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긋하고 점잖으신 영주님, 우아한 드레스로 몸을 감싼 중년의 귀부인. 저택 뜰의 장미를 연상시키는 화려한 드레스 차림의 세 아가씨와, 흰색과 검은색이 적절한 조화를 이루는 복장을 하고 있는 한 남자.
언뜻 보기엔 어제와 똑같은 장면이지만 상황은 사뭇 달랐다.
“하루만, 딱 하루만 더 머물고 가시지요.”
영주님의 얼굴엔 간절함이 가득했다. 백작부인 역시 별반 다르지 않은 표정이었다. 괜한 황송함과 미안함에 눈을 마주보기가 힘들었다.
“급한 일이 있어서 가봐야 합니다. 마음만 고맙게 받겠습니다.”
부드러우면서도 단호한 프레드릭의 어조에 영주님은 더 이상 그를 붙잡지 못했다. 프레드릭의 눈짓에 마부가 얼른 마차 문을 열었다.
“베니, 어서 타.”
잡고 있던 손을 놓으며 그가 말했다. 먼저 올라가 앉자 프레드릭이 내 옆자리에 앉았다.
“잠시만, 드릴 것이 있습니다.”
생소한 목소리에 시선이 밖을 향했다. 목석처럼 서 있던 영주의 아들이 보였다. 반사적인 긴장감에 주먹을 꾹 쥐었다. 프레드릭에게 뭔가 볼 일이 있는 걸까? 하지만 예상과 달리 그의 손이 향한 것은 바로 나였다.
“선물입니다. 부디 받아주십시오.”
“그게 뭐지?”
선뜻 받지 못하는 나를 대신해 프레드릭이 물었다. 영주님을 대할 때와 달리 조금은 날카로운 목소리였다.
“보라색 장미로 만든 목걸이입니다.”
“이걸 주는 의미는?”
“워릭을 찾아주신 귀한 손님께 드리는 선물입니다. 그 이상의 뜻은 없습니다.”
“……그럼 고맙게 받도록 하지.”
프레드릭이 그에게서 상자를 건네받았다. 새하얀 실크로 포장된 상자는 한 눈에도 고급스러워 보였다.
“부디 살펴 가십시오.”
정중한 인사를 끝으로 마차 문이 닫혔다. 화사한 장미정원이 빠르게 스쳐지나갔다.
“도착했습니다 나으리. 문 열겠습니다.”
숙소에 도착한 것은 금방이었다. 몸을 일으키려는 프레드릭을 보고 나는 서둘러 그를 붙잡았다.
“잠시만요!”
“왜 그래 베니?”
“저거, 가지고 내려야 하지 않나요?”
내가 가리킨 것은 선물상자였다. 조금 전, 마차가 출발하자마자 프레드릭은 상자를 맞은편 자리에 놓았다. 아니, 놓았다기보다는 던지는 것에 가까운 행동이었다. 분명 나에게 준 것인데 왠지 선뜻 손을 내밀기가 어려웠다. 그러면서도 시선은 자꾸만 그리로 갔는데, 저대로 놔둔 채 내리려고 하니 붙잡지 않을 수가 없었다.
“왜. 가지고 싶어?”
“그런 건 아니지만…….”
내가 들어도 신빙성이 없는 목소리다. 복잡한 얼굴로 나를 보던 프레드릭이 짧은 한숨을 쉬었다.
“베니. 저 선물의 의미가 뭔 줄 알아?”
“예. 귀한 손님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하셨잖아요.”
“그래서 내가 안심이 안 되는 거야.”
또 한 번 한숨을 내쉬며 프레드릭이 머리를 뒤로 쓸어 넘겼다.
“귀한 손님께 드리는 거라면, 네가 아닌 나를 줬어야 해. 나에 대해선 잘 알아도 너에 대해선 아무 것도 모를 테니까. 근데 왜 너에게 저걸 준 것 같아? 그것도 그 뜻이 영원한 사랑이라는 목걸이를.”
“아…….”
“이제 알겠어? 그러니 저게 갖고 싶다는 말은 하지도 마. 당장 창밖으로 내던지지 않은 나를 칭찬해주고 싶을 정도니까.”
평소의 프레드릭 답지 않은, 조금 격양된 말투. 그런데 희한하게 그것에 가슴이 설레는 내가 있었다.
“……질투하는 건가요?”
떨리는 마음으로 그에게 물었다. 사실 속으로만 생각하던 것이지만 나도 모르게 소리 내어 묻고 있었다. 하, 프레드릭이 헛웃음을 지었다. 얼굴을 가까이하며 그가 내게 물었다.
“질투하는 거냐고?”
“…….”
“만약 네가 알파의 성정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고 있다면 절대 그런 질문은 하지 못했을 거야. 절대로.”
시리도록 푸른 눈동자에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프레드릭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언제 화가 났었냐는 듯 평소처럼 다정한 얼굴이었다.
“런던에 돌아가면 아무래도 일대일 교습을 해야겠어.”
“일대일 교습이요?”
“그래. 넌 좀 더 알파에 대해 알아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으니까.”
이마에 입술을 내린 프레드릭이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수줍음에 살짝 몸을 밀어내는데 갑자기 누군가가 떠올랐다.
“저기 프레드.”
“응?”
“저 목걸이 말이에요. 혹시 데니스에게 줘도 괜찮을까요?”
“데니스? 그게 누군데.”
“여기까지 함께 동행해준 친구예요.”
“아아, 에드워드가 말한 그 녀석인가 보군.”
프레드릭이 누군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왜? 저게 갖고 싶다는 말이라도 했어?”
“네. 굉장히 사고 싶어 했는데 이런저런 사정이 있어서 결국엔 사질 못했어요. 프레드만 괜찮다면 데니스에게 주고 싶은데…… 안 될까요?”
“그런 표정으로 묻는데 어떻게 안 된다고 하겠어. 대신, 주는 건 네가 아니라 나야.”
“네?”
“내가 주겠다고. 이 이상은 나도 양보 못해.”
고집이 느껴지는 목소리에 나는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벤!!!!!”
