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닥터 최기석-400화 (399/407)

재난 (3)

자동차 한 대가 세원 병원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야. 저거 봐라.”

운전석에 앉은 김현이 고갯짓으로 병원 입구에 걸린 현수막을 가리켰다.

현수막에는 세계 유일의 트리플 보드 흉부외과 최기석 과장님. 흉부외과 진료 시작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최 선생이 입구에서부터 반겨 주시네.”

“그러게 말이다.”

김현은 유태민의 말에 맞장구를 치고 주차장에 차를 댔다.

사실 질병통제본부에서 세원 병원으로 검체를 가지러 가야 할 이유는 없었다. 최기석이 말한 환자는 본부에서 정한 메르스 검체 체취 기준에 맞지 않았다.

그럼에도 병원을 찾은 건 순전히 그의 명성 때문이었다.

현수막에도 적혀 있던 세계 유일의 트리플 보드 흉부외과의, 그가 성질을 내는데 도무지 버틸 재간이 없었다.

탁!

“이런 식으로 불려 다니면 우리 국토대장정하는 거 아니냐? 검체 받아 달라는 곳이 수십 곳인데.”

유태민이 신경질적으로 자동차 문을 닫았다.

“말단이 무슨 힘이 있어. 윗대가리에서 시키면 넙죽 해야지. 아 참, 본부장님이 그러는데 최 선생 보지 말고 그냥 검체만 받아 오란다.”

“여기까지 와서 그 사람을 안 보고 간다고?”

“얼굴 보면 분명 지랄할 거 아니야. 메르스 확진자가 나왔는데 검사요청도 잘 안 받아 준다고.”

“그래도 한 번 보고 싶긴 했는데. 나 그 사람 슈리텔 나오는 거 봤거든. 애인이 진짜 예쁘고 참하더라. 나도 그런 여자랑 사귀었으면…….”

“꿈 깨셔. 그리고 넌 왜 항상 기승전 연애냐?”

김현은 유태민을 타박하고 병원 로비로 들어섰다.

경기도 부천에 위치한 세원 병원.

국내 유일에 흉부외과 전문병원이라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그저 고만고만한 수준의 병원일 거라 생각했다.

잘나가는 병원이라면, 우수한 스태프를 갖췄다면, 충분한 자금의 여유가 있다면, 도심에 병원을 지었을 테니까.

그런데 웬 걸?

예상과는 달리 환자가 대학병원 수준으로 붐볐다.

로비부터 사람들이 바글바글 했으며 흉부외과와 심장내과 쪽 진료실에는 사람들이 뱀처럼 길게 줄을 섰다.

“뭐야. 여기 왜 이래?”

유태민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비볐다.

“내가 아는 세원 병원 맞아?”

“왜?”

“환자가 적어도 열 배는 뛴 것 같아. 나도 예전에 여기서 진료 받았는데 이렇게 붐비진 않았거든.”

“최 선생 효과가 정말 있는 건가?”

두 사람은 대화를 나누며 2층에 위치한 진단검사의학과를 찾았다. 검사실 안으로 들어가자 원심분리기를 돌리고 있던 스태프가 두 사람을 바라봤다.

“안녕하세요. 질병통제본부 직원입니다. 최기석 선생님이 부탁한 검체를 찾으러 왔는데요.”

“음…… 최 과장님은 안 보고 가시나요?”

“다른 곳도 들러야 돼서 바로 가야 합니다.”

“알겠어요. 거기 앉아서 잠시만 기다리세요.”

스태프가 자리를 벗어나 쪽방으로 들어갔고 두 사람은 소파에 앉아 검체가 나올 때까지 수다를 떨었다.

“야. 애네 검체 채취 안 한 거 아니냐? 그냥 건네주면 될 걸 왜 이렇게 시간을 끌지?”

“느낌이 안 좋은…….”

김현이 말을 끝내기 무섭게 복도 저 멀리에서 터벅터벅 하는 발소리가 들렸다. 발소리의 주인공은 가운을 걸치고 마스크를 착용했다.

마스크 위로 드러난, 자신감이 넘쳐 보이는 눈빛이 인상적인 사내였다.

“젠장, 걸렸다. 명찰 봐, 명찰.”

유태민의 신호를 받고 다가오는 남자의 명찰을 확인한 김현, 그는 쓴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그랬다.

최기석이 직접 행차한 것이다.

진단검사의학과 직원이 자리를 비운 이유를 이제 알 것 같았다.

“반갑습니다. 세원 병원 흉부외과 과장 최기석입니다.”

“아, 네. 질병통제본부 김현입니다.”

“유태민입니다.”

최기석이 자리에서 일어난 두 사람과 악수와 통성명을 주고받았다.

