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을 향해서 (4)
세 시간 후.
최기석은 중환자실에서 나란히 누워 있는 박광진과 이태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수술은 무사히 끝났다.
찰스가 박광진의 폐이식 수술을 잘 마무리했으며, 이태현의 수술은 영혼의 눈물까지 써 가며 제 손으로 깔끔하게 끝냈다.
“휴우…….”
의자에 앉아 한숨을 내쉬었다.
영혼의 눈물을 사용한 후유증이 뒤늦게 밀려왔다.
머릿속은 텅 비었으며 팔 다리는 물 먹은 솜처럼 무거웠다.
생각해 보면 외과적 처치가 인간의 한계를 넘은 후 영혼의 눈물을 사용한 게 얼마 만인지 몰랐다.
“과장님. 퇴근 안 하세요?”
환자들의 바이탈을 확인하던 간호사가 물었다.
“힘든 수술을 연달아 하셨다고 들었는데, 집에 들어가서 푹 쉬세요.”
“그러고 싶기는 한데 오늘은 새벽까지 환자 킵해야 할 것 같아요.”
“레지던트에게 맡기면 안 되나요?”
“응급상황을 가정하면 제가 곁에 있는 게 더 좋습니다. 호출 받고 중환자실에 오는 시간 동안 필요한 대처가 안 될 수도 있으니까요.”
“하여간 과장님도 대단하세요.”
간호사가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레지던트 대신 당직 서는 것도 모자라서 환자까지 직접 킵하시고.”
“과장이 뭐 별건가요?”
최기석은 피식 웃으며 환자에게 다시 시선을 돌렸다.
수술을 완벽하게 끝났음에도 두 사람의 상태는 불량이었다.
각각 폐암 4기, 말기의 심장혈관종양 환자가 아닌가.
수술 후의 부담을 이겨내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바꿔 말하면 지금부터는 그가 아닌 두 환자가 병을 떨쳐 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따뜻한 코코아라도 한 잔 하세요.”
“고마워요.”
간호사가 건넨 머그컵을 받아 코코아를 한 모금 마셨다.
달달한 초코향이 입안에 퍼지며 따끈한 기운이 몸 전체로 스며들었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코코아의 효과가 그 어떤 피로회복제에 뒤지지 않았다.
최기석은 의자 등받이에 기댄 채 환자 감시 장치를 응시했다.
오늘은 유난히 긴 밤이 될 것 같았다.
* * *
그로부터 한 달 후.
최기석은 이전과 다름없는 바쁜 하루를 보냈다.
메르스가 종식 선언 후 두 달이 지난 시점이라서 그럴까.
병원을 향한 환자들의 발걸음이 점점 늘었다.
느슨했던 진료 스케줄표가 하나둘 채워지더니 나중에는 두 달 치 진료 예약까지 끝나 버리는 사건마저 일어났다.
그의 두 번째 슈리텔 출연분 방송.
세원 병원 흉부외과를 다룬 2부작 다큐멘터리.
이 두 가지가 시너지를 일으키면서 외래환자 수는 하늘을 찌를 듯이 상승했다.
그의 진료를 받지 못한 환자들이 다른 외래교수에게 몰려가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었고 말이다.
세원병원은 눈 깜짝할 사이에 전성기를 되찾았다.
그사이 박광진과 이태현도 컨디션을 회복했다.
박광진은 수술 후 나흘 만에 깨어났으며 이후 실시한 검사에서 암 종양은 발견되지 않았다.
이태현도 비슷했다.
이식한 장기에서 거부반응이 일어나지 않았으며 상태를 어느 정도 회복하고 항암치료에 들어갔다.
축배를 들기에는 이른 시점, 하지만 첫 단추를 잘 꿰맸다는 점만큼은 부정할 수 없었다.
지이이잉.
로젯 문이 열리고 최기석이 수술실로 나왔다.
그의 시선이 벽시계에 머물렀다.
현재 시간은 오후 7시, 정설화와 약속한 저녁시간까지 30분이 남은 시점이었다.