데니스의 환영은 예상보다 격렬했다. 방문을 열자마자 나를 향해 달려왔지만, 두 팔을 벌린 자세 그대로 제자리에 멈추어 섰다.
“……크, 큰 도련님?!”
잠시 말이 없던 데니스가 믿을 수 없다는 듯 소리를 질렀다. 내 어깨를 감싸 안으며 프레드릭이 방으로 들어섰다.
“데니스라고 했나?”
“네, 네네!”
두 팔을 수습하며 데니스가 한껏 고개를 숙였다. 괜찮으니까 일어나. 프레드릭의 말에 데니스는 눈치를 보며 주춤주춤 고개를 들었다. 얼굴은 여전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 가득했다.
“받아.”
프레드릭이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데니스에게 가볍게 던졌다. 엇, 신음을 흘리며 녀석이 양손으로 그것을 받았다. 손 안에 든 것을 확인하고서는 놀란 눈으로 프레드릭을 보았다.
“이건…….”
“베니와 함께 해준 답례야. 제대로 된 보답은 런던에 돌아가서 하도록 하지.”
“보, 보답이라뇨. 당치도 않습니다!”
“내가 하고 싶어서 그래. 이 녀석과 관련된 일이라면 그 어떤 빚도 남겨놓고 싶지 않으니까.”
“…….”
깜빡, 깜빡.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느리게 눈을 깜빡이던 녀석이 나를 보았다. 왠지 모를 쑥스러움에 콧잔등을 긁적였다. 내가 아무 말도 없자 데니스가 조심스럽게 입술을 달싹였다.
“저, 저기 큰 도련님.”
“왜 그러지?”
“그게… 그러니까…….”
나를 한 번 보고, 프레드릭을 한 번 보고. 데니스의 갈색 눈동자가 쉴 틈 없이 움직였다. 그럴 만도 했다. 아마 에일리에게서 소식을 듣긴 했겠지만, 설마 나를 데리고 간 사람이 프레드릭일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을 테니까.
“할 말 있으면 해.”
“헙.”
데니스가 화들짝 놀라 숨을 들이켰다. 곧 떨어질 것처럼 고개를 흔들었다.
“아뇨! 아무 것도 아닙니다. 주, 주신 것 감사히 받겠습니다.”
프레드릭이 준 것은 바로 그 목걸이였다. 들고 가기 귀찮다며 찢듯이 포장을 풀어 목걸이만 주머니에 넣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일부러 그런 게 아닌가 싶다. 상자 째로 줬다면 아마 포장을 풀지도 못하고 두고두고 모셔뒀을지도 모를 일이니까.
“자네는 그만 런던으로 돌아가도 좋아.”
“저 혼자…… 말입니까?”
데니스가 다시 나를 보았다. 시선을 눈치 챈 프레드릭이 그래, 하고 낮게 대답했다.
“혹시 에드워드가 나에 대해 물어보면, 다행히 바라던 대로 일이 풀려서 함께 있다고 전해주면 돼.”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자네가 해줬으면 싶은 일이 하나 더 있어.”
내 어깨에 올려진 팔을 풀며 프레드릭이 데니스를 향해 다가갔다.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그가 한참을 데니스에게 속삭였다.
“……그럼 부탁 좀 하지.”
고개를 들며 하는 프레드릭의 말에 데니스는 걱정 말라는 듯 큰소리로 대답했다. 이내 녀석이 내게로 가까이 다가왔다.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을게.”
나는 혼란스러운 눈으로 데니스를 보았다. 기다린다는 말은 내가 돌아간다는 전제 하에서만 할 수 있는 말이다. 선뜻 대답하지 못하고 망설이자 녀석은 그 어느 때보다 밝은 얼굴로 환하게 웃어주었다. 마치 아무 것도 걱정하지 말라는 것처럼.
“도련님. 먼저 출발하겠습니다.”
고개 숙여 정중히 인사한 후에 데니스는 짐가방을 챙겨들고 밖으로 나갔다. 프레드릭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우리도 가자.”
“어디를요?”
“어디긴. 당연히 리버풀이지.”
그렇게 말하는 프레드릭의 얼굴은 어느 때보다 다정하고 아름다웠다.
건장한 수말 네 마리가 이끄는 마차는 지칠 줄 모르고 숲길을 달렸다. 어느덧 해가 저물어갔다. 곧 있으면 사방에 어둠이 내릴 테지만 예전처럼 불안하거나 걱정스런 마음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이유는 하나뿐이었다. 프레드릭이 있으니까. 절대 놓지 않겠다는 듯이, 지금도 내 손을 꼭 잡고 있는 프레드릭이 곁에 있으니까.
다시 생각해도 믿을 수 없는 기적 같은 일에 자꾸만 얼굴을 보며 그의 존재를 확인하고 싶었다. 하지만 실제로 내 눈에 그가 담긴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다.
워릭을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부터 졸음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밤잠을 설친 것도 아니다. 눈을 뜨니 아침이었을 정도로 숙면을 취했지만, 이상하게도 주체할 수 없을 만큼 잠이 쏟아졌다.
정신을 차리려 고개를 저어 보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꾸벅꾸벅, 급기야 고개를 떨구는데 커다란 손이 살며시 뺨을 감쌌다.
“……!”
깜짝 놀라 눈을 떴다. 미안한 표정의 프레드릭과 눈이 마주쳤다.
“저런. 내가 깨웠나 보구나.”
“죄, 죄송합니다.”
서둘러 사과하며 손으로 두 뺨을 찰싹 쳤다. 대체 왜 이러는 거지. 저택에 있을 땐 여서 일곱 시간만 자도 충분했는데, 그새 게으름이 몸에 배기라도 한 걸까.
정신을 차리자 싶어 두 눈에 잔뜩 힘을 줬다. 그런데 프레드릭의 손이 다가와서는 살며시 내 얼굴 위를 덮었다.
“더 자도 돼.”
“하지만…….”
“괜찮아. 몸이 잠을 필요로 해서 그런 거야.”
“네??”
