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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프 컷-47화 (47/49)

러프 컷 19 3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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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로 배우들의 라디오 출연은 홍보를 위해 드라마 방영 전에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지만 선우는 이례적으로 종방 후에 섭외가 들어왔다. 장르물 성격이 강한데도 불구하고 마지막 시청률이 20프로를 돌파한데다 드라마가 끝나고 관련 리뷰나 해석들이 다양하게 쏟아지면서 반응이 여전히 뜨거웠기 때문이다.

선우가 스튜디오 안으로 들어서자 라디오 PD와 작가들이 뜨겁게 환영하며 반겨주었다. 선우는 인사를 나누고 돌아가며 사진을 몇 장씩 찍은 뒤 부스 안으로 들어섰다.

“와, 연선우씨 팬이에요.”

DJ인 조원희가 반갑게 악수를 청해왔다.

“감사합니다. 저도 오래전부터 팬이었어요.”

숱한 아르바이트를 돌던 시절 TV보다는 라디오를 접할 기회가 많았기에 선우의 말은 단순히 립서비스가 아니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작가가 종이를 들고 들어왔다. 선우는 대본을 토대로 몇 가지 안내와 주의사항들을 전해 들었다. 라디오도 생방송도 모두 처음이어서 사실 선우는 바짝 긴장하고 있었다.

「너무 긴장되면 내가 옆에 있다고 생각해요.」

선우는 밴에서 마지막으로 확인한 해경의 문자를 떠올렸다. 그와 함께할 때면 선우가 얼마나 떨리고 긴장되는지 모르니까 할 수 있는 소리였다. 그래도 서해경의 존재와 응원은 확실히 정서적으로 든든한 면이 있었다. 방송 시작을 알리는 로고송이 흘러나오자 선우는 새로운 환경에서 매섭게 집중하기 시작했다.

“조원희의 빛나는 정오, 오늘은 배우 연선우씨와 함께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얼마 전에 종영한 ‘시차’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는데요. 후반에 이르러선 사실 해석이 분분했어요.”

눈을 반짝이며 경청하는 선우를 향해 DJ는 대본과 자기 의견을 적절히 섞어 멘트를 이어나갔다.

“마지막에 과거의 재희가 한 희생으로 인해 어머니와 동생, 마을 사람들이 결국 살아오게 되죠. 그래서 바뀐 현재에서 마을 전체가 들썩이는 축제 분위기 속에서 재희 혼자만 땅바닥에 엎드린 채 오열해요. 이 장면을 보면서 어떤 분들은 가족과 사람들이 살아 돌아왔다는 기쁨보다 비극적인 감정을 많이 느꼈고요. 그래서 뭐랄까요, 현실 부정이라고 해야 할지 해석이라고 해야 할지, 사실 앞선 세계의 재희는 죽은 게 아니라는... 이런 방향의 의견도 나오고 있는데요. 선우씨는 이런 해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선우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사실 모든 드라마는 지금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존재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어쨌든 더 나아진 방향으로 살아가게끔 하기 위해서 만들어지는 거죠. 그러니까 가끔은 드라마 자체가 사람들의 이기적인 해석을 필요로 할 때가 있는 것 같아요. 이기적이라는 게 나쁜 뉘앙스가 아니라요. 각자의 필요에 맞게 받아들여서 내가 버티거나 더 나아지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그런 방향에서요. 그러니까 어떤 해석이 나에게 위안이 되거나 희망을 준다면 거기에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럼 방금 전의 해석과 다르게 어린 재희가 죽었다고 생각해서 슬픔에 잠기신 분들이 있잖아요. 그분들께 선우씨 나름대로 위로가 될 만한 해석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대본에 없던 추가 질문에 선우는 신중하게 머릿속을 정리한 뒤 입을 열었다.

“이러면 어떨까요. 사실 이전 세계의 재희와 현재 세계의 재희를 각각의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슬픈 거잖아요. 반대로 과거의 재희와 현재의 재희를 그냥 한 사람으로 생각하는 거예요. 그럼 결국 이야기는 이렇게 되겠죠. 과거에 내가 했던 지독히 외로운 선택이 지금의 나를 구원한 거라고.”

“오, 그렇게 생각하니까 확실히 조금 위안이 되는 것 같은데요. 자 그럼 이쯤에서 노래 한 곡 듣고 갈까요.”

DJ의 곡 소개를 듣던 선우는 문득 시선이 느껴져 유리 벽 너머를 바라보았다. 그곳엔 언제 도착했는지 모를 해경이 팔짱을 낀 채 벽에 기대어 선우를 지켜보고 있었다.

