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닥터 최기석-398화 (397/407)

재난 (1)

“이 시간에 어쩐 일이십니까? 최 과장님?”

통화를 연결한 김한철의 말투에 가시가 돋아 있었다.

얼마 전 회의에서 싸웠던 게 아직 앙금으로 남았던 모양이었다.

특히 ‘님’이라는 단어에 힘이 들어간 것을 보면.

“부교수님 환자 중 심장혈관종양으로 입원한 이태현 환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환자가 흉통과 호흡곤란을 호소해서 검사해 보니 우심방 파열이 나왔습니다.”

“그래서요?”

“당장 수술이 필요한 상황인데…… 수술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싶습니다.”

“우심방 파열이면 어차피 수술은 해야 할 거고. 수술 범위 때문에 그렇습니까?”

“네, 맞습니다.”

“가만 보자. 환자는 이틀 뒤에 암이 있는 부위만 절제하는 고식적인 절제를 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김한철이 뜸을 들이다가 말을 이었다.

“최 과장님 생각은 어떻습니까?”

“저는 암 조직이 있는 곳을 전부 제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전절제를 하지 않으면 경과가 더 나쁠 테니까요.”

최기석의 대답에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수술의 난이도가 아니라 환자의 경과였다.

“굳이 그럴 필요 있어요? 전이가 일어났다면 전부 절제하더라도 재발할 확률이 높아요.”

“전 절제를 마친 후 항암 치료와 방사선 치료에서 효과가 있기를 바라야죠. 그게 최선입니다.”

“뭐, 그렇다면 좋습니다.”

김한철이 뜸을 들이다가 말을 이었다.

“그 환자, 최 과장님이 하고 싶은 대로 하세요.”

“정말입니까?”

“대신 조건이 있어요.”

김한철의 낮고 음흉한 웃음소리가 휴대폰 너머로 흘러들었다.

그의 조건은 단순했다.

환자를 원하는 대로 처치하고 싶다면 최기석이 환자의 주치의가 되라는 말이었다. 주치의가 환자를 치료 방향을 정하는 건 당연할 일이니까.

‘속이 빤히 들여다보이는군.’

최기석은 김한철의 이야기를 들으며 쓴웃음을 지었다.

이태현은 말기 심장종양 환자로 사망확률이 높았다. 그래서 김한철은 이태현을 최기석에게 떠넘기기 위해 수작을 피우고 있었다.

가벼운 증상의 환자이든, 말기 암 환자이든 다 같은 환자라는 생각은 전혀 없는 듯했다.

“좋습니다. 오늘부터 이태현 환자의 주치의는 접니다. 의국에 돌아가는 대로 바꿔 놓죠.”

“현명한 판단입니다. 최 과장님. 이거 얼마 후가 기대되는 걸요?”

김한철이 껄껄 웃으며 몇 마디 더하고 전화를 끊었다.

“선생님. 우리 아이가…….”

최기석이 병실로 돌아오자 보호자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이태현을 가리켰다.

이태현이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해철아, 수술실 잡았어?”

“네! C 로젯으로 가면 됩니다.”

“이번에도 잘해 보자.”

최기석은 양해철의 어깨를 장난스럽게 건드린 후 그와 함께 수술실로 향했다.

“과장님. 이런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심장종양 환자로 입원한 환자에게 갑자기 우심방 파열이 발생하다니. 이런 일이 생길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소독액이 묻은 솔로 팔을 씻던 중 양해철이 최기석을 응시했다. 오늘은 유난히 골치 아픈 케이스가 많은데 이태현 환자는 그중에서도 최고봉이었다.

심장혈관종양도, 그에 따른 우심방 파열도 쉽게 경험할 수 없는 케이스였다.

“보통이라면 종양 제거수술과 우심방 수술을 같이 진행하겠지. 하지만 난 그렇게 안 할 거다.”

“그러면…….”

“나도 이런 케이스는 처음이라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 적어도 한 가지 확실한 건 말이야. 환자가 보통이 아닌데 보통의 처치를 하면 안 된다는 거지.”

지이이이잉.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며 로젯으로 들어갔다.

수술 준비가 착착 이어지는 가운데 최기석은 환자의 치료방향에 대해 고민했다.

수술 난이도는 아무래도 좋았다.

