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 (2)
최기석은 일반외과 스테이션으로 이동해서 간호사에게 마스크를 얻어 착용했다. 그리고 다시 병실 앞에 서서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었다.
메르스의 감염경로는 감염자와의 직접적인 또는 긴밀한 접촉.
잠복기는 최소 이틀에서 최대 2주까지다.
‘미치겠네, 진짜.’
생각이 깊어질수록 두통이 깊어졌다.
첫째, 히포크라테스의 눈은 병이 이미 발현하고 증상이 나타나야 그것을 잡아낼 수 있다. 즉 증상이 나타나지 않은 메르스 감염자는 잡아낼 수는 없는 것이다.
병동 안에 예비 감염자가 얼마나 더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둘째, 메르스 확진 여부다.
최기석이야 히포크라테스의 눈으로 메르스 감염자를 확인할 수 있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다.
최기석이 사전조치를 취하려 한다 해도 다른 사람들이 믿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다.
‘할 수 있는 데까지 해 보자.’
똑. 똑. 똑.
노크를 하고 들어가자 보호자와 환자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최기석은 두 사람과 통성명을 나누고 보호자인 양정환과 집중적으로 대화를 나눴다.
“볼일이 있어서 소화기외과 병동에 들렀습니다. 그런데 보호자분께서 심하게 기침하는 모습이 눈에 띄더군요.”
“아, 네. 며칠 전부터 열이 나고 기침이 심하더군요. 집 근처 병원에 갔더니 감기 증상 같다고 해서 약 먹고 쉬는 중입니다.”
“그래서 좀 나아지셨나요?”
“아니요. 전혀. 그래서 여기 내과에 진료를 예약했습니다.”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제가 진료를 봐 드리죠.”
최기석은 청진기로 양정환의 호흡음과 폐음을 청진하고 맥을 짚었다.
“호흡이 불편하고 가래도 많이 끼시죠?”
“네, 맞습니다. 감기에 제대로 걸린 모양이에요.”
양정환이 힘없는 표정으로 얼마 남지 않은 머리카락을 긁적거렸다.
“한 가지 더 궁금한 게 있는데. 최근 중동 국가에 다녀온 적이 있으십니까?”
“그걸 선생님이 어떻게 아세요?”
양정환의 눈동자가 당장 튀어나올 것처럼 커다래졌다.
“뉴스를 보셔서 알겠지만 메르스 이야기로 나라가 떠들썩하지 않습니까?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여쭤봤습니다.”
“얼마 전 사업 문제로 바레인에 다녀왔죠. 안 그래도 불안해서 질병통제본부에 연락해 봤는데 바레인은 메르스 발생 국가가 아니라서 괜찮다던데요?”
“……그렇군요.”
그의 대답을 들은 최기석은 자신도 모르게 한 숨을 쉬었다.
양정환을 안심시켰던 질병통제본부 직원을 찾아가 멱살잡이라도 하고 싶었다.
양정환 같은 사람이 전화했으면 불의의 사고를 막기 위해 검사를 하거나 최소한의 행동지침이나 질병 예방법을 알려 주어야 했다.
그런데 메르스 발생 국가가 아니라서 괜찮다니.
대응이 너무 무르다.
“지금부터 제가 하는 말이 불쾌하게 또는 장난같이 들리실지도 모르겠지만 부디 끝까지 잘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부탁드립니다.”
최기석은 최대한 정중하게 상황을 설명했다.
양정환이 메르스에 걸렸을 확률이 높으며 정밀한 검사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또한 정확한 병명이 나오기 전까지 격리 치료에 응해 달라고 말이다.
“하. 이거 당황스럽군요. 갑자기 메르스 환자라니.”
양정환이 침묵을 지키는 동안, 환자 김정희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최기석을 응시했다.
“최 선생님이면 요즘 알아주는 흉부외과 선생님 아니세요?”
“제 입으로 말하기는 그렇지만 최근 알아보는 분이 많은 건 사실입니다.”
“아무리 유명해도 그렇지 이건 좀 아니잖아요?”
김정희가 속사포처럼 말을 이었다.
“남편 몸이 안 좋고 메르스가 판치고 있으니까 검사 받는 것까지는 그렇다고 쳐요. 그런데 검사 결과가 나오지도 않았는데 격리 치료를 받으라고요?”
“…….”
“치료비에다가 남편이 일을 못하면서 생기는 비용은 어떻게 해결할 건데요? 남의 일이라고 무책임하게 말씀하시면 곤란해요.”
“그 점은 걱정 마세요.”
