 안쪽이 뜨겁게 젖어들어가는 것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허리가 저절로 위를 향해 튀었다. 이미 젖어들어 축축해져 있던 앞이 새로이 젖는 일은 없었다. 그럼에도 반박의 여지 없는 절정이었다.
뒤의 자극만으로 절정을 맞은 것이다. 아직 바짝 일어서 있는 정원의 성기 위로 석주가 손을 뻗었다. 천천히 위아래로 어루만지는 손길이 제법 자극적이었다. 이전에 흘러내렸던 정액이 살갗에 눅진하게 비벼졌다. 흠뻑 젖어버린 아래를 정리해주려는 것 같았지만 정원의 허리는 다시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고작 손바닥으로 훔쳐내는 것만으로는 깨끗해질 수 없는 상태인 게 당연하다. 성기와 아랫배 부근을 부드럽게 문지르다가, 이내 석주가 손을 거두었다.
석주가 느리게 하체를 물려 성기를 빼냈다. 이번에는 정원도 저항하지 않은 채 가만히 석주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덩어리진 정액이 힘없이 벌어진 다리 아래로 울컥 흘러내렸다. 마찰로 인해 붉게 달아오른 허벅지 사이에 하얀 액체가 맺히는 광경을 석주가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약간의 정복욕과, 죄책감과, 순수한 열망이 뒤섞인 눈동자였다.
“힘들었죠.”
또 힘이 들었냐는 질문. 입을 열어 대답하고 싶었지만 그럴 기운이 나지 않았다. 정신을 유지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석주는 달아오른 허벅지를 가만가만 매만지다가, 정원의 다리 사이로 손을 뻗었다. 한 손으로는 허벅지를 밀어 올린 채 손가락 두 개를 넣고 안을 벌린다. 진득한 액체가 흥건하게 쏟아지는 감각이 선연했다. 정원은 팔다리를 늘어뜨린 채 가쁜 숨을 내쉬었다.
알 수 없는 눈으로 정원을 내려다보던 석주가 손을 뻗었다. 땀으로 젖은 정원의 머리칼을 뒤로 넘겨주더니, 그는 그대로 고개를 숙여 정원의 이마 위에 입술을 내렸다.
그 어떤 키스보다 다정하고, 경건하고, 애틋한 입맞춤이었다.
정원은 멍한 눈으로 고개를 들어 석주를 올려다보았다.
그가…….
그가 울고 있는 것은 아닌가.
우는 것 같은 석주를 달래 주고 싶다는 생각만이 머리를 가득 메웠다. 그러나 손을 뻗을 정신은 없었다.
시야가 까무룩해지며 머릿속이 아득히 멀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