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을 향해서 (1)
환자 곁에서 앉아서 꼬박 자리를 지킨 지 여덟 시간.
최기석이 마침내 몸을 일으켜 병실을 나섰다.
“환자는 좀 좋아졌나요?”
김지연 간호사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휴우…… 새 처방도 별 소용이 없네요.”
“역시 계속 지켜보는 것밖에 할 수 없나요?”
“이제는 조금 다른 방법을 써 보려고 합니다. 이것도 효과를 장담할 순 없지만 할 수 있는 건 다 해 봐야죠.”
최기석은 억지 미소를 지으며 스테이션 앞에 섰다. 그리고 호흡기내과로 전화를 걸었다.
‘대체 무슨 생각이시지?’
김지연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최기석을 지켜보았다.
메르스 치료법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항바이러스제를 비롯한 내과적 치료를 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내과 치료가 먹히지 않을 경우 환자는 그대로 사망.
양정환이 고혈압과 당뇨를 비롯한 지병이 있다는 걸 감안하면, 이런 생각은 해서는 안 되지만, 그의 목숨은 바람 앞에 촛불과도 같았다.
과연 세계 유일의 트리플 보드 흉부외과의는 어떤 판단을 내렸을까.
시간이 갈수록 호기심이 불어났다.
그렇게 한참이 지난 후, 멸균 장비를 갖춰 입은 호흡기내과 의사가 소화기외과 병동을 찾았다.
하지만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그는 제법 큰 기계를 끌고 스테이션 앞에 섰다.
“과장님. 가져왔습니다.”
“수고했어.”
“수고는 과장님이 하고 계시죠. 만약 제가 폐쇄병동에 갇힌다면 머리를 쥐어뜯고 소리 지를 것 같은데.”
“괜찮아. 이것도 며칠 안 남았어.”
최기석은 호흡기내과 의사가 가져온 기계를 소중한 보물처럼 쓰다듬었다.
기계의 이름은 에크모.
에크모(Extra Corporeal Membrane Oxygenation)는 체외막 산소공급 장치를 뜻하는 말로 환자의 피를 몸 밖으로 빼낸 후 산소를 공급하고 이산화탄소를 제거하여 다시 환자의 몸속으로 넣어주는 장치였다.
“그런데 에코모는 갑자기 왜 찾으세요?”
“메르스 중증 환자에게 한번 써 보려고.”
“아…… 그렇군요.”
호흡기내과 당직의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에크모로 메르스를 치료한다는 이야기는 들어 본 적이 없었다.
해외는 물론 국내에서도.
솔직히 누군가가 그에게 에크모의 효과를 묻는다면 그는 ‘글쎄요…….’ 하며 말끝을 흐릴 것이다.
에크모와 메르스의 연관성을 딱히 찾아보기 힘들었다.
“고생했고 올라가 봐.”
“네. 과장님. 수고하십시오.”
“김 간호사님은 카테터랑 처치 도구 챙겨서 저랑 병실로 가시죠.”
“알겠습니다.”
얼마 후 준비를 마친 두 사람이 소독을 끝내고 양정환의 병실로 들어갔다.
환자의 상태는 여전히 위독했다.
죽음과 삶이라는 양쪽 낭떠러지 위에 놓인 외나무다리에서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었다.
‘효과가 있을 거야. 분명.’
최기석은 에크모 가동 준비를 하며 각오를 다졌다.
메르스의 질병명이 무엇인가.
중동 호흡기 증후군이 아닌가.
호흡에 관련된 치료방법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던 중 에크모가 섬광처럼 스쳐 지나갔다. 에크모는 인공호흡기가 할 수 없는 다양한 역할을 할 수 있었다.
메르스와의 싸움에서 충분히 승산이 있는 카드였다.
“헤파린(항응고제) IV로 주세요. 저는 기계세팅하고 있을게요.”
“네.”
띠. 띠. 띠. 띠.
버튼을 누르는 화려한 움직이는 손놀림.
그는 도관의 유속과 관련된 ECMO flow, Cardiac index을 비롯한 산화기와 모니터 세팅을 순식간에 끝냈다.
그것도 환자의 상태를 면밀하게 고려해서.
“시작해 볼까요?”
가볍게 목을 푼 최기석이 카테터를 손에 쥐었다.
