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닥터 최기석-406화 (405/407)

끝을 향해서 (3)

스으으윽.

수술등의 빛을 반사하며 날카로운 빛을 뿜어내는 메스가 장기 기증자의 가슴을 갈랐다.

정중흉골 절개술이 이어지고 수술시야가 넓어지면서 마침내 공여자의 폐가 모습을 드러냈다.

‘깨끗하군.’

제레미는 공여자의 심장과 폐를 훑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검사상으로 문제가 없는 장기라는 건 이미 파악했다. 하지만 만약을 위해서 한 번 더 확인 절차를 거쳤다.

아주 드물지만 폐암에 걸린 공여자의 폐를 잡아내지 못하고 수혜자에게 이식하여 폐암까지 옮겨버린 케이스가 있었기에.

제레미는 이어서 환자의 복부를 갈랐다.

공여자의 간을 얻기 위함이었다.

간이식은 심장종양이 간으로 퍼진 30대 청년 환자를 위해 사용될 것이다.

딸칵.

혈관겸자로 중요 동맥과 정맥을 묶은 후 간을 얻기 위한 작업에 먼저 들어갔다.

“선생님은 어떻게 간담췌외과 수술까지 가능하십니까?”

스태프들 중 한 명이 질문을 던졌다.

놀라운 일이다.

간담췌외과 전문의가 할 일을 흉부외과 의사가 하고 있으니.

“사실 메이죠에서 수련할 때 간담췌외과 전공을 할 생각이었거든. 그래서 윗사람들이 여러 가지 수술을 많이 가르쳐 줬지.”

“그…… 그렇군요.”

“뭐든지 배워 두면 쓸 때가 있어. 자.”

제레미는 순식간에 간을 절제하고 이를 소독간호사에게 넘겼다. 그러자 소독간호사가 간을 비닐에 싸서 아이스박스에 보관했다.

“산소 백 퍼센트 투여하고 폐 세척용액으로 폐를 세척한다.”

그의 지시에 스태프들이 발 빠르게 움직였다.

일련의 과정이 끝난 후 제레미는 폐이식을 위한 밑 작업에 들어갔다. 양측 하부 폐 인대를 절단하고 식도 근처의 혈관도 떼어 냈다.

“상행 대동맥 결찰하고 헤파린 투여했습니다.”

“좋았어. 심정지 용액 주입하고 수혜자 팀에 연락해서 진행상황 알아 봐.”

“알겠습니다.”

막내 스태프가 자리를 벗어났다. 그런데 잠시 후 돌아온 그가 놀라운 사실을 알려왔다. 수혜자 팀은 전폐 전제술을 끝내기 직전이라고 했다.

‘아직 멀었다는 건가?’

제레미의 입가에 한 줄기 미소가 흘렀다.

최기석이 MHC를 떠난 후 그는 수술을 빨리 끝내는 것으로 명성을 떨쳤다. 오죽하면 사람들이 그에게 소닉이라는 별명까지 지어 주었을까.

그래서 오늘은 내심 기대하고 있었다.

최기석이 수술을 마치기 전, 잘라낸 폐를 수혜자 팀에 보낼 수 있을 것으로.

최기석이 없는 동안 성장한 본인의 모습을 뽐내고 싶었다.

지금에서야 보기 좋게 계획이 빗나갔지만.

“작업을 계속한다.”

서걱. 서걱. 서걱.

대동맥 절단, 좌심방 절개, 기관 박리 등의 과정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폐 주변에 있는 혈관과 기타 연결 부위를 제거하자 손쉽게 폐를 획득할 수 있었다.

“선생님. 궁금한 게 있는데 한 가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뭐든지.”

“MHC에서 최 과장님은 어떤 분이셨습니까?”

“MHC에서 기석 최의 모습이라…….”

제레미가 뜸을 들이다가 말을 이었다.

“한국에서 본 적이 없으니 정확한 비교는 불가능하겠지만 말이야. 너희들이 아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아. 환자만 생각하고 환자만 바라보고 오늘 수술처럼 무모해 보이는 일도 서슴지 않았어.”

“…….”

“너라면 폐암 4기 환자에게 폐이식 수술을 하겠어?”

“어…… 음…… 아니요. 솔직히 의미 없다고 생각합니다.”

“뭐. 그런 거야. 그런데 재미있는 건 기석이 고집을 부려서 실패한 일이 별로 없다는 거지.”

수술 마스크 위로 드러나 제레미의 눈이 반달을 그렸다.

“기석을 믿어도 좋아. 기대를 하면 꼭 그 이상을 보여 주는 녀석이니까.”

제레미는 좌우측으로 절단한 폐를 아이스박스에 보관한 뒤 막내 스태프에게 건넸다.

공여자의 폐는 그의 손을 떠났다.

이제 환자의 생명은 폐와 패를 양손에 거머쥔 최기석에게 달렸다.