몸이 잠을 필요로 하다니. 궁금함에 프레드릭의 손을 잡아 내리며 그를 보았다.
“변화의 마지막 단계라서 그래. 푹 자고 일어나면 더 이상 열이 나거나 힘든 일은 없을 거야. 그러니까 억지로 눈 뜨지 말고, 졸리면 계속 자도 괜찮아. 내가 계속 옆에 있을 테니까.”
프레드릭이 내 머리를 자신의 어깨에 기대게 했다. 조금만 더 참아줘 베니. 속삭이듯 낮은 목소리가 참 듣기 좋다고 생각하며 나는 또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지 않아도 돼.”
“네. 그러면……, ……니다.”
잠결에 웅성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천천히 눈을 뜨자 새하얀 색이 눈에 들어왔다. ……하얀색? 멍하니 생각하며 눈을 깜빡였다. 뒤늦게 뭔가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닫고 벌떡 몸을 일으켰다.
나는 침대에 누워 있었다. 나풀거리는 새하얀 시트를 아연하게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움직여 주변을 살폈다. 왼쪽에 놓인 작은 테이블과 의자. 침대 맞은편에는 하늘색에 가까운 커튼이 빈틈없이 드리워져 있었고, 방문은 보이지 않았다.
프레드는 어딜 간 걸까.
혼자라는 것을 깨달은 순간 불안함이 밀려왔다. 편안하고 안정감이 느껴지는 침실이었지만, 프레드릭이 옆에 없으니 결코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조심조심 침대에서 내려와 커튼을 걷었다. 그 순간 눈에 보인 풍경에 입이 떡 벌어졌다.
방문이 없어 의아하다 싶었는데, 커튼 밖의 공간은 복도가 아니라 넓은 거실이 이어져 있었다. 섬세하고 화려한 세공이 돋보이는 상아빛의 테이블, 멀리서 봐도 푹신해 보이는 짙은 브라운 계열의 카우치, 곳곳에 놓여있는 산뜻한 화병들과, 액자를 비롯한 각종 장식품들. 그 모든 것이 완벽하게 배치되어 있는 거실은 런던의 저택에 있는 응접실보다 훨씬 넓고 화려해보였다. 더욱 놀라운 것은 한쪽 면에는 벽이 아예 없다는 사실이었다. 벽이 있어야할 곳을 대신한 커다란 유리창 너머로 저물어가는 태양빛이 비쳐 들어왔다.
이, 이게 대체 어떻게…….
바보처럼 눈만 깜빡거렸다. 리버풀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눈을 떴을 때 어쩌면 별장에 이미 도착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긴 했었다. 하지만 설마 이런 광경을 보게 될 줄은 몰랐다. 별장이라기에 막연히 작고 아담할 거라 생각하고 있던 게 미안할 지경이었다.
― 달칵
문이 열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프레드릭이 놀란 듯 눈을 크게 뜨더니 성큼성큼 나를 향해 다가왔다.
“드디어 일어났구나.”
그의 두 팔이 나를 꼭 안았다. 익숙한 품, 익숙한 체온. 불안했던 마음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을 느끼며 나 역시 그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살짝 팔을 푼 프레드릭이 다정한 눈으로 나를 보았다.
“잠자는 숲속의 공주인 줄 알았어. 잠이 필요하단 걸 알면서도 얼마나 가슴을 졸였는지…….”
“제가 많이 잤나요?”
“삼일 밤낮으로 꼬박.”
생각보다 긴 시간에 깜짝 놀랐다. 걱정시켜서 미안하다는 내 말에, 프레드릭은 이제라도 일어났으니 다행이라며 웃었다.
“베니.”
“네.”
“키스해도 돼?”
“어… 그게…….”
“사흘 간 네가 깨어나기만을 기다렸어. 부탁이니까, 안 된다고 하지 마.”
절박한 목소리에 새삼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만약, 만약 상황이 반대였다면 어땠을까. 사흘 간 죽은 듯이 잠만 자는 프레드라니. 생각만으로도 두려웠다. 손을 뻗어 프레드릭의 얼굴을 감쌌다. 까치발을 해보지만 입술에 닿기엔 턱없이 부족한 거리였다. 속삭이듯 작은 목소리로 그에게 말했다.
“프레드. 고개 좀 숙여주세요.”
“얼마든지.”
잠시 놀란 눈을 한 그가 이내 웃으며 상체를 숙여주었다. 두근두근, 떨리는 심장을 온몸으로 느끼며 얼굴을 가까이 가져갔다. 일자로 다물어져 있는, 적당히 도톰하면서도 보기 좋은 입술. 나도 모르게 눈을 감은 채 입을 맞추었다.
“엇!”
갑자기 몸이 들리는 느낌에 깜짝 놀라 눈을 떴다. 나를 안아든 그가 어딘가로 성큼성큼 걷기 시작했다.
“내려주세요.”
당황해서 말했지만 프레드릭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가 향한 곳은 침실이었다. 조금 전에 내가 눈을 떴던, 마치 천사의 날개처럼 눈부시게 새하얀 시트가 돋보이는 침대. 그 위에 나를 내려준 프레드릭은 이내 천천히 몸을 기울여 나를 눕혔다.
두근두근,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그는 평소처럼 다정한 얼굴이었지만 눈동자에는 숨길 수 없는 욕망이 묻어나고 있었다. 마치 야누스의 두 얼굴을 보는 것 같은 기분에 몸이 떨려왔다. 긴장하지 말라는 듯 프레드릭이 내 이마에 가볍게 입술을 내렸다.
“으응…….”
곧이어 뜨거운 혀가 입 안으로 밀려들어왔다. 맞닿은 그 느낌이 너무 좋아서, 나는 언제 당황했었냐는 듯 그의 목에 팔을 두르고 키스에 응했다. 그가 내 혀끝을 가볍게 깨물었다. 그러다 다시 깊숙이 혀를 집어넣어 입 안 곳곳을 부드럽게 핥는다. 저릿한 감각에 절로 소리가 새어나갔다. 호흡이 점점 가빠지고, 온몸에 열이 오르는 기분이었다.