“네? 걱정 말라고요?”
“치료비를 비롯해서 격리하는 동안 발생하는 금전적인 손해는 제가 전부 책임지겠습니다.”
최기석이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무역회사에 다니신다고 들었는데 회사에도 제가 직접 연락해서 상황을 설명할 생각입니다. 그 정도면 될까요?”
“아, 뭐. 그렇게까지 해 주신다면야.”
“여보! 바보같이 덥석 물지 말고. 가만 좀 있어 봐요.”
“다시 한 번 부탁드립니다.”
최기석이 갑자기 무릎을 꿇자 두 사람의 눈동자에 지진이 일어났다.
의사가 환자와 보호자 앞에서 무릎 꿇는 일이 어디 흔하던가.
혹여 드라마에서 볼 수 있다면 모를까.
“뭐, 뭐하시는 겁니까? 선생님.”
“빨리 일어나세요.”
“보상은 약속했지만 제가 무례한 부탁을 하고 있다는 건 부정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메르스가 퍼지게 되면 걷잡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집니다. 두 분께서 많은 사람들을 구한다는 생각으로 제 부탁을 들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렇게까지 나오시면 어쩔 수 없죠.”
김정희가 포기했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선생님 말씀대로 할게요. 대신 보상은 확실히 책임져 주셔야 해요.”
“물론입니다.”
두 사람의 허락을 받은 최기석은 그제야 굳은 표정을 풀었다.
치료보다 중요한 것이 예방이다.
감염자와 더불어 감염자와 가장 가깝게 있던 환자를 격리한 것은 크나큰 성과였다.
드르르르륵.
때마침 김정희와 같은 병실을 사용하는 환자 강희순이 안으로 들어왔다.
“아따! 이게 무슨 일이여?”
“잘 오셨습니다. 환자분께도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최기석은 무릎을 꿇은 상태로 강희순에게 같은 설명을 했다. 그의 구구절절한 설명에 그녀 역시 격리 치료를 받겠다는 결단을 내렸다.
“협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마스크를 가져다 드릴 테니 항상 착용하시고 병실에 계셔 주세요.”
병실을 나온 그는 할 일을 마치고 대장관외과 집무실을 찾았다.
노크를 하자 들어오라는 목소리가 들었다.
“별일이네? 최 과장이 나를 찾아오고?”
소화기 외과의 최고참인 고재학 과장이 그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과장님께 긴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그래. 들어나 보자고.”
두 사람이 소파에 앉아 서로를 마주보았다.
이어지는 최기석의 설명에 고재학은 난감하다는 듯 커피잔만 만지작거렸다.
“그러니까 메르스 의심환자가 있다, 그런데 검사를 하기도 전에 격리부터 하고 싶다. 이거지?”
“네. 그렇습니다. 환자 주치의는 저로 돌리되 격리는 소화기외과에서 하는 쪽으로 부탁드립니다.”
“그건 좀 오버 아닌가.”
고재학이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말을 이었다.
“나라가 메르스로 시끄러운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거기에 너무 휘둘려서도 안 되지. 정부에서 발표한 확진자가 아직 한 명뿐이라는 모르나?”
“말씀 그대로 아직일 뿐이죠. 앞으로 어떻게 될 줄은 귀신도 모릅니다.”
“하여간 고집하고는. 나를 보자고 한 걸 보면…… 환자 설득은 끝났겠지?”
“물론입니다.”
“좋아. 자네가 이번 일을 전부 책임지겠다고 하니 굳이 반대는 않겠어.”
“감사드립니다.”
최기석은 고개 숙여 인사하고 말을 이었다.
“딱 한 가지 더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지금 소화기외과 병동에 있는 환자와 스태프들, 나아가서는 면회 오는 보호자들에게 꼭 마스크를 쓰게 했으면 좋겠습니다.”
“허 참. 최 과장, 그거 아나?”
“무슨 말씀이신지…….”
“자네 지금 우리 병원에 메르스 확진자가 있다고 확신하는 것 같아. 그렇지 않고서는 이렇게 과격하게 나올 수가 없잖나?”
“조심해서 나쁠 건 없으니까요.”
고재학의 지적을 그는 가볍게 받아쳤다.
“그럼 부탁을 들어줬으니까 나도 사이좋게 부탁을 해 볼까?”
“네. 말씀만 하세요.”
“자.”
고재학이 웃으며 백지를 내밀었다.
“싸인 좀 해주게. 우리 아들이 슈리텔을 재미있게 본 모양이야.”