* * *

J 로젯.

최기석은 집도에 한창이었다.

심장종양을 제거하기에 앞서 전이가 발생한 림프절과 기관 일부를 떼어 내는 중이었는데 그 범위가 넓어서 생각보다 긴 시간을 투자해야 했다.

텅! 텅! 텅!

쇳소리와 함께 암 조직이 있는 조직이 곡반 위로 떨어졌다.

‘역시 찰스야.’

암 조직을 곡반에 올려놓은 최기석이 찰스를 힐끔 쳐다보았다. 이번 수술을 집도해도 문제가 없는 실력자가 세컨드에서 어시스트를 하고 있었다.

덕분에 모든 과정을 물 흐르듯 깔끔하게 진행 중이었다.

오랜 만에 그와 호흡을 맞추게 되었다는 사실도 작은 기쁨 중 하나였고 말이다.

“전폐 절제술 시작할까?”

“좋아. 가자고.”

두 손을 천장으로 뻗어 기지개를 켜던 도중, 최기석의 시선이 참관용 수술실로 향했다. 바로 그 순간 팔짱을 끼고 이쪽을 응시하고 있는 김한철과 눈이 마주쳤다.

김한철의 두 눈은 원수를 지켜보는 것처럼 매서운 빛을 띠고 있었다.

어떻게 해서든 꼬투리를 잡고 싶은 건가?

최기석은 김한철의 생각을 읽고서 쓴웃음을 지었다.

이어지는 전폐 절제술.

하부 폐 인대 절단과 폐동맥 결찰 등의 과정이 순식간에 끝나자 폐를 이식하는 본 게임만 남게 되었다.

“공여자 팀의 폐 획득은 아직 멀었대?”

“네. 십 분 정도 더 필요할 것 같다고 합니다.”

이다니엘의 말에 최기석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과, 과장님. 환자 바이탈이 떨어집니다.”

마취의가 알려 준 비보에 스태프들의 시선이 동시에 환자 감시 장치로 쏠렸다.

“심박수 분당 34회까지 떨어졌습니다. 혈압은 40 mmHg/ 20mmHg 미만, 중심정맥압이 치솟았습니다.”

삐이이이. 삐이이이.

환자 감시 장치가 불길한 전자음을 토해 냈다.

“에피네프린 IV 원 앰플 주고 찰스는 나랑 CPR.”

“알았어.”

최기석은 환자의 심장을 부드럽게 움켜쥔 후 적당한 힘을 주어 마사지했다. 그동안 이다니엘이 환자에게 에피네프린을 투여했으며 찰스는 제세동기 충전에 나섰다.

“다들 물러나. 200J!”

찰스가 주걱 모양의 제세동기 패들을 최기석에게 건넸다. 때마침 램프에 불이 들어오고 삐삐 하는 전자음이 울렸다.

“Charge!”

“Clear!”

쿵!

전류가 흐르면서 환자의 몸이 펄떡 뛰어올랐다.

“200J!”

“Charge!”

“Clear!”

쿵!

신속하게 진행된 CPR로 환자의 바이탈이 서서히 정상범위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환자의 혈압은 다시 50/30 mmHg, 분당 30회로 감소하였고 에피네프린을 추가하여도 다시 떨어진 바이탈은 회복될 줄 몰랐다.

“하. 이유가 뭐야?”

찰스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환자를 내려다보았다.

트리플 보드 흉부외과의인 최기석과 MHC 폐식도외과 펠로우인 그가 수술을 진행했다. 수술 중에 한 치의 실수도 없었음에도 이런 상황이 벌어졌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과, 과장님 어떻게 할까요? 이대로라면 폐이식 수술을 하기도 전에 환자가…….”

이다니엘이 발을 동동 구르며 물었지만 최기석은 입에 자물쇠라도 단 것처럼 침묵을 지켰다.

그동안 환자의 바이탈은 심연의 밑바닥까지 떨어지고 있었다.

“다니엘, 환자를 오른쪽으로 눕혀 봐.”

“체위를 바꾼다고 의미가 있을까?”

최기석의 말에 찰스가 미간을 찌푸렸다.

“확인해 보고 싶은 게 있어.”

“알겠습니다.

이다니엘과 소독 간호사가 똑바로 누워 있던 환자를 오른쪽으로 눕혔다. 수술 부위를 다시 살피는데 찰스가 가장 먼저 몸을 들썩거렸다.

“설마 이건?”

“맞아. 심장이 탈장했어.”

최기석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수술에서 그는 심낭을 절개하여 전폐 절제술을 시도했다.

문제의 원인은 심낭 봉합술.

심장 눌림증을 방지하기 위해 봉합을 다소 느슨하게 했는데 그 틈으로 심장이 빠져 버린 것이다.

수술 중 체위를 바꾼 것도 원인 중 한 가지로 볼 수 있었다.

“원인을 알았으니 됐어.”

