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 (5)
소화기 외과 병동 휴게실.
최기석은 마스크를 쓴 채 뉴스를 보고 있었다.
메르스 환자가 늘어나고 사망자까지 발생하면서 모든 뉴스가 메르스에 쏠렸다. 현 상황은 조금 과장하자면 국가적 재난 수준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래도…….’
테이블에 놓인 커피를 마시고 창가 앞에 섰다.
히포크라테스의 눈으로 메르스 환자를 일찍 발견하고 격리에 성공했다.
그 덕분에 세원 병원에서 메르스 추가 환자가 발생하는 것은 막을 수 있었다.
적어도 병동을 폐쇄한 지 열흘이 지난 지금 시점까지는.
넉넉 잡아서 앞으로 한 주 더.
그 시간만 지나면 세원병원은 메르스 감염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메르스의 잠복기는 최대 이 주가 아닌가.
병동을 폐쇄한 상태에서 잠복기를 무사히 보냈으니 병원 자체의 문제로 메르스에 걸릴 일은 없다고 볼 수 있었다.
똑. 똑. 똑.
노크소리가 끝나기 무섭게 간호사가 안으로 들어왔다.
“최 과장님! 양정환 환자가…….”
“같이 가죠.”
최기석은 서둘러 양정환이 있는 격리실로 이동했다.
쉬이이익.
복장을 착용하고 에어샤워를 통과하여 격리실로 들어가자 초췌한 모습의 양정환이 보였다.
양정환은 세원병원의 메르스 1호 환자다.
격리를 할 때까지만 해도 감기와 비슷한 증상만 호소했지만 이틀 전부터 양상이 180도 바뀌었다.
급성 폐렴과 신부전증의 증상을 보였으며 체온이 39도를 육박하고 심한 호흡곤란으로 고통스러워했다.
현재는 수액과 약물을 이용한 내과적 치료를 진행하고 있었다.
메르스에 대한 완벽한 치료법은 아직 개발되지 않았다.
“환자 체온이 다시 올라갔어요. 100퍼센트 산소를 투여하는데도 호흡이 힘들어 보이고요. 어떻게 할까요?”
간호사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환자를 보고 다시 최기석을 응시했다. 하지만 트리블 보드 흉부외과의인 최기석조차 뾰족한 대답을 해줄 수 없었다.
혈관이 찢어지면 인조혈관으로 바꿔 주면 된다.
종양이 생기면 종양을 제거하면 된다.
질병 부위에 직접 뛰어들어 고치는 게 외과 스타일이다.
그런데 메르스 환자에게는 수술이 필요한 뚜렷한 병변이 없었다. 당장 문제가 생긴 폐의 부분을 도려낸다던가, 치환해 주는 방법 등도 쓸 수 없었다.
“잠깐만요.”
최기석은 위생백에 넣어 둔 휴대폰으로 어딘가에 전화를 걸었다.
“설화야.”
[응. 기석아. 몸은 괜찮은 거지?]
통화를 연결한지 일초 만에 받은 정설화가 걱정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최기석은 이번 사건의 총책임자로 메르스 환자가 발생한 소화기 외과에서 다른 스태프들과 격리 생활 중이었다.
이에 대한 정설화의 염려는 남달랐다.
“그럼 내가 누군데. 수단에서 테러단체에서 납치당하고도 무사히 돌아왔잖아.”
[바보. 자랑이야?]
“미안. 널 안심시켜 주려고 하다 보니까.”
[아니야. 내가 예민해서 미안.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으면 됐어. 혹시 환자 때문에 전화한 거야?]
“어. 다시 한 번 여보 도움이 필요해.”
최기석은 간호사가 설명해준 환자의 증상과 검사 결과를 정설화에게 전달했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서 정설화는 한참 응답이 없었다.
내과의인 그녀조차 메르스에 대한 확실한 해법은 내놓기는 힘든 모양이었다.
[검증은 안 됐지만 인터제론하고 라바린을 같이 쓰는 게 메르스 치료에 정설로 굳혀지고 있거든?]
“나도 들었어. 둘 다 C형 간염 치료제지?”
[응. 인터제론은 면역관리를 하는데 탁월한 효과가 있고 라바린은 항바이러스제야. 문제는 양정환 환자가 이미 그 치료법을 받고 있는 중이라는 거지.]
