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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닥터 최기석-401화 (400/407)

재난 (4)

똑. 똑. 똑.

노크하자 들어오라는 목소리가 들렸다.

최기석이 집무실로 들어갔을 때 병원장 나상철은 책상에 앉아 신문을 읽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병원장님.”

“이 시간에 어쩐 일인가?”

“긴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최기석의 표정을 읽은 나상철이 안경을 내려놓은 후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어째 목숨 바쳐 지구를 구하러 가는 영웅 같군. 설마 우리 병원에서 메르스 환자라도 나온 건가?”

“네. 그렇습니다.”

“하하하. 농담이 지나치…….”

나상철은 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최기석을 둘러싼 공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흉부외과야 워낙 큰 사건이 많아서 상담할 이야기 많지만 설마 그 화제가 메르스일 줄이야.

“거기 앉게.”

낯빛을 바꾼 나상철과 최기석이 서로를 마주보고 소파에 앉았다.

“오늘 오후에 있었던 일을 자세히 설명 드리겠습니다.”

최기석은 감염자를 발견했던 과정과 이들을 격리했던 과정, 질병통제본부와의 연락, 마지막으로 메르스 확진을 받기까지의 이야기를 상세히 풀어놓았다.

그동안 나상철은 잠자코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이따금 철근처럼 무거운 탄식을 뱉어냈지만 설명에 껴들지는 않았다.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군. 자네 덕에 이제야 병원이 빛을 보려는 타이밍인데.”

“저도 아쉽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보다 메르스 감염자가 늘어나지 않도록 대처하는 게 중요합니다.”

“질병통제본부에서는 뭐라고 하지?”

“조금 거칠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입 닥치고 가만히 있으랍니다. 확진자를 일찍 격리했으니 추가 감염자가 없을 거라면서요.”

“차라리 잘됐군.”

“병원장님!”

최기석의 목소리가 살짝 올라갔다.

말 속에 담긴 병원장의 의도가 한눈에 보였다.

이래서는 병원을 찾는 수많은 환자와 보호자, 스태프들까지 속이는 꼴 아닌가.

“자네가 무슨 말 하려는지 알아. 그래도 이번만큼은 고집을 꺾어 주게. 통제본부 말도 일리는 있잖나. 자네의 격리는 그야말로 신의 한 수였다고. 추가 감염자는 없을걸세.”

“…….”

“그리고 이걸 한 번 보게.”

나상철이 일어나서 책상에 놓인 종이를 챙겨 최기석에게 내밀었다.

최근 일 년 간 통계를 낸 외래 환자 유입률과 병원의 수익 내역 등등이었다.

“자네가 온 이후 그래프가 수직상승하고 있어. 우리 병원은 지금부터 시작이라고. 그런데 여기에 찬물을 뿌릴 셈인가?”

“…….”

“자네 같으면 메르스 환자가 있었던 병원에 가고 싶겠어? 병동 폐쇄에서 오는 손해는 또 어떻게 할 건가? 그러니까 질병통제본부의 말을 따르는 게 최선이라는 말이야. 그러면 우리 모두 행복해진다고.”

나상철이 최기석의 어깨에 손을 얹은 채 그윽한 눈빛을 보냈고 최기석은 입을 다문 채 고개를 숙였다.

“병원장님.”

“그래. 결심했나?”

“저는 죽었다 깨어나도 병원장님 의견에 찬성할 수 없습니다.”

나상철의 표정이 일그러졌지만 최기석은 말을 멈추지 않았다.

“우리들의 알량한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병원에서 퍼져 나간 추가 감염자가 가족들을 감염시킬 수 있다는 생각은 안 해 보셨습니까?”

“…….”

“나만 생각하면 언젠가 천벌을 받습니다. 세상은 언제나 플러스, 마이너스, 제로니까요.”

“하. 자네가 진짜로 원하는 건 뭔가?”

“세원 병원에 메르스 확진자가 있다는 걸 뉴스로 내보내고 소화기 외과 병동을 폐쇄하는 겁니다.”

“손해가 막심할 거야. 정부에서 보복할 수도 있고.”

“병원에 발생하는 손해는 100퍼센트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병원장님도 아시겠지만 저 돈 많습니다. 메이죠 주식이 요즘 한창 상한가거든요.”