“빠듯하네. 다들 수고했다.”
“네. 고생하셨습니다.”
뒤따라 로젯을 나오던 심용준과 양해철이 그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매일 봐도 믿을 수가 없다. 우리 과장님 사람 맞냐?”
“아닐걸? 저게 어떻게 사람이야.”
양해철이 피식 웃으며 심용준의 말에 맞장구쳤다.
최기석이 로젯에 들어간 게 퇴근 시간인 오후 6시였고 현재 시간이 오후 7시였다. 그 말 인 즉 최기석이 고작 한 시간 만에 심장 수술을 끝냈다는 것이다.
그것도 호프 수술을…….
확장성 심근병증과 일부 심부전증 환자에게 필요한 부분 심장이식 수술을…….
“저번에 보조 들어갔을 때 장 교수님이 네 시간 만에 끝내던데. 딱 네 배 차이네.”
“정말 네 배 차이기도 하지.”
양해철이 심용준의 배에 손을 얹었다.
“너 요즘 부쩍 살쪘다. 야식 좀 그만 먹어.”
“신경 끄셔. 내 목구멍으로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넣겠다는데 왜 네가 난리세요.”
“귀여운 자식. 발끈하기는.”
두 사람은 티격태격하는 동안에도 멀어지는 최기석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인간을 초월한 수술 실력과 환자에 대한 따뜻한 마음씨를 가진 그가 곁에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벌컥!
집무실에 도착한 최기석은 옷을 갈아입으며 친동생인 최준기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준기야. 지금 출발할 건데 준비 다 됐어?”
[걱정 마셔. 형하고 형수님만 오면 되니까. 그건 그렇고 이 사람들 다 뭐야. 거의 백 명은 되는 것 같은데?]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게 파티 아니겠어?”
[그건 맞는 말인데…… 우와. 저 사람, 라빈 윌리엄스 아닌가? 대박. 형, 라빈도 알아?]
“자세한 건 이따가 이야기하자.”
그는 먼저 통화를 끊고 총알처럼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정설화는 차 앞에서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미안. 늦었지?”
“어?”
그의 말에 정설화가 놀란 토끼 눈을 했다.
“응급으로 호프 수술 들어간 거 아니야? 벌써 끝났어?”
“왜 그래. 나야, 나.”
그는 피식 웃으며 조수석 문을 열어주고 정설화를 시트에 앉혔다. 그녀에게 안전벨트까지 손수 채워 준 후 운전석에 앉아 동생의 레스토랑을 찾았다.
“준기 씨 레스토랑 오랜만이네.”
“앞으로는 자주 오자. 동생 매출도 늘려 줘야지.”
“그런 의미로 오늘 저녁은 내가 살게.”
차에게서 내린 정설화가 환하게 웃으며 팔짱을 꼈다.
“오셨군요.”
입구 직원이 두 사람을 발견하고 인사를 건넸다.
“오늘은 사람이 하나도 없는 것 같은데. 영업하는 거 맞나요?”
“아. 그게…… 며칠 전에 일이 터져서 잠깐 쉬는 중입니다. 오늘은 두 분이서 오붓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겁니다.”
직원의 안내에 따라 걷던 정설화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정말 레스토랑 안에 손님이 한 명도 없었다.
특이한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맛있는 냄새가 홀을 가득 메웠다는 점이었다.
“뭐 그렇게 생각해?”
“그냥 좀 이상하다 싶어서.”
“살다보면 평범한 날도 있고 이상한 날도 있는 게 인생 아니겠어?”
“여보다운 대답이네.”
두 사람이 창가 쪽 자리에 앉았다.
잠시 후 코스 요리가 나오면서 대화가 깊어져 갔다.
“아직도 믿기지 않아.”
“뭐가?”
“우리 둘이 지금 이렇게 지내고 있다는 거. 의진대에서 인턴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살짝 치켜 뜬 그녀의 눈은 옛 기억을 더듬고 있었다.
“여보는 세계 유일의 트리플 보드 흉부외과의가 됐고 나도 심장내과 전문의에 사람들이 많이 알아보는 의사가 됐잖아. 예전에는 이렇게 될 줄 꿈에도 생각 못했는데.”