“병원이 아주 붐비더군요. 중급 병원에서 이만한 환자를 보는 건 태어나서 처음입니다.”

“뭐. 덕분에 눈코 뜰 새 바쁩니다. 그런데.”

최기석의 표정이 싹 바뀌자 김현과 유태민이 긴장한 얼굴로 마른 침을 삼켰다. 그가 뿜어내는 카리스마에 궁지에 몰린 쥐새끼가 된 듯 했다.

“검체만 쏙 들고 가실 생각이었나 봐요? 저를 안 보고 바로 가겠다고 들었는데.”

“그게 좀 바빠서…….”

“대화 몇 마디 못할 정도로 바쁘진 않을 텐데요? 더군다나 메르스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는 거면 없는 시간도 쪼개서 만들어야하는 거 아닙니까?”

“사, 사실…… 그게…….”

“저희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과장님께서 너그럽게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버벅대는 유태민을 대신해 김현이 재빠르게 사과에 나섰다.

변명거리가 없을 때는 쿨하게 사과하는 편이 최고였다.

“솔직히 두 분께 악감정은 없습니다. 메르스 감염환자 평가기준을 만든 건 두 분이 아니니까요.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하는 거뿐이지 않습니까?”

“…….”

“하지만 누가 뭐래도 두 분은 감염환자를 판단하는 최전선에 서 있습니다. 그 일에 온 국민의 안전이 달린 만큼 앞으로 조금 더 신경 써 주시면 좋겠습니다. 저는 두 분이 주도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여지도 충분하다고 생각하니까요.”

“네. 앞으로 주의하겠습니다.”

최기석과 김현의 대화가 이어졌다.

최기석은 검체를 받은 환자에 대한 이동경로, 접촉자, 증상에 대해 설명했고 김현은 이를 메모하며 적극적으로 들었다.

“감염자 상태가 좋지 않군요. 단순한 감기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는 것 같고요.”

“네. 우선 직접 접촉자를 전부 격리했으니 큰 문제는 생기기 않을 거라 생각하지만…… 세상일은 모르는 거죠.”

말을 마친 최기석이 진단검사의학과로 이동해 감염 의심자들의 검체를 건넸다.

“받으시죠.”

“결과가 나오는 즉시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

유태민이 검체를 박스에 넣으며 말했다.

“혹시 가능하다면 두 분 상급자의 핫라인(직통전화)을 알 수 있을까요? 그분께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데.”

“저희가 욕을 먹을지도 모르겠지만…… 일단 알려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두 사람은 최기석과 작별인사를 나누고 차로 돌아갔다.

“삼십 대 초반인데 세상 다 산 노인네처럼 치밀하네. 우리가 튈 줄 알았다는 거잖아.”

지난 일을 떠올린 유태민이 혀를 찼다.

“저 나이에 실력만으로 과장을 달 수 없겠지. 처세술도 보통이 아닌 것 같아. 그보다 길길이 날뛸 줄 알았는데 의외로 신사적이네?”

“그건 동감. 왠지 우리 처지도 이해해 줘서 좋았고.”

유태민은 말을 마치고 검체가 담긴 박스를 내려다보았다.

현재 공식적인 메르스 확진자는 1명인 상황.

과연 최기석이 보낸 세 명의 환자들은 어떤 운명을 맞이하게 될까.

검사 결과가 벌써부터 심히 궁금해졌다.

* * *

그날 저녁.

집무실에 있던 심재우는 한 통의 전화를 받은 후 열이 잔뜩 올랐다.

화가 난 이유는 크게 두 가지.

하나는 트리플 보드 흉부외과의 최기석이 자신의 핫라인을 알고 있다는 점이었고 다른 하나는 그가 했던 말 때문이었다.

“지가 뭔데 지침을 바꾸라는 거야. 트리플 보드 흉부외과의라고 눈에 뵈는 게 없는 모양이군.”

쾅!

그는 분통을 참지 못해 주먹으로 테이블을 내리쳤다.

차를 마시며 끊어 오르는 분노를 삼키는데 똑똑 하는 노크소리가 들렸다.

“본부장님. 김현입니다.”

“김현, 너지! 네가 최기석한테 내 전화번호 알려 줬지?”

심재우의 벼락같은 호통에 김현이 푹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하도 끈질기게 부탁을 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그 인간이 전화해서 뭐라고 했는 줄 알아? 메르스 예방지침을 뜯어 고치라더군. 낙타 접촉을 비롯해서 직접 접촉자의 정의를 수정하고, 메르스 의심국가 지역도 더 넓히라고 했어.”

“…….”

“흉부외과 의사면 심장이나 치료할 것이지. 왜 오지랖 넓게 전염병에 손대냔 말이야.”

