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 (6)
이다니엘을 비롯한 스태프들의 시선이 수술 부위로 향했다.
대동맥은 크게 내막과 중막, 외막 이렇게 세 부위로 이루어졌다.
대동맥 박리란 이 중 내막이 찢어져 그 안에 있던 혈액이 중막으로 흘러들고 그로 인해 중막의 벽이 안쪽과 바깥 쪽 층으로 나뉜 것을 의미한다.
긴 침묵 속에 가장 먼저 처치에 나선 건 양해철이었다.
치이이이익.
그는 석션기로 피를 빨아들였고 뒤늦게 정신을 차린 이다니엘이 혈관겸자로 박리가 일어난 대동맥 상단부를 잠가 주었다.
딸칵!
혈관겸자로 지혈을 하자마자 출혈량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과장님. 이제 어떻게 할까요?”
[일단 상행 대동맥을 갈라. 그래야 내막과 중막의 상태를 볼 수 있어.]
“알겠습니다. 메스.”
이다니엘은 소독 간호사에게 받은 메스를 손에 쥐고 대동맥에 갖다 대었다.
환자의 목숨이 자신에게 달렸다는 부담감.
혹여나 실수를 하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
두 가지 감정에 손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지만 마음을 다잡고 메스를 그었다.
스으으윽.
혈관벽이 갈라지면서 그 안의 모습이 들어왔다.
“아…….”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스태프들 모두가 탄식을 뱉어냈다.
환자가 제대로 된 처치를 받지 못하고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녔기 때문일까.
상태가 심각했다.
일반적인 대동맥 박리 환자보다 두 배 이상의 크기로 내막이 찢어졌으며 그로 인해 생긴 가성(가짜통로)의 크기도 만만치 않았다.
이 상태로 지금까지 버텼다는 게 기적이었다.
[정신 차려! 멍 때리고 있을 시간 없다.]
“네!”
[다니엘과 해철이는 가성을 닫고 용준이와 재현이는 박리된 대동맥을 제거한다.]
“저희까지 처치를 하나요?”
심용준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제3보조와 제4보조가 집도의와 동시에 처치에 들어가는 일은 흔치 않았기에.
[넷이 같이 움직여야 조금이라도 시간을 절약하지. 스테이션에 연락해서 너희들 도와줄 소독간호사 몇 명 더 보내달라고 해.]
“알겠습니다.”
심용준이 자리를 떠나 로젯 옆에 있는 전화기로 스테이션에 걸었다.
그사이 이다니엘과 양해철은 핵심처치 단계 중 하나인 가성을 닫고 있었다.
끼리리리릭.
니들홀더로 봉합침을 조이고 대동맥 중막에 생긴 구멍을 꿰매기 시작하는 이다니엘.
물속에서 봉합하는 것처럼 속도가 느렸지만 정신을 집중해 한 땀 한 땀 봉합에 나섰다. 반대편에 있는 양해철은 이다니엘과 호흡을 맞춰 피부 조직을 잡아주거나 완성된 매듭 윗부분을 잘라 주었다.
‘이대로라면…….’
영상통화로 레지던트들을 지켜보던 최기석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걸렸다.
네 사람은 걱정했던 것보다 훨씬 잘해 주고 있었다.
그들은 능력 밖에 환자를 처치하고 있음에도 주눅 들지 않고 제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최기석이 그동안 얻은 버프들이 크게 거들어 주고 있기는 했지만 말이다.
텅!
박리된 대동맥이 곡반으로 떨어졌다.
임무를 마친 조재현과 심용준이 다시 보조를 하면서 집도 속도가 다소 빨라졌으며 환자의 바이탈을 관리하는 일도 한결 수월해졌다.
“과장님. 가성 봉합 끝났습니다.”
[잘했어. 지금부터 인조혈관으로 손상된 대동맥을 재건한다. 박리한 부분하고 방금 막 문합한 가성 보이지?]
“네.”
[그 테두리를 인조혈관으로 문합해 주면 돼. 조금 느려도 상관없으니까 최대한 조심해. 잘못하면 네 손으로 대동맥 박리를 만들 수도 있다.]
“명심하겠습니다.”
[Woven Dacron, 부탁드립니다.]
최기석의 말에 소독간호사가 고개를 끄덕이고 인조혈관 치환술에 적합한 인조혈관을 가져왔다. 그러자 양해철이 손상된 대동맥 위에 인조혈관을 덧대었다.
“인조혈관 치환술 시작합니다.”
이다니엘의 비장한 한마디로 수술의 피날레가 찾아왔다.
끼기기긱. 찰칵. 끼기기긱. 찰칵.
드르르르륵.
삐이이이이. 삐이이이.