그저 환자가 살아남을 수 있는 확률이 단 1퍼센트라도 높은 길을 찾고 싶었다.

“아. 과장님, 죄송합니다. 다른 스태프들을 아직 안 불렀는데. 지금 전화하겠습니다.”

“됐어.”

최기석이 손을 뻗어 양해철의 움직임을 막았다.

“서, 설마 이번 수술도 과장님과 저랑 둘이 하나요? 우심방 재건과 혈관종양 제거까지 하려면 아무래도 벅찰 것 같습니다.”

“심장종양 제거는 안 해. 파열된 우심방만 복원하고 본 수술은 나중에 한다.”

최기석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암 종양과 전이 부위를 동시에 절제한다는 원칙은 세웠지만 수술 시점을 두고 고민이 많았다.

고심에 고심을 거듭한 결과 수술 일자는 뒤로 미루기로 마음먹었다.

완벽한 수술을 위해서는 시간이 더 필요했다.

“지금부터 심장 혈관 종양으로 발생한 우심방 파열에 대한 복원술을 시행한다.”

낭랑한 외침과 함께 시작된 수술.

혈관종양에 대한 처치는 없었기에 수술은 이전과 같이 물 흐르듯이 진행되었다. 예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최기석이 모든 과정을 주도적으로 집도한다는 점뿐이었다.

치이이이익.

종격동에 고여 있는 피를 빨아들이며 최기석은 미간을 찌푸렸다.

종양 제거수술이 쉽지 않을 듯싶었다.

암 조직이 생각했던 것보다 광범위하게 퍼졌던 탓이다.

쌀알만 한 하얀 암 조직들이 상행 대정맥부터 하행 대정맥까지를 침범했다.

횡격막을 침범한 정도는 그보다 더 심각했고 말이다.

암과 관련된 용어 중 파종이라는 표현이 있는데 그런 표현이 왜 생겼는지는 지금 이 환자의 가슴을 보면 누구라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스으으으윽.

최기석은 암 조직 일부를 떼어서 검사실로 보내고 본격적인 봉합 준비에 나섰다.

끼기기긱. 휘리리릭.

양해철이 손을 바들바들 떨고 식은땀을 흘려 가며 이십 분 동안 했던 봉합을 최기석은 단 삼 분 만에 끝냈다.

그 모습에 양해철은 물론이요 지켜보던 다른 스태프들까지 혀를 내둘렀다.

최기석의 봉합은 초등학생이 소꿉장난하는 것처럼 성의 없고 대충대충 하는 듯 보였지만 그 결과만큼은 꼬투리 하나 잡을 것 없이 완벽했다.

현재 세계 유일의 트리플 보드 흉부외과의는 뭐가 달라도 달랐다.

“다들 고생했습니다.”

수술 부위를 닫은 최기석은 거침없이 로젯을 떠났다.

지금 그의 머릿속에는 이태현에 대한 처치 방법과 김한철에 대한 분노만이 가득했다.

‘네가 포기한 환자. 내가 살려 주지.’

어딘가를 응시하는 최기석의 눈동자가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다.

* * *

다음 날 오후.

최기석은 의진대에서 열린 세미나에 참석한 후 세원 병원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복귀하는 내내 이상하게 느낌이 좋지 않았다.

아주 중요한 무언가를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차가 신호에 멈춘 사이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메르스.

아직 확진자는 한 명뿐이지만 대한민국을 공포로 몰아넣고 있는 전염병, 그것을 잊고 있었다.

정부의 설명에 따르면 확진자를 제때 격리했기에 추가 감염의 위험은 없다고 했다.

물론 정부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순진한 사람이 없다는 게 함정이지만.

‘잘됐네.’

최기석은 오후 스케줄을 떠올리고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은 외래진료가 없었으며 집도해야 할 수술도 세 시간 후에 단 한 건뿐이었다.

모처럼 여유가 있으니 만약의 위험을 대비할 생각이었다.

집무실로 복귀한 그는 가운을 걸치고 히포크라테스의 눈을 사용한 채 병동을 돌았다. 그러던 도중 한 병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몸은 좀 어떠십니까?”

“썩 좋지는 않네요.”

박광진이 억지로 웃으며 대답했다.