방금 전 자신이 했던 말과 함께 새삼 그와의 첫 만남이 떠올랐다. 오랫동안 연기를 포기하지 못해 한 결정과 결과들이 위태롭게 쌓여있던 시기였다. 지나고 보니 그 때의 자신은 비록 슬퍼하진 않았으나 종종 아슬아슬하게 외로웠던 것 같다. 그래도 같은 선택을 했다. 그리고 그것이 지금의 자신을 있게 했다.

선우의 시선이 꽤 오랫동안 이어지자 해경이 부드럽게 입가를 끌어올렸다. 이제는 익숙해진 그의 웃음에도 선우는 또다시 가슴이 벅차올랐다. 만약 연기를 포기했다면 당신을 만나지도 못했겠지. 선우는 새삼 안도감을 느끼며 그를 향해 진심 어린 미소를 지어 보였다.

과거에 했던 외로운 선택과 지금의 다행인 나. 그리고 그 시간의 사이에서, 그를 만났다.

* * *

선우는 주인 없는 침실에서 느리게 눈을 떴다. 해경은 교양국에서 준비하는 창사특집극을 지원하기 위해 어제 오후 속초로 향했다. 원래 참여하기로 했던 PD가 개인 사정으로 빠지게 되면서 급작스레 차출된 거라 해경의 표정은 그다지 좋지 못했다.

‘쉬어도 여기에서 쉬어요.’

선우에게 주어진 며칠간의 휴가를 해경은 몹시 초조해했다. 이 짧은 휴식이 끝나면 선우는 광고 촬영을 시작으로 꽤 빡빡한 일정을 소화할 예정이었다.

선우는 자신의 집이 아닌 곳에서 이제는 제게도 어느 정도 익숙해진 침구를 정리하고, 음식을 해 먹고, 서재를 기웃거리고, 서해경의 옷장을 구경했다.

거실 소파에 앉아 촬영 기간 동안 놓친 드라마를 챙겨보다 선우는 문득 잠이 들었다. 희미하게 들려오는 벨소리에 다 털어놓지 못한 잠결에도 빠르게 손을 뻗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뭐 하고 있었어요.]

“TV보다 잠이 들어서 지금 막 일어났어요.”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타지로 불려가 고생하고 있는 그에 비하면 너무나도 한가한 일상이라 보고하기가 조금 민망했다. 선우는 조용한 전화기 건너편에서 작게 나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지금 바다인가 봐요.”

[여기로 옮겨서 촬영한지 몇 시간 됐어요. 일은 귀찮은데 풍경은 꽤 볼 만해서, 생각나서 전화해봤어요. 다음엔 같이 오죠.]

해경이 선우에게 했던 기약이나 다짐들 중에 이제껏 지켜지지 못한 것은 없었고 따라서 그것은 반드시 올 미래였다. 선우는 그와 보는 바다가 벌써부터 기대됐다. 해경은 일하기가 싫다고, 도와 달라면서 잠도 안 재우고 사람을 부린다고 근사한 목소리로 불만을 조곤조곤 토해냈다. 그에 답지 않게 투정 부리는 아이가 연상돼 선우의 입가가 슬며시 올라갔다.

[선우씨가 나 잠 좀 깨워줄래요.]

"음, 어떻게 할까요."

설마 노래 같은 걸 시키진 않겠지, 하고 괜한 긴장을 하고 있을 때였다.

[반말 한 번 해봐요.]

“갑자기요?”

[한 번쯤 듣고 싶었거든요.]

“......”

[연선우. 빨리.]

해경의 목소리엔 웃음기가 담겨 있었다. 선우의 눈앞에 웃고 있는 그의 얼굴이 그려졌다. 그러자 문득 떠오르는 말이 있어 자연스럽게 입술이 벌어졌다.

“...보고 싶어.”

[......]

건너편에서는 말이 없었다. 그러니까 갑자기 왜 그런 걸 시켜서는. 이어지는 침묵에 괜히 민망해진 선우는 눈가를 쓸어내리며 아무 말이나 꺼내 분위기를 전환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입을 막 열었을 때 중저음의 듣기 좋은 목소리가 짧게 내뱉었다.

[기다려. 지금 갈 테니까.]

그 후 전화는 뚝 끊기고 말았다. 휴대폰을 든 채로 잠시 멍하니 앉아 있던 선우는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지금 온다고? 당황한 선우의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뭔가 엄청난 일을 저지른 기분이었다.