“하하하. 그렇군요.”
최기석이 사인하려고 하자 고재학이 서둘러 그의 손을 막았다.
“미안한데. 자네 말고 정 선생 사인.”
“아…….”
최기석의 낯이 흙색으로 변했다.
* * *
“미안. 부탁 좀 할게.
[…….]
“그래. 고마워.”
최기석은 통화를 끊고 휴대폰을 내려다보았다.
방금 막 찰스에게 전화해서 오후에 있는 수술을 대신 해 달라고 부탁했다. 아직은 메르스와 관련해서 처리할 일이 남아 있었기에.
‘일단 급한 불은 껐고.’
그의 시선이 한 병실을 향했다.
메르스 감염자인 양정환이 침대에 누워 잠을 자고 있었다.
그 옆에 붙은 병실에서는 양정환과 장시간 깊은 접촉을 했던 아내 김정희와, 같은 병실 환자인 강희순이 격리 중이었고 말이다.
양정환과 깊은 대화를 나눈 결과, 그와 접촉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는 중동에 다녀온 후 월차를 내고 하루 종일 집에 쉬었다가 아내를 보러 오늘 오후에 병원을 찾았다고 한다. 그래서 직장동료들에게 메르스를 옮겼을 확률은 없었다.
환자로 병원에 온 것이 아니니 의료진과 오래 마주한 것도 아니었다.
그가 유일하게 오랫동안 마주친 인물은 최기석뿐.
하지만 최기석 또한 메르스에 걸렸을 확률은 높지 않았다.
우선 최기석은 마스크를 착용한 채 그와 대화를 나눴다.
그보다 더욱 든든한 것은 바로 젬의 존재.
[레어: 자연치유력 2배 상승]
[레어: 질병저항력 2배 상승]
최기석은 과거 강하나가 차에 치일 뻔한 것을 구해 주고 레어 젬을 얻었다. 젬의 효과를 생각하면 메르스에 걸릴 확률은 더더욱 낮았다.
물론 여전히 조심은 해야겠지만.
‘이대로 메르스를 막을 수 있으면 좋겠는데.’
상념을 접은 그는 이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최선을 다해 모시겠습니다. 질병통제본부, 장태형입니다.]
“세원 병원 흉부외과 과장 최기석입니다.”
[네. 무슨 일로 전화하셨죠?]
“메르스 의심환자가 있어서 연락드렸습니다. 검사를 받아야 할 것 같은데 지금 당장 병원으로 검사 팀 파견해 주세요.”
[환자분이 최근 중동에 다녀오셨나요?]
“네, 바레인입니다.”
[바레인은 최근 메르스가 발생하지 않은 국가가 아니라서 안심하셔도 됩니다. 메르스 의심 지역은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등의 국가이니…….]
“이봐요. 메르스 확진자가 나왔습니다. 의심환자가 있으면 검사부터 하는 게 원칙 아닙니까?”
[그것도 그런데…… 중동에 다녀와서 감기 증상을 앓는 분이 한두 분이 아니잖아요? 대신 한 가지만 더 여쭤볼게요.]
“뭐죠?”
[혹시 환자분이 낙타와 접촉하셨나요?]
직원의 질문에 그는 불쑥 휴대폰을 내동댕이치고 싶은 강렬한 욕구가 들었다.
지금 이걸 질문이라고 하는 건가.
“하. 혹시 통제관리본부 말고 검사 받을 수 있는 곳은 없습니까?”
[현재는 일부 보건소만 가능하며 차차 대형병원을 비롯한 일반병원으로 검사 가능한 곳을 늘릴 예정입니다.]
“됐으니까 검체 가지러 당장 와 주세요.”
[메르스 발생 국가에 다녀온 사람 또는 메르스가 발생한 병원에 간 환자가 아니면 검사는 불가능합니다. 일반 호흡기 검사를 더 해 보시고 경과를 지켜보는 편이 좋겠습니다.]
“적당히 합시다, 적당히!”
최기석이 끝내 목소리를 높였다.
“지.금.당.장. 검체 받으러 오세요! 이 환자가 메르스 확진자가 아니면 내가 가운을 벗겠습니다. 그 정도면 되겠습니까?”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이어지는 통화 연결음, 담당자가 다른 이와 상담을 하러 간 모양이었다.
[알겠습니다. 지금 세원 병원으로 검사 팀 파견하겠습니다.]
직원의 대답이 끝나기 무섭게 최기석이 통화를 끊었다.
“하. 씨발.”
욕이 안 나오려야 안 나올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