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러프 컷-49화 (49/49)

러프 컷   49편

<-- 후기 --> 안녕하세요. 이편입니다.

후기를 쓰는 상상을 종종 했습니다. 후기를 쓸 수 있다면 결국 완결을 했다는 의미일 테니까요.

〈러프 컷〉을 써온 지난 시간은 저의 부족함을 깨닫는 과정이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는 과정이었던 것 같습니다.

올해 초, 읽는 사람에서 한 번쯤 쓰는 사람이 되어보자고 마음을 먹었을 때 머릿속에 떠돌던 이야기들 중 〈러프 컷〉을 선택했던 이유는 가장 짧은 분량이 예상되었기 때문입니다. 목표를 어떻게든 완결을 짓는 것으로 삼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짧은 것을 택하는 게 성공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모든 것은 현실이 되면서부터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고, 예상치 못한 어려움도 많이 겪었습니다.

그렇게 한 달 넘게 쓴 1n회차를 가지고 연재를 시작하였는데 1화인가 2화를 올렸을 때 바로 제동이 걸렸습니다. 문득 이 길이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초안은 사실 다소 피폐한 부분들이 있었고 글을 쓰거나 고치면서 운 적도 많았습니다. 〈러프 컷〉을 통해 보여드리고 싶었던 것을 생각하면, 굳이 이 길로 가야 하나? 라는 고민이 계속해서 있었는데 글을 올리고 나서야 ‘아니다’라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연재를 시작한 순간에 글을 엎고 다시 쓰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극악한 연재 주기의 서막이 오르게 되었습니다.

제가 글을 빨리 쓰지 못하는 것은 이미 어렸을 때부터 오랜 역사를 가지고 이어져 온 사실이라 연재하면서도 쉽사리 해결하기는 어려웠습니다. 그저 매일 글을 쓰고, 읽고, 고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기 전까지도 이미 썼거나 앞으로 쓸 부분들을 생각하며 잠들었고 아침에 눈을 뜨면 완전히 깨지 못한 정신으로 ‘그래, 그 부분은 그렇게 고쳐야해’라고 생각하며 일어날 때도 많았습니다. 살면서 이토록 오랜 기간 동안 매일 글을 읽고, 쓰고, 고쳤던 적은 처음이었습니다.

문제는 빨리 쓰지 못하는 것보다도 쓰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겪어야 했던 정신적인 부분들이었습니다. 원래 가지고 있던 고질적인 문제들과 글에 대한 책임감과 강박이 겹쳐 사실 중후반부터는 버티기가 많이 힘들었습니다. 어떤 날은 노트의 한 귀퉁이에 ‘지금 받은 상처들을 모아 앞으로 다시는 글을 쓰지 않는 데 활용했으면 좋겠다’고 적어놓기도 하였습니다. 그 상처라 함은 사실 누군가가 저에게 준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할퀴고 미워하면서 만들어낸 상처들이었습니다.

스스로의 한계와 부족함을 느낄 때마다 앞으로 나아가기가 힘들었고 시기에 대한 아쉬움도 많이 느꼈습니다. 좀 더 빨리 시작했다면, 그래서 빨리 실패했다면, 지금 더 나은 글을 쓰고 있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와 아쉬움이었습니다. 그것을 잊고 계속해서 문장을 쓸 수 있었던 것은 제가 지금 글을 씀으로써 지금의 독자분들을 만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어쩌면, 저의 성글고 여물지 못한 부분에 뿌리를 딛고 태어난 좋은 장면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작은 위안 때문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제가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이야기 속의 두 사람과 이 글을 계속해서 읽어주시고 사랑해주시는 분들 덕분이었습니다.

사실 제가 독자였을 때 연재를 따라가며 읽어본 경험은 거의 없었습니다. 조아라에 오면 어떤 작품들이 있는지 보거나 내용의 일부를 읽기는 하지만 대체로 완결이 나면 이북으로 구매해 읽는 편이었습니다. 그건 아마 제가 유난히 기다리는 것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글뿐만 아니라 TV드라마 같은 것도 아무리 재밌어도 특정 시간을 기다려 시청해 본 경험이 없다시피 할 정도로 제가 시간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에 구속되는 것은 잘 견디지 못해왔습니다.

더불어 글을 읽고 댓글을 달아본 적도, 이북을 구매해 읽기는 하지만 평점을 매기거나 리뷰를 써본 적도, 관련해서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거나 흔적을 남겨본 적도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독자 중에서도 가장 소극적인 독자로서 존재해왔던 셈입니다.

그런 이유로, 연재를 하면서 누군가 계속해서 이 글을 읽어주고 가끔씩 마음을 표현해주길 기대할 때면 스스로가 모순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제가 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바라는 것이니까요. 그러니 어김없이 제 글을 또 읽어주시고, 지지를 보내주시는 분들의 존재는 제게 경이로웠습니다. 그분들은 어떻게 보면 제 반대편의 독서를 하시는 분들이고 동시에 제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 매번 감사하다는 표현은 매번 모두 다 진심이었습니다.

작품의 이야기를 하자면 선우와 해경은 조금 결이 다른, 제가 생각하는 '어른'들입니다. 제가 힘들 때마다 이 두 사람의 존재 역시 독자분들과 함께 제게는 버틸 수 있고 버텨야 하는 근간이 되어주었습니다. 다만 아쉬운 건 제가 글을 써나가면서 두 사람이 가지고 있는 면면들을 충분히 다 담아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처음 글을 쓸 때 크게 세 가지 지향점을 가지고 시작했습니다.