선우는 딱히 어지럽힌 적도 없는 오피스텔 내부를 몇 번이고 둘러봤다. 괜히 어쩔 줄을 모르고 이리저리 살피다 냉장고 안까지 점검했다. 넓은 오피스텔을 빨빨거리며 돌아다녔더니 운동한 것처럼 땀이 나서 한 번 더 샤워를 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한 번, 서해경의 전화를 받고 나서 한 번, 이번이 세 번째 샤워였다.

선우는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몇 번인가 시계를 확인했다. 너무 자주 보는 바람에 결국엔 조금 지쳤을 때쯤 다급히 키패드를 누르는 소리가 났다.

선우가 달려가다시피 현관으로 향했을 때 쾅 하고 거세게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났다. 달려오기라도 한 건지 남자의 머리는 조금 흐트러져 있었다.

신발을 벗지도 않은 채 그가 성큼성큼 선우에게로 다가섰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치고 선우가 긴장한 채 침을 삼켰다. 여전히 가쁜 숨을 몰아쉬던 해경이 순간 사납게 웃었다.

“보고 싶으면 봐야지.”

남자는 손을 뻗어 선우의 턱을 감싸 쥐고 그대로 입을 맞췄다.

현관에서 정신없이 입을 맞추던 두 사람은 빠르게 침실로 이동했다. 그리고 방 안으로 막 들어섰을 때 해경의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보나 마나 그를 찾는 전화일 게 뻔했다. 해경은 그를 계속 무시하고 있었지만 선우는 묘하게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그제야 그가 저 때문에 일도 내팽개치고 달려왔다는 사실이 현실감 있게 다가왔다.

해경은 전화를 무시하면서도 휴대폰을 아예 끄지는 않았다. 혀로 진득하게 입안을 헤집는 그를 조금 밀어내자 의아한 눈빛이 돌아왔다. 선우는 팽팽하게 부풀어 오른 해경의 앞섶을 힐긋 보다 무릎을 꿇었다. 해경이 뭐라 반응하기도 전에 빠르게 버클을 풀고 지퍼를 내렸다. 속옷을 내리자 이미 단단해져 있던 성기가 묵직하게 튕겨져 나왔다.

“안 해도 돼요.”

입을 벌려 귀두를 삼키기 직전, 해경이 선우의 어깨를 누르며 말했다. 고개를 들자 열기를 억누르는 듯한 어두운 눈동자가 보였다. 그를 보며 선우는 설명하기 힘든 감정에 사로잡혔다. 해경은 배려하듯이 말했지만 선우는 지금 하기 싫은 걸 억지로 하는 게 아니었다. 어깨를 잡고 있는 단단한 손 역시 완전히 저를 밀어내지는 못하고 있었다. 선우는 남자와 시선을 마주한 채 혀를 내어 성기 끝을 느리게 핥았다.

“흣...”

눈가를 일그러뜨리는 서해경의 얼굴은 묘한 쾌감을 불러일으켰다. 선우는 손에 빠듯하게 쥐어지는 성기를 귀두 끝부터 천천히 입에 담기 시작했다.

“하아...”

해경이 기분 좋은 한숨을 내뱉으며 선우의 뺨을 느릿하게 쓰다듬었다. 크기 때문에 페니스는 반도 채 삼키기 어려웠다. 할 수 없이 입을 최대한 벌리고 입술로 성기를 조이며 턱을 위아래로 움직였다. 점막과 점막이 마찰하며 나는 쿨쩍이는 소리와 나른한 숨소리가 섞여 들었다. 기둥과 맞닿은 혀로 잔뜩 불거진 핏줄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손으로 남자의 고환을 주무르며 턱이 뻐근해질 만큼 고개를 부지런히 왕복했다.

“읍, 읍...”

더 커질 수 없을 것 같던 페니스가 입안을 압박할 만큼 크기를 부풀리더니 목구멍을 찔러오기 시작했다. 츕츕 소리 내어 성기를 빨던 선우는 속도를 조금 더 빨리했다. 이대로라면 해경이 곧 사정할 것 같았다. 선우는 목구멍을 열어 최대한 귀두 끝을 깊숙이 삼켰다. 머리 위로 남자의 가팔라진 호흡이 쏟아졌다. 성기를 입에 담은 채 그를 향해 눈을 치켜뜨자 흥분이 고스란히 담긴 남자의 두 눈과 마주쳤다. 생리적인 압박으로 인해 선우의 눈가에 고여 있던 눈물이 느리게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후우... 지금 엄청 찍고 싶은 얼굴인 거 알아요?”