박광진은 며칠 전 그에게 외래진료를 받은 배우이자 환자로 폐암 4기 판정을 받았다.

방사선 치료를 막 시작했기 때문인지 그는 처음 봤을 때보다 수척해 보였다. 안 그래도 가늘었던 턱선은 바늘처럼 뾰족해졌고 눈두덩은 깊게 파였다.

“어디가 제일 불편하시죠?”

“역시 숨 쉬는 게 힘듭니다. 예전에는 미처 몰랐네요. 호흡이 이렇게 중요하다는 걸.”

“앞으로도 고생이 많겠지만 잘 이겨 내시리라 믿습니다. 저도 광진 씨 곁에서 최선을 다할 테니까요.”

“감사합니다. 하지만…….”

박광진이 머뭇거리다가 운을 뗐다.

“선생님이 말씀하신 때까지 제가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군요. 솔직히 자신이 없습니다.”

“약한 말씀 마세요. 광진 씨라면 충분히 견딜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아는 인철이는 그렇게 약하지 않았는데 말입니다.”

최기석이 박광진이 맡았던 영화 속 캐릭터를 언급하자 박광진이 미소를 머금었다.

“몸이 아프다 보니 첫 마음을 계속 잊는 것 같군요. 선생님께 살려 달라고 부탁하면서 뭐든지 이겨 낼 수 있었다고 말한 건 저였는데 말이에요.”

“광진 씨 같은 상황이라면 누구라도 그렇겠죠. 호흡이 더 불편해지셨다고 하니 산소치료를 추가하겠습니다.”

최기석이 미소로 화답하며 상태창을 열었다.

[격려 스킬을 사용합니다.]

[격려를 받은 환자의 감정이 밝아집니다. 면역력, 저항력, 재생력이 대폭 상승합니다.]

휘이이잉.

그의 몸에서 뿜어진 빛이 박광진을 감싸자 박광진의 표정이 다소 밝아졌다.

그는 박광진과 대화를 좀 더 나누다가 소아 병동으로 이동했다.

폐암 4기인 박광진을 치료할 수 있는 방법.

그것을 흉부외과에서 찾기란 사막에서 떨어트린 바늘을 찾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이쯤 되면 보통 수술을 포기하고 항암 치료를 받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최기석은 폐이식이라는 강수를 두었다.

항암 치료를 받으면 생존율은 늘어나겠지만 폐를 회복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박광진의 폐를 원래대로 돌릴 수 있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폐이식뿐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그의 결정을 만류했다.

세원 병원의 스태프들은 물론이요, 의견을 구했던 의진대 스태프들도 하나같이 폐이식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말기 폐암 환자에게 폐이식을 해 봐야 효과가 있겠냐는 주장이 지배적이었다.

그들의 의견은 소중하게 들었지만 최기석은 폐이식에 대한 주장을 굽히지는 않았다.

환자가 살 수 있는 방법이 한 가지라도 있다면, 설령 그것이 의미 없는 행동이 될지라도 도전 하는 게 맞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기증자가 빨리 나타났으면 좋겠는데.’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흉부외과 소아병동을 다 돌았다.

다행히 흉부외과 병동에는 예상했던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

최기석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른 병동까지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그것은 단순히 흉부외과의 문제만이 아니었기에.

그는 사십 분에 걸쳐 가능한 많은 환자와 스태프들의 상태를 살폈다.

마지막으로 도착한 곳은 3층의 소화기외과 병동.

병동과 병실을 훑던 그의 발걸음이 한 병실 앞에 멈췄다.

병실은 2인실로 한쪽 침상은 텅 비었으며 그 반대편 침상에서는 환자와 그의 보호자가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이걸로 끝인가?’

최기석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두 사람에게 히포크라테스의 눈을 사용했다.

환자는 대장암 수술을 끝낸 상태로 경과가 양호로 떠올랐다.

그런데 보호자가 말썽이었다.

보호자에게 떠오른 진단명을 확인한 순간 번개를 맞은 것처럼 온몸이 짜릿했다.

그는 혹시 헛것을 본 것인가 싶어서 눈을 비비고 재차 진단명을 확인했지만 진단명은 여전히 또렷하게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아, 씨발.”

최기석은 욕을 거르지 못한 채 입 밖으로 냈다.

보호자가 메르스에 걸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