에크모의 연결방법은 크게 VA(정맥에서 혈액을 빼어 동맥으로 넣어주는 방법)과 VV(정맥에서 혈액을 빼어 정맥으로 넣어주는 방법) 두 가지가 있는데 오늘은 VV에크모를 사용할 예정이었다.
“준비됐습니다.”
김지연이 목 아래에 있는 내경정맥을 알콜솜으로 문지르고 환자의 몸을 단단히 잡았다. 그러자 최기석이 손에 쥔 카테터로 혈관을 찔렀다.
푸우우우욱.
카테터가 혈관을 뚫으면서 머리 부분에 피가 고였다.
그는 동맥 캐뉼러(도관)를 우심방에 위치시켰고 우측 넓적다리 동맥에는 정맥 캐뉼러를 위치시켰다.
이것으로 에크모 출격 준비 완료.
최기석은 환자 혈류를 3.1∼3.5 L/min로, 인공 호흡기는 FiO2 0.6, TV 270 mL, RR 14회/min로 유지하도록 만들었다.
“과장님, 다 끝났나요?”
“네. 환자는 제가 지키고 있을 테니까 가서 일 보세요.”
그의 말에 김지연이 고개를 숙이고 병실을 떠났으며 최기석은 의자에 앉아서 환자를 내려다보았다.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
에크모가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는 시간이 말해 줄 것이다.
초조한 기다림 속에 그의 시선은 에크모에게서 떨어질 줄 몰랐다. 밖에서 누군가가 병실을 지켜봤다면 병실의 시간이 멈췄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미동도 없이 누워 있는 환자.
멍하니 에크모만 바라보고 있는 최기석.
방전된 건전지로 분침과 시침이 돌지 않는 시계.
병실 안은 모든 것이 정지되어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탁!
최기석이 무릎을 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계에서 보여주는 안정적인 호흡 수치들과 그래프들이 그를 기쁘게 했다.
양정환이 돌아왔다.
저승에 발을 걸치고 있던 그가 이 세상으로 돌아왔다.
* * *
그로부터 이 주일 후.
대한민국에서 많은 일들이 벌어졌다.
우선 정부에서 메르스 종식선언을 내렸다.
종식선언을 두고 많은 말들이 오갔지만 발표가 번복되는 일은 없었다.
메르스 총감염자는 총 55명으로 발표되었으며 사망자는 7명으로 공식 집계되었다.
메르스를 제대로 막지 못한 보건부 장관은 경질되었으며, 정부의 감염 대책에 대한 질타가 곳곳에서 쏟아졌다.
자체적인 감염 병원 공개가 너무 늦었다.
예방이 소홀했다.
슈퍼 전파자의 감염력을 간과했다.
메르스 발생 국가 중 메르스 환자의 수와 사망자의 수가 두 번째로 높았다 등등.
메르스 종식 후에도 메르스와 관련된 보도는 끊어질 줄 몰랐다.
그럼에도 한 줄기 희망은 있었다.
세원 병원을 비롯한 몇몇 병원들이 용감하게 감염자가 있음을 밝힌 사실이었다. 사람들이 감염자가 나온 병원을 피하면서 추가 감염자가 늘어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또한 에크모 치료는 메르스의 공식적인 치료법으로 인정을 받았다.
최기석은 양정환 환자를 에크모로 치료한 후 언론에 에크모의 효능을 주장했다.
[메르스 중증 환자, 에크모로 살린다!]
[에크모는 대체 어떤 기계인가?]
그의 언론 플레이로 많은 사람들이 에크모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했던 의료계였지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에크모 치료에 나섰다.
그 결과 에크모가 메르스 중증환자에게 효과가 있다는 의미 있는 데이터를 얻을 수 있었다.
최기석은 그 공로를 인정받아 대통령 표창을 받게 되었지만 거절했다.
대신 정부에게 구멍 뚫린 감염대책을 시급하게 고쳐 줄 것을 부탁했다.
메르스 감염자가 세 명이나 발생한 세원 병원.
병원에 환자는 좀처럼 늘어나지 않았다.
메르스 잠복기가 지나고 정부가 메르스 종식선언을 했음에도 불안감은 아직 사람들을 압도하고 있었다.
* * *
메르스 종식발표 후 일주일 뒤.
최기석은 집무실에서 서류 업무를 처리하는 중이었다.
환자가 줄어든 탓에 시간을 보내는데 한결 여유가 있었다. 그 여유가 딱히 달갑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창가에 서서 바깥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메르스가 할퀴고 지나간 시간들을 천천히 되짚었다.