다소 가라앉은 듯한 남자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불시에 입안을 가득 채우던 성기가 빠져나갔다. 거친 숨소리를 내뱉는 선우를 부드럽게 끌어올린 해경이 눈물로 축축해진 뺨에 입을 맞췄다. 조금만 더 하면 사정할 것 같았는데. 다소 억울한 심정이 되어 어룽어룽해진 선우의 두 눈을 바라보던 해경이 슬그머니 이마를 맞대왔다.

“이렇게 한 번 빼서 조용히 돌려보낼 심산이었나 본데.”

해경은 선우를 번쩍 안아 침대 위로 쓰러뜨리며 입가를 끌어올렸다.

“어림도 없지.”

* * *

“아... 아! 윽.”

해경이 허리를 깊게 쳐댈 때마다 엉덩이와 고환이 맞부딪치며 철퍽철퍽 소리를 냈다. 언젠가부터 젤과 체액이 뒤섞여 구멍을 비집고 탁한 액이 질금질금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선우는 입술을 물며 시트 위로 머리를 비볐다. 그가 뱃속 깊이 밀고 들어올 때마다 가슴이 둥둥 울리고 정신이 아득히 멀어졌다. 넓은 어깨에 걸쳐져 있던 다리가 땀 때문에 죽죽 미끄러졌다. 해경이 힘없이 흔들리는 다리를 움켜쥐고 거친 추삽질을 이어 나갔다.

“읏! 흐으...”

“하아... 왜 이렇게 울어.”

해경이 상체를 숙여 눈꼬리를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핥았다. 삽입이 깊어진 채 굵은 성기가 뱃속을 연속해서 쾅쾅 두드렸다.

“아윽!”

선우의 허리가 퍼뜩 튀며 내벽이 페니스를 잔뜩 조였다. 해경이 같은 곳을 퍽퍽 쳐올리자 발가락이 곱아들고 허벅지가 덜덜 떨렸다.

“으으...”

“좋아요?”

선우는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고 신음을 내지르며 눈물을 뚝뚝 흘렸다. 해경은 허리를 놀리면서 귓가에 입술을 바싹 붙였다.

“그만할까?”

그 말에 선우가 고개를 휘휘 저으며 남자의 허리를 감고 있던 다리를 더욱 조였다. 짙은 쾌감 사이로 문득문득 옅은 고통도 일었지만 해경이 주는 압박감이 좋았다. 선우가 그의 어깨를 강하게 끌어안는 순간 두툼한 성기가 미미하게 튀어나온 곳을 한 번 더 찔러 올렸다.

“아! 흣... 좋아...”

“이젠 반말도 잘하네. 예쁘게.”

해경이 기분 좋은 웃음을 흘리며 보드라운 뺨에 입을 맞췄다. 몇 번이고 길을 내던 그의 것이 가장 깊은 곳까지 밀고 들어와 집요하게 한 지점을 뭉근하게 짓눌렀다.

“아앗!”

선우가 고개를 젖히는 순간, 페니스를 촘촘히 감싼 내벽이 한껏 수축하더니 해경의 복근으로 탁한 액이 쏘아 올려졌다. 가늘게 경련하는 선우의 몸을 끌어안고 해경이 허리를 빠르게 움직였다. 긴 다리를 접듯이 가슴 쪽으로 잔뜩 밀어붙인 뒤 성기를 쾅쾅 내리찍었다. 번들거리는 기둥이 입구까지 빠져나갔다가 단숨에 뿌리 끝까지 치고 들어오길 반복했다.

“읏.”

남자가 선우를 숨이 막힐 듯 끌어안는 순간 성기가 꿈틀거리며 내벽 안으로 정액을 분출했다. 뜨겁게 젖은 숨소리가 교차하고 서로의 입술이 질척하게 맞붙었다. 어딘가에 방치됐을 서해경의 휴대폰이 다시 울리기 시작했다. 선우가 움찔하며 눈을 뜨자 혀를 뒤섞던 해경이 입술에 쪽 뽀뽀를 남긴 뒤 고개를 들었다.

“신경 쓰지 마요.”

“하지만...”

“잘리면 다른 회사 가도 되고.”