여기까진 평소와 똑같았다. 그와 키스할 때마다 느끼는 익숙한 감각이었지만 얼마 안 있어 이상함을 눈치 챘다. 가쁜 숨을 내쉬며 프레드릭의 어깨를 밀어냈다.
“프, 프레드…!”
“조금만 더.”
의미 없는 부름이라 생각했는지 프레드릭은 금방 다시 입술을 부딪혀왔다. 비정상적일 정도로 빨라진 심장박동. 그것만으로도 정신이 없는데, 갑자기 온몸에서 식은땀이 나고 다리 사이가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욱신거리기 시작했다. 그 순간 무언가가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히트 사이클. 성욕이 모든 것을 지배해버리는, 오메가들의 발정기.
깨달음과 동시에 눈앞이 까맣게 물들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땐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베니.”
귓가에 닿는 뜨거운 숨결. 그조차도 지독한 자극이 되어 견딜 수가 없었다. 절로 엉덩이가 들썩거렸다. 온몸이 간지러워 어찌할 바를 모르고 시트에 몸을 비벼댔다. 몸이 점점 뜨겁게 달아올랐다. 참을 수가 없었다. 통제를 넘어서는 성욕에 급기야 전신이 바들바들 떨려왔다.
“프레드, 야, 약을… 으응…!”
헐떡이며 말을 내뱉는 입술 사이로 또 다시 프레드릭이 혀를 넣어 입을 맞추었다. 커다란 손이 전신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젖꼭지를 잡아당기는 손길에 허리가 크게 튀어 올랐다. 달라붙는 입술을 피하며 그에게 사정했다. 아직, 아직 정신이 있을 때 약을 먹어야만 했다.
“프레드, 제발… 약을 가져다주,”
“벤자민.”
갑자기 그가 내 이름을 불렀다. 평소의 다정하던 음색이 아니었다. 거역할 수 없는 낮은 목소리에 이유도 알 수 없이 몸이 떨려왔다.
“두 번 다시 억제제를 먹을 일은 없을 거라고 했어.”
“…….”
“아무 것도 걱정하지 마. 지금 네가 누구와 있는지, 널 가질 사람이 누구인지 그것만 생각하면 돼.”
“무서워요. 제가 아닌 것 같아서 싫어요.”
눈꼬리를 타고 주륵 눈물이 흘러내렸다. 뺨을 스치는 그 감각조차 쾌감으로 다가와서 두려움에 견딜 수가 없었다.
“흐윽… 나, 나 좀 어떻게 좀…!”
약을 주지 않겠다고 말하는 그가 너무나 원망스러웠다. 하지만 의지할 사람 또한 프레드릭뿐이었다. 필사적으로 그를 붙잡으며 매달렸다. 생각도, 감정도, 몸도,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었다.
“베니. 내가 했던 말 기억해?”
어느덧 프레드릭의 숨도 거칠어져 있었다. 주룩주룩 눈물만 흘려대니 프레드릭이 눈가에 입술을 내려 입 안으로 빨아들였다.
“힘들면 내 이름을 불러. 밤새 불러도 좋으니까.”
그 말을 끝으로 프레드릭이 숙였던 허리를 펴며 단번에 옷을 벗어던졌다. 다음은 내 차례였다. 헐렁하게 통으로 된 파자마를 위로 끌어올리며 그는 너무도 쉽게 내 옷을 벗겨냈다. 드러난 알몸에 놀랄 틈도 없었다. 내 다리 사이에 자리를 잡은 프레드릭이 다시금 몸 곳곳을 소중한 듯이 어루만져왔다.
“흐읏… 프레드…!”
나는 울면서 도리질을 쳤다. 손길이 닿는 곳마다 마치 불에 덴 것처럼 뜨거워 견딜 수가 없었다. 가볍게 혀를 섞으며 키스한 프레드릭이 점점 아래로 입술을 내렸다. 뾰족이 솟은 젖꼭지를 빨리는 순간 허리가 크게 튀어 올랐다. 참을 수가 없어서 사타구니 사이로 손을 가져갔다. 하지만 채 닿기도 전에 프레드릭이 내 손을 낚아채 베개 옆으로 내리 눌렀다.
“안 돼. 거긴 내 꺼야.”
“하지만…!”
당장 만져주지 않으면 미칠 것만 같았다. 시트에 엉덩이를 비비며 간절한 눈으로 프레드릭을 바라보았다. 그가 혀로 아랫입술을 핥았다. 관능적인 모습에 또 한 번 사타구니 사이가 욱신거렸다.
“제, 제발…! 제발, 프레드… 나, 나 좀…!”
죽을 것만 같았다. 손을 뻗어 잡고 싶지만 내 손목을 움켜쥔 그의 힘에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저 이 미칠 것 같은 열기를 어떻게든 발산해야 한다는 생각 외에는. 두 다리로 그의 허리를 감고서는 단단한 아랫배에 내 것을 비벼댔다.
“어떻게 해주길 원해? 응?”
그가 거친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생각할 것도 없이 말이 튀어나갔다.
“만져주세요.”
“한 번 더 말해 봐.”
“만져주세요, 프레드. 제발……. 아앗…!”
마침내 그의 손이 내 것에 닿았다. 쥐어짜는 듯이 거친 손놀림이었지만 그조차 너무나 황홀했다. 지금 내 몸이 바라는 것은 부드러움이 아니었다. 좀 더 나를 엉망으로 만들어주기를 원했다. 속수무책으로 신음이 흘러나왔다. 절정에 이르는 것은 금방이었다. 또 다시 가슴을 빨던 그가 이를 세워 잘근잘근 깨물었고, 그 순간 나는 맥없이 사정해버리고 말았다.
탈력감에 숨을 몰아쉬는데 프레드릭의 손이 미끄러지듯이 뒤쪽으로 향했다. 회음부를 더듬는 손길에 고양이 같은 울음이 새어나왔다.
“으, 으응…!”
입구 주위를 덧그리듯 매만지는 손길에 구멍이 움찔 조여들었다. 그러다 단단한 무언가가 안으로 쑥 들어왔다. 나는 깜짝 놀라 몸을 굳히고 그를 올려다보았다.