감염자가 있다는 사실을 공개하면서 병원이 타격을 입었지만, 그는 자신의 행동에 한 점의 후회도 없었다.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다고 해도 똑같은 선택을 할 것이었다. 병원 공개를 하지 않았다면 아마 메르스 환자는 지금보다 두세 배는 늘어났을 테니까.
더군다나 병원에서 입은 경제적인 손실은 사비로 해결했다.
메이죠 클리닉 주식을 일부 팔아서 병원에 보내는 것으로 마무리 지었다.
메르스의 여진이 당분간 이어지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환자들은 결국 돌아올 것이라 믿었다.
띠리리링.
갑작스레 울리는 전화음.
최기석은 고개를 갸웃거리고 책상에 놓인 전화기를 들었다.
“최기석입니다.”
[네. 과장님. 저, 용준입니다. 급하게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응급환자라도 생겼어?”
[그건 아니고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폐이식 센터에서 연락이 왔는데 폐이식 공여자가 나타났다고 합니다. 조만간 박광진 환자와 공지환 환자 수술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오케이. 검사 몇 개 해 보고 이틀 뒤로 수술 잡자.”
[알겠습니다.]
전화기를 내려놓은 최기석은 시원하게 기지개를 켰다.
폐암 4기를 앓고 있는 박광진.
부교수 김한철에게 버림받은 심장종양 환자 이태현.
드디어 두 사람에게 수술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수술이 쉽지는 않겠지만 언제나처럼 최선을 다해 그들의 생명을 구하리라.
두 손에 저절로 힘이 들었다.
잠시 후 찾아온 퇴근 시간, 최기석은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흉부외과 병동을 떠났다. 한 시간 후 정설화와 데이트가 있었지만 그 전에 할 일이 있었다.
그래서 차를 몰고 중심가에 있는 보석상을 찾았다.
“이걸로 주세요.”
마음에 드는 물건을 고른 그는 다시 병원으로 돌아갔다.
병원 근처에 차를 세워두고 시간을 보내는데 정설화가 곧 이쪽으로 다가왔다.
“칼 퇴근에 데이트는 오랜 만이네.”
“이런 날도 있어야지.”
최기석은 피식 웃으며 그녀에게 안전벨트를 메어주고 볼에 뽀뽀했다.
“오늘이 그날이지?”
“맞아. 벌써부터 다른 사람들 반응이 기대된다.”
그는 차를 몰고 근처에 있는 호텔로 이동했다. 퇴근 시간이라서 차가 막혔지만 답답하지는 않았다. 정설화와 편안히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이 즐거울 따름이었다.
“그동안 고생 많았어.”
차가 신호에 멈추자 정설화가 그의 손을 꼭 붙잡았다.
“메르스 때문에 소화기외과 병동에 계속 갇혀 있었잖아. 답답했지?”
“그것도 나름 휴가였어. 수술도 안 하고 외래 진료도 안 봤잖아. 앞으로 두 번 다시는 이런 일은 없을걸?”
“하긴 그것도 그렇네.”
정설화가 쿡쿡 웃음을 터뜨렸다.
“심장내과 쪽도 환자 별로 없지?”
“응. 예전에 비하며 거의 반 토막이야. 조금씩 늘고 있기는 하지만. 병원 사람들 몇몇이 네 험담하는 건 알아?”
“당연하지. 가끔씩 귀가 간지러워 미칠 지경이었거든.”
최기석의 병원 공개를 용감하다고 생각한 병원 스태프들이 대다수였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그의 행동이 경솔했으며 앞으로 병원에 끼칠 영향이 막대하다며 수군거렸다.
“별로 신경 안 써. 예전부터 욕먹는 게 익숙해서 귀에 굳은살이 박혔거든.”
“그래. 다들 여보를 질투하는 거니까.”
대화를 나누는 사이 차가 호텔 주차장에 들어섰다.
두 사람은 호텔 최상층에 있는 라운지에서 저녁식사를 마치고 객실로 들어왔다. 이후 번갈아 샤워를 하고 편안한 복장으로 침대 등받이에 등을 기댔다.
“타이밍이 환상적이다.”
“그러게.”
최기석은 TV 채널을 고정하고 미소 지었다.
[다큐멘터리 7일 세원 병원 흉부외과 편, 따뜻한 심장을 가진 의사들]
드디어 흉부외과 의사들의 고달픈 생활이 전파를 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