최기석은 심낭 밖으로 빠져나온 심장을 원위치 시킨 후 심낭의 봉합을 더 단단히 했다. 그리고 혹시 모를 혈관 손상이나 출혈의 위험을 살핀 후 환자 감시 장치를 살폈다.

환자의 바이탈이 서서히 상승하고 있었다.

“죽는 줄 알았네.”

찰스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기석. 전폐 절제술을 도중에 심장탈장이 생기는 경우가 있어? 난 한 번도 경험 못 했는데.”

“나도 오늘이 처음이야.”

“그런 것치고는 분석이 너무 차분했는데?”

“집도의가 당황하면 환자는 누가 책임지고 스태프들은 누구에게 기대겠어.”

“너 따라가려면 아직 멀었구나.”

두 사람의 서로를 보며 입가에 머금은 미소를 교환했다.

지이이이잉.

“공여자 폐 가져왔습니다.”

로젯 문이 열리고 아이스박스를 든 스태프가 이쪽으로 다가왔다.

“공여자는 문제없고?”

“네. 다음 수술에 필요한 장기까지 전부 얻었습니다.”

“제레미는?”

“제레미 교수님은 휴게실에서 잠깐 쉬고 있습니다.”

“고생했다. 가 봐.”

스태프를 돌려보낸 후 본격적인 폐이식 수술의 막이 올랐다.

찰스의 어시스트를 받는 최기석은 물 만난 고기처럼 집도에 나섰다.

“4-0 Vicryl(흡수성 봉합사).”

끼기기긱.

니들홀더로 봉합침을 조인 후 기관지 문합부터 나섰다.

기관지 앞부분에는 단순 단속 봉합을 펼쳤으며 뒷부분에는 연속 문합을 펼쳤다.

간혹 기관지의 크기가 맞지 않을 때가 있었지만 중첩 봉합법으로 위기를 무사히 넘겼다.

딸칵!

“좌심방 결찰했어.”

“땡큐.”

최기석은 메스로 좌심방을 절개하고 폐정맥과 부위의 좌심방과 환자의 좌심방을 연결시켰다. 이제 남은 처치는 폐동맥을 연결해 주는 것이었다.

폐이식 수술의 마지막 장이 다가왔다고 해야 할까.

그런데 바로 그 때다.

삐이이이. 삐이이이.

갑자기 울리는 전화로 이다니엘이 자리를 비웠고 복귀한 후 다급하게 소식을 전했다.

“과장님. 심장종양 수술 예정된 이태현 환자 말입니다.”

“왜?”

“지금 상태가 악화됐다고 합니다. 바이탈은 정상인데 환자가 심한 흉통을 호소하면서 과장님을 찾는다고 합니다.”

이다니엘의 보고에 최기석의 손이 잠시 멈췄다.

그는 한참 고민을 하다가 손에 쥐고 있던 수술 도구를 내려놓았다.

“로젯으로 올리라고 해. 바로 수술한다. 제레미하고 제레미와 같이 수술했던 스태프들도 다시 호출하고.”

“그럼 박광진 환자는…….”

“찰스가 마무리해 줄 거야. 그치?”

“뭐. 이 정도야 땅 짚고 헤엄치기지.”

찰스가 걱정 말라는 듯 환한 미소를 보였고, 최기석은 부탁한다는 말을 남긴 채 로젯을 떠났다.

‘별일 없어야 할 텐데.’

말기 심장종양 환자 이태현, 그는 얼마 전 심장종양으로 인한 우심방 파열 때문에 응급 수술을 받았다. 그런 그가 지금까지 버틴 것은 한마디로 기적이었다.

그리고 지금 최기석이 해야 하는 일은 환자가 보여 준 기적에 보답하는 것뿐이었다.

“미안. 또 부탁하게 될 줄은 몰랐네.”

K 로젯 앞에 서 있던 최기석은 이쪽으로 접근하는 제레미를 확인하고 먼저 말을 걸었다.

“미안할 것까지야. 이게 우리 일인데. 폐이식 수술은 어땠어?”

“지금까지는 문제 없는 것 같은데 경과가 나와야 알겠지.”

“잘 될 거야.”

두 사람이 대화를 주고받은 사이 수술에 투입될 스태프들이 로젯에 도착했다.

벅. 벅. 벅. 벅.

소독을 끝낸 스태프들이 일제히 로젯으로 들어갔다.

[영혼의 눈물 아이템을 사용하셨습니다. 초각성 효과가 발휘됩니다.]

[초각성 효과: 일시적으로 외과적 처치 레벨이 3단계 상승합니다. 지속시간은 반나절이며 초각성 효과가 끝나면 일시적으로 탈진에 빠집니다.]

[외과적 처치: 15(12+3)]

아이템을 사용한 그는 비장한 표정으로 집도의 자리에 섰다.

이 수술에 모든 것을 쏟아부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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