“프, 프레드?”
시선을 눈치 챈 그가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하지만 나를 바라보는 그의 눈동자에는 뜨거운 정염이 가득했다.
“여기로.”
낮은 목소리에 몸이 부르르 떨렸다. 동시에 몸 안의 손가락이 좀 더 깊숙이 들어왔다.
“여기로 나를 받아들이는 거야.”
“그런…!”
남성체 오메가가 어떻게 남성체 알파와 관계를 맺는지는 이미 책을 통해서 알고 있다. 하지만, 단순히 글로 확인하는 것과 실제로 그것을 경험하는 것은 천지차이였다. 믿을 수가 없어 아연한 표정으로 눈만 깜빡였다. 그러자 손가락이 좀 더 깊숙이 들어왔다. 긴장에 온몸이 굳어졌다. 어느덧 심장은 맥박이 느껴질 만큼 크게 뛰고 있었다.
“흐읏…!”
손끝이 어딘가에 닿는 순간 허리가 크게 튀어 올랐다. 내 반응에 내가 놀라 눈을 둥그렇게 떴다. 어느새 땀이 맺힌 이마를 쓸어주며 그가 달래듯이 부드러운 입맞춤을 했다.
“베니. 허락해줘. 네 안을 나로 채우고 싶어.”
섹시한 목소리에 두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죽을 것처럼 민망하고 부끄러운데, 어찌된 영문인지 그곳은 의지와 상관없이 움찔거리며 마치 바라는 듯이 손가락을 조여 댔다. 뭐가 뭔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머릿속은 하얗고 몸은 뜨겁고. 어찌할 바를 몰라 입술만 달싹이는데 그가 다시 한 번 내 귓가에 속삭였다.
“……어서 말해줘. 날 원한다고.”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 홀린 듯이 고개를 끄덕이자 프레드릭이 단번에 내 몸을 뒤집어서는 엉덩이를 치켜들게끔 만들었다. 탈 듯이 뜨거운 시선이 샅샅이 훑는 것이 느껴졌다. 은밀한 곳이 훤히 보인다는 사실에 내 것은 다시 한 번 아플 정도로 팽팽히 일어섰다.
“허리 더 들어. 날 얼마나 원하는지 보고 싶으니까.”
“아앗…!”
“난리가 났어.”
프레드릭이 양손으로 둔부를 주물렀다. 찰싹, 아프지 않게 내리치는 손길에 눈물이 후두둑 흘러내렸다. 싫어서가 아니었다. 좋아서. 너무 좋아서. 내 몸에 닿는 그의 숨결, 손짓 하나하나가 정신을 놓을 정도의 쾌락으로 다가왔다. 긴 손가락이 몸 안으로 쑥 들어왔다. 크게 휘젓는 손길에 나도 모르게 허리가 들썩였다. 앞을 만져줄 때와는 또 다른 쾌감에 힘들게 몸을 지탱하고 있는 팔다리가 부들부들 떨렸다.
“흐읏…!”
삽입과 후퇴를 반복하는 손가락에 울면서 고개를 젖혔다. 위화감 따윈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몸의 모든 신경이 그곳으로 몰린 것처럼, 작은 움직임에도 손끝이 저릴 정도로 쾌감이 밀려왔다. 하지만 백퍼센트의 만족은 아니었다. 본능적으로 바라는 것이 조금은 충족되는 느낌이었지만 왠지 모를 아쉬움에 애가 탔다. 좋으면서도 뭔가가 부족했다. 단순히 만져지는 것이 아니라 좀 더, 좀 더 강한 자극이 필요했다. 숨이 막힐 정도의, 내 몸을 가득 채워줄 수 있는 무언가가.
“완전히 흠뻑 젖었어.”
“으응…!”
또 한 번 애액이 울컥 샘솟았다. 부끄러운데, 질척이는 소리가 귀를 막고 싶을 만큼 수치스러운데, 아까부터 축축하게 젖은 그곳은 내 생각 따윈 필요 없다는 듯이 낯선 침입자를 열렬히 환영했다.
“베니. 이제 널 안을 거야.”
낮은 목소리에 심장이 터질 것처럼 두근거렸다. 어디선가 알 수 없는 향기가 느껴졌다. 진한 꽃향기를 닮은, 하지만 꽃과는 전혀 다른 짙은 냄새. 입 안이 바싹 타들어갔다. 프레드릭이 다시 한 번 내 몸을 돌렸다. 덜덜 떨리는 팔로 그의 목을 감싸 안았다. 그런데 그 때, 바로 앞에서 보이는 프레드릭의 눈동자에 나는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다.
“프레드?! 당신 눈동자가…….”
“눈동자?”
중얼거리듯 되묻던 프레드릭이 이내 아, 하고 신음을 흘렸다.
“혹시, 붉은 색인가.”
“네.”
내 대답에 그가 곤란하다는 얼굴로 웃었다.
“러트가 온 모양이군.”
“러트라면…….”
러트. 알파의 성욕이 최고조에 달하는 시기. 아무 때나 찾아오는 것은 아니고, 오메가의 히트 사이클처럼 주기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왜 갑자기……?
“흐읏…!”
생각은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또 다시 구멍 안을 크게 휘젓는 움직임에 발끝까지 쾌감이 퍼져나갔다.
“베니. 우성알파가 왜 대단한 줄 알아?”
귓불을 깨물며 묻는 질문에 나는 도리질을 쳤다.
“가장 큰 이유는 타고난 능력 때문이지. 베타나 오메가는 이해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힘을 지니고 있으니까. 게다가 알파는 우성일수록 번식욕도 강해. 러트에 맞춰서 오메가의 히트 사이클을 이끌어낼 수 있을 정도로. 하지만… 드물긴 해도 그 역도 가능하지.”
“역이라면…….”
“그래. 바로 지금 같은 경우야. 내가 너한테 미쳐서, 네 몸의 히트 사이클에 맞춰 러트가 왔어.”
“그, 그런… 하앗…!”