“나도.”
최기석이 그녀의 손을 부드럽게 감싸 쥐며 말을 이었다.
“인생이라는 게 그래서 재미있는 것 같아. 나중에 더 나이가 들면 또 지금을 추억하는 때가 있겠지. 그때 우리는 어떤 모습일 것 같아?”
“상상도 안 돼. 나 말고 여보에 관한 것만.”
“나는 왜?”
최기석의 볼멘소리에 정설화가 장난스런 미소를 띠었다.
“여보 주변에선 워낙 사건이 많이 일어나니까. 혹시 가운 벗고 정치를 할 수도 있는 거고.”
“그건 절대 아니야.”
“왜? 의사 출신 정치인도 제법 있잖아. 의료법을 바꾸려면 정치인이 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그래도 아니야.”
최기석이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 저었다.
“난 의사잖아. 환자에 집중하고 싶어.”
“하긴 그것도 그렇네. 그건 그렇고 요즘 태호 소식 들었어?”
“조태호?”
되묻는 그의 이마에 주름이 패었다.
조태호는 병원장의 아들로 그의 인턴시절부터 레지던트 때까지 사사건건 시비를 걸었던 녀석이었다.
“응. 걔 전공이 성형외과잖아. 강남에 성형외과 차려서 영업하던 중 수술을 잘못해서 환자가 죽었대. 하필 환자가 연예인이라서 곤란하게 됐나 봐.”
“자업자득이지.”
최기석은 와인을 한 모금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간만에 솜씨를 뽐내 볼까?”
“기대할게.”
그녀의 두 눈이 홀 중앙 피아노로 향하는 최기석을 쫓았다.
아직도 잊을 수가 없었다.
몇 년 전 그가 직접 연주했던 피아노 연주를.
연주 실력은 둘째치고, 없는 시간을 쪼개서 자신을 위해 연습을 했다는 사실에 큰 감동을 받았다.
띠리리링~ 띠리리링~
익숙한 멜로디가 귓가를 감쌌다.
정설화는 최기석에게서 눈을 떼지 않은 채 피아노가 주는 선율에 몸을 맡겼다.
그런데 잠시 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가면을 쓴 사람들이 하나둘 나타나 텅 비었던 레스토랑을 채우기 시작했다.
분명 오늘은 영업을 쉰다고 하지 않았던가?
사람들이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가면을 쓰고 있다는 것도 웃겼다.
연주가 끝날 무렵 레스토랑은 시장처럼 붐볐다.
정설화는 연주에 집중하지 못한 채 머리를 싸매고 이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애썼다.
“설화야. 놀랐지?”
연주를 마친 최기석이 피아노에서 손을 뗐다.
“우리가 만난 지도 벌써 십년이 지났어. 그동안 참 많은 일이 있었지. 술자리에서 함께 CPR를 하기도 했고 힘든 인턴생활을 서로에게 기대기도 하고, 최근에는 의료봉사까지 함께 했어.”
“…….”
“그거 알아? 설화, 네가 내 곁에 있어 그 모든 순간을 견딜 수 있었어. 고집불통인 나를 네가 항상 이해하고 받아 줬기에 지금까지 올 수 있었어. 수 백번을 생각해도 너 없는 나는 상상할 수가 없더라.”
그가 뜸을 들이다가 말을 이었다.
“이 말을 하는데 너무 오래 걸려서 미안해. 내 반쪽이 되어 주겠어?”
최기석이 정설화에게 다가가 무릎을 꿇고 반지함을 내밀었다. 그가 반지 뚜껑을 열자 다이아몬드가 영롱한 빛을 뿜어냈다.
정설화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돌처럼 굳었다.
긴 침묵 속에 그녀의 몸이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굵은 눈물이 두 볼을 타고 흘렀다. 그가 전한 진심에 어찌해야할 줄을 몰랐다.
“응.”
힘겹게 한 마디를 하고서 북받쳤던 감정이 터졌다.