“그래서 전화했어. 내 능력으로는 도저히 해결 못하겠더라.”
[여보는 외과의잖아. 만능이 될 필요는 없어.]
정설화가 다정하게 위로하고 말을 이었다.
[해외 논문 중에 로피나르가 메르스 치료에 도움이 된다는 정보가 있었어. 로피나르를 써 보는 건 어때?]
“진심이야?”
최기석은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였다.
로피나르는 수단에서 질리도록 사용했던 에이즈 치료제의 한 종류였다.
[로피나르도 항바이러스제잖아. 양을 조절해서 라바린하고 사용하면 효과가 있을지 몰라.]
“알았어. 여보 말대로 할게.”
[힘들겠지만 조금만 더 고생하고 빨리 나와. 내가 많이 사랑해 줄게.]
“네.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농담 섞인 한마디로 통화가 끝났다.
최기석은 간호사에게 로피나르 처방지시를 내린 후 진료의자에 앉아 환자를 내려다보았다.
지금까지 발생한 메르스로 사망한 환자는 총 네 명.
공통점은 대부분 50대 이상이고 지병을 앓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한 가지 불행한 것은 양정환이 그 조건을 전부 갖추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로부터 이십 분 후.
최기석은 초조한 표정으로 환자 감시 장치를 응시했다.
체온은 다소 떨어졌으나 인공호흡기의 Fi02(흡입산소농도)가 150 이하였으며 호흡성 산증이 같이 찾아왔다. 호흡에 관련된 기능이 심각하게 떨어지고 있었다.
‘무슨 방법이 없을까?’
그는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정설화가 알려 준 약물을 투여한 지 얼마 안 됐지만 약물에만 기대기에는 환자의 상태가 급속도로 나빠지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양정환은 언제 숨이 끊어져도 이상하지 않았다.
지이이잉.
가운에 넣어둔 콜폰이 부르르 떨었다.
번호를 확인한 최기석은 입술을 깨물었다.
느낌이 좋지 않았다.
* * *
세원 병원 응급실.
이다니엘은 침상에 누워 있는 환자를 내려다보며 최대한 표정을 숨기려 했다.
믿을 수 없었다.
엎친 데 덮친 격이라고 대체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건가 싶었다.
“선생님. 우리 아버지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보호자가 이다니엘의 팔을 덥석 붙잡았다.
보호자와 눈이 마주친 순간 이다니엘은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그는 자리를 피해 최기석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니엘, 무슨 일이라도 있어?]
“네. 과장님. 방금 환자가 들어왔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왜 그러는데.]
“그게…… 대동맥 박리 환자가 들어왔는데 지금 수술할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교수님들은 일찍 퇴근했고 심장외과 펠로우에게 전화했더니 부산에 있는 집에 내려갔다고 해서…….”
[전원은 못 보내고?]
“이미 다른 병원 몇 군데를 들렀다가 온 거라서 상태가 많이 심각합니다. 전원을 보내면 앰뷸런스 안에서 사망할 것 같습니다.”
이다니엘이 뜸을 들이다가 말을 이었다.
“정말 죄송하지만 과장님께서 수술을 맡아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안 돼. 나도 중증 메르스 환자 킵(의사가 환자 곁에서 상태를 살피는 일)하고 있어. 그리고 병동 폐쇄 기간에 돌아다니는 것도 무리가 있잖아.]
“그건 압니다만…… 다른 방법이 떠오르질 않아서.”
대동맥 박리는 초응급을 다투는 질환으로 빠른 치료가 이뤄지지 않으면 환자는 사망한다. 일반적으로 수술적 치료가 원칙이며 수술 난이도는 어려운 편에 속했다.
레지던트들만으로 해결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내과 치료로는 안 된대?]
“네. 심장내과 당직의에게 연락해 봤는데 수술이 더 좋을 것 같다고 했습니다. 상행 대동맥 박리라서요.”
[어쩔 수 없지. 수술방 잡고 수술 준비해.]
“과장님이 와주시는 겁니까?”
최기석의 대답에 이다니엘의 목소리가 한층 밝아졌다.
그가 환자를 수술해 준다면 그 어떤 것도 걱정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무슨 소리야. 난 못 간다니까. 수술은 너희들이 한다.]
“대…… 대동맥 박리를 레지던트끼리 수술하라는 말씀이십니까?”