남자는 눈을 접어 웃었다. 오라는 데가 많은 것은 사실이었다. 문득 해경이 저를 향해 무언가를 할 때마다 대신 다른 걸 하나씩 잃는 건 아닐까 불안했던 선우는 여전히 마음이 갈팡질팡했다. 나른한 탈력감에 젖어 묘하게 야한 얼굴을 하고 있으면서도 일견 생각이 많은 것이 감춰지지 않고 드러났다. 해경은 그런 연인의 얼굴을 바라보다 짓무른 눈가에 입술을 내렸다.

“연선우 따라갈까. 차기작 하는 곳으로.”

그 말에 입술에 닿아있던 눈가가 부드럽게 휘는 것이 느껴졌다. 푸흐흐. 산들바람같이 가벼운 소리를 흘리며 아이처럼 무구하게 웃는 얼굴에 해경은 잘게 입을 맞추다 선우를 가슴 가득 끌어안았다.

“비밀 하나 말해줄까요.”

몸이 빈틈없이 맞물린 탓에 선우의 고개는 겨우 비스듬히 그를 향했다. 서로의 시선이 아주 가까운 곳에서 오고 갔다.

“사실 연출에 대한 흥미가 떨어진 지는 꽤 오래예요.”

처음 듣는 얘기에 선우는 조금 놀란 눈을 해보였다. ‘시차’를 찍는 동안 감독으로서의 서해경은 빈틈이 없었고 성실했으며 열성적으로까지 보였으니까.

“기특한 누가 그걸 잠깐 복구해내긴 했지만.”

그에 대한 답의 일부를 제시하듯 남자는 빙긋이 웃어 보였다.

“원래 영화를 하고 싶었는데 PD로 전향하게 된 것도 어머니 때문이었죠.”

해경은 땀에 젖은 선우의 앞머리를 장난치듯 가볍게 매만지며 말을 이어갔다. 서해경의 어머니. 선우는 그의 입을 통해 처음 접한 ‘어머니’라는 단어에 신경을 바짝 곤두세웠다.

“돌아가시기 얼마 전에 치매에 걸리셨는데... 눈 뜨고 있는 시간 전부를 드라마만 보셨어요. 아들도 못 알아보고 종일 그것만 보시는데 굳이 영화를 하겠다고 고집하는 게 문득 우습기도 하고. 의외로 결정은 쉬웠어요. 그래서 PD로 입사를 하고 몇 달쯤 지났을까... 입봉도 하기 전에 어머니가 돌아가셨죠.”

해경의 목소리는 덤덤했고 이미 따뜻한 체온이 저를 가득 뒤덮고 있었지만 선우는 문득 초조해져 그를 세게 끌어안았다.

“상을 다 치르고 문득 뒤를 돌아봤는데 모든 게 어중간했어요. 애초에 영화가 왜 하고 싶었는지 기억도 안 나고, 연출에 왜 흥미를 느꼈는지도 모르겠고... 징그러운 족속들 때문에 집을 떠났는데 일하면서 만난 사람들도 다 거기서 거기고. 유일하게 내가 뭔가를 바칠 수 있었던 대상은 한순간에 세상에서 사라져버렸죠. 이제 하던 걸 모두 내려놔도 딱히 아쉬울 건 없는데 일단은 버티기로 했어요. 이것마저 안 하면 인생이 더 지루할 것 같아서.”

내용과는 어울리지 않게 남자는 산뜻하게 웃어 보였다.

“그러다 너를 만났지.”

선우는 따뜻한 물 같은 것이 가슴을 일렁이며 채우는 듯한 감각을 느꼈다.

“널 보니 다시 연출이 하고 싶어졌어. 시간이 지나니 다른 것들도 하나둘씩 하고 싶어지기 시작했고. 거기다 첫눈에 봐도 예쁜 녀석이 보다 보니 더 예쁜 데다...”

해경은 단정한 이마에 입술을 꾹 눌러 붙였다.

“고개를 돌릴 때마다 나를 열렬히 바라보고 있는데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어야지.”

선우는 자신의 몸 전체를 올릴 듯이 쿵쿵 뛰는 심장을 느끼며 그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눈가를 가득 적시다 툭 흘러내리는 눈물을 언제나처럼 해경이 손가락으로 가볍게 훔쳐냈다.

“계속 내 옆에 있어. 내가 뭔가를 하고 싶게 만들고, 내가 살고 싶게 만들어줘.”

내 옆에서... 남자는 선우에게만 들릴 듯이 나직하게 속삭였다.

“계속 나를 살려, 선우야.”

========== 작품 후기 ==========

선작, 추천, 코멘트 감사합니다.

마지막 편은 23~25일 중으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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