줄곧 안을 넓히던 손이 쑥 빠져나갔다. 프레드릭이 양손으로 내 다리를 잡아 벌리며 허벅지 뒤쪽을 단단히 붙잡았다. 그 틈으로 보이는 커다란 성기. 처음으로 보는 형태에 놀라 나도 모르게 두 눈을 둥그렇게 떴다.
“미안. 원망은 나중에 들을게.”
그 말과 동시에 몸이 반으로 접힐 만큼 엉덩이가 위로 들렸다. 끈적하게 젖은 입구를 힘으로 누르며 프레드릭이 단숨에 안으로 밀어닥쳤다.
“……!”
일순 눈앞이 깜깜해졌다. 좁은 곳을 짓누르는 엄청난 압박감에 호흡조차 멈췄다. 철썩, 또 한 번 엉덩이를 내리치는 손길에 순간적으로 하체의 힘이 빠졌고, 그 틈을 타 거침없이 그의 것이 안으로 파고들었다.
“베니……!”
짐승 같은 목소리가 귓가에 달라붙었다. 거친 숨소리, 붉게 타오르는 눈동자, 본능적인 두려움에 몸을 물리려고 했지만 어림없는 짓이었다. 부술 것 같은 힘이 허리를 붙잡았다. 내 눈에 시선을 맞춘 채 프레드릭은 가차 없이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땀에 젖은 손이 자꾸만 미끄러져 내렸다. 격한 움직임에 정신을 못 차리고 울기만 하자 프레드릭이 내 양손을 잡아 자신의 등 뒤로 두르며 명령했다.
“손톱, 세워. 할퀴어도 좋으니까.”
또 다시 시작된 허릿짓에 나는 그가 시키는 대로 정신없이 매달렸다. 맨살에 닿은 입술이 여린 살을 강하게 빨아들였다. 목 근처로 다가가서는 피가 날 정도로 잘근잘근 씹어댄다. 아프지만, 그조차도 쾌감이 되어 몸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잠시 멈춘 움직임에 애가 탔다. 어, 어서…! 울먹이는 목소리로 그를 재촉하며 스스로 허리를 움직였다. 프레드릭의 눈동자가 한층 더 붉게 변했다. 짓씹듯 욕을 내뱉은 그가 양팔로 몸을 지탱한 채 찍어 누르듯이 안으로 파고들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겠다. 몸 안을 범하는 움직임만으로 나는 몇 번이고 절정에 달했다. 앞을 만져줄 필요도 없었다. 꾸욱, 예민한 부분이 짓눌러질 때마다 마치 물처럼 묽은 정액이 질질 흘러나왔다. 더는 사정할 힘도 없었다. 부들거리는 팔을 들어 간신히 그를 붙잡으며 애원했다.
“프, 레드, 이제 더는 무리예요. 하읏…!”
거친 숨을 내쉬며 그가 내 눈을 보았다. 여전히 탈 것 같은 붉은 눈동자였다. 휙, 갑자기 성기를 빼낸 그가 내 몸을 뒤집었다. 양손으로 둔부를 잡아 벌리며 또 다시 그의 것이 꽂혀 들어왔다. 뜨겁고 단단한 것이 빠르게 들락날락했다. 깊숙이 찔러 넣을 때마다 등줄기가 떨려왔다.
“크흑…!”
잠시 후, 프레드릭이 짐승 같은 신음을 흘리며 움직임을 멈추었다. 뱃속 가득 뜨거운 것이 휘몰아쳤다. 내 안에서 맞은 그의 첫 절정이었다.
한 순간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했다. 숨을 쉴 수조차 없었다. 분명 사정을 한 것은 프레드릭인데, 내가 절정에 이를 때보다 더한 쾌감이 전신을 휘감았다. 그의 사정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울컥, 몇 번에 걸쳐 토해내는 정액이 끝도 없이 안으로 흘러들어왔다. 정신이 아득했다. 극상의 쾌감에 소리조차 지르지 못하면서도, 본능적으로 그의 씨를 받기 위해 입구를 오므렸다.
“앗…!”
배 아래로 들어온 손이 가볍게 내 몸을 들어올렸다. 요령 좋게 움직인 프레드릭 덕분에 성기가 빠지지 않은 채로 다시 그와 마주보게 되었다. 프레드릭이 내 이마에 가볍게 입술을 내렸다. 예민한 귀두가 그의 몸에 쏠려 나도 모르게 몸을 움찔거렸다.
“보채지 마. 얼마든지 더 줄 테니까.”
“예? 그게 무슨…, ……!”
말을 하던 도중에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떴다. 가뜩이나 아래를 꽉 채우고 있는 것이, 한층 커지며 부풀어 올라 뱃속을 압박해 왔다. 놀라서 그를 보며 물었다.
“왜, 왜…….”
“노팅이 시작됐어.”
“노팅이요?”
처음 듣는 단어에 눈을 깜빡이며 되묻자 프레드릭이 난감하다는 듯이 웃었다. 잠시나마 내가 본래 알고 있던 그의 모습으로 돌아온 것 같았다.
“정말 아무 것도 모르는구나.”
말과 달리 그의 목소리에서는 왠지 모르게 기쁜 기색이 느껴졌다. 줄곧 내 손을 잡아주었던 따뜻한 손이 내 아랫배로 향했다. 살짝 쓰다듬는 손길에도 몸이 떨려왔다.
“노팅은…… 쉽게 말하면 번식률을 높이기 위한 일종의 본능이야. 더 확실한 수정을 위해서, 성기가 부풀어 올라 입구를 막아버리게 돼. 네 안이 내 씨를 충분히 머금었다고 생각되기 전까지, 내 아이를 가지게 되기 전까지는 절대 빠지지 않을 거야.”
“아이…….”
“그래. 내 아이를 가지는 거야. 여기에.”
다정한 눈빛과 그보다 더 달콤한 손길. 하지만 보이는 부분과 달리 안에서 점점 커지며 딱딱해지는 그의 성기에 갈수록 겁이 났다. 그렇잖아도 버거운 크기인데, 점점 부피를 키우며 내벽을 짓누르는 압박감에 숨이 헐떡거렸다.