최기석의 농담에 나상철이 처음으로 웃음을 터뜨렸다.

잠시 잊고 있었다.

미국 최고의 병원 메이죠 클리닉의 대주주가 바로 최기석이라는 것을.

“정부에서 보복해 봤자 치료 수가 청구할 때 꼬투리 잡아서 금액 삭감하는 정도겠죠. 병원의 숨통을 끊을 만한 행동은 할 수 없을 겁니다.”

“환자들은?”

“메르스 때문에 진료를 끊는 사람이 있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돌아올 겁니다. 우리 흉부외과와 심장내과는 그만큼 매력이 있는 곳이니까요. 잠복기인 이 주 동안 추가 감염자만 나타나지 않는다면 회복 기간은 더 빨라질 겁니다.”

“휴우…….”

나상철이 한숨 쉬고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그러더니 가운 속에 넣어 두었던 휴대폰을 손에 쥐었다.

“나 혼자 결정하기는 부담스럽군. 조지환 병원장님께 연락드려 보겠어.”

“그쪽이 편하다면 그렇게 하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조 병원장님이야 어차피 저와 의견이 같겠지만.”

“허. 조 병원장님이 예전에 어떤 분이었는지 모르나? 옛날 성격 나오면 병원 공개는 물 건너 갈걸?”

“글쎄요. 조 병원장님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습니다.”

최기석이 의미심장한 말을 하는 동안 통화가 연결되었다.

나상철이 병원에서 일어난 이야기를 하자 조지환이 호통을 치며 지시를 내렸다.

목소리가 워낙 우렁차서 스피커폰으로 바꾸지 않았음에도 최기석까지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당장 병원 공개하고 병동 폐쇄 해! 최 과장 바꿔 주고.]

“알겠습니다. 최 과장.”

“전화 바꿨습니다.”

[이번에도 기어이 일을 저질렀군. 세상에 우리 병원에 메르스 환자를 끌어들어다니……. 자네는 이 세상 환타가 아닌 것 같아.]

“설마 저 때문에 메르스 환자가 나타났다는 뜻입니까?”

[완전히 아니라고는 말 못할 텐데?]

조지환이 뜸을 들이다가 잠시 말을 이었다.

[메르스와 관련된 부분은 최 과장이 진두지휘해 줬으면 좋겠어. 상대가 나 병원장이 됐든, 정부가 됐든 눈치 보지 말고 자네 소신대로 처리해.]

“…….”

[우리가 눈치를 봐야하는 건 오직 환자뿐이야.]

“명심하겠습니다.”

최기석은 조지환과 좀 더 대화를 나누다가 통화를 끊었다.

“결국 이렇게 되는구나.”

나상철이 땅이 꺼져라 한숨 쉬며 소파에 몸을 기댔다.

표정을 보니 내심 조지환이 통제본부의 말을 따르라고 지시하길 기대했던 모양이었다.

세원 병원의 명성과 인기가 눈덩이처럼 커져 가는 상황.

그가 이번 사건을 묻고 싶어 하는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최기석은 아니었다.

그저 재수가 없었다고, 하늘이 조금 더 먼 길로 돌아가라고 계시를 내렸다 생각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조 병원장님이 허락하셨으니 메르스에 관련된 일은 전부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좋을 대로 해. 난 피곤해서 먼저 퇴근해야겠어.”

“같이 나가시죠.”

집무실을 떠난 후 최기석은 박광수 기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의진대 인턴 시절부터 인연을 맺었던 인물로 최기석과 관련된 사건이라면 항상 1면으로 실어 주었다. 또한 흉부외과에 처우 개선에 대한 칼럼을 주기적으로 연재 중이었다.

“기자님.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최 선생님, 아니 이제는 최 과장님이군요. 슈리텔 출연한 거 잘 봤습니다. 정 선생님과 케미가 폭발하던 걸요?]

“하하하. 감사합니다. 그보다 기자님께 특종을 하나 전해 드리고 싶어서요.”

[특종이라 그거 참 기대가 되는 군요. 혹시 신수술을 개발하셨습니까?]

“사실 좋은 소식이 아니라 나쁜 소식입니다. 지금 세원 병원에 메르스 확진자 3명이 격리 치료 중입니다.”

“아…… 메르스.”

최기석의 말에 박광수가 탄식을 터뜨렸다.

* * *

그날, 늦은 저녁.