다시 열이 오른 심재우가 씩씩 콧김을 뿜어냈다.

숨 막히는 긴장감이 흐르는 가운데 김현이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세원 병원에서 얻은 검체검사 결과가 나와서 알려드리려고 합니다.”

“그거 잘됐네. 안 그래도 그 인간한테 화풀이할 구실이 필요했는데. 볼 것도 없이 음성이지?”

“아니요. 양성입니다.”

김현의 대답에 심재우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뭐라고? 다시 한 번 말해 봐.”

“양성입니다. 최초 감염자로 의심되는 환자, 그와 직접 접촉했던 부인과 같은 병실을 사용하는 환자까지 전부 양성입니다.”

“그럼 메르스에 걸렸다는 거잖아.”

심재우가 미간을 찌푸리며 한 손을 이마에 얹었다.

이어지는 나지막한 목소리가 그의 심정을 대변했다.

“……망했네.”

* * *

최기석은 일반외과 병동에서 TV를 시청하고 있었다.

엄밀히 말하면 질병 통제 본부에 연락을 기다리는 중이었지만 말이다.

히포크라테스의 눈으로 이미 진단을 확신했기에 기다림이 두근거리거나 긴장되지는 않았다.

다만 두려운 것은 확진 결과가 나온 후 질병통제본부가 세원 병원을 어떤 방식으로 대처할지 여부였다.

‘괜찮겠지?’

그의 시선이 주변에 앉은 환자에게 향했다.

일반외과 과장의 지시로 현재 일반외과 병동 환자들은 너도나도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었다.

감염자 격리가 신속하게 이뤄진 만큼 메르스가 병동에 퍼질 위험은 많이 줄었으리라.

그런데 바로 그때다.

지이이잉.

최기석은 주머니에서 울리는 휴대폰의 번호를 확인하고 바로 받았다.

“네. 최기석입니다.”

[아까 통화했던 질병통제본부 본부장 심재우예요.]

“검사 결과가 나온 모양이군요.”

그는 사람이 없는 의사 휴게실로 이동해 본격적인 대화를 준비했다.

[그게…… 검체를 보낸 세 사람 전부 메르스 확진자로 판명 났어요. 그러니까 지금부터 제 지시를 따라 주세요.]

심재우의 설명이 이어지는 동안 최기석은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되지도 않는 대처에 말문이 막힌 것이다.

[이제 아셨습니까?]

“아니요. 전혀 모르겠는데요?”

최기석이 냉소적으로 웃으며 말을 이었다.

“우선 우리 병원에서 확진자가 나왔다는 걸 숨겨야 한다는 사실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확진 병원을 공개해야 추가 감염자를 막을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알려져 봐야 좋을 게 없어요. 국민들의 공포심만 커진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쪽 병원의 수익을 한 번 생각해 봐요.]

심재우가 따발총처럼 말을 이었다.

[최 선생이 오고 나서 환자가 부쩍 늘었다고 들었는데. 메르스 확진자가 나온 병원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 과연 환자들이 그 병원을 다시 찾을까요? 나는 아니라고 보는데요?]

“저는 우리 병원을 걱정할 게 아니라 국민 안전을 걱정해야한다고 생각하는데요. 기왕 이렇게 된 거 우리 조금 더 솔직해져 볼까요?”

[…….]

“본부장님. 관리 소홀로 뭇매를 맞을 것 같으니까 묻고 가자는 거 아닙니까? 제 말이 틀렸나요?”

최기석의 목소리가 올라갔다.

[그건 최 선생 생각이에요.]

“그렇게 둘러대고 싶으시겠죠. 참고로 격리 방식도 문제가 있습니다. 소화기외과 병동 환자를 안과 병동 환자와 섞자니, 그건 또 무슨 짓입니까? 지금 해야 하는 건 병동 폐쇄입니다.”

[굳이 폐쇄까지 할 필요 없습니다. 감염자를 격리시켰는데 무슨 문제가 있다고.]

“해외 사례를 보면 같은 병실을 쓴 사람이 아니더라도 메르스에 감염된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 위험을 막으려면 병동을 폐쇄해야죠.”

[최 선생! 이건 명령이에요.]

심재우가 호통조로 말을 이었다.

[메르스에 대한 통제권은 일차적으로 우리 질병통제본부에 있다는 걸 명심해요.]

“네, 네. 잘 알겠습니다. 할 말 다하신 것 같으니 이만 끊죠.”

최기석은 뭐라 말하는 심재우의 말을 다 듣지도 않고 통화를 종료했다.

국민의 안전을 걸고 펼쳐진 파워게임.

물러날 생각은 손톱만큼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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