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세 (6)
“우심방 파열이다. 보호자한테 동의서 받아. 난 수술실 알아볼 테니까.”
“처치는 어떻게 할까요? 승압제라도 더 줄까요?”
“아니. 파열된 부위를 봉합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없어.”
대답을 마친 최기석은 수술실을 확보한 후 보조 스태프를 한 명 호출했다. 심용준과 더불어 흉부외과의 막내인 레지던트 2년 차 양해철이었다.
최기석이 수술실에 도착하기 무섭게 양해철이 번개처럼 그의 곁에 섰다.
얼굴과 머리가 땀에 젖은 걸 보면 기숙사에서부터 발에 땀나도록 뛰어온 듯 보였다.
“말했다시피 우심방 파열 응급수술이다.”
“네. 안 그래도 오는 동안 수술 과정을 머릿속에 그려 봤습니다.”
“좋은 자세야. 생각을 한 번 해 보고 들어오는 거랑 무작정 돕는 거랑 차이가 크거든.”
“그런데 과장님. 다른 스태프들은…….”
양해철은 주변을 둘러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수술대기 중인 인원은 고작 최기석과 양해철 본인뿐이었다. 나머지는 다큐멘터리 촬영 중인 스태프들이었다.
“없어. 이번 수술은 우리 둘이 해결한다.”
“과, 과장님. 저는 아직 이런 수술을 보조할 능력이 안 됩니다. 혹시라도 발목을 잡으면…….”
“괜찮아. 그럴 일 없어.”
최기석은 미소를 띤 채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과장이 된 후 매일 오전 스태프들과 일대일 면담을 진행하는 중이었다.
면담의 목적은 단순했는데 히포크라테스의 눈으로 스태프의 성향이나 능력들을 정확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하기 위함이었다.
[칭호: 간 큰 남자]
- 효과1: 응급상황을 두려워하거나 당황해하지 않고 편안한 마음을 유지합니다.
- 효과2: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수술이나 처치에 성공할 경우 해당 수술의 이해도가 세 배로 상승합니다.
양해철에게는 간 큰 남자라는 특수 칭호가 있었다.
주의 깊게 살펴볼 것은 칭호의 두 번째 효과 부분!
그보다 실력 있는 의사가 양해철을 이끌어 준다면 그는 무럭무럭 실력을 키울 수 있었다.
최기석의 가르침을 받는다는 가정하에서 세원병원 스태프들 중 가장 빠른 성장이 기대되는 인물이 바로 양해철이었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해. 알았어?”
“아, 알겠습니다.”
잠시 후 응급실에서 환자를 수술실로 올려 보냈다.
벅. 벅. 벅. 벅.
최기석과 양해철은 나란히 서서 소독액이 묻은 솔로 손과 팔을 문지르며 스크럽에 나섰다. 이후 환자가 누워 있는 로젯으로 입장했다.
타임아웃, 환자 감시 장치 연결, 수술도구, 전신마취 등의 과정이 순조롭게 이어졌다.
“지금부터 T.A 환자에 대한 우심방 봉합술을 시작한다.”
최기석의 외침에 양해철이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그는 환자의 가슴부분을 넓게 소독하고 방포를 덮었다.
“우심방 파열은 어떤 개흉술로 접근하지?”
“정중흉골 절개술입니다.”
“그럼 네가 해 봐.”
“네!”
양해철은 별말 없이 소독간호사에 건네받은 메스로 환자의 목부터 명치까지를 내리 그었다.
최기석이 왜 이렇게 적극적으로 가르침을 내리고 있는지는 몰랐다.
하지만 단 한 가지 확신할 수 있는 것.
그것은 가려운 등을 누군가 긁어 주는 것처럼 시원하다는 점이었다.
멋있고 실력 있는 외과의사가 되고 싶다는 푸른 꿈을 안고 흉부외과에 들어왔다. 그런데 레지던트 2년 차가 됐음에도 수술실에서는 아주 간단한 처치나 보조밖에 하지를 못했다.
처치에 목말랐던 그에게 최기석의 지시는 가뭄 속 단비와 같았다.
위이이잉. 빠드드득.
철컥. 철컥.
양해철이 흉골절개와 수술 부위에 견인기를 착용하는 동안 최기석은 잠잠하게 그를 지켜보며 그를 돕는데 힘을 썼다.
“과장님. 원래 레지던트들이 이렇게 주도적으로 처치를 하나요? 지금은 과장님이 양해철 선생님을 돕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요?”
로젯에 같이 들어온 방송 스태프가 말을 걸었다.
“맞습니다. 지금은 제가 해철이를 돕고 있어요. 실제 응급상황에서 처치를 직접 해 보면 실력이 확 늘거든요. 어때? 정신이 바짝 들지?”