글이 재미있어야 하고

진부한 설정이나 상황이 연출되더라도 가끔은 나만 쓸 수 있는 장면이 있어야 하며

쓴 결과물이 세상을 더 나쁘게 만드는 방식은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거기서 조금 더 욕심낼 때에는 가끔은 누군가에게 작은 의미가 되고 때로는 한순간이나마 위안이 되기를 바랐습니다.

물론 이런 점들을 매일, 매번에 가깝게 검토할 때도 있었지만 연재 기간이 길어지면서 간간이 잊거나 염두에 두지 못할 때도 있었습니다. 더불어 그것을 제가 지향하려 했더라도 객관적 평가나 사실은 다를 수 있을 것입니다.

아쉬운 점들 중에 특히 마음에 걸리는 한 가지는, '재미'를 생각하는 측면에서 선우가 해경을 만나기 전, 그 오랜 시간을 지나온 방법에 대해 제대로 쓰지 못한 것입니다.

'연선우'라는 한 사람을 이해하고 알기 위해 필요한 부분들임에도

그 시간의 성질은 타인이 보기에는 대체로 묵묵하고 지난한 부분들이어서, '재미'를 감안하며 표현하는 법을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글이 재미있어야 하고 술술 넘어가야 한다는 생각은 초반부에 가장 강하게 나타났기 때문에 이런 결정이 뒤따르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내가 어떻게 풀어내거나 녹여내야 했는가에 대한 것은 지금도 여전히 답을 잘 모르겠어서 이 질문은 시간을 들여 가끔씩 꺼내보고 들여다보려 합니다.

사실 제가 따져보려 했던 그 '재미'라는 것도 주관적인 결정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글을 올릴 때마다 매번 두려움이 일었습니다.

종종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 나서 '근데 그 장면 좋지 않았어?'하고 사람들에게 물을 때면 공감 받지 못하는 부분들이 더러 있곤 했습니다. 그 후로 제가 좋아하는 것을 지키기 위해서는 나만의 흔들림 없는 언어나 주장이 필요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개인적으로 그것들을 기르고 지녀왔습니다. 물론 저는 관객으로서도 당연히 소극적인 관객이었기 때문에 그것들은 그저 저의 것을 지키는 용도로만 사용돼 왔습니다.

그런데 글을 연재하는 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이고 여러 사람의 일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제가 사수하려 했던 그런 점들이 반대로 불안감으로 작용하곤 했습니다.

클리셰나 대중적인 재미를 좋아하면서도 종종 결정적일 때 샛길로 빠져드는 경향도 있기 때문에 걱정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써놓고 쉽사리 올리지 못할 때도 있었고 글을 올리기 전이나 올린 후에도 공포에 가까운 감정을 느낄 때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결론은 저를 첫 번째 독자로 삼고 글을 써나가야 한다는 것이었고 그런 글을 저 외에도 좋아해 주시는 분들이 있다는 것은 큰 안도감을 주었고 가끔은 기적처럼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이북은 내년 상반기쯤에 출간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외전은 분량이나 내용면에서 아직 정해진 것이 없어 미뤄왔던 제 개인적인 일들을 마무리하며 천천히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사실 8, 9월쯤 완결을 예상하고 그 후로 개인적인 계획이나 일정들을 잡고 있었는데 연재 기간이 생각보다 길어지면서 전부 취소하거나 미뤄두었습니다.

계속 지쳐있었기 때문에 몇 달 쉬고 내년에 쓰면 더 잘 쓸 것 같다고, 완벽하게 마무리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종종 아쉬움에 젖은 생각들을 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지금 멈추면 생각해뒀던 시간 후에는 왠지 이 글을 쓰는 엔진이 다 닳아 있을 것 같아서, 두려움에 계속해서 밀고 나갔습니다.

언제인가부터는 이 글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매일 이 글 속에서 헤엄치며 살았습니다.

이 글감옥 속에서 조그만 숨이라도 틔우기 위해 시도해 본 일들이 참 많았는데 언젠가 하루는 엑셀창을 켜놓고 선우와 해경을 불러놓고 대화를 해보기도 했습니다.

해경은 대체로 심드렁하게 이야기를 듣는 것 같다가도 정말로 제가 죽을 것 같을 때는 묵묵하게 이야기를 들어줌으로써 힘을 주었고

선우는 같이 어둠 속에 잠기다가 긴 생각 끝에 어렵게 한 마디를 해주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이 이 글을 쓰는 이유, 거기에 아마 빛이 있을 거라고.

완결까지는 그 미미한 빛을 좇아가는 여정이었습니다. 제게 그 귀한 한 줌의 빛이 되어주신 독자분들과 두 사람에게 진심으로 감사함을 표합니다.

제가 사랑했던 두 사람을 같이 사랑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더불어 독자분들께서도, 크거나 사소한 반짝임과 설레는 가능성들로 가득한 저마다의 소중한 〈러프 컷〉들을 찍고 계시길 바라겠습니다.

지금까지 〈러프 컷〉을 지켜봐 주시고 아껴주신 모든 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이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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