[다른 방법이 없잖아. 떠들 시간도 아까우니까 수술 준비 끝나는 대로 다시 전화 걸어.]
“아…… 알겠습니다.”
이 다니엘은 통화를 끊고 망연자실한 얼굴로 휴대폰을 내려다보았다.
레지던트 인생 최고의 위기가 찾아왔다.
레지던트 최고참이자 치프인 자신이 집도의가 될 것은 불 보듯 뻔한 상황.
만약 수술 중에 환자가 죽는다면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지도 너무나 뚜렷했다.
“에라. 모르겠다!”
이다니엘은 호출할 수 있는 레지던트를 전부 수술실로 호출했다. 그리고 보호자에게 수술동의서를 받은 후 수술실로 올라갔다.
먼저 수술 대기 중이던 레지던트는 총 4명.
레지던트 2년 차이자 막내인 심용준과 양해철.
레지던트 3년 차 조재현.
이렇게 세 명이었다.
“치프. 정말 우리끼리 대동맥 박리 수술하는 건가요?”
미리 상황을 들은 심용준이 놀란 토끼 눈으로 물었다.
“토 달지 마, 과장님 지시 사항이니까. 잠깐만.”
이 다니엘은 아까 말한 대로 최기석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와 통화를 끝낸 후에는 소독간호사에게 휴대폰을 넘겼다.
“선생님. 죄송한데 영상통화 연결해서 저희 수술하는 것 좀 촬영해 주세요. 최 과장님이 원격으로 수술 지시 내려 주신다고 하셔서요.”
“알겠습니다.”
소독간호사가 흔쾌히 대답했다.
“자. 스크럽하고 로젯으로 들어가자.”
이다니엘의 말에 스태프들이 나란히 서서로 소독용액이 묻은 솔로 손과 팔뚝을 박박 문질러 댔다.
‘하여간 대단한 분이야.’
이다니엘은 최기석의 기지에 감탄하고 또 감탄했다.
오직 레지던트들로만 이루어진 스태프로 대동맥 박리 수술을 하는 건 무모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최기석은 거기에 한 가지 묘수를 더했다.
영상통화를 이용해 수술에 개입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로 인해 이다니엘은 한층 마음의 부담을 덜 수 있었다.
지이이잉.
로젯 문이 열리고 스태프들이 일제히 수술 준비에 나섰다.
타임아웃, 환자감시장치 연결, 전신 마취, 인공심폐기 준비 등등의 과정이 순식간에 이어졌다.
“과장님. 시작할까요?”
이다니엘의 시선이 소독간호사가 들고 있는 휴대폰으로 향했다.
[그 전에 자리 좀 바꾸자. 집도의는 다니엘이 계속하고 제2보조랑 제3보조 위치만 바꿔.]
“제2보조는 재현이가 낫지 않을까요? 3년 차인데.”
최기석의 지시에 이 다니엘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응급수술은 해철이가 더 나아. 워낙 간이 큰 녀석이라. 재현아, 너무 섭섭하게 생각하지 마라. 네 실력을 의심하는 건 아니다.]
“저는 괜찮습니다.”
자리가 바뀌자 오히려 안도의 한숨을 쉬는 3년 차 조재현.
그 모습을 확인한 이 다니엘은 다시 한 번 놀라고 말았다.
최기석이 레지던트들의 특징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기에.
“그럼 지금부터 급성 Stanpord A형 대동맥 박리에 대한 수술을 시작하겠습니다.”
그의 말에 심용준이 환자의 가슴을 넓게 소독하고 방포를 덮었다.
이어지는 정중흉골 절개술.
메스가 환자의 명치와 가슴을 갈랐으며 빠각하는 소리와 동시에 흉골이 반으로 쪼개졌다. 그 자리에 견인기를 장착하고 좌우로 벌리자 넓은 수술시야가 펼쳐졌다.
“인공심폐기 연결하자.”
“네.”
스태프들은 혈액 순환을 대퇴동맥과 우심방에 각각 캐뉼러를 삽입하였다.
드르르르륵.
인공심폐기를 가동하는 동안 마취의가 수술을 위해 환자를 초 저체온 상태로 만들었다.
[다들 준비됐지?]
“네!”
[내가 같이 있으니까 할 수 있어. 쫄지 마.]
최기석의 기합과 함께 레지던트만으로 이뤄진 대동맥 박리 수술의 막이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