“물론입니다.”
“다시 교대다. 내가 어떻게 하는지 잘 봐 둬.”
스으으으윽.
최기석의 메스가 조심스럽게 심막을 갈랐다.
막이 과일껍질처럼 슬며시 벗겨지자 심낭에 고인 혈액이 보였다.
눈대중으로 보니 그 양이 대략 150cc에 달했다.
치이이이익.
그는 혈액을 빨아들이며 천천히 말을 이었다.
“교통사고에서 흉부외상이 생기는 건 아주 당연한 일이야. 그중에서도 심장 손상은 놓치고 지나가기 쉬운데 그 이유가 왜 일까?”
“으음…… 잘 모르겠습니다.”
“심장 손상 후 명확한 증상이 나타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이지. 그렇게 외과적인 처치가 늦어지면 환자 상태는 더 나빠지는 거고.”
“그러면 심장 손상을 일찍 알아낼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저혈압이야. 아까 응급실에서 뭐라고 했는지 알아? 환자가 저혈압인데 승압제를 써도 혈압이 올라가지 않는다고 했어. 그러니까 저혈압이 꾸준히 이어지면 심장 손상을 의심해 봐야지.”
“역시 과장님이십니다. 대단해요.”
“너보다 십 년 넘게 공부했는데 이 정도는 알아야지.”
최기석은 피식 웃으며 검지로 우심방을 가리켰다.
상대정맥과 우심방을 연결하는 부위에 8밀리미터 정도 찢어져 있었다.
“봉합도 네가 해 봐.”
“제, 제가요? 봉합은 자신 없는데…….”
“단순 단속 봉합이고 매듭도 많이 지을 필요 없어. 이 정도면 충분히 가능할걸?”
“그래도 무섭습니다. 환자가 잘못 되면 다 제 책임인데.”
양해철이 겁먹은 표정으로 눈을 내리 깔았다.
“그게 바로 집도의가 느끼는 무게감이지. 내 손에 환자의 목숨이 달렸다는 중압감. 하지만 그 무게감을 견디지 못하면 외과생활 못해.”
“…….”
“진짜 의사는 환자를 전부 안고 가는 거야. 환자의 삶부터 죽음까지. 준비가 안 됐다면 억지로 권할 생각은 없다.”
“아니요. 제가 해 보겠습니다.”
말을 마친 양해철의 태도가 180도 변했다.
눈빛은 뜨거웠으며 말에는 책임감이 느껴졌다. 최기석이 말이 큰 자극제가 되었던 모양이다.
‘까짓 거 못할 것도 없잖아. 단순 단속 봉합이라고. 몇 바늘 꿰매지도 않을 건데.’
끼기기기긱.
니들홀더로 봉합침을 조인 그가 본격적인 봉합에 나섰다.
손이 바들바들 떨려서 처치가 늦었지만 정확도만큼은 흠잡을 때가 없었다. 봉합침은 적당히 혈관에 파고들었고 봉합사가 파열 부위를 조이는 정도 역시 알맞게 팽팽했다.
찰칵!
“휴우…….”
최기석이 봉합사를 잘라 주자 양해철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터질 것 같은 심장의 두근거림이 멈췄다. 더 이상 손도 떨리지 않았다.
스스로 봉합한 부위를 내려다보는 그의 시선에 자랑스러움이 묻어났다.
“거 봐. 잘하잖아.”
“감사합니다, 과장님. 덕분에 큰 깨달음을 얻은 것 같습니다.”
“네가 느낀 게 있다면 내가 고맙지. 마무리는 내가 할게.”
최기석은 조금 과장해서 눈 깜짝할 사이에 봉합의 누수를 확인하고 수술 부위를 덮었다.
지이이이잉.
수술이 끝난 후 홀가분하게 로젯을 나오는 두 사람.
최기석은 곁에 선 양해철을 히포크라테스의 눈으로 살피고 미소를 지었다.
[간 큰 남자 칭호 효과로 우심방 수술 숙련도가 중으로 대폭 상승했습니다. 상급자가 지켜볼 경우, 환자의 상태가 심하지 않을 경우 혼자서 수술을 집도할 수 있습니다.]
과연 양해철을 단독으로 불러 수술을 맡긴 보람이 있었다.
지이이잉.
가운에 넣어둔 휴대폰이 몸을 떨자 최기석은 휴대폰을 꺼내 번호를 확인했다. 응급실인 줄 알았건만 의외로 흉부외과 병동에서 전화가 왔다.
“흉부외과 최기석입니다.”
[과장님, 안녕하세요. 당직 간호사 민지혜입니다.]