니들홀더 조이는 소리와 가위 소리.
인공심폐기 돌아가는 소리와 환자 감시 장치가 내는 기계음 등이 수술실을 가득 메웠다.
어느 순간부터 흉부외과 레지던트들은 한마디도 주고받지 않았다.
한 몸, 한마음이 되어 환자를 살리는데 집중하고 있었다.
레지던트들의 가상한 노력 속에 인조혈관 문합이 40퍼센트 가까이 진행되었다.
수술 시간은 어느덧 7시간이 지났다.
대동맥 박리 수술 시간이 보통 8시간에서 10시간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진행이 느린 편이었다. 하지만 레지던트들만으로 여기까지 왔다는 사실로도 박수갈채를 받기에 충분했다.
“과장님. 킵하고 있는 환자분은 괜찮습니까?”
[아슬아슬해. 새로운 약물로 간신히 버티는 느낌이다.]
“그렇군요. 소화기외과에 갇혀서 고생이 많으십니다.”
[고생은 무슨. 참고로 의사의 업무를 환자 치료라는 좁은 범위에 가두면 안 돼. 환자와 관련된 모든 일이 의사 업무란 말이지. 그런 의미에서 소화기외과에 있는 것도 엄연히 내 일이다.]
“역시 과장님은 뭐가 달라도 다르십니다.”
[짜식. 아부…….]
최기석이 말을 잇지 못했다.
휴대폰 너머로 보이는 얼굴에 당혹감이 서려 있었다.
때마침 환자 감시 장치가 젖 달라고 보채는 아이처럼 시끄럽게 삐이이 울기 시작했다.
“뭐, 뭐지?”
봉합 중이던 이다니엘은 수술 도구를 손에서 놓고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자잘한 실수가 있었지만 큰 틀에서는 별 탈 없이 치환술을 진행 중이었다.
눈을 씻고 수술 부위를 다시 훑어도 문제점은 없었다.
그렇다면 대체 어디가 문제일까.
[대동맥궁에 파열이 일어났다. 거즈로 상처 덧대고 석션!]
최기석이 말을 마치자마자 활 모양으로 굽은 대동맥 상단부인 대동맥궁에서 피가 쏟아졌다. 양해철이 신속한 처치에 나서면서 대동맥에 유입되는 혈액량이 줄어들었다.
“과장님. 이제 어떻게 하죠?”
[우선 블러드 팩 달고 지혈제 투입해.]
지시를 내린 최기석은 상황을 지켜보며 땅이 꺼져라 한숨을 지었다.
의진대에서 비슷한 케이스를 겪은 적이 있었다.
당시 집도의는 송명진이었고 최기석은 인턴으로 수술 보조를 하고 있었다. 갑작스런 대동맥궁 파열로 당시 환자는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런 상황을 레지던트들이 해결할 수 있을 리는 만무했다.
‘방법은 하나뿐이군.’
최기석은 상태창을 확인하고 과거 의진대 시절 VIP 환자를 치료하고 받은 길흉화복 아이템을 사용했다.
“말씀하신 처치는 끝냈습니다. 다음에는 어떻게…….”
질문을 하는 이다니엘의 눈빛이 180도 바뀌었다.
마치 전혀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해철아. 너랑 용준이가 인조혈관 치환술 해야겠다.”
“제, 제가요?”
“왜 그렇게 놀라? 최 과장님하고 우심방 파열 수술도 해 봤다면서.”
“그거야 그렇지만…….”
“할 수 있어. 너라면.”
이다니엘이 시선이 동기인 조재현에게 옮겨졌다.
“재현아. 너는 세컨드로 올라와. 대동맥궁 수술하자.”
“……알았어.”
머뭇거리던 조재현이 곧 결심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딸칵.
이다니엘이 대동맥궁 상단부를 클램프로 짚으면서 새로운 처치가 시작되었다.
“메스.”
그는 소독간호사에게 받은 메스로 박리가 일어난 대동맥궁을 단번에 잘라냈다. 그리고 가성이 생긴 부위를 봉합하기 시작했다.
‘와. 미쳤어.’
조재현은 동기인 이다니엘의 처치를 지켜보며 혀를 내둘렀다.
지혈겸자를 사용했음에도 출혈이 계속 진행 중이었다.
조재현이 석션을 하고 있음에도 흡입량이 출혈량을 따라잡지 못했는데 그로 인해 수술 시야가 제대로 확보되지 않았다.
대동맥궁이 피로 넘쳐나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라고 해야 할까.
그럼에도 이다니엘은 피바다 속에서 가성을 봉합하고 있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곳을, 오직 감에 의존해서 꿰매는 셈이다.