“빼, 빼주세요.”
“그건 불가능해. 억지로 뺐다간 아래가 엉망이 될 거야.”
그 말을 들으니 더욱 무서워졌다. 눈물 고인 눈으로 그를 보자 긴장하지 말라는 듯 얼굴 곳곳에 입을 맞추었다.
“괜찮아. 곧 익숙해질 테니까.”
다시 상체를 지탱하며 프레드릭이 허릿짓을 시작했다. 그가 앞뒤로 움직이자 내 몸도 따라서 움직이며 율동하듯이 흔들린다. 풀죽어 있던 내 것이 다시금 고개를 들었다. 안타까움에 엉덩이를 들썩이는데 프레드릭이 낮은 목소리로 명령했다.
“베니. 손 줘봐.”
흐트러진 숨을 내쉬며 그를 쳐다보았다. 탄탄한 팔을 붙잡고 있던 내 양손을 이끌어서는 가슴 위에 올리도록 만들었다.
“스스로 하는 걸 보고 싶어.”
뭘 원하는지 깨닫고 얼굴이 확 붉어졌다. 못한다며 손을 떼려고 했지만, 프레드릭이 내 손가락을 잡고서는 유두를 꾹 누르도록 만들었다. 믿을 수 없게도 신음이 흘러나왔다. 허리가 튀어 오르며 그를 물고 있는 아래가 꽉 조여들었다.
“계속 해. 보기 좋으니까.”
나직한 목소리에 홀린 듯이 손을 움직였다. 부끄러움은 잠깐이었다. 어느새 가슴으로도 느낄 수 있게 된 나는, 달뜬 숨을 토해내며 볼록하게 일어선 젖꼭지를 스스로 비볐다.
“아읏…!”
교성과 함께 고개가 뒤로 젖혀졌다. 말없이 나를 보고 있던 프레드릭이 갑자기 고개 숙여 내 손가락과 봉긋하게 솟아오른 젖꼭지를 동시에 핥았다. 미끈한 혀가 손가락을 핥는 느낌에 참지 못하고 손을 떼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그의 입술이 부드럽게 가슴을 빨아올렸다.
잠시 후 그가 입술을 떼며 다시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여유로움은 잠시였다. 점점 피치를 올리기 시작한 그는 어느새 좀 전처럼 사정 봐주지 않고 거칠게 안을 찔러대기 시작했다. 내벽 전체를 긁듯이 밀어 올리는 움직임에 발끝까지 전율이 치달았다. 아프고 무섭지만, 한편으로는 좋아서 죽을 것만 같았다. 어째서 이러는 건지 생각해보려 해도 몸 안을 들쑤시는 것에 금방 정신이 아득해졌다.
“베니, 준비해.”
귓불과 귓바퀴를 입술로 애무하던 프레드릭이 뜨거운 숨을 쏟아내며 으르렁거렸다. 잠시 후 또 다시 안이 뜨끈하게 젖어 들어갔다. 민감한 곳에 쏟아지는 뜨거움만으로 나 역시 절정에 이르렀다. 참았던 숨을 내쉬며 긴장을 풀자 프레드릭이 땀에 젖은 내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제야 천천히 눈을 떴다.
“괜찮아?”
“네. 괜찮아요.”
사실은 마냥 괜찮지만은 않았다. 갑작스런 몸의 변화도, 낯선 쾌감도, 두려울 정도로 본능에 충실했던 그의 모습도 아직은 완벽하게 이해하기엔 무리였다. 하지만 상대가 프레드릭이기에 견딜 수가 있다. 그 증거로, 여전히 상기된 그의 얼굴과 붉은 눈동자가 더 이상은 무섭지가 않았다.
“왜 웃어?”
“……그냥, 좋아서요.”
“제법 대담한 소리를 하는 걸. 밤은 이제부터 시작인데…… 감당할 수 있겠어?”
장난스럽게 코끝을 깨무는 그의 행동에 정말로 웃음이 나와 버리고 말았다. 양팔로 그의 목을 감싸 안았다. 오롯이 나만을 담고 있는 붉은 눈동자. 그 눈에 시선을 맞춘 채 속삭이듯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물론이죠. 당신인 걸요.”
“……그 말 무르기 없기야.”
프레드릭이 성급하게 내 입술을 찾아 자신의 입술을 겹쳤다. 그의 말처럼, 밤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베니.
다정한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깜빡, 눈을 뜨자 줄곧 얼굴을 파묻고 있던 베개가 아닌 프레드릭의 얼굴이 보였다.
“일어났어?”
“……네.”
“설마 눈을 뜰 줄은 몰랐어. 깰 줄 알았으면 이름을 안 부르고 키스하는 거였는데.”
이마에 따뜻한 온기가 와 닿는다. 프레드릭이 금방 몸을 일으켰다. 시트가 흘러내리며 벌거벗은 상체가 드러난다. 수영이며 승마로 단련된 조각 같은 몸에 눈 둘 곳을 찾지 못하고 시선을 피했다.
근데 뭔가 이상하다. 왜 내 옆에 프레드릭이 누워 있고, 옷을 벗고 있는…….
“……!”
한 순간 얼굴이 달아올랐다. 간밤의 기억이 밀물처럼 한꺼번에 확 밀려왔다.
어제… 그러니까 어제……. 아니지. 어쩌면 어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완전히 정신이 나가버려서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어두운 밤에도, 사방이 햇빛으로 훤한 시간에도 쉼 없이 프레드릭을 받아들였던 것 같다. 말 그대로 쉼이 없었다. 허용치를 넘어선 쾌감에 정신을 잃었을 때에도, 지쳐서 잠깐 잠이 들었다 깨어났을 때에도 프레드릭은 어김없이 나를 안고 있었다. 며칠이나 지난 건지 감을 잡을 수조차 없다. 물을까 말까 망설이는데 프레드릭이 몸을 움직였다. 따스한 손길이 이마를 덮고 있는 머리카락을 쓸어 넘겨주었다.
“몸은 괜찮아?”
“네. 괜찮습니다.”