“무슨 일이죠?”
[다름이 아니라 심장에 있는 혈관육종으로 수술 대기 중인 환자인데요. 갑자기 가슴이 아프고 숨을 못 쉬겠다고 해서요. 그리고 맥을 확인해 보니까 130회 정도로 빨리 뛰고 있습니다.]
“검사는 해 봤고요?”
[오늘 오후에 촬영한 심초음파에서는 특별히 나온 게 없었습니다. 흉부 엑스레이에서는 폐 우하엽과 우측 횡격만이 조금 올라가 있는 정도로 보이고요.]
“바로 가 볼게요.”
“방금 막 수술을 끝내셨는데 또 환자가 생겼나요?”
VJ가 혀를 차며 말을 걸었다.
최기석이 수술하는 걸 촬영하는데도 진이 빠졌다.
그런데 정작 당사자인 최기석은 얼마나 힘들겠는가. 문제는 이런 최기석이 잠깐도 쉬지 못하고 다시 환자를 봐야한다는 것이었다.
“당직의는 응급실 환자만 보는 게 아니라 입원환자도 봅니다. 흉부외과 환자는 물론이고 심장내과 더 넓게는 심장에 문제가 생긴 다른 과 입원환자까지 챙겨야죠.”
“할 일이 정말 많으시네요. 근데 이걸 당직의 혼자서 다하는 겁니까?”
“원칙적으로는 그렇습니다. 손이 바쁘면 기숙사나 의국에 있는 동료를 부르지만요.”
최기석은 양해철을 데리고 심장내과로 이동했다.
드르르륵.
해당 병실로 이동하자 전화를 했던 민지혜가 환자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 곁에 선 보호자는 그녀와 환자를 번갈아 보며 어찌할 줄 몰라 했다.
“과장님. 오셨습니까?”
“네. 환자를 좀 볼까요?”
최기석은 환자와 가볍게 인사를 나눈 후 의외라는 듯 어깨를 으쓱거렸다.
환자는 30대 초반으로 생각보다 젊었다.
흉부외과 환자는 보통 아주 어리거나 중장년층이 많았기에 이런 나이 때의 환자는 무척 드물었다.
어린 환자가 많은 이유는 선천성 심장질환의 영향 탓이고, 중장년층이 많은 이유는 식습관이나 생활습관이 축척되면서 병이 찾아오는 시기가 중장년 시기이기 때문이었다.
이윽고 최기석이 환자와 문진을 시작했다.
구체적인 증상을 한 번 더 확인했으며 언제부터 통증이 시작됐는지, 가장 불편한 부분은 어디인지 물었다.
체력: 3/10
주 증상: 가슴 통증 / 호흡곤란
아픈 부위: 심장
진단명: 혈관종양(말기) / 혈흉 / 우심방 파열
현재 상태: 응급
경과: 불량
과거력: 폐렴
가족력: 부(夫) 대장암 사망
주의 요소: 심장종양이 횡격막과 폐, 우심실, 간을 침범한 상태입니다.
히포크라테스의 눈을 사용한 그는 혀를 찼다
전이가 발생한 심장의 혈관육종의 평균 생존율은 6개월.
수술과 기타 치료를 병행해도 1년을 넘기기 힘들었다.
젊은 나이에 시한부 인생을 맞이한 환자를 보고 있자니 가슴이 아팠다.
‘지금으로써는 혈관종양으로 우심방 파열이 일어났다고 볼 수밖에.’
최기석이 턱을 쓸어내리며 환자의 앞으로를 고민했다.
당장 수술이 필요한 상황이었지만 수술 범위에 대해서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었다.
파열된 우심방만 봉합할 것인지.
아니면 우심방을 봉합하면서 이틀 뒤에 예정된 종양 제거수술을 함께할 것인지 말이다.
당장은 종양 제거수술을 함께하는 편이 더 좋은 판단 같았지만 그것도 장담할 수는 없었다.
종양 제거수술의 범위 또한 문제였다.
종양 제거 수술은 범위에 따라 두 가지로 나뉘었다.
하나는 고식적 수술이라고 불리는 본래 종양이 생긴 부위만 잘라 주는 수술이고, 다른 하나는 기타 전이 부위까지 다 같이 잘라 내는 전치적 수술법이 있었다.
“선생님. 우리 아들은 이제 어떻게 되는 건가요?”
상황을 지켜보던 보호자가 최기석의 팔을 붙잡았다.
“당장 수술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제 환자가 아니기 때문에 담당 주치의 선생님께 먼저 전화를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잠시 기다려 주세요.”
부교수 김한철에게 전화하는 최기석의 표정이 썩 밝지는 않았다.