공중파 뉴스를 타고 새로운 속보가 전달되었다.

기존에 정부가 발표했던 메르스 확진자 이외에 최초로 추가 감염자가 발생했다는 소식이었다.

추가 감염자가 발생한 장소는 세원 병원.

감염자의 숫자는 무려 세 명이나 된다는 것도 충격이었지만 더 큰 충격은 따로 있었다.

[메르스 확진자와 관련해서 통화하는데 질병통제본부의 본부장이 병원 공개를 거절했습니다. 병원 공개가 국민들의 공포심을 유발한다는 이유에서였죠.]

브라운관 속에서 최기석이 카메라를 응시하며 또박또박 이야기했다.

[그렇다면 최 선생께서 통제 본부 지시에 따르지 않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메르스는 두려운 질병입니다. 아직 치료제가 발견되지 않았으며 감염률과 치사율도 높습니다. 두려워하는 게 당연한 셈이죠. 우리가 정말로 두려워해야 할 건 더 이상 추가 감염자가 생기지 않게 하는 겁니다. 그걸 위해서 병원 공개를 결심했습니다.]

[그렇군요. 다른 질문을 드려보겠습니다.]

리포터가 화제를 돌렸다.

[지금 환자 관리와 병원 상황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습니다.]

[현재 감염자가 발생했던 소화기외과 병동을 폐쇄 중입니다. 해외를 보면 감염자와 접촉이 없었던 다른 병실 환자도 메르스에 감염됐다는 보고가 있으니까요. 저를 비롯해 스태프들, 환자와 환자 보호자분들이 함께 고생 중입니다.]

[소화기외과 병동 이외에 다른 곳은 어떻게 되는 건가요?]

[모든 병동이 정상적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만 외래 진료는 내일부터 일시 중단할 예정입니다. 기간은 대략 메르스의 잠복기인 2주 정도로 보고 있습니다.]

[병원의 손해가 클 것 같은데. 거기에 대한 대비책은 있으신가요?]

[그 부분은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마지막으로 뉴스를 보고 계시는 분께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치료보다 중요한 것이 예방입니다. 각자 위생 건강에 힘쓰시고 모두가 함께 이 시간을 무사히 헤쳐 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것으로 세원 병원 흉부외과 최기석 과장님과의 인터뷰를 마치겠습니다.]

속보가 끝나고 곧바로 다른 메르스 뉴스가 이어졌다.

* * *

메르스가 한국에 상륙한 지 얼마 안 지난 시점.

메르스의 위세는 한없이 커져만 컸다. 그중에서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삼정서울병원에서 메르스 확진자가 나왔다는 점이었다.

삼정서울병원.

이곳은 국내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대학병원이다. 하루에 진료를 보기 위해 찾는 사람만 만 명에 이르며 입원환자 역시 엄청난 수를 자랑하고 있었다.

이런 곳에서 메르스 확진자가 났으니 그 여파는 말할 것도 없었다.

이로 인해 정부는 삼정서울병원에 역학팀을 보냈으며, 이번 다섯 번째 확진자가 첫 번째 확진자가 입원했던 병원에서 메르스에 감염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대체 왜 정부는 첫 번째 감염자가 발생한 병원을 공개하지 않았는가.]

[늑장 대응의 원인은 무엇인가.]

[병원 공개, 이제는 필요하다.]

여론과 국민들의 뭇매를 맞고 있음에도 정부는 여전히 병원 공개를 거부했다.

그렇게 삼정서울병원을 거점으로 메르스 환자가 걷잡을 수 없이 퍼지는 가운데 최기석의 용감한 병원 공개가 새롭게 주목을 받았다.

정보 공개에 대한 긍정적인 효과에 관한 것이었다.

메르스 환자가 있다는 병원임을 밝히면 사람들은 당연히 그 병원에 가지 않게 된다. 그로 인해 메르스 감염율은 자연스럽게 낮아지고 말이다.

최기석의 과감한 결단 이후 몇몇 병원들이 추가적으로 메르스 발생 병원임을 밝혔고 결국 정부는 백기를 들었다.

정식 브리핑을 통해 병원 공개 명단을 발표한 것이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최초의 메르스 확진자가 나타난 지 열흘이 지났다.

메르스 감염자는 서른 명으로 늘어났고 사망자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공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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