“뭐해. 잘라 줘.”
“어? 어.”
눈 깜짝할 사이에 끝난 가성 봉합, 조재현이 매듭을 자르는 것으로 처치가 완료되었다.
봉합이 제대로 됐는지 피로 물들었던 대동맥궁의 시야가 탁 트였다.
“너 갑자기 딴 사람이 된 것 같아. 다니엘 맞아?”
“아마도?”
이다니엘이 씨익 웃으며 인조혈관 치환술에 나섰다.
그는 대동맥궁 치환술을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이 끝내 버리고 대동맥 치환술의 바톤을 넘겨받았다.
그로 인해 지지부진하게 진행되던 수술이 삽시간에 마지막 장으로 향했다.
이다니엘이 확 달라진 이후 고작 한 시간 만에 대동맥 및 대동맥궁 치환술이 끝나버린 것이다.
“클램프 제거합니다. 심보호액 투입해 주세요.”
“네.”
소독간호사가 심보호액을 투입하자 이다니엘이 혈류를 차단하고 있던 혈관겸자를 제거했다. 본격적으로 혈액이 돌면서 잠들었던 대동맥이 꿀렁거리는 움직임을 보였다.
“바이탈 이상 없습니다. 체온 다시 올릴게요.”
마취의에 보고에 스태프들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끝났다.
대동맥 박리 수술과 예상치 못했던 대동맥궁 박리 수술.
이 두 가지를 오로지 레지던트의 힘만으로 극복한 것이다.
서로를 향한 네 사람의 눈빛에 성취감과 감격의 빛이 또렷하게 감돌았다.
“근데 치프. 어떻게 된 거예요?”
심용준이 운을 뗐다.
“대동맥궁 박리가 나타난 후부터 완전히 멋있었던 거 아시죠? 오더도 딱딱 내리고 봉합속도도 최 과장님이랑 거의 비슷한 수준이었어요.”
“맞아. 맞아. 나도 내 눈을 의심했다니까? 왜 여태 실력을 숨기고 있었는지 모르겠네.”
“그…… 글쎄.”
눈에서 독기가 빠진 이다니엘이 난감하다는 듯 동료들의 시선을 피했다.
후반부 수술은 그가 했지만 동시에 그가 하지 않았다고도 볼 수 있었다.
누가 들으면 말이야 방귀야 할 소리건만 사실이 그랬다.
어느 순간부터 그는 관찰자가 되었다.
마치 최기석이 자신의 몸속으로 들어와서 말을 하고 처치를 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가 한 일이라고는 그 기이한 느낌에 몸을 맡긴 것밖에 없었다.
[다들 잘했다. 레지던트들이 대동맥 수술하고 대동맥궁 수술을 했다는 게 알려지면 다른 병원에서 발칵 뒤집어지겠는데?]
최기석의 목소리에 스태프들 얼굴에 환한 미소가 떠올랐다.
“과장님도 고생하셨습니다.”
“중환자 킵 하시는 것도 힘드실 텐데 저희 수술까지 지켜봐 주시고.”
[고생은 너희들이 더했지.]
잠시 침묵이 흐르는 가운데 이다니엘이 입을 열었다.
“최 과장님. 궁금한 게 있습니다.”
[뭐가?]
“그게…… 아, 아닙니다.”
[싱겁기는. 병동 나가는 대로 내가 크게 한턱 쏠 테니까 기대해라. 다들 들어가서 푹 쉬고.]
“네. 과장님.”
“고생하셨습니다.”
이다니엘이 앞장서고 그 뒤를 나머지 스태프들이 뒤따랐다.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 * *
최기석은 통화를 끊고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영상통화로 수술을 지켜보는 건 중노동에 가까웠다. 수술 시야를 파악하는 게 쉽지 않은데다가 화질이 좋지 않아서 내내 인상을 써야 했다.
‘그래도 한고비 넘겼어.’
그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걸렸다.
사실 대동맥궁에 새로운 박리가 생겼을 때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레지던트들이 감당할 수 없는 시련이 찾아왔기에.
예전에 얻은 길흉화복 아이템이 없었다면 환자는 그 자리에서 죽었을지도 모른다.
길흉화복 아이템.
이것은 원격조정을 가능하게 해 주는 아이템이었다.
자신의 영혼을 다른 사람에게 보낼 수도 있었고 반대로 다른 사람의 영혼을 자신의 몸으로 불러올 수도 있었다.
미국에서 수련할 때는 실력 있는 써전이 주변에 많아서 쓸 일이 없었는데 오늘에서야 빛을 발휘했다.
‘이제 내 차례인가?’
최기석은 자리에서 일어나 메르스 환자 양정환을 내려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