정설화는 최기석에게 안겨 서럽게 울었다.
담담하게 그를 보며 환하게 웃어주려 했는데 마음과 달리 몸은 뜨겁게 울기만 했다.
“고마워. 설화야. 내가 잘할게.”
최기석이 그녀의 머리를 쓸어 주며 위로하는 동안 레스토랑을 채운 사람들이 하나둘 가면을 벗고 박수와 휘파람을 보냈다.
“두 사람 축하해요.”
“평생 행복하게 사세요.”
과거 의진대 동료들, 세원병원 식구들, 최기석이 해외에서 맺은 인연들 등등.
이들의 환호로 레스토랑의 분위기는 한층 달아올랐으며 그들을 확인한 정설화의 눈물은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커졌다.
이상하게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 * *
세월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그 속에서 흉부외과의 처우와 환경을 개선하려는 최기석의 노력은 빛을 발했다.
흉부외과는 더 이상 전공의의 숫자가 모자란 마이너 과가 아니었다.
인기폭발까지는 아니었지만 매해 안정적인 지원자를 확보했다.
흉부외과 처치수가가 대폭 올라갔으며 100병상 이상인 병원에서는 흉부외과를 의무적으로 신설하게 하는 법이 만들어지면서 흉부외과의 수요가 늘어났다.
대학병원에서조차 지원자가 없는 과.
고생만 하고 돈은 제대로 못 버는 과.
그런 말들은 이제 추억 속에서만 만날 수 있게 되었다.
* * *
세원 병원 1인실.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인이 침대에 누워 창가를 응시하고 있었다. 은은한 미소를 머금은 노인의 얼굴에는 세월을 곱게 이겨낸 주름이 보기 좋게 자리 잡았다.
‘벌써 이런 날이 왔구나.’
최기석은 가만히 지난날을 돌이켜보았다.
교통사고를 당하고 새로운 인생을 얻은 날부터 지금 이 순간이 오기까지, 모든 순간들이 손에 잡힐 듯 했다.
그동안 숱한 고생을 겪었지만 특별한 능력과 소중한 사람들 덕분에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었다.
방울방울 떠오르는 추억을 힘겹게 밀어낸 그는 상태창을 띄웠다.
또 다른 삶.
아직 사용하지 않은 단 하나의 아이템이 있었다.
‘이제 와서 미련 둘 필요 없지.’
똑. 똑. 똑.
노크 소리와 함께 한 무리의 사람들이 병실로 들어왔다.
그가 부탁한 혼자만의 시간이 끝나자 자식을 비롯한 제자들이 무서운 기세로 나타난 것이다.
“아버님. 몸은 괜찮으시죠? 이렇게 돌아가시면 안 됩니다.”
장남 하윤이가 울먹이며 그의 손을 붙잡았고 둘째 딸 소연이는 그의 곁에서 어찌할 줄 몰랐다. 제자들은 자식들 뒤에서 걱정스런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사람은 때가 되면 죽는 거야. 거스를 수 없는 걸 거스르려고 하면 안 돼지.”
“하지만…….”
“내 생각에는 저승에도 환자가 있는 것 같아. 그러니까 날 데려가려는 것 아니겠니?”
최기석은 아들의 손에서 느껴지는 온기를 느끼며 눈을 감았다.
점점 숨을 쉬기 힘들었다.
그를 움직이게 했던 생기가 스멀스멀 빠져나가는 게 느껴졌다.
하윤이와 소연이, 제자들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모든 감각이 꿈결처럼 멀어지고 있었다.
세상 모든 사물의 종착역 죽음.
죽음이 코앞으로 다가왔지만 최기석은 그다지 두렵지 않았다. 한 달 전 먼저 떠난 정설화의 곁으로 간다고 생각하니 오히려 마음이 푸근해졌다.
이윽고 새까만 어둠이 그를 덮쳤고 최기석은 그 어둠에 모든 것을 맡겼다.
한 줌 남은 의식마저 꺼질 때 그는 마지막으로 생각했다.
내 삶은 행복했다고.
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