“목소리는 전혀 안 괜찮은데.”
웃음 띤 목소리에 얼굴이 달아올랐다. 또 하나의 기억이 둥실 떠올랐다.
‘많이 힘들면 내 이름을 불러. 밤새 불러도 좋으니까.’
프레드릭의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숨이 넘어갈 정도의 쾌감에 헐떡이면서 나는 정말 수도 없이 그의 이름을 불렀었다. 내가 낸 것이라 믿을 수 없는, 다시 생각하기조차 부끄러운 목소리로.
“샤워하러 갈까? 배고프면 식사부터 해도 좋고.”
“도련님은요? 먼저 원하시는 것부터 준비하겠습니다.”
몸을 일으키려는데 프레드릭이 내 이름을 불렀다.
“베니.”
“네.”
“이제 도련님 소리는 졸업했으면 좋겠어.”
“예? 아… 하지만…….”
“여기.”
프레드릭이 손을 내밀어 내 아랫배를 감싸듯이 어루만진다. 시선을 내려 그의 손을 보았다.
“이제 곧 우리 아이가 생길 거야.”
“……!”
“며칠 간 수도 없이 네 안에 씨를 뿌렸어. 그것도 임신확률이 가장 높은 히트 사이클 기간에. 이제 곧 내 아이의 엄마가 될 건데, 그때도 나보고 도련님이라고 부를 거야?”
“…….”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임신, 그리고 아기. 첫 히트 사이클을 프레드릭과 함께 보냈지만 아직은 잘 실감이 나지 않는다. 할 말을 찾지 못해 머뭇거리니 그가 내 손을 잡으며 말을 이었다.
“돌아가면 식을 올리자.”
“……예?”
절로 고개가 들렸다. 프레드릭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진지했다. 잘못 들은 게 아니었다. 믿을 수 없는 그의 말에 나는 입만 벙긋거렸다.
“왜. 싫어?”
싫고 좋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만약 프레드릭이 말하는 식이 내가 생각하는 것과 동일하다면…… 그렇다면…….
“이, 있을 수 없는 일이예요.”
“어째서?”
어째서라니, 정말 몰라서 묻는 걸까.
이유라면 차고도 넘친다. 깊게 생각해볼 필요조차 없다. 감히 비교도 할 수 없는 배경과 입장 차이. 게다가 나는 불과 며칠 전만 해도 그의 개인 시종이었다. 당장 눈에 보이는 관계만 생각하더라도 절대로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내가 너 아니면 안 된다고 해도 거절할 거야?”
“…….”
차마 대답을 못하고 고개를 푹 숙였다. 프레드릭이 긴 한숨을 내쉬었다.
“베니. 네가 무슨 생각을 하고 뭘 걱정하는지는 잘 알고 있어. 하지만 그런 것들은 내게 전혀 중요하지 않아. 게다가, 이제 난 정말로 너 아니면 안 돼.”
“…….”
“리빌드는 일반 오메가들과 페로몬 자체가 달라. 말 그대로 알파를 미쳐버리게 만들 정도로 치명적이고 위험해. 한 번이라도 히트 사이클을 맞은 리빌드 오메가를 안으면 더 이상 다른 오메가들은 눈에 들어오지가 않아. 익숙해지면 그들의 페로몬조차 맡지 못할 정도로.”
“거, 거짓말이에요.”
나도 모르게 떨리는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만약 그 말이 사실이라면, 당신은…….
어느덧 눈앞이 뿌옇게 변했다. 프레드릭이라면 얼마든지 그에게 어울리는 사람을 고를 수가 있다. 그의 가문 못지않은 훌륭한 배경을 지닌, 아름답고 총명한, 모두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그런 사람을. 그런데 대체 왜…….
“왜… 왜 나 같은…….”
“너 같은, 이 아니라 너이기 때문이야. 혹시 네가 겁먹진 않을까, 내 마음을 알고 도망치진 않을까, 몇 년을 노심초사하면서 내 옆에 뒀어. 이제 겨우 붙잡았는데 또 도망가게 놔둘 것 같아? 그것도 뱃속에 우리 아이를 가진 채로?”
눈가를 어루만지던 손이 살며시 뺨으로 내려왔다. 양손으로 얼굴을 감싼 그가 천천히 고개 숙여 얼굴을 가까이 했다.
“어디 또 한 번만 내 허락 없이 딴 데로 가봐. 세상 끝까지라도 쫓아갈 테니까.”
입술에 와 닿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그의 입술. 안 된다고 해야 하는데, 정말로 프레드릭을 생각한다면 끝까지 거절하는 것이 맞는데, 주체할 수 없이 뛰는 심장이 이성의 눈을 가려버렸다.
촉, 한 번 더 가벼운 입맞춤을 한 그가 이번엔 내 손을 잡고 입가로 가져갔다. 마치 무도회에서 춤을 청하는 신사처럼 손을 잡고서는 약지 위에 가볍게 이를 세운다. 아프지 않게, 하지만 흔적만큼은 확실히 새기고서는 눈을 보며 묻는다.
“정신없이 쫓아오느라 반지도 준비 못했어. 일단은 이걸로 대신해줘.”
“…….”
“흠, 흠흠. ……청혼에 대한 대답은?”
답지 않게 긴장한 프레드릭의 얼굴. 그 긴장감에 나까지 가슴이 떨렸지만 용기를 내 그의 목에 팔을 감았다. 속삭이듯 작은 목소리를 귓가로 흘려보냈다.
“……좋아해요.”
살짝 얼굴을 떼며 프레드릭의 눈을 마주보았다. 언제고 다정하게 나를 향하는 푸른 눈동자에 내 모습이 한가득 담겨있다. 프레드릭이 환하게 웃었다. 아마도 같은 얼굴을 하고서, 이번에는 내가 그에게 물었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는 건가요?”
“아니.”
장난스럽게 대답한 프레드릭이 내 허리를 감싸 안아 무릎에 앉혔다. 마치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처럼 정중하고도 예의바른 목소리가 나직하게 들려왔다.
“일단은 신혼여행부터.”
Th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